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8차 화성사건의 나비효과

이춘재 두고 검경 힘겨루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9월 중순 이전까지만 해도 이춘재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가 ‘국내3대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이춘재는 검·경 갈등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춘재로부터 시작된 나비효과를 <일요시사>가 쫓아가봤다.
 

▲ 재심 기자회견 갖는 박준영 변호사

경찰은 지난 17일, 이춘재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브리핑서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살인사건 중 DNA가 확인된 5건 외에 DNA가 확인되지 않은 9건의 살인과 9건의 성폭행(미수 포함) 사건도 그의 소행으로 보고 추가 입건했다고 밝혔다.

9월부터
급물살

경찰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춘재의 신상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며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그의 이름과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화성시의회는 경찰과 언론사는 지역 전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만드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을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춘재 살인사건(이하 이춘재 사건)19861차 사건이 일어난 후 현재까지 역대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으로 기록돼있었다. 당시 사건에 동원된 경찰 연인원은 205만여명으로 단일 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수사 대상자는 당시 21280명이었으며 무려 4116명의 지문을 대조했다.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 시점은 첫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33년 만이다.

1986915일부터 199143일에 이르기까지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4개 읍·면서 1371세 여성 10명이 살해당했다. 살해 과정서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의 옷가지가 이용됐고 끈 등을 이용해 목을 졸라 살해한 교살이 7, 손 등 신체 부위로 목을 눌러 살해한 액살이 2건이었다.


피해자들은 인적이 드문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 있다 나타난 범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버스정류장서 귀가하는 여성들이 대상이 됐다. 당시 경찰은 성폭행 피해를 가까스로 면한 여성과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태운 버스운전사의 진술로 몽타주를 만들었다. 이춘재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몽타주는 이춘재 사건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모티브가 됐던 영화 &lt;살인의 추억&gt;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범인은 마른 체격에 165170의 키,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머리, 오똑한 코에 쌍꺼풀이 없고 눈매가 날카로운 갸름한 얼굴의 20대 중반 남자였다. 특히 손이 부드럽다는 언급이 있었다. 화성사건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서도 손에 대한 얘기가 나올 만큼 범인의 특징은 널리 알려진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200642일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범인의 윤곽은 오리무중이었다. 모방범죄로 분류돼 범인이 잡힌 8차 사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9건은 영구미제로 남는 듯했다. 범죄 심리학자들은 범인이 이미 사망했거나 수감 중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DNA로 33년 미제사건 해결
처음 칭찬 일색이었지만…

이춘재 사건의 실마리는 올해 중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경기남부경찰은 지난 7월 이춘재 사건 현장의 증거물서 채취한 여러 DNA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감정 의뢰해 한 달여 뒤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918일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은 919일 이춘재 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춘재는 범죄 심리학자들의 예측대로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경찰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춘재에게 죗값을 물을 수는 없지만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 수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30여년 전 사건 현장서 채취한 DNA로 이춘재 사건의 범인을 특정하면서 과학수사의 쾌거등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과거가 드러날수록 당시 수사기관의 민낯이 훤히 드러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모방범죄로 분류됐던 8차 사건과 초등생 김모양 실종사건 등으로 경찰이 수세에 몰리는 모양새다.


이춘재는 조사 과정서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이춘재가 모방범죄로 분류됐던 8차 사건 역시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점이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윤모씨는 1989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한 뒤 20098월 모범수로 감형 받아 출소했다.
 

▲ 민갑룡 경찰청장

8차 사건은 1988916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한 가정집서 당시 13세 박모양이 성폭행 당하고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당시 사건 현장서 발견된 체모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거쳐 인근 농기구 공장서 근무하던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자백을 받았다. 윤씨는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다.

윤씨는 상소하는 과정서 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아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춘재의 등장으로 8차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윤씨는 재심 전문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지난달 13일 수원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이춘재 자백
경찰의 민낯

박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420조가 규정한 7가지 재심 사유 중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5) 수사기관이 직무상 범죄(1호 및 제7) 등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들었다.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로 박 변호사가 제시한 것은 이춘재가 피해자의 집 대문 위치, 방 구조 등을 그려가면서 침입 경로를 진술한 점을 들었다.

