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대만 민주화의 대모’ 뤼슈렌 전 부총통

“리설주·김여정·현송월 초대합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만 독립과 민주화에 앞장선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열린 ‘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아시아 중립국 그룹을 제안했다.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사진 가운데)이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왼쪽은 국제 콘퍼런스를 주최한 유준상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앞으로 중소국들은 자국의 발전을 추구하고, 평화와 중립 입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중립적 국가 그룹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제 콘퍼런스 축사를 맡은 뤼슈렌 전 부총통이 제안한 내용이다.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도 그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현송월·김여정·이설주 등 북한을 대표하는 여성 3인방을 남한에 초청하는 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파격 제안했다.

다음은 뤼슈렌 전 부총통과의 일문일답.

- 대만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은 중국에 대한 독립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도 이에 호응하는 입장입니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고수합니다. 향후 양안정책에 대한 생각은?
▲하나의 중국은 논리적 모순을 가졌습니다. 하나의 중국이라 하면 대만은 중국의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는 모순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의 주권을 갖는다고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또 대만이 독립된 주권국가라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창조적 모호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활용해 대만의 평화와 중립을 추구해야 합니다.

- 대만이 미중 간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태평양 안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식의 가교인지?
▲대만은 태평양의 제1도련(중국이 작전계획을 위해 나눈 지역, 오키나와-대만-남중국해)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만은 자체적으로 민주화와 평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중립화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차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 ▲▲ ‘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

- 한반도와 대만이 당면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에 기인합니다. 두 국가 중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두 국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다섯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동해와 서해, 대만의 동해와 양안 사이에 있는 해협,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것입니다. 한반도는 두 개의 바다, 대만은 세 개의 바다에 에워싸여져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은 전략적 위치에 있습니다. 바다는 어떤 한 나라가 좌지우지해서는 안 됩니다. 바다에서는 어떤 분쟁도, 핵실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실례가 남극입니다. 이를 바다로까지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민진당이 집권할 당시 대만은 아시아태평양해협서 평화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첫 번째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공해를 해소하고 항해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서 분쟁이 있으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바다를 보존하며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축사 차 방한
고래싸움에 새우등? 중립국 그룹 제안

- 현재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의 핵심은 북핵문제 해결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북핵문제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입니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 인류가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비핵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내년 봄에는 조금 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핵전쟁을 저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화책도 핵전쟁을 저지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한국인은 자유와 민주, 그리고 부유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민간 차원서 북한과 교류를 이어간다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요청하자, 북한에서 3명의 고위급 여성이 한국을 찾아 남북한의 냉랭한 기운을 누그러뜨렸습니다. 남북한의 우수한 여성인력들이 여성 특유의 소프트함으로 남북문제에 접근한다면 좀 더 창조적인 해결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 오히려 북한을 더욱 압박해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북한 내 화장품 공장을 참관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화장품 산업을 발전시키면 외화를 더욱 많이 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얘기했습니다. 지난해 김 위원장의 관심사는 핵이었습니다. 올해는 화장품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북한을 대표하는 3명의 여성인 현송월·김여정·이설주가 북한의 지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은 이 3명의 여성을 한국에 초청하는 일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많습니다. 남북 여성 지도자의 교류를 통해 강함을 추구하는 남성적인 부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체크앤밸런스’라는 이론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강대국 간 경쟁으로 주위의 중소국가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소국가들은 자기발전을 계속하며 평화와 중립이라는 입장을 강화해야 합니다. 저는 2020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만의 중립국 선언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필리핀도 이 부분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립국을 표방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그룹을 만든다면 강대국도 중립국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미래가 올 것입니다.

- 대만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이 있지만 개발하지 않고 있으며 개발할 의도도 없다고 이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자위적 조치라며 핵개발을 정당화해왔습니다.
▲대만과 북한은 두 개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핵개발을 함으로써 주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대만은 핵을 개발할 능력과 과학적 기술이 있음에도 국민들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 가서 이러한 생각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국민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 한국의 지도자들이 바뀔 때마다 대북기조도 널뛰기하듯이 바뀝니다. 대만도 어떤 지도자가 대만을 통치하느냐에 따라 중국에 대한 입장이 바뀝니다. 결국 추진력이나 응집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번영의 측면서 점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맞춰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하나의 기조로 통일해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지도자가 바뀌면 정책도 바뀝니다. 하지만 국가 통합과 주권문제에 있어서는 여야 합의가 중요합니다. 대만은 선거 때마다 모든 정책을 꺼내서 토론합니다. 앞으로 대만이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합의가 되고 있지 않아 우려스럽습니다. 대만의 중립을 추진하려는 이유도 중국과의 통합과 독립의 중간노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 ▲&nbsp;‘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에 앞서 인사말하는 유준상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 문재인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대만도 위안부 문제가 큰 사안이라고 알고 있는데.
▲제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대만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본 국회로 가서 공청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만과 일본은 정식 국교가 없어 교섭하는 데 한국만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못합니다. 대만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많이 돌아가셨고,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 유감입니다.

