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사법농단 키맨 양승태 전 대법원장

“못 믿겠다” 신뢰 잃은 사법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국정 농단에 이은 사법 농단 사태가 일어났다며 분노 목소리마저 들린다. 그 중심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있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와 사법부 불신 여론에 기름을 들이붓는 중이다. <일요시사>가 사법부 수장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양 전 대법원장을 집중조명해봤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서 퇴임식을 갖고 42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퇴임사를 통해 “저는 오랜 법관 생활서 국민의 신뢰야말로 사법부의 유일한 존립 기반임을 확신하고 있었고,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 신뢰를 획득하는 것은 모든 법원 구성원들의 기본적 의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퇴임 8개월
불신 초래

이어 “오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이룩한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며 “법관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서, 법관에게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을 따름”이라고 언급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지난달 29일, 전국철도노동조합 KTX 열차승무지부와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 20여명이 대법원 대법정과 로비를 기습 점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한 이들은 대법원장 비서실장과의 면담을 약속받고서야 물러났다. 


대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대법정에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주요 재판을 놓고 박근혜정부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에 분노를 표했다.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은 특정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 입맛에 맞는 판결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TX 해고승무원 관련 판결은 이 같은 의혹을 받는 재판 중 하나다.

2015년 2월 대법원은 KTX 승무원을 철도공사 직원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1·2심서 철도공사 직원으로 인정했던 판결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이 판결로 KTX 승무원들은 정리해고됐고, 1심 승소 이후 받았던 4년간의 월급에 이자까지 더해 1억원씩 토해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 과정서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5년 말부터 투쟁을 시작한 KTX 해고승무원들은 12년 후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과 마주하고 있다.

청와대와 재판 걸고 흥정?
특별조사단 보고서 ‘발칵’

지난달 30일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을 가진 KTX 해고승무원들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며 “또 다른 사법 농단 피해자들과 함께 김명수 대법원장을 직접 면담할 수 있게 해줄 것과 대법원이 문제가 된 판결에 대해 직권재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직권재심은 형사재판서 검찰이 피고인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하는 제도다. KTX 해고승무원 재판은 민사소송이라 직권재심이라는 개념이 없다. 이들은 법원의 협조를 통해 재심을 청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비서실장은 이런 요구에 “한 자도 빠짐없이 대법원장에게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조단에 따르면 사법부와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은 상고법원 도입을 두고 진행된 ‘흥정’이라는 분석이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맡고 있는 상고심(3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 별도로 맡는 법원을 말한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민·형사 등 일반사건은 상고법원이,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건은 대법원서 맡아 심리, 판결하게 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상고법원 도입에 몰입했다. 취임 때부터 상고제도 개선을 강조했고,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2014년 9월에는 대법원서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를 갖고 구체적인 운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크지 않았고 국회 역시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법조계 내부서도 일부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사법 농단 사태
관련자들 격분

특조단이 김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일부 공개한 192쪽 분량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1월19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임 차장은 상고법원 관철을 위한 청와대 압박 카드로서 “BH 국정운영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 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표명”을 적시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청와대 기조를 고려, 사법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는 사법부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사례가 담겨있다. 이석기·원세훈·김기종 사건과 철도노조 파업, 전교조 시국선언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청와대와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러온 파장은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KTX 해고승무원 재판 외에도 보고서에 언급된 다른 재판 관계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는 등 공론화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사법부는 검찰의 강제 수사 대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양 전 대법원장 체제서 재임용에 탈락한 경험이 있는 서기호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법조계 내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한 집안 식구로 분류되는 법관의 상당수도 ‘문제가 있다’는 강경모드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퇴로가 막혔다는 분석이다. 법원 안팎은 재판거래 의혹 당사자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고서에 거론된 사법부의 협조 사례가 사회 전반에 걸쳐 있어 그 파장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과 함께 잠잠했던 블랙리스트 의혹도 고개를 들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내 달성할 최고 핵심과제로 꼽았던 상고법원 입법 추진 과정서, 이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판사들을 감시하는 등 집안 단속을 했다는 의혹이다. 

특조단 조사에 따르면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소모임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 문건이 2015년 7월부터 집중 작성됐다.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인사모 회원들이 학회 활동과는 무관한 사법행정 주제를 논의하고 대법원 인선에 개입하려 한다고 봤다. 그래서 자발적 해산을 유도하거나 법원 운영위원회 결의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인사모 핵심회원에게 각종 선발성 인사나 해외연수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인사모 회원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상고법원에 반대한 판사 개인의 동향을 감시한 흔적도 나왔다. 2015년 8월 차성안 당시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상고법원 도입을 비판하는 글을 연이어 올렸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차 판사에 대한 본격적인 동향파악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문건도 특조단 조사 결과 확인됐다.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가 살핀 차 판사의 동향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성격과 재판 준비 태도는 물론 가정사 등이 파악됐을 뿐만 아니라 그가 다른 판사들과 주고받은 이메일까지 기재돼있었다. 이 과정서 차 판사와 친한 선후배 판사들도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찰 피해 당사자인 차 판사는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사법부와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단순한 법관윤리강령 위반 문제뿐만 아니라 직권남용죄나 직무상 비밀누설 같은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판사로서 유무죄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수사의 필요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UN 진정을 잘 활용해 UN이 법원과 검찰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특별보고관을 초청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법부 수사?
사상 초유 사태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식사과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사법 행정의 최종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저의 부덕과 불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법관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드리고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게 돼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같은 해 6월 블랙리스트 관련 재조사를 끝내 거부했다.