또 윤씨가 범인으로 검거될 당시 주요 증거였던 국과수의 감정서가 취약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작성됐고 주관이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여러 전문가들이 국과수의 방사성 동위원소 검토 결과에 오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이 윤씨를 불법 체포하고 감금했으며 구타와 가혹행위를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윤씨가 글씨가 서툴고 맞춤법을 잘 모르자, 경찰이 자술서에 적어야 할 내용을 불러주거나 글을 써서 보여주며 작성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윤씨 측은 당시 경찰이 참 무서운 수사를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158차 사건의 진범이 이춘재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수사본부는 8차 사건에 참여한 경찰관 51명 중 사망한 11명과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3명을 제외한 총 37명을 수사해, 당시 형사계장 등 6명을 직권남용 체포·감금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독직폭행, 가혹행위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또 수사과장과 담당검사를 직권남용 체포·감금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30여년 전 하굣길에 실종됐던 초등생 김모양 사건도 이춘재의 범행으로 밝혀지면서 점입가경이다. 19897월 초등학생 김양이 실종됐다. 입고 있던 치마와 메고 있던 가방은 발견됐지만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가출로 처리했다. 가족들은 계속해서 딸의 행방을 찾았지만 이춘재가 김양을 살해했다고 자백하면서 망연자실 상태에 빠졌다.

문제는 살인사건이 가출사건으로 바뀌는 데 경찰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 경찰은 지난 17일 김양 실종 사건의 담당 형사들을 사체은닉 혐의로 입건했다. 수사 당시 형사계장과 형사 1명은 이춘재 사건의 진범 검거에 부담을 느끼고 실종 학생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하고도 은폐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조작? 오류?
자존심 싸움

수사본부는 한 지역 주민으로부터 “1989년 초겨울 형사계장과 야산 수색 중 줄넘기 줄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춘재는 김양의 양 손목을 줄넘기로 결박했다고 자백한 바 있다. 하지만 형사계장은 유골의 존재를 김양의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조사하는 과정서 줄넘기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이춘재 사건의 나비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8차 사건의 국과수 결과를 두고 검찰과 경찰이 한 판 붙었다. 검찰은 국과수 감정서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경찰은 오류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갈등은 검찰이 지난 118차 사건을 직접 조사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이미 수개월에 걸쳐 8차 사건을 조사해온 경찰에 검찰이 끼어든 모양새가 됐다.
 

▲ 윤석열 검찰총장

수원지검 형사 6(전준철 부장검사)는 지난 128차 사건의 국과수 감정서가 허위로 조작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체모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 분석을 실제로 실시한 한국원자력연구원 감정 결과와 국과수의 감정서 내용은 비교 대상 시료 및 수치 등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국과수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여러 차례에 걸쳐 수많은 체모의 중금속 성분 분석을 의뢰해 감정 결과를 회신한 뒤, 윤씨의 체모 분석 결과와 비슷한 체모를 범인의 것으로 조작했다고 보고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과수의 감정서는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된 바 있다.

그러자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17당시 모발에 의한 개인식별관련 연구를 진행한 국과수 감정인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법과학분야에 도입하면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시료 분석 결과값을 인위적으로 조합·첨삭·가공·배제해 감정상 중대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의 조작 주장에 경찰이 오류로 맞선 셈이다.

검찰은 경찰의 발표 당일 재반박에 나섰다. 검찰은 경찰의 발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8차 사건 국과수 감정서는 일반인 체모를 감정한 결과를 범죄현장서 수거한 체모에 대한 감정 결과인 것처럼 허위로 작성하고 나아가 수치도 가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재차 밝혔다.

국과수 감정서 두고 반박·재반박
수사권 조정 위한 기관들 큰 그림?


경찰은 지난 18일 또 다시 취재진 설명회를 열어 검찰은 당시 국과수가 한국원자력연구원 보고서상 ‘STANDARD’(표준 시료)는 분석기기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한 테스트용 표준 시료이고, 윤씨의 감정서에만 이를 사용하는 수법으로 감정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STANDARD는 테스트용 모발이 아닌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라는 것.

검찰과 경찰이 8차 사건 국과수 감정서를 두고 상대의 입장을 반박·재반박하는 방식으로 맞서면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 들어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를 두고 수면 아래서 갈등을 빚어왔던 두 기관이 이춘재 사건을 통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은 해묵은 논쟁이었다. 수사권 조정 흐름은 문재인정부 들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때부터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민정수석시절인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이 포함된 권력기관 구조개혁안을 발표했다.

