‘코로나 장기화’ 끙끙 앓는 대중문화계 실상

방송·가요·영화…연예인도 다들 “죽겠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를 잠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장기 확산세로 치닫고 있다. 중국 우한서 시작돼 국내에서는 대구서 크게 번진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급격한 불안은 모든 분야를 얼어붙게 했다. 대중문화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방송과 영화, 가요, 공연 등 모든 영역서 신음을 앓고 있다. 
 

▲ TV조선 <미스터트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은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관객과 직접적으로 호흡하는 무대 행사나 방송은 관객의 리액션 없이 진행되며, 극장가는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준비했던 콘서트는 관객 앞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며, 뮤지컬은 갑작스럽게 사라지기 일쑤다. 해외 로케이션을 준비했던 영화나 드라마는 옴짝달싹 못하고 있으며, 여행 예능은 휴지기에 돌입했다. 

예상치 못한 
사태로 패닉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직격탄을 맞은 예능프로그램은 관객과 호흡할 수밖에 없는 무대형 프로그램이다. KBS2 <씨름의 희열> <유희열의 스케치북> <개그콘서트>, tvN <코미디 빅리그>, SBS <핸섬 타이거즈>, TV조선 <미스터트롯>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씨름 중흥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씨름의 희열>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결승전을 무관중으로 치러야 했다. 수천명의 관객이 몰린 상황에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농구 직접 관람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는 취지로 기획된 <핸섬 타이거즈> 역시 조별리그 첫 경기만 관중이 있었고, 급격히 확산된 2경기부터는 무관중으로 대체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미스터트롯>은 결승전을 무관객으로 치렀다. 전 연령대를 사로잡은 이 프로그램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코로나19의 확산이 더욱 강화되면서 관객 없이 결승전을 꾸몄다. 최종 승자 투표 방식에 관객 투표를 합산하려 했다가 무관객과 관련 개표 과정서 문제가 생기며 ‘조작 논란’까지 이어졌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은 대다수가 휴지기에 돌입한다. 지난 2월 말부터 한국인을 입국 금지하는 나라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내 여행지로 눈을 돌렸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임시 휴방을 하거나 종영을 결정한 프로그램도 있다. 아시아권 여행지를 주로 소개한 KBS2 <배틀트립>은 일본 불매운동에 이어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폐지 수순을 밟았다. 

여행·오디션 직격탄, 긴급 휴식
역발상으로 위기 극복하는 예능

한 방송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출연자 개편 등 방송을 재정비하는 프로그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예능 프로그램 PD는 “코로나19 확산지가 많아져 제작에 어려움이 심하다. 특히 촬영 지역에 확진자 또는 사망자가 나올 경우에는 촬영을 했어도 소개하기가 마땅찮다”고 말했다. 

악조건을 역발상으로 넘으려는 예능 프로그램도 더러 눈에 띈다. 관객을 웃기고 놀리는 <코미디 빅리그>는 출연진이 관객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진호 등 예능인들이 관객 대신 더 큰 리액션을 선보인다. 
 

▲ KBS2 TV 유희열의 스케치북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유희열의 다채로운 표정으로 관객의 얼굴을 대신한다. 매 순간 큰 차이로 변화하는 유희열의 표정을 포착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MBC <놀면 뭐하니?>는 코로나19로 인해 연이은 취소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공연계에 ‘방구석 콘서트’를 제안하는 새로운 해법을 마련했다. 오랜 기간 콘서트를 준비한 가수 지코, 장범준을 비롯해 뮤지컬 <맘마미아> 팀 등을 섭외했다. 객석을 배경으로 가수들이 카메라를 보며 부르는 무대는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록 객석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방송을 통해서나마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줬다. 


