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최순실 게이트> ②또 다른 막후권력 추적

주술사? 대무당? 진짜 비선실세 따로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막후 권력은 최순실씨다. 그런데 최씨의 막후에 또 다른 권력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배후 권력이 바로 최씨의 친언니 최순득씨와 조카 장시호씨가 지목되고 있다. 이번 사태 배후에 최씨의 언니와 조카가 있다는 것. 이외에도 최씨를 움직이는 게 무당이라는 풍문까지 돌고 있다.

“최순실씨의 조카, 즉 바로 위 언니인 최순득씨의 딸이 장유진씨. 저는 이 분이 가장 실세라고 본다. 순실씨의 대리인 역할을 지금 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다면 유진씨를 오늘 당장 긴급체포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에 이름을 장시호로 개명했는데, 순실씨와 가장 긴밀히 연락하는 사람이고 지금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있다.”

긴밀히 연락
증거인멸 시도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서 이같이 말했다. 최씨의 막후에서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만 알려진 순득씨와 유진씨가 수면 위로 등장한 것.

먼저 최씨와 순득씨 유진씨의 관계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64세인 순득씨는 박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의 다섯째 아내인 임모씨와 사이에 낳은 네 딸 중 둘째로, 셋째 딸인 순실씨의 동복 언니다.

아버지와 함께 새마을운동에 열성이던 순실씨와 달리 그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던 인물이다. 공식적인 기록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1977년 중앙정보부서 작성한 ‘최태민 조사보고서’에 그 실마리가 나온다.


순득씨는 당시 최태민이 연루된 횡령 비리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됐다. 비리 내용은 이렇다. ‘봉사단 장부에 3000만원 지출 기장 없이 경로병원 장부에 전액 입금된 것처럼 허위기장한 후 1977년 경로병원 경리과장인 차녀 최순득과 공모해 4회에 걸쳐 병원자금 424만원을 인출.’

여기서 두 가지 의혹이 제기된다.

첫째, 최태민이 법인과 재단의 돈을 마음대로 빼내 쌈짓돈처럼 사용했다는 것. 둘째, 순실·순득 자매가 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함께 돈을 챙겼다는 것. 최태민의 횡령 건수만 14건(2억 2135만원)으로 조사됐는데, 그 돈들이 다 이들 자매에게 흘러갔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그렇다면 순득씨와 현 정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언론에 보도된 순득씨 지인들과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순득씨는 1985년부터 남편 장모씨와 함께 박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와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6층 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 시세 350억원가량으로 최태민이 사망한 이후 순실씨에게 넘어간 역삼동 자택과 함께 또 다른 강남 부동산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최씨 뒤에 누가 있다” 소문들 파다
언니에 조카까지…최씨일가 그림자

박 대통령은 1990년 삼성동으로 이사하면서 순득씨와 이웃사촌이 됐다. 순득씨가 현재 살고 있는 고급빌라로 이사간 시점은 박 대통령이 1998년 4·2 재보궐선거에서 제 15대 국회의원(대구 달성군)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직후다.


우선 순실씨의 가족 A씨의 증언에 따르면 “최순득이 아플 때 박 대통령이 꽃을 보낸 적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순득씨의 지인 B씨는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괴한에게 피습을 당했을 때) 순득씨가 ‘박 대표가 우리집에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순득씨와 거주하는 빌라 주민들에 따르면 “2002년 대선 즈음 박 대통령이 순득씨를 수시로 찾아와 이회창씨의 대선 자금 문제를 논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주민들이 ‘정치에 관여할 거면 (빌라에서) 나가라’고 요구해 소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순득씨가 진짜 비선 실세이며, 순실씨는 ‘현장 반장’이라는 말도 있다. 20여 년간 최씨 자매와 매주 모임을 가져왔다는 A씨는 “순득씨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면, 순실씨는 이에 따라 움직이는 ‘현장 반장’이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순실씨를 비선 실세라고 하는데, 순득씨가 숨어 있는 진짜 실세”라고 덧붙였다.

A씨 등은 최씨 자매의 단골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목욕탕과 역삼동의 한 식당서 최씨 자매를 만나왔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식사하는데 순득씨가 전화를 받더니 ‘모 방송국 국장을 갈아치워야 한다’ ‘PD는 바꿔야 한다’고 하자, 순실씨가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통화를 한 뒤) 한참 뒤에 돌아오기도 했다”고 했다.
 

한때 박 대통령과 순득씨가 성심여고 8회 동기동창인 만큼 각별한 사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한 성심여고 관계자는 “지난 1970년에 졸업한 성심여고 8회 졸업생 명단에는 순득이나 순덕이라는 이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개명 가능성을 고려해 8회 졸업생 가운데 최씨 성을 가진 5명을 확인해봤지만 최순득씨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최순실도
꼭두각시?

