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한국 추상미술 1세대 권옥연

노스탤지어를 그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이자 초현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권옥연의 회고전이 가나아트부산에서 오는 16일까지 열린다. 이번 회고전에선 서구 미술을 가까이 접하며 한국적 향토성을 융화시키려 했던 권옥연의 조형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권옥연(1923∼2011)은 생전에 “그림의 톤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색채와 형체 못지않게 톤이 그 사람 특유의 포에지(poesie)를 나타낸다고 하는 사실은 훌륭한 작가의 그림은 사방 1㎝만 잘라 놓아도 그 그림의 제작자를 알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 처음 들어 보는 자기 자신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좋은 작가라면 섬뜩할 정도의 개성을 풍겨야 한다. 그때 비로소 예술이란 과정의 걸음마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섬뜩할 정도의 개성

그의 화면은 구상적인 형태에 비구상의 모티브가 섞여 있거나 비구상화면임에도 구상적인 형태들이 엿보인다. 주로 청색, 갈색, 회색의 일관되고 절제된 색조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구성은 구상과 비구상,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회화가 이렇듯 특유의 개성적 양식을 갖게 된 것은 1950년대 말 파리 유학 시절부터다. 권옥연은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머물러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모색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와 모티브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초현실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던 앙드레 브르통은 “당신이야말로 진정으로 현실을 넘어섰다(sur)”며 “동양적 초현실주의”라고 극찬했다. 
 


권옥연은 어머니 곁을 지켜야 한다는 장남의 책임감으로 브르통이 제안한 파리 개인전을 뒤로 한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절제된 색채를 바탕으로 한 풍경과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청회색과 상념에 빠진 듯한 인물이 특징인 권옥연의 인물화는 청색, 회색, 녹색 등을 여러 번 덧칠해 미묘한 회색조의 변화와 함께 독특한 질감을 가진다.

초현실주의 미술 대표하는 작가
서구 예술과 한국적 향토성 융화

그의 인물화에서 주목할 또 다른 점은 대부분 모델이 없이 그려졌다는 점이다. 명백한 구상 형태의 인물이지만 지칭하는 대상이 없는 그림 속 인물들은 그의 추상화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화면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말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림 속 여인들에게서 우리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고 특유의 신비로움에 이끌리게 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권옥연은 마티에르를 통한 질감이나 대략의 형태들만 표현했던 파리 시기 작품들과 달리 솟대, 호롱불, 당산나무와 오방색의 천, 달과 기러기 등을 그렸다. 

권옥연은 “내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서양은 나와 전혀 관계없는 세계라는 사실이었다”며 “이전에 보았던 갑사의 분홍빛 흙벽이 떠올랐고 고향의 초가집과 싸리울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우리의 자연과 전통적인 이미지, 전통 기물에서 오는 공간 분할, 꿈에 대한 감성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재 선택을 통해 우리의 원시적 근원에 대한 향수를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이는 옛 것이라는 과거의 모티브를 통해 함흥이라는 찾아갈 수 없는 고향, 전쟁을 통한 상실의 경험, 유학 중 겪었던 이방인으로서의 기억 등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반영한 것이다.

슬픔과 아름다움을


가나아트부산 측은 “특유의 색채와 서정성, 환상적이고 비애적인 화면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감성을 그리고자 했다”며 “1950년대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인물, 풍경, 정물, 추상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별했다”고 전했다. 

<shin@ilyosisa.co.kr>

 

[권옥연 화백은?]

1923년 함남도 함흥 출생.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 졸업 후 도쿄제국미술학교와 파리 아카데미 뒤 페(Academie du Feu)에 유학하면서 상징주의, 후기인상주의, 앵포르멜, 초현실주의 등 동시대의 주요한 미술사조를 접했다. 레알리떼 누벨(Salon des Realites Nouvelles) 초대전(1959),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1983), 보관문화훈장을 수상(1990),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올해의 작가’로 선정(2001). 2011년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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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