이후 지난해 6월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송치 전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주는 등 경찰 재량을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검찰은 기소권과 함께 일부 특정 사건에 관한 직접 수사권과 송치 후 수사권, 보완수사 요구권 등 경찰에 대한 통제장치를 확보했다. 현재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에 올라타 있다.
 

일각에선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건으로 청와대와 각을 세운 윤석열 검찰총장이 경찰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비리 수사를 둘러싸고 또 다시 대립하는 모양새를 보면서 ·경 수사권 조정 국면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노림수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이춘재 사건에 검찰이 개입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검찰은 국회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시를 시작하고 종결할 권한을 가지면 수사 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스트트랙
국회는?

민갑룡 경찰청장은 검찰의 이 같은 움직임에 반발했다. 민 청장은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서 진행된 정례간담회서 패스트트랙 안의 대의가 손상돼선 안 된다수정이 가능하다면 그간 사법개혁특별위원회서 잠정 합의된 것 중 빠진 부분이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권 조정안이 수정된다면 검찰의 권한 확대가 아닌 경찰의 수사 가능 범위를 늘리는 방향으로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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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신학원 이사의 수상한 영전

[단독] 한신학원 이사의 수상한 영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신학원 이사였던 A씨가 한신대학교 총장과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가 취하했다. 공교롭게도 고소를 취하하기 직전에 열린 이사회에서 그는 교육인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고소가 이뤄진 배경은 지난 5월22일 열린 한신대학교 이사회에서 비롯됐다. 이날 회의에는 총장을 비롯해 이사 17명이 참석했다. 당시 학교법인 한신학원의 감사가 “그동안 한신대에서 사내 공사를 한 금액이 70억원이 넘는데 모두 입찰을 피하기 위한 쪼개기 공사로,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했다”고 보고하면서다. 학원 감사 내부 폭로 당시 감사의 충격적인 발언으로, 한신학원 이사 A씨는 고민 끝에 업무상 배임 및 횡령으로 한신대 총장과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다. A씨가 지적하는 부분은 세 가지다. 첫 번째로 한신학원 재산인 거제도 땅과 관련한 배임을 주장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신학원은 거제시에 임야 약 55만평을 보유하고 있었고,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맹지’로 분류된 해당 부지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그 곳은 수익용 기본재산임에도 장기간 활용이 어려운 상태였다. 한신학원 측은 이 토지를 단순 보유할 경우 관리비만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가치 상승도 제한적이라고 판단해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었다. 당시 M 건설은 2016년부터 경남 거제시 아주동 일원에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업 대상 부지 중 일부가 학교법인 한신학원 소유의 임야로 포함돼있었고, 한신학원 역시 해당 지역 임야를 공동개발 방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M 건설은 경상남도로부터 지구 지정에 대한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신학원 이사들은 당시 이사장이 학원 소유 토지를 공공임대주택 개발에 제공하는 대가로 20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용역업체 대표의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 이사회는 즉시 M 건설 측에 협상단을 파견해 토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이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한신학원의 상급기관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이하 기장총회)는 사업 자체를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M 건설은 한신학원 측의 토지 사용 승낙을 얻지 못하게 됐고, 결국 조건부 지구 지정이 취소될 위기에 놓이면서 개발사업은 사실상 좌초됐다. 이후, 한신학원 법인 산하 ‘한신영림운영위원회’는 열린 회의에서 해당 부지를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하는 형태로 개발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이 회의에는 삼부토건 관계자라고 주장하는 B씨와 C씨가 직접 참석해 사업 구조와 예상 수익, 한신학원의 참여 방식 등을 설명했다. 이들은 명함까지 주며 자신들을 “삼부토건 고문”과 “부사장”이라고 소개하며 접근했다. 한신대 상대로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 고소 불법 매각·쪼개기 공사·교비 횡령 의혹 제기 두 사람이 제안한 내용은 “삼부토건이 M 건설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해 시행하며, 한신학원은 부동산투자회사(REITs)에 현물출자하고 주식 지분을 배당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때 M 건설에도 B씨와 C씨가 접근했다. 