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사법농단 키맨 양승태 전 대법원장

“못 믿겠다” 신뢰 잃은 사법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국정 농단에 이은 사법 농단 사태가 일어났다며 분노 목소리마저 들린다. 그 중심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있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와 사법부 불신 여론에 기름을 들이붓는 중이다. <일요시사>가 사법부 수장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양 전 대법원장을 집중조명해봤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서 퇴임식을 갖고 42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퇴임사를 통해 “저는 오랜 법관 생활서 국민의 신뢰야말로 사법부의 유일한 존립 기반임을 확신하고 있었고,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 신뢰를 획득하는 것은 모든 법원 구성원들의 기본적 의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퇴임 8개월
불신 초래

이어 “오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이룩한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며 “법관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서, 법관에게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을 따름”이라고 언급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지난달 29일, 전국철도노동조합 KTX 열차승무지부와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 20여명이 대법원 대법정과 로비를 기습 점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한 이들은 대법원장 비서실장과의 면담을 약속받고서야 물러났다. 


대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대법정에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주요 재판을 놓고 박근혜정부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에 분노를 표했다.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은 특정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 입맛에 맞는 판결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TX 해고승무원 관련 판결은 이 같은 의혹을 받는 재판 중 하나다.

2015년 2월 대법원은 KTX 승무원을 철도공사 직원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1·2심서 철도공사 직원으로 인정했던 판결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이 판결로 KTX 승무원들은 정리해고됐고, 1심 승소 이후 받았던 4년간의 월급에 이자까지 더해 1억원씩 토해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 과정서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5년 말부터 투쟁을 시작한 KTX 해고승무원들은 12년 후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과 마주하고 있다.

청와대와 재판 걸고 흥정?
특별조사단 보고서 ‘발칵’

지난달 30일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을 가진 KTX 해고승무원들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며 “또 다른 사법 농단 피해자들과 함께 김명수 대법원장을 직접 면담할 수 있게 해줄 것과 대법원이 문제가 된 판결에 대해 직권재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직권재심은 형사재판서 검찰이 피고인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하는 제도다. KTX 해고승무원 재판은 민사소송이라 직권재심이라는 개념이 없다. 이들은 법원의 협조를 통해 재심을 청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비서실장은 이런 요구에 “한 자도 빠짐없이 대법원장에게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조단에 따르면 사법부와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은 상고법원 도입을 두고 진행된 ‘흥정’이라는 분석이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맡고 있는 상고심(3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 별도로 맡는 법원을 말한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민·형사 등 일반사건은 상고법원이,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건은 대법원서 맡아 심리, 판결하게 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상고법원 도입에 몰입했다. 취임 때부터 상고제도 개선을 강조했고,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2014년 9월에는 대법원서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를 갖고 구체적인 운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크지 않았고 국회 역시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법조계 내부서도 일부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사법 농단 사태
관련자들 격분

특조단이 김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일부 공개한 192쪽 분량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1월19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임 차장은 상고법원 관철을 위한 청와대 압박 카드로서 “BH 국정운영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 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표명”을 적시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청와대 기조를 고려, 사법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는 사법부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사례가 담겨있다. 이석기·원세훈·김기종 사건과 철도노조 파업, 전교조 시국선언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청와대와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러온 파장은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KTX 해고승무원 재판 외에도 보고서에 언급된 다른 재판 관계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는 등 공론화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사법부는 검찰의 강제 수사 대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양 전 대법원장 체제서 재임용에 탈락한 경험이 있는 서기호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법조계 내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한 집안 식구로 분류되는 법관의 상당수도 ‘문제가 있다’는 강경모드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퇴로가 막혔다는 분석이다. 법원 안팎은 재판거래 의혹 당사자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고서에 거론된 사법부의 협조 사례가 사회 전반에 걸쳐 있어 그 파장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과 함께 잠잠했던 블랙리스트 의혹도 고개를 들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내 달성할 최고 핵심과제로 꼽았던 상고법원 입법 추진 과정서, 이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판사들을 감시하는 등 집안 단속을 했다는 의혹이다. 

