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대만 민주화의 대모’ 뤼슈렌 전 부총통

“리설주·김여정·현송월 초대합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만 독립과 민주화에 앞장선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열린 ‘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아시아 중립국 그룹을 제안했다.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사진 가운데)이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왼쪽은 국제 콘퍼런스를 주최한 유준상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앞으로 중소국들은 자국의 발전을 추구하고, 평화와 중립 입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중립적 국가 그룹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제 콘퍼런스 축사를 맡은 뤼슈렌 전 부총통이 제안한 내용이다.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도 그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현송월·김여정·이설주 등 북한을 대표하는 여성 3인방을 남한에 초청하는 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파격 제안했다.

다음은 뤼슈렌 전 부총통과의 일문일답.

- 대만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은 중국에 대한 독립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도 이에 호응하는 입장입니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고수합니다. 향후 양안정책에 대한 생각은?
▲하나의 중국은 논리적 모순을 가졌습니다. 하나의 중국이라 하면 대만은 중국의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는 모순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의 주권을 갖는다고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또 대만이 독립된 주권국가라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창조적 모호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활용해 대만의 평화와 중립을 추구해야 합니다.

- 대만이 미중 간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태평양 안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식의 가교인지?
▲대만은 태평양의 제1도련(중국이 작전계획을 위해 나눈 지역, 오키나와-대만-남중국해)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만은 자체적으로 민주화와 평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중립화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차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 ▲▲ ‘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

- 한반도와 대만이 당면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에 기인합니다. 두 국가 중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두 국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다섯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동해와 서해, 대만의 동해와 양안 사이에 있는 해협,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것입니다. 한반도는 두 개의 바다, 대만은 세 개의 바다에 에워싸여져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은 전략적 위치에 있습니다. 바다는 어떤 한 나라가 좌지우지해서는 안 됩니다. 바다에서는 어떤 분쟁도, 핵실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실례가 남극입니다. 이를 바다로까지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민진당이 집권할 당시 대만은 아시아태평양해협서 평화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첫 번째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공해를 해소하고 항해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서 분쟁이 있으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바다를 보존하며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축사 차 방한
고래싸움에 새우등? 중립국 그룹 제안

- 현재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의 핵심은 북핵문제 해결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북핵문제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입니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 인류가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비핵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내년 봄에는 조금 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핵전쟁을 저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화책도 핵전쟁을 저지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한국인은 자유와 민주, 그리고 부유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민간 차원서 북한과 교류를 이어간다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요청하자, 북한에서 3명의 고위급 여성이 한국을 찾아 남북한의 냉랭한 기운을 누그러뜨렸습니다. 남북한의 우수한 여성인력들이 여성 특유의 소프트함으로 남북문제에 접근한다면 좀 더 창조적인 해결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 오히려 북한을 더욱 압박해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북한 내 화장품 공장을 참관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화장품 산업을 발전시키면 외화를 더욱 많이 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얘기했습니다. 지난해 김 위원장의 관심사는 핵이었습니다. 올해는 화장품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북한을 대표하는 3명의 여성인 현송월·김여정·이설주가 북한의 지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은 이 3명의 여성을 한국에 초청하는 일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많습니다. 남북 여성 지도자의 교류를 통해 강함을 추구하는 남성적인 부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체크앤밸런스’라는 이론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강대국 간 경쟁으로 주위의 중소국가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소국가들은 자기발전을 계속하며 평화와 중립이라는 입장을 강화해야 합니다. 저는 2020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만의 중립국 선언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필리핀도 이 부분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립국을 표방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그룹을 만든다면 강대국도 중립국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미래가 올 것입니다.

- 대만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이 있지만 개발하지 않고 있으며 개발할 의도도 없다고 이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자위적 조치라며 핵개발을 정당화해왔습니다.
▲대만과 북한은 두 개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핵개발을 함으로써 주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대만은 핵을 개발할 능력과 과학적 기술이 있음에도 국민들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 가서 이러한 생각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국민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 한국의 지도자들이 바뀔 때마다 대북기조도 널뛰기하듯이 바뀝니다. 대만도 어떤 지도자가 대만을 통치하느냐에 따라 중국에 대한 입장이 바뀝니다. 결국 추진력이나 응집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번영의 측면서 점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맞춰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하나의 기조로 통일해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지도자가 바뀌면 정책도 바뀝니다. 하지만 국가 통합과 주권문제에 있어서는 여야 합의가 중요합니다. 대만은 선거 때마다 모든 정책을 꺼내서 토론합니다. 앞으로 대만이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합의가 되고 있지 않아 우려스럽습니다. 대만의 중립을 추진하려는 이유도 중국과의 통합과 독립의 중간노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 ▲&nbsp;‘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에 앞서 인사말하는 유준상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 문재인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대만도 위안부 문제가 큰 사안이라고 알고 있는데.
▲제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대만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본 국회로 가서 공청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만과 일본은 정식 국교가 없어 교섭하는 데 한국만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못합니다. 대만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많이 돌아가셨고,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 유감입니다.

