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먹구름 드리운 김정주 '과거와 현재'

벤처 신화? 이면엔 검은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2년 한 언론은 김정주 NXC 회장을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도전하는 경제인 분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현재 김 회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밤샘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김 회장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봤다.

김 회장은 국내 게임산업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나라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다. 부친은 법무법인 고문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모친은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8년생인 김 회장은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산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전형적인 ‘엄친아’ 스타일의 수재다. 음악을 전공한 모친의 영향으로 바이올린 연주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엄친아 스타일
바람의 나라 대박

김 회장은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가 드물었던 시기, 본인 컴퓨터를 가지고 놀며 자연스럽게 공대생의 길을 걸었다. 김 회장은 서울대 86학번 동기인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와 친분을 맺게 된다. 김 회장과 송 대표는 대학시절부터 유난히 손발이 잘 맞았다고 한다. 김 회장이 송 대표 등과 함께 1994년 12월 말 역삼동에 자리를 잡는데, 이것이 바로 넥슨의 시작이다.

김 회장은 카이스트 재학 시절 ‘국내 게임업계 대모’로 불리는 장인경 마리텔레콤 전 대표의 영향을 받아 온라인 게임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김 회장이 회사를 차릴 때까지만 해도 온라인 게임 영역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생소한 영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선뜻 넥슨에 투자를 하지 못했다. 결국 김 회장이 나서서 투자금을 끌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넥슨은 당시 대기업 홈페이지 제작부터 웹오피스 프로그램 개발 등 돈 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맡았다. 김 회장은 창업과 사업 운영에 필요한 행정업무와 외주 작업 유치 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넥슨은 이전까지 거의 시도되지 않은 그래픽 머드 게임을 제작,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머드게임은 통신상에서 여러 명의 사용자가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말하는데 넥슨의 시도 전에는 글로 모든 것을 처리하던 텍스트 머드게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을 비롯한 넥슨 구성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김진 작가의 만화 <바람의 나라>를 소재로 한 동명의 온라인게임을 내놓는다. 고구려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다룬 '바람의 나라'는 한국적 정서를 담은 게임으로 평가받는다. 2011년에는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 기록은 매일 경신되는 중이다.

진경준에 주식·차량 무상제공 왜?
대가성·업무 관련성 여부가 쟁점

지금은 '바람의 나라'가 국내 온라인 게임 산업의 뿌리로 평가받고 있지만 처음 출시됐을 당시 흥행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동시 접속자가 30명도 채 안됐고, 유료서비스를 시작한 첫 달 매출액이 1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등 넥슨에 운이 따르기 시작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몰고 온 PC방 열풍으로 '바람의 나라'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흥행에 날개가 달렸다. 현재까지 '바람의 나라'의 누적 가입자 수는 2300만명에 이른다. 그 이후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넥슨은 비약적으로 성장해 엔씨소프트와 함께 게임업계 양대 산맥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넥슨 성공의 1등 공신인 김 회장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다소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일각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천재 게임개발자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게임 업계의 생태계를 망치는 주범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 회장은 2000년대 들어 공격적으로 경쟁사들을 인수 합병하기 시작했다. 2004년 메이플스토리를 개발한 위젯스튜디오를 인수했고, 1년 후 모바일 게임 개발사 엔텔리전트를 손에 넣었다. 2006년 컴뱃암즈 개발사인 두빅엔터테인먼트를, 2008년 던전앤파이터 개발사인 네오플을, 2010년 서든어택 개발사인 게임하이(현 넥슨GT)를, 2011년 당시 JCE(현 조이시티)와 아틀란티카를 개발한 엔도어즈를 차례로 M&A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 회장에 대한 평판은 ‘투자의 귀재’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넥슨과 함께 게임업계 쌍두마차인 엔씨소프트와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이후 김 회장에 대한 평가가 ‘기업 사냥꾼’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바뀐다.

천재 개발자서
기업 사냥꾼으로

2012년 넥슨은 엔씨소프트와 함께 미국 유명 게임업체인 일렉트로닉아츠(EA)를 인수하기 위해 엔씨소프트의 지분 14.68%를 8045억원에 매입해 1대 주주가 됐다. 당시 김정주 회장과 김택진 대표는 서울대 공대 선후배 관계로, 평소 쌓고 있던 친분과 게임에 대한 공통적인 비전 등이 협력의 계기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A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두 업체 간의 관계가 불편해졌다.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공동 게임 개발 등으로 협력 관계를 이어가려 했지만 조직 문화 차이로 이마저도 무산됐다. 여기에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꾸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넥슨이 엔씨소프트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엔씨소프트 측은 모바일 게임업체인 넷마블게임즈를 끌어들여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고, 넥슨이 지난해 10월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소유하고 있던 엔씨소프트 지분 15.08%를 전량 처분하면서 두 업체는 공식적으로 결별했다.

김 회장은 일본 진출에도 관심이 많았다. 김 회장은 1998년 일본에 방문했다가 사람들이 닌텐도를 사기 위해 매장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2002년에는 글로벌 공략 차원에서 일본에 지사를 세웠고, 2005년에는 모회사를 한국법인서 일본법인으로 바꾸기도 했다.