순실씨는 자매 가운데 유독 순득씨와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자매 중 막내인 최순천씨와 순실씨의 사이는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씨는 가구·외식사업을 하는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 대표를 맡고 있다.

순천씨의 남편 서모씨는 국내 유명 아동복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순천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순실씨와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순득씨가 순실씨의 막후에서 박 대통령을 조정하고 있다는 말도 이런 소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순실씨의 조카이자 순덕씨의 딸인 유진씨도 순실씨의 막후 실세로 알려졌다. 유진씨는 의심 많은 순실씨가 가장 믿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순실씨를 잘 알고 있는 한 인사에 따르면 “(둘이)쿵짝이 잘 맞는다며 최순실이 시키면 장유진이 실행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2006년 명동성당서 열린 유진씨의 결혼식에 경호원들을 대동해 참석했다고도 한다.

유진씨는 고교때 승마선수로 활동했고 특기생으로 연세대에 입학해 졸업했다. 그는 연세대를 다닐 때 결석을 자주 했지만 엄마 권세를 업고 졸업장을 받았다는 얘기가 강남에 파다했었다고 귀띔했다.

또 유진씨는 최씨 집안에서 브레인을 맡고 있을 만큼 똑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아시안게임서 승마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건 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승마에 입문시킨 것도 유진씨였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유라씨의 인생설계까지도 유진씨가 한 셈이다.


또 유라씨의 롤모델이란 말이 나돌기도 하는데, 중학교 시절 성악을 전공하던 유라씨에게 승마를 권유하는 등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증언도 있다.

유진씨는 1990년대 중반 촉망받는 승마 유망주였으나, 이를 그만둔 후 연예계 주변서 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예인들과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한 매체는 유진씨는 수 년 전부터 톱가수 L, 배우 겸 탤런트 S, 톱가수 K 등의 연예인들과 아주 친한 사이였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유진씨가 가수 L이 운영하는 요식업체에 자주 나타났으며 이곳서 여러 명의 스타들과 친분을 쌓았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유진씨가 연예계 쪽에서 일을 하며 CF 감독 차은택씨와 인연을 맺었고, 순실씨에게 차은택을 소개해 줬다는 추측도 일고 있다.

무속인이 국정운영 조정했다?
외신들도 관심사 일제히 보도

유진씨는 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현 정부에서 6억7000만원의 예산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 동계스포츠 예산 배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순실씨가 주도해 설립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K스포츠와 미르 재단보다 앞선 지난해 6월 설립됐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나 대한스키협회와 업무가 사실상 중복되는 데다 사업 추진 실적도 거의 없어 7억원에 가까운 정부지원금을 받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포츠 영재 육성이 목적이 아니라는 증언이다. 이 때 당시 유진씨는 “어차피 누가 먹는 것이니까 자기네가 먹는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다.
 

유진씨는 제주에 있는 자택과 회사 사무실을 서둘러 정리하는 등 '흔적 지우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12년 7월 서귀포시 대포동의 한 고급 빌라를 4억8000만원에 구입해 아들 등 가족들과 거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직전 유진씨는 자신의 빌라를 매물로 내놨다.

유진씨는 순실씨를 통해 여러 개의 마케팅 회사를 설립해 운영해온 의혹도 받고 있다. 전국에 유령 회사를 두고 774억원을 모금한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개입했다는 것. 유진시는 제3의 인물로 부각되면서 향후 수사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관심이다. 현재 유진씨는 자취를 감췄으며, 연락도 두절된 상태다.

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은 사이비종교 교주라는 게 정설이다. 박 대통령이 어린 시절 최태민에게 많이 의지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대통령은 최태민에 이어 순실씨에게도 의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순실씨는 무당에게 모든 일을 점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다못해 딸 유라씨의 성형 날짜 등도 무당에게 점괘를 보고 날짜를 정했다는 것. 실제로 순실씨 곁을 봐준다는 무속인이 두 명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최씨가 무당이 아니냐는 말도 있을 정도다. 박 대통령이 순실씨에게 국정운영 조언을 받았다면 이 역시도 무당을 통해 결정됐다는 의혹을 배제할 수 없다.

무당 조언 받아
대통령에 귀띔?

