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NGO 성골들 대해부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7.31 11:22:45
  • 호수 1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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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만 하던 사람들이 과연?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정부에 시민단체 출신들이 대거 입성했다. 참여연대·경실련 등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단체 출신들이 눈에 띈다. 내각뿐만 아니라 청와대 핵심요직에도 자리해 이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정부 1기가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지난 20일 국회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정부는 새로 개편된 8개 부처의 조직개편 작업을 완료했다. 인선작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조대엽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 낙마 이후 김영주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새로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자리만 채워지면 청문회 정국도 마무리된다. 

참여연대 활약
조·박 투톱

사실상 문재인정부의 1기 내각이 마무리된 가운데 청와대와 정부부처에 시민단체 출신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경제계 검찰’로 통하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시민단체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통한다.

1999년 참여연대서 재벌개혁감시단장을 시작으로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역임한 그는 2006년 경제개혁연대를 창립하고 소장으로 활동했다. 대선과정에선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20년 가까이 재벌체제 감시와 비판활동을 이어와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을 수행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에 대해 재벌해체가 아니라 재벌의 건전한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위원장은 2007년부터 대기업집단법을 재정해 재벌을 효과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정부서 해당 법에 대한 입법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 위원장은 대기업을 정조준하고 있다. 특히 프랜차이즈 회사들의 ‘갑질’과 1차 협력사의 불공정행위로 이른바 ‘을의 갑질’ 단속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3일 중소·중견기업 단체와의 간담회서 “하도급법 위반 제재의 80%가 중소사업자”라며 “더 작은 영세사업자를 대상으로 불공정행위를 하면서 정부에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 정부 1기 출범…인선 작업 막바지
시민단체 출신 강세…참여연대 대세?

김 위원장이 시민단체 출신으로서 재계의 적폐 및 모순 척결에 발 벗고 나섰다면, 조국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검찰개혁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지난 5월 청와대에 입성한 조국 민정수석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로서 현실 정치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폴리페서’로 불린다. 

그는 시민단체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을 지냈고, 이후 해당 센터의 소장을 역임했다. 2007년부터는 1년간 참여연대서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교수로 지냄과 동시에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 외부자의 시각서 사법 감시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는 문재인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으로서 권력기관 사정과 개혁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민정수석은 국정원·경찰·검찰·국세청·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의 업무를 총괄하고 검찰과 법무부의 인사검증 권한을 갖고 있다. 특히 검찰 개혁을 위해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권익위 수장
김영란법 수정?

조 민정수석과 함께 검찰개혁의 선봉장으로 불리는 박상기 신임 법무부장관도 시민단체서 오랜시간 활약했다. 박 장관은 지난 2012년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을 맡아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왔다. 

지난 5월에는 공동대표에 선출되기도 했다. 경실련은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실련 활동을 하면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박 장관은 문 대통령 당선 뒤 경실련 공동대표로서 쓴 ‘새 정부에 바란다’라는 칼럼서 “검찰개혁은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법과 정의가 평등하게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검찰의 문민화를 통해서 법무부를 검찰조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고취하고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장관은 국내 형사법, 형사정책의 권위자로 꼽히는데 2010년 형사정책연구원장 시절에는 세미나를 열고 검찰 기소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형소법 개정시안을 내놓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이런 박 장관의 경력을 높이 사 법무부장관으로 지명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 장관은 조 수석과 마찬가지로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 가운데 하나인 공수처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검찰과 마찬가지로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가지면서 장·차관과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뇌물수수 등 비위행위를 수사하는 기관이다. 

김대중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설립이 추진됐지만 여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된 바 있다. 

박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공수처 설치를 위해 노력하고 방산비리를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강당서 열린 취임식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국민의 검찰상 확립을 위해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작업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국회 여야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선 “앞장서서 검찰을 개혁하는 데 노력을 다하겠다”며 다시 한 번 포부를 다졌다. 이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용기 있게 헤쳐 나가길 바라고 그럴 때 민주당은 무한한 신뢰로 뒷받침해드릴 것을 약속드린다”고 화답했다.  