이들은 “한신학원과 협의를 주선해 사업을 재개시키겠다”고 제안했다. M 건설은 이 제안을 믿고 2023년 8월 ‘사업시행대행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조건은 B씨 측이 같은 해 9월20일까지 한신학원으로부터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받아오면 용역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M 건설은 계약금 명목으로 1억원을 지급했다. 같은 해 이사회는 한신영림운영위원회의 보고를 바탕으로 관련 헌의안을 기장총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한신학원은 기장총회가 한신대 운영을 위해 설립한 법인으로, 모든 사업은 기장총회의 허가가 필요하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사업 예측치도 포함됐다. “지구 단위 승인을 거쳐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될 경우 평당 100만~150만원의 감정가가 예상되며, 현물출자 후 10년 임대 기간이 끝나 분양 전환 시 내부수익률(IRR)은 약 6.77% 이상”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기장총회는 “한신학원 소유 토지는 공공개발 참여 대신 현금 매매로 전환한다”는 결의를 내렸다. 한편,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 M 건설에 토지 사용 승낙서는 발급되지 않았다. M 건설이 계약 해지를 통보하자 B씨 측은 “승낙서가 곧 발급된다”며 시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승낙서는 끝내 발급되지 않았다. M 건설은 곧바로 계약을 해지하고, 실제 B씨가 대표로 있는 S사를 상대로 계약금 1억원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 시기 한신학원은 삼부토건에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삼부토건은 “B씨와 C씨는 우리 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 즉, 자신들을 삼부토건 관계자라고 밝힌 B씨와 C씨가 실제로는 삼부토건 관계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삼부토건 본사는 “이들과 별도의 위임이나 계약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대형 건설사인 삼부토건의 이름을 내세워 사업을 추진하려 한 것이다. 실체 없는 부동산 리츠 이후 B씨는 자신의 배우자 명의의 P사로 이름을 바꿔 사업을 계속 추진했다. B씨 일행의 만행을 알게 된 M 건설은 지난해 3월, 한신학원에 ‘토지 매수의향서’를 보내 “거제 아주동 임야를 평당 50만원에 매수할 의사가 있다”고 전달했다. M 건설은 인근 토지를 이미 평당 44만원에 매입했다고 밝히며, 한신학원 토지는 “13% 이상 높은 가격으로 정당하게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B씨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한신학원은 같은 해 5월30일, B씨의 부인이 대표로 있는 P사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총장과 이사장이 이 제안을 알고도 이사회나 총회에 보고하지 않았다”면서 “M 건설의 제안이 있었음에도 총장과 이사장이 P사와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로 지적한 점은 계약 내용이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계약금 총액은 10억5000만원으로 명시됐지만, 실제 한신학원이 받은 금액은 1억원뿐이었다. 잔금 9억5000만원은 “4년 이내 부동산투자회사(REITs)와의 매매계약 재체결 시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고, 심지어 한신학원은 받은 계약금 1억원을 매수인에게 반환하기로 명시돼있었다. 또 특약 사항에는 ‘매도인은 계약 체결 시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발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즉, 계약금 실수령액이 전체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상황에서 매수인이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셈이었다. 고소인은 이를 “매매계약을 가장한 사실상 사용 허가서”라고 주장했다. 한신학원 정관 시행세칙 제18조에는 “기본재산의 매도·증여·교환 또는 용도 변경 시에는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이사회 의결을 거쳐 관할 관청 허가를 득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고소인은 “삼부토건으로 의결된 사업을 P사로 변경하면서 이사회가 새로이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토지 처분 신고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한신학원은 지난해 1월 교육부에 ‘수익용기본재산 처분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감정가 이상(16억7000만원 이상)에 토지를 처분하고 대체 부동산을 구입하겠다”고 보고했다. 이후, 교육부는 이 신고를 ‘처분 허가’로 정정해 승인했으며 “1년 내 매각 완료, 대금 완납 전 소유권 이전 불가”를 조건으로 달았다. 그러나 P사와의 계약서에는 잔금 지급 시점이 명확히 적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소인은 “교육부에는 단기 매각으로 보고하고 실제로는 장기 임대 형태로 계약했다”며 기망 가능성을 제기했다. 계약서상 ‘잔금 수령일’이 없고, 2차 계약금도 부동산투자회사와의 별도 계약 체결 이후로 미뤄져 있다. 쪼개기 공사? 교비도 횡령? 가장 큰 문제점은 잔금을 받기로 한 부동산투자회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당 회사는 현재 설립 예정으로 실체가 없는 곳이다. 게다가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토지 사용 허락서는 교육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토지 사용 허락서가 교육부에 신고되지 않은 채 발급됐다는게 A씨의 주장이다. 