특조단 조사에 따르면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소모임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 문건이 2015년 7월부터 집중 작성됐다.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인사모 회원들이 학회 활동과는 무관한 사법행정 주제를 논의하고 대법원 인선에 개입하려 한다고 봤다. 그래서 자발적 해산을 유도하거나 법원 운영위원회 결의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인사모 핵심회원에게 각종 선발성 인사나 해외연수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인사모 회원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상고법원에 반대한 판사 개인의 동향을 감시한 흔적도 나왔다. 2015년 8월 차성안 당시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상고법원 도입을 비판하는 글을 연이어 올렸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차 판사에 대한 본격적인 동향파악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문건도 특조단 조사 결과 확인됐다.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가 살핀 차 판사의 동향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성격과 재판 준비 태도는 물론 가정사 등이 파악됐을 뿐만 아니라 그가 다른 판사들과 주고받은 이메일까지 기재돼있었다. 이 과정서 차 판사와 친한 선후배 판사들도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찰 피해 당사자인 차 판사는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사법부와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단순한 법관윤리강령 위반 문제뿐만 아니라 직권남용죄나 직무상 비밀누설 같은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판사로서 유무죄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수사의 필요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UN 진정을 잘 활용해 UN이 법원과 검찰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특별보고관을 초청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법부 수사?
사상 초유 사태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식사과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사법 행정의 최종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저의 부덕과 불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법관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드리고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게 돼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같은 해 6월 블랙리스트 관련 재조사를 끝내 거부했다.

지난해 4월 진상조사위원회 첫 조사에 이어 올해 1월 추가조사위가 2차 조사를 진행했지만 모두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놨다. 그러나 3차 조사단인 특조단서 1·2차 조사와 확연히 다른 결과를 내놓으면서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받는 상황에 처했다. 

1·2차 조사와는 달리 사법부 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쏟아지면서 국민 여론, 정치권 등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특조단의 조사보고서를 받아든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국민 담화문을 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담화문서 “지난주 특조단이 발표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질책을 사법부 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겠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신속히 진행하고, 의혹 해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의 공개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진원지로 꼽히는 법원행정처는 대대적인 개혁이 예상된다. 김 대법원장은 최고 재판기관인 대법원을 운영하는 조직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조직을 인적‧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련자들의 형사조치에 대해서는 “각계 의견을 종합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오는 5일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7일 전국법원장간담회,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여론은 여전히 양 전 대법원장에 부정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일 경기도 자택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부적절한 일이 사실이라면 막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서 양 전 대법원장이 두 번에 걸쳐 특조단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첫 번째는 답변 거부, 두 번째는 해외 출국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양 전 대법원장을 강제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만해도 양 전 대법원장은 판사와 사법 관료로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48년 부산서 태어난 그는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0년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법관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대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제주지방법원서 부장판사로 일했다. 1989년 사법연수원 교수로 일했고 2002년 부산지방법원, 2003년 법원행정처 차장과 특허법원 법원장을 거쳐 2005년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재판거래·특정판사 사찰 의혹
숙원사업 상고법원 도입하려고?

양 전 대법원장이 이명박정부 시절 대법원장으로 임명될 당시 언론은 그를 보수성향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내정됐을 때 사법부의 보수화를 불러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와 비교해 법원이 ‘우클릭’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청문회 당시에도 양 전 대법원장의 정치 성향을 묻는 질문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취임 후 소통을 강조했다. ‘법원은 국민 속으로, 국민은 법원 속으로’를 모토로 취임 첫 해 장애인 사법 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 외국인과 이주민을 위한 사법정보 누리집을 냈다. 

임기 3년차 때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처음으로 전 국민에 생중계했다. 이는 최근 전 1, 2심 재판의 생중계 확대 결정으로 이어졌다. 국민참여재판도 양 전 대법원장 임기 중 크게 늘었다.

하지만 양 전 대법관은 임기 내내 대법관 인선과 사법행정서 ‘다양성 부족’ ‘제왕적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12년 대법관 4명의 후임을 인선하는 과정서 잡음이 컸다. 당시 대법원의 보수화와 획일화에 대한 우려가 잇따랐다. 

인사문제에 대한 법원 내부의 불만은 지난해 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축소하기 위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외부로 표출됐다.

화려한 이력
초라한 말로

대법원장의 국가 의전 서열은 대통령과 국회의장에 이어 세 번째다. 사법부의 정점에 있던 양 전 대법원장은 불과 몇 개월 새 전 국민의 비난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안이 중대하고 충격적인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을 둘러싼 사법 농단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1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대법원의 책임자가 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두고, 판돈을 걸고 청와대와 도박판을 벌였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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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