현재 한국 넥슨은 일본법인의 자회사다. 지주사인 NXC가 넥슨의 일본법인 지분을 소유하고, 일본법인이 다시 한국법인을 지배하는 형태다. 이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별로 곱지 못하다. 김 회장은 "일본은 전통적인 게임 강국이며 한국보다 규제가 덜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넥슨 일본법인은 2011년 12월 8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도쿄증권거래소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일본 증시 상장 후 몸값이 폭등한 넥슨 재팬 주식, 진경준 검사장이 지난해 팔아 12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린 주식이 바로 이것이다.
 

모든 일은 지난 3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가 고위공직자 재산 내역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윤리위의 재산 공개 결과 진 검사장이 주식으로 120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얻은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주식 차량 제공
사실상 스폰서

진 검사장은 처음에는 넥슨 비상장주 매입 자금은 본인 돈으로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직자윤리위원회에도 다 신고했고, 국세청에서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면서 단지 친구의 권유로 2005년에 비상장 주식을 샀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 검사장이 보유하고 있던 넥슨 비상장 주식은 일반인의 접근이 극히 제한됐던 것으로 주식을 판 사람과 그가 이를 얻은 방식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진 검사장은 그간 주식 매입 자금 출처에 대해 ‘처가에서 돈을 일부 지원받았다’ ‘넥슨이 주식 매입 자금을 빌려줬는데 단기간에 갚았다’ 등 여러 차례 말을 바꿔왔다.

넥슨 측도 진 검사장과 말을 맞췄지만 결국 검찰 소환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검찰에 자수서를 제출하고, 김 회장 측에서 매입 자금을 무상 제공했다는 취지로 다시 말을 바꿨다. 13일 소환조사를 받은 김 회장 역시 이 같은 내용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검사장은 처음 문제가 드러난 이후 약 4개월간 거짓말을 거듭해 온 셈이다.

진 검사장의 주식 매입 자금의 출처가 드러나면서 이제는 돈의 성격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의 칼날이 김 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대가없이 약 4억원을 제공했다면 무슨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고 일종의 ‘보험 투자’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여기에 진 검사장이 넥슨이 리스한 고급 승용차 제네시스를 타고 다녔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사실상 넥슨이 진 검사장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것. 향후 검찰 조사에서 2005∼2006년 주식 거래 이후 진 검사장이 검사 직위를 이용해 넥슨 측에 편의를 봐준 정황이 드러나는 등 대가성 여부가 확인되면 ‘수뢰 후 부정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검사장 대박 의혹이 기업 사정으로
뜻밖의 나비효과에 김 회장 ‘불똥’

아울러 검찰은 김 회장과 진 검사장의 금전 거래 문제뿐만 아니라 넥슨 기업 전체 상황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김 회장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지난 12일 이미 김 회장의 자택과 제주도 사무실, 넥슨 판교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넥슨 내부에서는 착잡하고 충격적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넥슨은 회사 대표 게임인 바람의 나라 20주년 자축 행사를 가졌다. 하지만 이틀 뒤 압수수색이 진행되면서 좋았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검찰이 김 회장의 개인회사인 와이즈키즈까지 압수수색 했다는 점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와이즈키즈라는 회사는 김 회장과 지배 구조의 연관성을 볼 때 의미가 큰 곳이다. 3차원 프린팅 제품 판매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인 와이즈키즈는 김 회장과 그의 부인 유정현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곳으로, 지배구조와 관계사들을 들여다보면 회장 일가가 다수 얽혀있다.
 

부부가 모두 회사 임원을 맡았던 적이 있고, 김 회장의 부친도 한때 와이즈키즈의 임원이었다고 한다. 현재 검찰은 와이즈키즈가 지난해 지주회사인 NXC의 자회사였던 부동산 임대업체 엔엑스프로퍼티스를 601여억원에 사들인 것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검찰은 일단 진 검사장 주식 대박 의혹과 관련해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김 회장의 개인 비리나 넥슨의 경영 비리가 드러나면 수사의 방향이 갈라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11일 “김 회장이 넥슨코리아를 넥슨재팬에 매각하며 회사에 손실을 초래하는 등 2조8301억원의 배임, 횡령, 조세포탈 등을 자행했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센터에 따르면 김 회장은 2005년 당시 가치가 1조560여억원에 달하던 넥슨코리아를 넥슨재팬에 40억원에 넘겨 당시 모회사였던 넥슨홀딩스에 1조520여억원의 손해를 입히고 배임을 저질렀다.

또한 2006년 10월에는 주당 20만원 이상으로 평가받던 넥슨홀딩스의 비상장 주식 107만주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주당 10만원에 사들여 1270여억원을 횡령하고, 현 지주회사 NXC의 벨기에 법인에 넥슨재팬 주식을 저가로 현물 출자해 지주회사가 7990여억원을 손해보게 한 혐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넥슨이 지주회사 NXC를 지방으로 이전하며 지난해까지 약 3000억원의 세금을 감면받았지만 실제 업무는 경기도 판교의 넥슨코리아가 하고 있다며 이런 형식적 지방 이전이 조세포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센터가 주장한 김 회장의 범죄 혐의 액수는 배임 1조9290여억원, 횡령 5880여억원, 조세포탈 3000억원, 진 검사장에 대한 뇌물 120여억원 등이다.

은둔의 경영자
20년 만에 위기

평소 외부 행사나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는 김정주 회장. 하지만 개인 비리, 기업 비리 의혹으로 전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승승장구해왔던 20여년의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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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