심지어 외신들도 ‘박 대통령이 무당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 왔다’는 논조로 비판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남한에선 무당이 대통령과 사회를 좌지우지한다. 박 대통령 정권 뒤에서 어둠의 충고자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2년 전 비선실세 논란을 촉발시켰던 박관천 전 경정은 “최순실이 우리나라 권력 1순위, 전 남편 정윤회가 2순위, 박근혜 대통령은 3순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비선의 비선 의혹들이 다 사실일 경우 박 대통령은 권력서열 4위로까지 밀리게 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떨고 있는 ‘최순실 라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1일 “당·정·청 곳곳에 최순실씨에게 아부하고 협조하던 ‘최순실 라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이날 국회서 열린 더민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민조사위’ 회의에서 “주권자인 국민을 배신하고, 국가 조직을 망치고, 사리사욕을 채우던 사악한 무리를 끌어내려 죄가 있다면 합당한 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정부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다가 ‘정윤회 문건 유출’과 관련해 기소됐다 무죄를 받은 조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 말을 아껴왔다.

조 의원은 “청와대 최재경 민정수석이 검찰을 어떻게 지휘하는 지도 중요하지만 공직사회, 공기업, 금융계 심지어 대기업까지 뻗어 있는 암적 존재를 민정수석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문고리) 3인방 중에 정호성 전 비서관뿐만 아니라 18년간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모신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에 대해서도 과연 압수수색을 할 것인지 끝까지 주시하고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상황을 장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김 전 실장은 이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8월 초순까지 최씨의 빌딩 7∼8층을 사무실로 얻어서 정권 초기에 프레임을 짰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면서 “이런 분이 막후에서 총괄 기획한다면 이 게이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 리가 없다”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최씨가 몰래카메라로 청와대를 감시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일고 있다.

최씨의 조카사돈이 몰카를 차고 청와대 직원들을 감시했다는 주장이 잇따랐기 때문. 이는 최씨를 위한 감시체계까지 있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몰카를 사용한 제2부속실은 안봉근 전 비서관과 윤전추 전 행정관 등 이른바 ‘최순실 라인’으로 불린 인물들이 모여 있던 곳이라 그 논란이 더욱 거세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징징대는’ 북한 도발의 이면