최근 제6대 국민권익위원장(이하 권익위)으로 임명된 박은정 위원장도 시민단체 출신이다. 박 위원장은 이화여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1994년부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으로 활동했고 2000년부터 2002년에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김대중정부에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중앙인사위원회 비상임위원,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자율화구조 개혁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박 위원장의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대한 개정 여부가 박 위원장의 의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 각계각층에선 김영란법의 기준인 ‘3·5·10만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박 위원장은 취임 1달여를 맞은 지난 27일 “청탁금지법이 다가오는 추석에 친지와 이웃 간에 선물을 주고받는 데 지장을 초래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시행령이 허용하는 기준인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가액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을 당장 수용할 뜻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다만 “거시적인 경제에 미치는 지표들을 검토해 보완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합리적 절차를 거쳐서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여성·환경부 접수
새로운 비전 수립

이번 문재인정부에서 초대 여성부장관에 임명된 정현백 여성부장관은 ‘여성단체의 대모’로 통한다. 서울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서 서양사 석사학위를 취득한 정 장관은 독일 보훔대학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특히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목소리를 낸 정 장관은 1989년 한국여성연구회(현 한국여성연구소) 공동대표를 시작으로 1997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공동대표, 2002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및 공동대표를 지냈다.


2010년부터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목소리를 냈다. 남북공동선언 이행, 밀양송전탑 건설, 국정원 대선개입, 철도 민영화 관련 파업, 삼척시 신규원전 유치, 역사 국정교과서 등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서 논란이 됐던 굵직한 문제들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2015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참석한 자리서 그는 “지난 3000일 동안 제주도지사가 3번이나 바뀌었지만 누구도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려 하지 않았다”며 제주해군기지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서 시민단체 중 특히 참여연대 출신들이 요직에 앉은 가운데 참여연대 이외의 시민단체 출신들도 입각에 성공했다. 김은경 환경부장관은 전업주부이던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당시 대구 시민대표로 나서며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서울시 노원구로 이주한 뒤에는 상계쓰레기소각장 주민대책위원회서 일했다. 

박상기-조국 검 개혁 쌍두마차
김혜애·하승창…청와대도 장악

노원구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한 김 장관은 민주당서 환경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환경연구와 공공분야 컨설팅을 수행하는 민간 연구기관인 ‘지속가능성센터지우’를 2010년 설립해 대표를 지냈다. 지속가능센테지우서 박 장관은 책 집필, 기고, 강연, 컨설팅 등을 전개하면서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썼다. 

대표로 재임당시 쓴 책인 ‘성장에서 지속가능한발전으로’에서 김 장관은 “지속가능발전은 보다 형평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이라며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측면의 삶의 질을 담보하는 통합적 국가발전정책으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김 장관은 국정기조인 지속가능발전을 주도할 환경부의 비전과 원칙을 만들고 공유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 27일 그동안 4대강 사업, 가습기 살균제 등 여러 환경 현안에 대해 주도적인 대응이 부족했다는 내외부의 반성과 비판을 감안해 일시적 자성론을 넘어 국민과 정책이해관계자, 내부 구성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새로운 비전 수립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이달 말 4~6급 실무진이 참여하는 비전 수립 워크숍을 시작으로 8월 말까지 조직 진단을 비롯해 핵심가치와 원칙을 도출해 나가기로 했다. 해당 자리서 김 장관은 “환경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부 직원들부터 소통해 비전과 원칙을 다시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시민운동가 
잇단 청와대 입성

부처의 수장뿐만 아니라 청와대 핵심 인사들도 시민단체 출신들로 채워졌다. 지난달 2일 청와대 사회수석실 기후환경비서관에 임명된 김혜애 비서관은 녹색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또 사회혁신수석실의 시민사회비서관에는 김금옥 비서관이 이름을 올렸는데 그는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김 기후환경비서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성 환경운동가로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시민사회 인사다. 김 시민사회비서관은 전북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단체연합서 정책국장과 사무처장을 거쳐 2010년부터 7년간 여성단체연합을 이끈 여성운동가다. 

문재인정부서 시민단체 출신 인사 등용은 새삼스럽지 않다. 앞서 문 대통령은 조직개편을 통해 사회혁신수석실을 신설했다. 해당실의 수석에는 시민운동가 출신의 하승창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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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