한국에만 위안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피해자가 많이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피해 국가들에게 사과를 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다툰다면 평화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하루빨리 단결해 평화적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북한 비핵화? 여성의 유연함이 해법
여성운동가 출신 “무분별한 미투 NO”

- 한국사회서 미투운동과 페미니즘, 직장 내 성차별 이슈가 끊이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젠더 대결 양상을 띠고 있는데요. 여성 지도자로서 어떻게 보시는지.
▲역사를 보면 압박을 가하는 자와 압박을 받는 자의 투쟁입니다. 빈부, 계급이 대표적입니다. 최근에는 성별로 옮겨갔습니다. 역사적으로 남성이 여성의 육체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해왔습니다. 최근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가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해 미투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미투운동의 긍정적인 의미는 어떤 누구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단 우려스러운 점은 미투가 무분별하게 남용돼 누군가 피해를 입게 되는 일입니다. 이로 인해 남녀 사이에 긴장감마저 돕니다.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친구에게 들은 농담인데 많은 여성들은 미투(Me Too)라고 외치고, 남성들은 낫 미(Not Me)라고 외친다고 합니다. 성별이 불필요하게 충돌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 대만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많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 가지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지난해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 북한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생각한 건 ‘지금 이 시점에 북한을 방문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였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바꿀 능력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의 민감한 관찰력과 소프트함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북한에 구금된 외국인을 하루빨리 석방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한두 달이 흐른 뒤 북한이 한 미국인을 풀어줬습니다.

물론 이 석방이 저의 메시지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권문제를 다루는 게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면 인도적인 차원으로 접근해도 된다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대만의 많은 종교단체들이 만약 부총통과 함께 북한에 간다면 겨울이고 하니 북한 주민들에게 따뜻함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준다면 북한 주민들을 더욱 감동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지도자의 실수로 국민들이 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뤼슈렌은 누구? 


뤼슈렌 대만 전 부총통은 대만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가다. 뤼슈렌은 대만의 첫 여성 부총통으로 천수이볜 총통 시절 10대·11대 부총통을 지냈다. 뤼슈렌은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 창당 멤버로 '민진당 출신 첫 부총통'이란 타이틀도 갖고 있다. 민진당 대표 등을 역임한 그는 민진당을 대표하는 원로 중 한 사람이다.

뤼슈렌은 대만 민주화 운동으로 설명된다. 그는 대만의 민주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뤼슈렌은 지난 1970~1980년대 대만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와 감옥서 투쟁했다. 뤼슈렌은 1979년 대만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 중 하나인 '메이리다오 사건'의 1급 주동자로 체포됐다. 

메이리다오 사건은 1979년 12월10일 발생했다. 뤼슈렌 등 민주화 인사들은 대만 가오슝서 잡지 <메이리다오>를 창간하는데 잡지의 이름은 노래 제목서 따왔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를 불허했지만 이날 뤼슈렌 등은 잡지 창간 기념집회를 열었다.

뤼슈렌 등은 이날 대만의 민주화를 요구하다 경찰과 충돌했고,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 주동자들을 강경 탄압했다. 당시 사건의 변호를 맡은 인물이 뤼슈렌과 함께 대만 총통을 지냈던 천수이볜이다. 

뤼슈렌은 이 사건으로 1980년 1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만의 민주화와 함께 1985년 특별사면됐다.


뤼슈렌은 석방 이후 민진당을 창당했다. 한편 '메이리다오'는 현재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뤼슈렌은 여성운동에도 앞장섰다. 뤼 전 부총통은 페미니즘 문학 전문출판사를 이끌어 여성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뤼슈렌은 지난 2000년과 2004년 총통 선거서 민진당 소속으로 천 총통과 함께 승리했다. 8년간 부총통을 역임한 그는 대만의 독립과 반중국을 지향한다. 뤼슈렌은 취임 이후 대중정책과 여러 차례 부딪쳤다. 

뤼슈렌은 첫 취임해인 2000년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해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는 것은 항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논의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마카오는 절대 나뉠 수 없고 합법적인 정부는 오직 중국 정부 하나라는 중국의 주장이다.  

2004년 중국이 ‘반분열국가법’을 추진하던 때에도 뤼슈렌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뤼슈렌은 “중국은 대만을 합병하려는 의도를 전 세계에 드러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뤼슈렌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므로 ‘분열’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뤼슈렌과 함께 대만을 이끌었던 천수이볜 총통은 재임기간 중의 뇌물수수, 총통 기밀비 횡령 등의 혐의로 19년형을 선고받았다. 천수이볜은 5년 복역 후 2015년 치료를 위해 가석방됐다. 뤼슈렌은 천수이볜의 가석방을 위해 2014년 단식투쟁을 벌인 바 있다.


<kjs0814@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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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