‘징징대는’ 북한 도발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북한의 도발 방식이 다각화되고 있다. 전형적인 미사일 도발에 이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나 싶더니 최근에는 오물을 투척했다.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잦아진 북한의 도발, 그 노림수는 무엇일까? 80여년의 세월은 두 나라의 공통점을 차근차근 지워냈다. ‘한민족’ ‘동포’라는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과거보다 유대감은 옅어졌고 소속감은 사라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산가족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마주한 현주소다. 분단 79년 다른 나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은 2001년부터 2022년까지 14번에 걸쳐 통일 시기에 대해 물었다.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는 전체적인 경향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모든 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이 ‘(통일은) 10년 후쯤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2011년 김정일 전 노동당 총비서 사망, 2013년 12월 장성택 전 정치국위원의 숙청 발표 때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응답이 다른 조사에 비해 높았던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경향은 10년 넘게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점은 연령별 양극화였다. 2022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가 통일 시기를 10년 후쯤으로 답했다. ‘(통일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가 19%,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가 19%로 나타났다. 의견을 유보한 비율은 5%였다. 큰 틀에서는 이전 조사와 비슷했지만 18~29세, 30대 등 젊은 층에서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비율이 평균치를 웃돌았다. 각각 29%, 30%의 수치를 기록했다. 젊은 층 3명 가운데 1명은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70대 이상에서는 ‘(통일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답변이 3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젊은 층에서 통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로는 북한과의 관계가 손꼽힌다. 그간 정부의 성향에 따라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진보 성향의 정부는 대화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개했고 보수 성향이 짙은 정부일수록 강경 대응 방식을 취했다. 북한 역시 대화 상대의 성향에 따라 전략을 달리하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트고 평화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의 대북정책을 고수했다. 이 과정서 한국이 미국, 중국, 북한과의 관계를 주도하는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사일·GPS·오물 다양한 도발 정부, 군사합의 효력 전면 정지 반면 윤석열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미‧일 체제를 공고히 다지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형태의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은 한미, 한일관계에 공들이는 것에 비해 중국, 북한과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눈에 띄는 점은 북한의 대응이다. 북한은 최근 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밤부터 29일까지 거름과 쓰레기 등을 담은 오물 풍선이 우리나라 쪽으로 날아왔다. 이른바 ‘오물 풍선’으로 이날 북한이 살포한 풍선은 260여개로 집계됐다. 오물 풍선은 지난 1~2일 사이에도 날아왔다.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에 따르면 1일 밤 8시경부터 다음 날 오후 2시30분 기준 전국서 720여개의 오물 풍선이 식별됐다. 오물 풍선은 항공기 운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일 오전 제1활주로와 제2활주로 사이 상공서 오물 풍선이 두 차례 확인돼 운항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전날에도 제3활주로와 제4활주로 사이에 낙하한 오물 풍선을 수거하느라 일정 시간 동안 항공기가 이착륙하지 못했다. 결항된 항공편은 없었지만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북한은 오물 풍선에 이어 탄도미사일을 대거 발사하는 등 무력 도발을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합참은 “오늘 오전 6시14분께 북한 평양 순안 일대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추정 비행체 10여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시험발사 명목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무더기로 쏜 것은 이례적이다. 합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명백한 도발 행위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군은 굳건한 한미연합 방위 태세하에 북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듭된 공세 강경한 대응 북한은 지난달 17일에도 300㎞를 날아간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공격도 자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5시50분부터 발신지가 북한의 강령과 옹진으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3일까지 누적 1500건에 육박했다. 발신지가 북한으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연평·인천·강화·파주의 과기정통부 전파감시시스템에 유입됐다가 중단되길 반복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932건으로 집계됐는데 주말 새 550건이 늘어 1482건으로 나타났다. GPS 전파 혼신 신고 건수를 대상별로 분류하면 항공기 507건, 선박 975건 등이다.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북한의 GPS 교란 전파가 산과 같은 지형지물을 넘기 힘들어 수도권 등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다각화된 도발에 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윤정부는 지난 4일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부 정지시켰다. 오물 풍선 사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 등이 가능한 여건이 마련됐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8월19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회담서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로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미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윤정부도 같은 달 효력을 일부 정지했다. 북한이 오물 풍선, GPS 교란 등의 도발을 거듭하자 전면 정지로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미국도 규탄 국제기구에 지난 3일 대통령실은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회의서 의결된 9‧19 군사합의 전부 효력정지안을 재가했다. 이 같은 조치는 북한의 도발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북한의 GPS 교란 공격에 대해 국제기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일 “최근 북한의 GPS 교란과 관련해 정부는 유관 부처 간 긴밀한 협의하에 유관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국제기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해사기구(IMO) 등 3곳이다. 정부는 2016년 3월 북한이 GPS 교란 전파를 발사했을 때에도 이들 기구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각 기구는 비판 성명을 채택하거나 교란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미국도 반응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해 “역겨운 전술”이라고 규탄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것은 분명히 역겨운 전술”이라며 “무책임하고 유치하니 북한은 이를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도 “우리는 어떤 형태의 비행 물체든 불안정을 초래하고 도발적인 것이라고 본다”며 한국, 일본과 긴밀한 대응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윤정부가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로 맞서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윤정부의 강경 대응에 따른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 안건이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전 “오물 풍선을 보낸 북한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대응은 정말 유치하고 졸렬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여 정권이 처한 위기를 모면하려는 나쁜 대책이라는 설명이다. 내부 상황 안 좋아 외부로 눈 돌렸나? 반면 국민의힘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국민의힘은 “북한은 올해만 6차례에 걸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1000여개의 오물 풍선을 살포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재산 상의 피해를 초래했다”며 “북한의 몰상식하고 치졸한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향후 이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윤정부의 대응에 모두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상황을 감추려 한다는 설명이다. 양쪽 모두 국면전환을 위한 일종의 ‘노림수’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의 경우 정찰위성 발사 실패, 경제난 등을 겪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밤 군사정찰위성 2호기를 발사했다. 하지만 1호기 발사 때와 달리 비행 과정서 폭발했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합참에 따르면 우리 군은 이날 밤 10시44분경 북한이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서 서해 남쪽 방향으로 발사한 ‘북 주장 군사정찰위성’으로 추정되는 항적 1개를 포착했다. 해당 발사체는 밤 10시46분경 북한측 해상서 다수의 파편으로 탐지됐다. 비행 과정 중 폭발, 실패가 추정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쏜 것은 지난해 11월21일 이후 6개월여 만이다. 당시 북한은 3번의 시도 끝에 1호기를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는 정찰 등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호기 발사가 북한에 중요했던 이유다. 이번 실패로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정찰위성 추가 발사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경제난으로 북한 주민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는 점도 북한 입장에서는 차단해야 할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와의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주거니 받거니 짜고 치는 쇼? 내부 상황만 놓고 보면 윤정부도 녹록지 않다. 윤정부는 4‧10 총선서 패한 이후 거듭된 이슈로 수세에 몰리는 중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초반 박스권에 갇혀 반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채 상병 특검, 의료개혁, 김건희 여사 사건 등 곤혹스러운 이슈들이 산재한 상황이다. 문제는 북한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과거와는 달리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정국이 요동치고 북한 내부에 문제가 발생하면 관심도가 높아졌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며칠만 ‘반짝’ 이슈화됐다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과 북한이 마주한 현주소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