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산업은행 무용론

엄청난 나랏돈 주물럭 ‘믿어도 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엄청난 금액의 나랏돈을 운영하는 국책은행. 우리가 알고 있는 KDB산업은행의 단면이다. 그러나 최근 산업은행은 각종 금융비리와 정치금융 논란에 휘말리면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안팎에서 쉽게 해결하기 힘는 난제가 겹겹이 쌓여 있는 양상이다. 커져가는 ‘산업은행 무용론’이 어딘지 모르게 심상치 않다.

1954년 설립된 KDB산업은행은 기업금융 및 투자금융, 국제금융, 기업 구조조정 및 컨설팅 등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이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민영화됐다가 2015년에 다시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산업은행은 IMF외환위기를 전후로 대우그룹 등의 워크아웃을 주도하는 등 금융시스템을 지켜내는 데 지대한 역할했다. 산업은행 총자산은 지난해 기준 약 309조원에 이른다. 불과 5년 새 자산이 2배 넘게 급증했다.

외압엔 굽신
책임전가 급급

이처럼 막중한 책무를 떠안고 있지만 산업은행을 향한 안팎의 시선은 싸늘하다. STX와 대우조선해양이 좌초하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데다 정권의 눈치를 봐야하는 실상이 만천하에 공개된 탓이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터트린 폭탄 발언은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했다. 지난 8일 홍 전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은 타의에 의한 결정이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꾸준히 지적된 산업은행 관치 논란이 표면화된 순간이었다.

홍 전 은행장은 한 매체를 통해 “대우조선해양 공적 자금 투입을 두고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청와대·기재부·금융 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부터 시장 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의 발언을 기점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서별관회의’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속기록 없이 이어져 온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본관 서쪽의 회의용 건물인 서쪽 별관에서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제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주축으로 열리는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로 알려져 있다.

역시 철밥통…곳곳에 산피아 포진
안팎서 거듭된 비리 혐의로 구설

홍 전 회장의 발언 직후 야당은 즉각 청와대를 정조준하고 나섰고 후폭풍은 생각 이상으로 커졌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홍 전 회장이 서별관회의를 통해 최경환, 안종범, 임종룡 등 3인이 모인 자리에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다고 이야기했다”며 “조선업의 부실로 인한 수많은 실직자들의 실직과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어야 하는 구조적 부실이 결국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곧바로 홍 전 회장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급기야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임 위원장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 관련 기자간담회서 “내부적으로 어떤 식의 보고가 이뤄졌기에 홍 회장이 서별관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처음 봤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금융 당국은 이미 그 전에 국책은행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 부실
도대체 뭐했나

흥미로운 점은 홍 전 회장으로부터 촉발된 산업은행 외압설이 궁극적으로 산업은행 무용론과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부각된 시점부터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간 국책은행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분출됐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감사원이 지난 15일 공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산업은행은 5억원 이상 여신 기업에 대해 ‘재무 이상치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재무 상태를 분석하도록 내부 지침을 마련해 둔 상태였다. 재무자료의 신뢰성이 매우 의심되는 ‘최고위험 등급(5등급)’에 대해선 원인 규명 등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2013년 2월 정부와 산업은행의 합계 지분이 48.61%였던 대우조선해양은 분석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 시스템을 활용한 재무 분석을 실시하지 않았다. 조선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의 분식회계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는 점에서 의도된 누락이라는 목소리가 제기된 건 당연했다.

실제로 감사원이 감사 기간 중 이 시스템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대우조선해양의 2013∼2014년도 재무 상태는 ‘최고위험 등급’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이 같은 기간 8785억원이라고 공시한 영업이익은 6557억원의 적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1조5342억원이 과다 계상된 셈이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이 2013년 5700억원, 2014년 2조187억원 등 해양플랜트 사업 40개의 총 예정원가를 임의로 차감했던 정황도 포착됐다.

뻥튀기된 영업지표의 수혜는 임직원들에게 돌아갔다. 대우조선해양은 임원들에게 2014년 48억원, 지난해 17억원 등 총 65억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직원들 또한 성과배분상여금 명목으로 2013년 1057억원, 2014년 927억원 등 총 1984억원을 받았다.

도덕적 해이는 3조2000억원대 영업손실이 드러난 지난해 7월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우조선해양은 4조2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산업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지난해 말 1176억원을 임직원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했다. 이 중 877억원은 성과상여금 명목이었다. 산업은행은 성과상여금 성격이 포함된 격려금 지급이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려놓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2012년에도 대우조선해양이 제출한 허위 경영실적 자료를 그대로 인정해 임원 성과급 35억원이 부당 지급되도록 방치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실적은 성과급 지급이 제한되는 G등급에 해당했지만 산업은행이 허위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50% 성과급 지급이 가능한 F등급으로 판정했다.

대우조선 수수방관에 싸늘한 여론
감시는커녕…부당한 돈잔치 나몰라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정부의 낙하산 인사도 산업은행 무용론을 부각시키는 데 일조한다. 산업은행 회장은 사실상 정권이 낙점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에 의해서 회장 자리가 채워지다 보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명박정부 당시 임명된 강만수 회장은 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인수위 경제분과 간사를 지낸 인물이다. 홍 전 회장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과 서강대 동문인 홍 전 회장은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을 맡아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스스로를 낙하산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홍 전 회장은 2013년 국정감사 때 “낙하산으로 왔기 때문에 오히려 부채가 없다. 실력으로 보여드리겠다”고 발언해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홍 전 회장의 후임인 이동걸 현 회장 역시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금융권 인사들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 선언을 주도한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산업은행이 지속적으로 구설에 시달리는 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금융회사 본연의 업무보다는 정부의 국정철학에 따른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항상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산업은행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로 일 처리를 해왔던 게 화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산은 낙하산
산피아 횡포


공교롭게도 낙하산 논란으로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했던 산업은행은 또 다른 낙하산 논란의 주범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에는 이번에 낙하산 인사가 추진되던 사외이사 외에도 최고재무책임자로는 거의 예외 없이 산업은행 출신 이른바 ‘산피아(산업은행+마피아)’가 낙하산 인사로 임명되는 게 관행이었다. 경영을 감시하는 감사위원으로도 산업은행 출신들이 연이어 낙하산 인사로 내려왔고, 사외이사의 상당수도 관료와 정치인 출신 등의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이는 대우조선해양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경영악화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조선해양에도 산업은행 출신들이 연이어 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산업은행 출신들이 부실기업의 요직을 차지하며 경영 부실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 무용론은 결과적으로 자초한 거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퍼진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본격적으로 산업은행의 역할 재정립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지난 21일 정의당, 민주노총, 참여연대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와 산업은행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회 특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과 방만 경영을 내버려두었던 정부와 산업은행이 이제 와서 보여주기식 사태 수습에 나선 모습을 꼬집고 나선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방만한 경영과 부실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해 고통만 안겨주고 있다”며 “공적자금만 투입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밝힐 수 있도록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