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무릎 꿇은 교주’ 이만희

잠적했다 나타나 ‘이배사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음지의 종교’ 신천지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에 신천지 교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후부터다. 교주, 총회장으로 불리는 이만희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신천지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만희는 최근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국민 앞에 섰다.
 

▲ 이만희 신천지 예수교 총회장 ⓒ신천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이 때아닌 유명세를 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실제 신천지 교인으로 확인된 31번 확진 환자의 등장 이후 증가세가 커졌다. 특히 대구·경북의 경우 신천지발 확진 환자가 폭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코로나 확산
진원지 됐다

지난달 18일까지 코로나19의 확진 환자 수는 30명대에 머물렀다. 120일 국내서 첫 번째 확진 환자가 나오고 한 달가량 하루 1명꼴로 늘어난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달 18일 대구서 31번째 확진 환자가 나오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지역감염이 시작되자 확진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31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열흘도 채 안 돼 확진 환자 수가 1000(226일 기준)을 넘어섰다. 31번 확진 환자의 동선을 확인하는 과정서 그가 예배를 본 대구교회가 신천지 교회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31번 확진 환자와 함께 예배를 보는 등 접촉한 사람 수가 1000명이 넘는다는 내용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대구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대구를 기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신천지 교인이 나타났다. 검사를 거부하거나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확진판정 이후에야 밝히는 등의 사례가 연이어 나왔다. 코로나19 국내 첫 사망자가 나온 청도 대남병원서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의 형이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해 장례식이 치러진 사실도 드러났다.


신천지 대구교회에 따르면 이만희의 친형 이모씨는 127일 저녁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119 구급차를 타고 청도 대남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그는 일반병실에 있다가 131일 새벽 사망했다. 이씨가 사망 전 폐렴을 앓은 것으로 드러나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따로 부검을 진행하지 않아 확인되진 않았다.

이후 청도 대남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청도 대남병원 관련 확진자는 총 114(226일 기준)이다. 폐쇄 정신병동 입원환자 102명 중 101명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사망자도 7명이나 나왔다. 현재 청도 대남병원은 코호트 격리 중이다.

코호트 격리는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그 안에 있는 환자와 의료진까지 통째로 봉쇄하는 조치를 말한다.

이씨의 장례식은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된 매개로 지목되고 있다. 경찰은 당시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의 행적을 확인하고 있다. 경찰이 확보한 조문객 명단에는 170여명가량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조계에는 교인, 포항교회, 경주교회 등 조문객의 신원사항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정부들은 신천지 관련 시설 폐쇄 등 조치에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달 24일 경기도 내 신천지 관련 시설 353곳을 강제 폐쇄하는 긴급명령을 발동했다. 다음날에는 신천지 총회본부를 찾아 신천지 과천교회 예배 참석자 명단을 제출받았다. 경기도 신천지 신도는 33840명에 이른다. 이중 지난달 16일 과천서 예배를 본 신도는 9930명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난 폭주
사실혼 관계 2인자 폭로까지

정부는 전국 신천지 신도의 명단을 확보하고 발열 등 증상이 있는 사람을 우선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시행 중이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 정례 브리핑서 “(2)25일 신천지 교회로부터 전체 신도 212000명의 명단을 확보했다지자체에 명단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지방정부의 조치로 신천지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서 중국 우한 지역에 소속 교회가 없다는 신천지의 해명이 거짓이라는 의혹까지 나왔다. 유튜브 채널 종말론 연구소는 지난달 26신천지 지도부의 구속수사를 요청합니다라는 영상서 신천지 총회 산하 12지파 중 하나인 부산 야고보 지파장의 설교가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 ▲청도 대남병원

녹취록에 따르면 야고보 지파장은 지난달 9일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서 지금 우한 폐렴 있잖아. 거기가 우리 지교회가 있는 곳이라며 중국이 지금 보니까 700명 넘게 죽었잖아요. 확진자가 3만명이 넘잖아요. 그 발원지가 우리 지교회가 있는 곳이라니까라며 우한에 교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 성도는 한 명도 안 걸렸어라고 말하자 신도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아멘을 외치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신천지 측은 그동안 우한에 지교회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또 성도가 있다는 자료가 공개된 뒤에도 중국 정부가 교회당을 허가하지 않아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신천지 측은 여전히 우한에는 신도만 있을 뿐 교회당이라는 물리적 실체는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신천지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부산 야고보 지파서 기도하고 연락도 하면서 신앙 관리를 위해 소속감도 주고 용기를 불어넣을 수는 있다면서도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우한교회 신천지 성도가 한국에 입국한 적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린다고고 주장했다.