위기를 기회로
활로 찾는 예능

약 두 달간 휴지기를 마치고 돌아온 tvN <유 퀴즈 온더 블록>은 화상채팅으로 소통을 이어갔다. 특히 화상통화를 통해 역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구 지역 의사, 간호사들과의 이야기는 뜨거운 감동을 불러 일으키였다. 이어 CJ 계열 채널 예능 프로그램의 작가 및 제작진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그림을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코로나19 사태 자체를 주제로 다루는 예능도 있다. JTBC <방구석1열>은 감염병 상황에 참고할만한 영화인 <감기>와 <월드워Z>를 다뤘다. JTBC <막나가쇼>는 최대 피해 지역은 대구를 비롯한 국내 현황을 화면에 담았다. 코로나19를 둘러싼 의문을 확인하고 해소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차이나는 클라스>는 코로나19 실체와 예방법을 설명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tvN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통해 감염병 앞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조명했다. 각 프로그램은 시의성에 맞는 주제로 시청자들의 눈을 모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가요계의 시계는 크게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 음원 발매를 취소했던 가수들은 ‘힐링’을 주제로 신곡을 발표하고 있다. 

3월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 아이돌 그룹은 NCT127, 있지(ITZY), 스트레이 키즈, 빅톤, 원어스, 동키즈, 페이버릿 등이다. 이밖에 신승훈, 왁스, 리아, 강다니엘, 세정, 홍은기 등 솔로 가수들의 신곡 발표가 줄을 이었다. 엠씨더맥스, 옹성우, 수호, (여자)아이들 등도 출격 날짜를 잡아 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 NCT127, ITZY ⓒSBS

한 가요 관계자는 “대중 음악 시장은 특정 시기를 놓치면 유행의 흐름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활동 무대가 많지 않음에도 완성해놓은 콘텐츠를 예정대로 발표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이오아이 출신이자 구구단의 멤버 세정, 엑소 수호 등은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두 가수 모두 서정적인 멜로디를 바탕으로 한 감미로운 곡을 앞세운다. 불안과 공포에 맞서 희망을 제시하는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콘서트, 음악… 
페스티벌 휘청

대다수 관객을 모으는 콘서트나 음악 페스티벌은 역대 가장 안 좋은 시기를 맞았다. 44개 중소 레이블과 유통사를 회원으로 둔 사단법인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는 지난 2월1일부터 4월11일까지 열기로 했던 행사 중 61개가 연기 또는 취소됐다고 지난 25일 밝혔다. 

인디 뮤지션이 많이 활동하는 홍대 인근 소규모 공연장서 열릴 공연도 지난달 1일부터 내달 17일까지 82개가 연기 또는 취소됐다. 대중음악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전국적으로 200여개 공연이 연기·취소된 것으로 추산된다.

페스티벌이 취소되면서 조명이나 무대 설치 등 하도급 업체들은 파산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일부 업체는 공연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원을 증원하는 등 투자를 늘렸지만, 예상치 못한 재난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 페스티벌 관계자는 “페스티벌이 열리지 않으면서 하도급 업체는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아예 일이 없기 때문에 수익 없이 월급을 지급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일부 페스티벌 업체들은 지난해 일한 것을 올해 번 돈으로 정산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런 경우에는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기서 더 장기화되면 파산하는 업체들이 줄줄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화계는 사실상 마비 상태다. 평일에도 하루 총 관객 30만명 이상을 유지하던 국내 극장가는 하루 총 관객 3만명으로 줄어들었다. 확진자가 영화관을 돌아다닌 소식이 전해진 이후부터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2∼3월 개봉하기로 예정했던 영화들은 대다수가 개봉을 무기한 연기했다.

어찌어찌 돌아가는 가요계의 시계
제작·투자·배급·홍보 ‘혹한기’

<사냥의 시간> <기생충: 흑백판> <결백> <침입자> <콜> 등 무려 50여편이 넘는 신작들의 개봉이 전면 연기됐다.

고정 부담금이 높은 영화관은 영업중단이라는 강수를 냈다. CGV는 28일부터 직영 극장 116곳 중 30%인 35곳의 영업을 중단한다. CGV는 모든 극장의 영업을 중단하는 것이 맞는 상황이지만, 극장이 무너지면 국내 영화 시장이 동반 몰락할 수 있어 우선 35곳만 휴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속기간 10년 이상 임지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도 실시한다.


이에 따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영화 단체와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지난 25일 공동성명을 내고 정부에 특별고용지원 업종 지정, 금융 지원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코로나19 전담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운영에 들어갔다.
 