지난해 4월 진상조사위원회 첫 조사에 이어 올해 1월 추가조사위가 2차 조사를 진행했지만 모두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놨다. 그러나 3차 조사단인 특조단서 1·2차 조사와 확연히 다른 결과를 내놓으면서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받는 상황에 처했다. 

1·2차 조사와는 달리 사법부 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쏟아지면서 국민 여론, 정치권 등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특조단의 조사보고서를 받아든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국민 담화문을 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담화문서 “지난주 특조단이 발표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질책을 사법부 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겠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신속히 진행하고, 의혹 해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의 공개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진원지로 꼽히는 법원행정처는 대대적인 개혁이 예상된다. 김 대법원장은 최고 재판기관인 대법원을 운영하는 조직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조직을 인적‧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련자들의 형사조치에 대해서는 “각계 의견을 종합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오는 5일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7일 전국법원장간담회,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여론은 여전히 양 전 대법원장에 부정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일 경기도 자택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부적절한 일이 사실이라면 막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서 양 전 대법원장이 두 번에 걸쳐 특조단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첫 번째는 답변 거부, 두 번째는 해외 출국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양 전 대법원장을 강제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만해도 양 전 대법원장은 판사와 사법 관료로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48년 부산서 태어난 그는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0년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법관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대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제주지방법원서 부장판사로 일했다. 1989년 사법연수원 교수로 일했고 2002년 부산지방법원, 2003년 법원행정처 차장과 특허법원 법원장을 거쳐 2005년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재판거래·특정판사 사찰 의혹
숙원사업 상고법원 도입하려고?

양 전 대법원장이 이명박정부 시절 대법원장으로 임명될 당시 언론은 그를 보수성향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내정됐을 때 사법부의 보수화를 불러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와 비교해 법원이 ‘우클릭’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청문회 당시에도 양 전 대법원장의 정치 성향을 묻는 질문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취임 후 소통을 강조했다. ‘법원은 국민 속으로, 국민은 법원 속으로’를 모토로 취임 첫 해 장애인 사법 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 외국인과 이주민을 위한 사법정보 누리집을 냈다. 

임기 3년차 때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처음으로 전 국민에 생중계했다. 이는 최근 전 1, 2심 재판의 생중계 확대 결정으로 이어졌다. 국민참여재판도 양 전 대법원장 임기 중 크게 늘었다.

하지만 양 전 대법관은 임기 내내 대법관 인선과 사법행정서 ‘다양성 부족’ ‘제왕적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12년 대법관 4명의 후임을 인선하는 과정서 잡음이 컸다. 당시 대법원의 보수화와 획일화에 대한 우려가 잇따랐다. 

인사문제에 대한 법원 내부의 불만은 지난해 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축소하기 위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외부로 표출됐다.