고립에 가까울 정도로 도시가 죽어버린 대구는 물론이고, 신천지는 전 국민의 공적이 돼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서 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 참석하는 7대 종단 지도자들을 만나 신천지는 일종의 확진자 소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만희는 지난달 21일 신천지 관련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 총회장님 특별편지라는 제목의 글로 공식입장을 내놨다. 그는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의 짓임을 안다면서 모든 시험에서, 미혹에서 이기자고 강조했다.

이어 당국 지시에 협조해야 한다전도와 교육은 통신으로 하고 당분간 모임은 피하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금 병마로 인한 피해자는 신천지 성도들이라며 어떤 풍파도 우리 마음과 믿음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승리하자고 맺었다.

친형 장례식
슈퍼 전파자?

신천지 측은 지난달 25일 이만희의 두 번째 특별편지를 공개했다. 이만희는 “신천지 전 성도 명단을 제공하고 전수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아울러 교육생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것은 정부서 성도들의 개인정보를 유지 및 보안 방안을 마련하는 전제 하에 진행할 것”이라며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자”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극복을 위해 정부에 적극 협조해왔다. 특히 대구교회 성도님들이 많은 피해를 입어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신천지는 1984314일 창립된 이래 3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같은 상황서도 이만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그의 소재와 상황을 두고 궁금증이 증폭됐다. 경기도 가평 칩거설, 건강 이상설, 심지어 자연사설까지 퍼졌다. 또 그가 청도 대남병원서 진행된 친형 장례식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코로나19 감염여부에도 관심이 쏠렸다.

손수호 변호사는 지난달 27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만희의 행방을 두고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 건강상의 이유로 어디선가 치료받고 있을 가능성 국내 어느 곳에 칩거하고 있을 가능성 등이다.
 

 


손 변호사는 신천지는 교주를 보위하는 12지파장, 그리고 그 아래 24장로가 조직의 핵심인데, 24명의 장로 중 1명인 A씨가 얼마 전 CBS 취재팀에게 이만희 총회장이 친형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총회서 총회장을 따라간 사람이 1명도 없다는 말을 했다김남희씨가 이만희씨의 비리를 공개하면서 공격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이만희가 이미 사망했거나 또는 적어도 사망에 임박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고 제시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치료를 받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90세에 다다른 이만희의 나이를 근거로 들었다. 손 변호사는 이만희씨는 최근 몇 년간 큰 행사 외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2017년에도 척추 수술을 받고 한동안 모습을 감춘 적 있다무엇보다 친형 장례식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여럿 나왔다. 이만희씨도 감염 의심 상태 또는 감염 상태로 숨어 있는 중 아닌지 짐작한다고 말했다.

지방정부
시설 폐쇄

그러면서 이만희가 경기도 가평 쪽에 숨어있는 게 아닌지 추측했다. 가평에는 신천지 연수원 일명 평화의 궁전이 있다. 신천지의 큰 행사를 진행하던 곳이다. 손 변호사는 경기도 모처의 또 다른 주택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현재 CBS서 추적 중이라 구체적인 장소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만희는 19319월 경북 청도서 태어났다. 가족력이 있는 한센병을 치료하기 위해 1957년 전도관에 입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으로 신학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장막성전의 교주 유재열을 추종하다 1975년 유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된 후 1978년 솔로몬 창조교회의 12사도 조직에 몸담았다

이후 여러 단체를 거쳐 지식을 습득한 이만희는 19843월 신천지를 만들고 경기 과천시에 본부를 세웠다. 신천지 교리서인 <신탄>지상에 천국이 임하며 신천지가 바로 그 천국이라는 지상천국론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다시 환생한다는 부활론 믿음이 있으면 육체가 영원히 산다는 영생론 등을 전파하고 있다.