▲ ▲ 영화 감기

제작 분야도 고달픈 건 마찬가지다.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 개봉을 목표로 촬영에 돌입한 영화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로케이션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스태프들의 안전 문제로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장서 스태프들은 모두 마스크를 스고, 손 소독제와 열 감지를 설치하고 촬영을 진행 중이다. 크지 않은 공간에 약 100명의 인원이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불안감은 클 수 밖에 없다. 하루만 촬영 스케줄이 어긋나도 수 천만원의 인건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게 촬영 중이다. 

개봉 연기·중단 
코너 몰린 극장가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중 해외 로케이션을 계획한 경우에는,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로 해외 촬영을 중단해 급히 귀국하거나 혹은 해외 촬영분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송중기가 출연한 영화 <보고타>는 콜롬비아 현지 촬영을 중단한 채 귀국했다. 송중기 역시 자가격리 중이다. 극장, 제작, 투자, 배급, 홍보까지 영화 산업 전반에 걸쳐 혹독한 혹한기가 불어닥친 것.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계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업체들은 일손이 끊겨 신음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뒤통수 친 ‘사냥의 시간’
경제적 어려움에 넷플릭스 선택

영화계가 엄혹한 시기를 겪고 있는 중에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OTT(Over The Tpo) 서비스와 손을 잡고 기존 계약 업체를 배신한 영화도 생겨났다.

이 과정서 잡음도 크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개봉 예정이었던 <사냥의 시간>은 오는 4월10일 넷플릭스와 단독 공개를 결정했다. 

<사냥의 시간> 측은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안을 고민하던 중 엔터테인먼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개국에 단독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냥의 시간>은 이미 해외 선판매 계약을 완료한 것은 물론 베니스영화제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진행한 곳이 해외 판매사 ‘콘텐츠 판다’다. 양 측은 상이한 견해 차이를 보인다. 

해외 세일즈를 맡은 콘텐츠 판다는 <사냥의 시간>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가 충분한 논의 없이 통보 형태의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자기만 어렵나…” 
비판적인 영화계

이로 인해 해외 선판매 계약 건을 이유로 국제 소송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냥의 시간>은 당초 넷플릭스와 협업한 것이 아닌, 코로나19로 인해 갑작스럽게 플랫폼을 바꾼 첫 영화라는 점에서 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어느 한 곳 숨쉬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피해가 큰 가운데, 자신의 피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리틀빅픽쳐스의 처신이 좋지 못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콘텐츠 판다 관계자는 “리틀빅픽쳐스로 인해 해외에서의 신뢰가 대다수 깨졌다. 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물 것”이라고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예고했다. 그런 가운데 <사냥의 시간>의 선택은 전통적인 유통 방식서 OTT 서비스로 흐름이 넘어가는 첫 물꼬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사냥의 시간>의 행보는 영화 생태계의 이변을 보여준다. 리틀빅픽쳐스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긴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사 속 기사> 바뀐 연예계 인터뷰 문화
온라인 제작발표회에 화상 인터뷰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일환으로 대다수 업체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연예계도 발을 맞추고 있다. 대다수 기자 및 관계자가 모이는 제작발표회는 온라인으로 실시되며, 대면 인터뷰는 극히 삼가고 있다. 

특히 제작발표회가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되는 것이 눈에 띈다. 사회자가 각종 매체의 기자들로부터 받은 질문을 대신 질의하고, 배우 및 제작진은 이에 답변한다.

방송사 측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변경되면서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SBS 한 관계자는 “온라인 제작발표회를 몇 차례 진행했는데, 기자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질문도 거의 없다. 이전보다 홍보가 안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불편한 질문을 따로 하지 않는 주최 측이 있어, 굳이 질문을 안 한다는 기자도 있다.

“안전에 대한 염려
어쩔 수 없는 변화”

한 기자는 “한 예능프로그램의 패널이 바뀌었는데, 왜 바뀌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주최 측에 보냈는데, 물어보지 않았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질문만 하겠다는 의도가 느껴져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전화나 화상채팅으로 바뀌었다.

tvN <방법>의 연상호 감독은 서면 인터뷰로 대체했으며,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는 <킹덤2>는 김은희 작가와 박인제 감독을 포함한 모든 배우들을 화상 인터뷰로 진행했다. 코로나19가 피부로 와닿는 지점이다. 

<킹덤2> 관계자는 “안전에 대한 염려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서 많은 분들이 모이는 현장 인터뷰보다는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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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