실제 교육부는 민원 답변을 통해" 해당 토지의 사용 승낙 신청을 접수하거나 허가한 내역이 없으며, 우리부 허가가 없는 토지 사용 승낙은 효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두 번째로, 한신대가 진행한 각종 시설공사와 관련해 수의계약 체결 과정의 절차 위반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A씨는 “학교법인 및 산하 대학이 사립학교법과 학내 재정세칙에 따라 공개경쟁입찰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공사계약을 다수 수의계약 형태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한신학원 정관과 세칙에는 ‘2000만원 이상의 공사는 공고를 해서 경쟁에 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2인 이상의 견적서와 시방서, 설계서를 징수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한신대학교는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약 40억원 규모의 공사 57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절차를 대부분 생략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법인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도 교내 공사 57건이 40억원에 진행됐다. 동일 공사인데도 나눠서 계약을 하고, 2억원까지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명목으로 쪼개기 공사와 공사 지정 업체의 중복이 발견되는 등 부실 흔적이 많다. 앞으로 전자입찰이 되도록 공사 입찰 규정을 반드시 만들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계약단가가 낮아져 수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규정을 어긴 업무처리로 한신학원 및 한신대에 수억원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며 이를 업무상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한신대학교 교비 회계 자금이 학교 운영과 직접 관련 없는 법률 비용으로 사용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A씨는 “교비 회계는 학교 운영과 교육에 필요한 경비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음에도, 교비 자금이 법적 분쟁 비용으로 전용됐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것은 노무사 선임비용 약 6800만원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신대 총장은 2023년 고용노동부에 진정이 제기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노무사 및 법률대리인 선임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했다. 해당 진정은 한신대 내부 인사·노무 관련 사안으로, 교직원 고용 문제 및 근로계약 분쟁에 대한 것이었다. 이사회 후 돌연 취하, 왜? 학원 교육인사위원장 임명 A씨는 이를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비는 학생 교육에 직접 필요한 용도로만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법인 소송이나 노무 분쟁처럼 학교 운영 전반과 직접 관련이 없는 항목은 교비에서 부담하면 안 된다는 것이 고소인 측의 입장이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비용 지출의 성격이다. 즉 ‘노무사 선임이 학교 교육활동에 직접 관련된 행위인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실제로 올해 대법원은 노무법인 자문 비용을 교비회계 자금으로 집행한 행위를 업무상 횡령으로 판단하는 판결을 내렸다. 제주의 한 대학교 총장 A씨는 소속 교수가 자신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비용 330만원을 포함해 총 1880만원의 변호사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며 “교수 및 노조 등과 관련한 분쟁 대응을 위한 변호사 비용은 학교의 교육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현재 해당 고소 건은 취하된 상태다. 지난달 <일요시사>가 이 사건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한신대 비서실을 통해 A씨가 고소를 취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제보자 역시 “해당 이사가 면직 압박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으며, 그 직후 인사위원장 보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기자가 한신학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지난달 10일 인사위원장으로 임명됐고, 같은 달 11일부터 공식 업무가 시작됐다. 추가로 확보한 녹취에서 A씨는 고소를 취하한 이유에 대해 “이사회에서 강제로 면직시키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한신학원 인사위원회는 내부 교직원의 인사와 징계 등을 담당하는 핵심 기구로, 교육인사위원장은 실질적인 권한이 큰 자리로 알려져 있다. 통상 이사장은 교육인사위원장 출신 가운데에서 선출되는 경우가 많아, 해당 보직이 사실상 이사장 자리로 가는 주요 루트인 셈이다. 대가성 보직? 이사장 루트 한편, 한신대는 해당 고소 건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한신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토지 매각 문제의 경우 한신학원의 문제고 한신대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수의계약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2억원 미만이면 가능하다”고 밝혔고, 교비 횡령 의혹은 “사건 조사 관련된 비용으로 지출된 부분이라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