한국에만 위안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피해자가 많이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피해 국가들에게 사과를 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다툰다면 평화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하루빨리 단결해 평화적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북한 비핵화? 여성의 유연함이 해법
여성운동가 출신 “무분별한 미투 NO”

- 한국사회서 미투운동과 페미니즘, 직장 내 성차별 이슈가 끊이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젠더 대결 양상을 띠고 있는데요. 여성 지도자로서 어떻게 보시는지.
▲역사를 보면 압박을 가하는 자와 압박을 받는 자의 투쟁입니다. 빈부, 계급이 대표적입니다. 최근에는 성별로 옮겨갔습니다. 역사적으로 남성이 여성의 육체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해왔습니다. 최근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가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해 미투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미투운동의 긍정적인 의미는 어떤 누구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단 우려스러운 점은 미투가 무분별하게 남용돼 누군가 피해를 입게 되는 일입니다. 이로 인해 남녀 사이에 긴장감마저 돕니다.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친구에게 들은 농담인데 많은 여성들은 미투(Me Too)라고 외치고, 남성들은 낫 미(Not Me)라고 외친다고 합니다. 성별이 불필요하게 충돌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 대만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많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 가지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지난해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 북한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생각한 건 ‘지금 이 시점에 북한을 방문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였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바꿀 능력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의 민감한 관찰력과 소프트함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북한에 구금된 외국인을 하루빨리 석방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한두 달이 흐른 뒤 북한이 한 미국인을 풀어줬습니다.

물론 이 석방이 저의 메시지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권문제를 다루는 게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면 인도적인 차원으로 접근해도 된다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대만의 많은 종교단체들이 만약 부총통과 함께 북한에 간다면 겨울이고 하니 북한 주민들에게 따뜻함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준다면 북한 주민들을 더욱 감동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지도자의 실수로 국민들이 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뤼슈렌은 누구? 


뤼슈렌 대만 전 부총통은 대만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가다. 뤼슈렌은 대만의 첫 여성 부총통으로 천수이볜 총통 시절 10대·11대 부총통을 지냈다. 뤼슈렌은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 창당 멤버로 '민진당 출신 첫 부총통'이란 타이틀도 갖고 있다. 민진당 대표 등을 역임한 그는 민진당을 대표하는 원로 중 한 사람이다.

뤼슈렌은 대만 민주화 운동으로 설명된다. 그는 대만의 민주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뤼슈렌은 지난 1970~1980년대 대만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와 감옥서 투쟁했다. 뤼슈렌은 1979년 대만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 중 하나인 '메이리다오 사건'의 1급 주동자로 체포됐다. 

메이리다오 사건은 1979년 12월10일 발생했다. 뤼슈렌 등 민주화 인사들은 대만 가오슝서 잡지 <메이리다오>를 창간하는데 잡지의 이름은 노래 제목서 따왔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를 불허했지만 이날 뤼슈렌 등은 잡지 창간 기념집회를 열었다.

뤼슈렌 등은 이날 대만의 민주화를 요구하다 경찰과 충돌했고,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 주동자들을 강경 탄압했다. 당시 사건의 변호를 맡은 인물이 뤼슈렌과 함께 대만 총통을 지냈던 천수이볜이다. 

뤼슈렌은 이 사건으로 1980년 1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만의 민주화와 함께 1985년 특별사면됐다.


뤼슈렌은 석방 이후 민진당을 창당했다. 한편 '메이리다오'는 현재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뤼슈렌은 여성운동에도 앞장섰다. 뤼 전 부총통은 페미니즘 문학 전문출판사를 이끌어 여성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뤼슈렌은 지난 2000년과 2004년 총통 선거서 민진당 소속으로 천 총통과 함께 승리했다. 8년간 부총통을 역임한 그는 대만의 독립과 반중국을 지향한다. 뤼슈렌은 취임 이후 대중정책과 여러 차례 부딪쳤다. 

뤼슈렌은 첫 취임해인 2000년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해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는 것은 항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논의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마카오는 절대 나뉠 수 없고 합법적인 정부는 오직 중국 정부 하나라는 중국의 주장이다.  

2004년 중국이 ‘반분열국가법’을 추진하던 때에도 뤼슈렌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뤼슈렌은 “중국은 대만을 합병하려는 의도를 전 세계에 드러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뤼슈렌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므로 ‘분열’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뤼슈렌과 함께 대만을 이끌었던 천수이볜 총통은 재임기간 중의 뇌물수수, 총통 기밀비 횡령 등의 혐의로 19년형을 선고받았다. 천수이볜은 5년 복역 후 2015년 치료를 위해 가석방됐다. 뤼슈렌은 천수이볜의 가석방을 위해 2014년 단식투쟁을 벌인 바 있다.


<kjs0814@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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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