이만희는 신천지 신도들에게 선생님, 이긴자, 보혜사, 만희왕 등으로 불린다. 1984년 창립연도를 기점으로 신천기라는 연호와 국기, 국가, 국새까지 있다. 자체 의장대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최근 신천지 2인자이자 이만희와 사실혼 관계였다는 김남희씨가 신천지와 이만희에 대한 지속적인 폭로를 예고하면서 신천지 내부갈등이 표면화됐다. 김씨의 입을 통해 이 회장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신천지 측에서는 김씨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씨는 최근 유튜브 채널 존존테레비에 출연해 이만희는 구원자도,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과 종교를 이용한 완전 사기꾼이라며 이만희 교주를 구원자로 믿는 종교 사기 집단 신천지는 이 땅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천지 입문 전 가톨릭 신자였던 김씨는 2002년 신천지 수료식서 이만희가 자신을 처음 봤을 때 올 줄 알고 있었다. 과연 꿈에서 본 그 얼굴이라며 노골적으로 접근했고, 이만희에게 세뇌돼 두 아이와 남편이 있었지만 그와 혼인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저에게는 이만희 교주가 하는 말이 법이었다. 저뿐만 아니라 교리에 세뇌되고 중독됐다면 누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만희 교주의 마각을 알지 못했다. 그 마수에 걸려 들어갔다. 저는 그날 이후부터 여러분이 아는 영적 배필이 아니라 육적 배필이 됐다고 폭로했다.

“이미 사망했을 수도” 주장도
특별편지 이후 칩거했다 나타나

이어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제게 계획적 접근을 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당시 압구정동 큰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미리 이만희 교주한테 상세히 보고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계룡시에 평수 넓고 전망 좋은 아파트가 있었는데 이만희 교주가 책도 쓰고 머리 쉬고 그럴 데가 필요한데 여기가 딱 좋다,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해 열쇠를 넘겨줬다”며 그러다 저한테 계룡으로 오라고 전화가 와서 갔더니 아무도 없고 이만희 혼자 있었다고 했다.

이만희와 김씨는 신천지 행사인 제6회 세계평화 광복 하늘문화 예술체전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에 따르면 이만희는 당시 본처가 있었고 본처와 이혼한 후 김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만희는 김씨에게 아들을 낳아달라고 요구하고, 하나님의 씨라는 뜻의 이천종이라는 이름까지 지어놨다.

김씨는 아마 이 얘기를 듣는 사람은 어떻게 저런 비상식적인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할 텐데 이 안에 들어오면 세뇌가 되고 중독된다이만희 교주에 대한 것을 너무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천지 떠나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뇌와 중독이 무섭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만희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로 돈을 들었다. 이만희가 4000억원이 필요하다면서 김씨에게 1000억원을 마련해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김남희에게 모든 돈이 흘러 들어간다’ ‘김남희가 신천지 후계자다라는 소문 때문에 억울한 마음을 (이만희가) 풀어주지 않고 1000억원을 요구해 모든 정나미가 떨어져 2017년에 집을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만희 교주는 돈밖에 모르는 고도의 사기꾼이라며 지금 와서 보니 제 돈이 목적이었다. 항상 부부는 네 것 내 것이 없다며 저한테 이거 사라 저거 해라 지시했다. 한쪽은 돈을 모으고 한쪽은 돈을 쓰고 산 것이다. 당시엔 거절할 생각도 못했다. 이만희 교주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했다고 폭로했다.

신천지 관계자는 <중앙일보>김남희씨가 신천지를 탈퇴할 때 약 20명의 신천지 사람들이 함께 나갔다. 그들은 대부분 일반 신자가 아니라 나름대로 교회 내 직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며 김씨가 신천지 내부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총회서도 김씨의 향후 폭로 행보에 주목하고 있고 법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신도 두고
어디에?

코로나19 사태, 신천지 2인자 김남희의 폭로에도 두문불출하던 이만희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신천지 연수원인 경기 가평군 평화의 궁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말 죄송하다. 뭐라고 사죄 말씀을 드려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국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며 우리도 즉각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나 정말 면목 없다. 여러분들께 엎드려 사죄를 구하겠다며 취재진 앞에서 큰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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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