화려한 이력
초라한 말로

대법원장의 국가 의전 서열은 대통령과 국회의장에 이어 세 번째다. 사법부의 정점에 있던 양 전 대법원장은 불과 몇 개월 새 전 국민의 비난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안이 중대하고 충격적인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을 둘러싼 사법 농단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1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대법원의 책임자가 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두고, 판돈을 걸고 청와대와 도박판을 벌였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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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앞길에 주황불과 녹색불이 번갈아 들어서고 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공직선거법 판결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여전히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남은 재판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를 나노 단위로 뜯어 살피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당선돼도 찝찝하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과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 같은 발언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이 후보의 “김 전 처장과 골프 친 사진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유죄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고, 아무리 확장 해석해도 같이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며 1심을 뒤엎었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의견 표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위 사실 공표로 해석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무죄 판결이 난 바로 다음 날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다. 항소심이 끝난 지 하루 만에 상고장을 접수한 만큼 대법원 판단을 빠르게 받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대법원서 다루는 상고심은 항소심 재판에 대한 불복 신청을 토대로 하는 만큼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는 법률심이다. 판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신속하게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며 내심 유죄를 희망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대법원서 판결이 뒤집혀야 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대법원서 결정을 내려줘야 법적인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 된 밥에 또…파기환송 ‘주황불’ “노골적 대선 개입” 대법원장 탄핵? 반면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의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상고도 포기하길 바란다”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의 바람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해 무죄였던 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는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공직선거법 250조 제1항에 따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 판단에는 공직선거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합 선고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등 총 12명이 참여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의 발언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선고는 대법관 10명 다수 의견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고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골프 발언은 6~7년 전에 있었던 기억을 주제로 한 발언에 불과하고, 백현동 관련 발언은 국토부의 의무 조항을 지적한 부분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온 위기에 민주당은 “노골적인 대선 개입”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상고심 판결에 기속되는 만큼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의 탄핵에 속도를 냈지만 이 후보는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문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에 관한 해석은 밝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까지 해석이 갈린 것이다. 어떻게 읽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추의 범위가 ‘검찰의 공소 제기’만을 의미하는지,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하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현직 대통령을 내란, 또는 외환죄가 아니면 새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외환죄가 아닌 죄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던 중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자로 풀어서 본다면 소는 기소, 추는 좇다, 즉 소추는 ‘공소와 공소 유지’를 뜻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기소가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진행 중인 재판까지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된다면 이 후보는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더라도 재임 중 5개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현재 이 후보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유죄가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서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소추가 기소까지만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면 이 후보의 모든 재판은 당선 즉시 중단된다. 이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해석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사의 수사와 소추권을 다룬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각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다시 주목된다. 당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형사상 소추는 심판 기관과 분리된 소추권자가 유죄 판결 및 적정한 처벌을 구하는 활동으로 소추 기능은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의 결정 및 공개된 법정서 피고인의 상대방 당사자로서 수행하는 변론 및 입증 활동, 이에 관한 법원의 재판에 대한 불복 등을 포함한다”고 밝힌 것이다. 만일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재판 진행 여부는 이 후보의 재판을 맡은 각각의 재판부의 몫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이 헌법 제84조와 관련해 개별 재판부에 재판을 어떻게 운영하라고 지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각 재판관이 알아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구조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만약에 그런 쟁점을 다루게 된다면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등 재판부가 헌법 제84조를 해석해야 하지만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까지 다방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재가 대통령과 법원 사이서 어떤 해석을 내리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한차례 끓어 올랐던 헌법 제84조 논란은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연기되면서 일단락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오는 15일 예정됐던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함”이라며 재판 기일을 대통령선거일 이후로 변경했다. 이로써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마찬가지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등의 공판기일도 다음 달인 24일로 변경되면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날선 반응도 다소 누그러졌다. 상고심 일정이 연기되면서 한숨 돌리나 싶더니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서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삼권분립이 붕괴된 좋지 않은 선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소추특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확실히 못을 박는 분위기다. 이 후보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다음 날인 지난 2일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대법원의 비이성적 폭거를 막겠다. 헌법 제84조 정신에 맞게 곧 법 개정안(재판중지)을 법사위서 통과시키겠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예고대로 지난 7일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제306조에 ‘피고인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 당선된 날부터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 절차를 정지한다’는 내용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서 단독 처리했다. 대통령이 재판을? ‘소추’ 범위 물음표 최종심 연기됐지만…개정안 밀어 붙인다 민주당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헌정 수행 기능 보장을 위한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행 법령 체계에서는 기소 후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 이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판 계속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형사·사법기관이 대통령을 대상으로 재판을 계속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상정 당시부터 반발하며 퇴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이런 무도한 집단이 깡패집단이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유죄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왜 애꿎은 허위 사실 공표죄만 개정하느냐. 이참에 위증교사죄도 폐지하라. 대장동·백현동 관련 죄도 폐지해서 이 후보를 무죄로 만들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법무부는 “대통령 취임 전에 범한 범죄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무관함에도 재판을 정지하는 것은 공직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 규정을 무력화하고 자격이 없는 피고인에게 부당하게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써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헌법 수호 의무를 지는 대통령의 지위와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국민 신뢰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신인도 및 국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의 재판 날짜를 잡으면 권력을 총동원해서 팔을 비틀고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가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되지 않을 것 같으니 재판을 못하도록 법을 위헌적으로 뜯어고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죄 판결을 한 대법원장이 보복 특검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눈앞에 와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헌법 제84조에 대해 “만사 때가 되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법과 상식, 국민적 합리성을 가지고 상식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부질없다 헌법 제84조와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저마다 해석에 나섰지만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대선 이후로 연기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소추에 대한 정의는)대법원이 결정하면 그만인데, 만약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권한쟁의심판을 할 것이고 해당 문제는 헌재로 가게 된다”며 “(대통령이 된 이 대표가)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헌재를 장악하는 수순이다. 결국 헌재는 대통령 편을 들 테니 사실상 그때 가서 헌법 제84조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그래도 달리는 이재명 대권 열차 대선 기간 동안은 사법 리스크 부담을 지우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본격적으로 민생·경제에 집중할 전망이다. 우선 이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나 경제위기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이 후보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각 단체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내수 침체, 민생 경제 등을 논의했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12일부터는 ‘빛의 혁명’의 상징인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 유세에 나선다. 한편 이 후보와 별개로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등 사법부를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