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경영권 잡은 새파란 딸들 '빛과 그림자'

‘믿어도 돼?’ 공주님이 회사 쥐락펴락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오너일가 2·3세를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은 마냥 호의적이지 않다. 이들을 지칭하는 ‘금수저’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세 대다수는 별다른 능력 검증을 거치지 않고 회사를 물려받는다. 경영 일선에 나서는 연령대마저 낮아지면서 새파란 나이에 그룹 내 요직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재벌가 후계자들은 평균적으로 20대 후반에 아버지 회사에 입사해 30대 초반에 임원으로 승진한다.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4년이 채 되지 않는다. 말단 직원의 임원 승진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임원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연령대는 더 낮아지고 있으며 남성에 국한되던 승계구도에도 일대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경영일선서
진두지휘

지난달 22일 부산 향토기업인 조광페인트 최대주주에 고 양성민 회장의 셋째 딸인 양성아(1977년생)씨가 이름을 올렸다. 영업본부 상근이사직으로 조광페인트에서 근무 중인 양씨는 지분 17.84%을 보유해 언니 양은아(5.82%)씨나 양경아(5.73%)씨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했다.

30대에 불과한 여성 후계자가 그룹의 최전선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분명 이례적이다. 다만 비슷한 사례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한술 더 떠 20대 때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여성 후계자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했다. 특히 젊은 피 수혈에 적극적인 패션분야 중견기업에서는 약 10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메트로시티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는 엠티콜렉션의 양지해 대표는 창업주인 양두석 회장의 장녀다. 20대 중반이던 2004년 사장으로 취임한 후 4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을 약 1300억원 규모로 키워놓았다.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된 덕분에 사업계획 수립뿐만 아니라 창업자와 직원 간 소통 창구 역할도 한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막내딸 박이라씨는 계열사인 ‘세정과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캐주얼 ‘NII’의 재도약과 ‘크리스크리스티’ 시장 확대를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대 중반부터 이름을 알린 그녀는 남편인 김경규 사업본부장과 함께 웰메이드를 론칭해 2년 만에 4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경영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최혜원 형지I&C 상무는 20대 때부터 착실히 실력을 쌓은 후 최근 여성복 '캐리스노트' 사업부장으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패션그룹형지가 새롭게 조직을 꾸리는 가운데 최 상무가 백화점 영업을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녀인 그는 그동안 본사 경영기획실 이사로 활동하다 지난해부터 영업 일선에 섰다.

20대 나이에 경영일선 전면 등장
요직에 이름 올리고 영향력 확대

어쩌면 앞에서 열거한 사례는 시작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오너일가 여성 후계자들의 경영 일선 진출 연령대가 더욱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대에는 실무를 쌓고 30대 나이에 본격적으로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던 유형은 더 이상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20대 중반부터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본사 지하 1층 회의실에서 열린 토니모리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해동 회장의 장녀인 배진형 씨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통과됐다. 배씨의 선임 안건이 통과되면서 토니모리의 사내이사는 2명에서 3명으로 늘었다. 현재는 배해동 회장과 홍현기 경영지원본부장이 사내이사직에 올라있다.

1990년생인 배씨는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후 지난해 토니모리 해외사업부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현재 토니모리 지분 8.5%(100만주)를 소유하고 있다. 이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모두 64.94%에 달한다. 최대주주인 배 회장의 지분율은 30.93%다. 배씨는 지난해에야 회사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에 기반을 둔 주류업체 보해양조는 지난해 11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창업주인 고 임광행 회장의 손녀이자 보해양조 최대주주인 임성우 창해에탄올 회장의 장녀 임지선(1985년생)씨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임 부사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3세경영’ 차원으로 보고 있다.
 


임 부사장은 대표이사 재임기간 ‘부라더시리즈’를 선보여 주류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난 4월 대표이사에 선임된 데 이어 부사장으로 임명되자 생각 이상으로 승진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여식에게
믿고 맡긴다

경영 일선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직간접적으로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입지를 다지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 이 경우 다량으로 보유한 지분이 큰 무기가 된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2세 경영의 초석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안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의 장녀인 서민정씨의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은 26.48%로 서 회장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에뛰드와 이니스프리 지분 외에도 지난 2003년과 2006년 서 회장으로부터 아모레퍼시픽 우선주를 증여받아 지분 0.01%를 보유하고 있으며, 외가 쪽인 농심홀딩스 주식 1만주(0.26%)를 보유해 20대 여성 주식부호 1위에 올라있다.

서씨는 2014년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해 7월께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부터 재계는 민정씨가 서 회장의 뒤를 이어 총수에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딸 담경선(1985년)씨는 2004년 서울국제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2008년 뉴욕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오리온 지분 0.53%를 갖고 있으며, 어머니 이화경 부회장(14.48%), 아버지 담 회장(12.9%)에 이은 3대 주주다. 오리온그룹에 따르면 담씨는 후계자 수업을 받기 위해 2010년 오리온에 입사해 ‘마켓오’ 사업부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현재는 전략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장녀 박하민씨는 미국 코넬대 인문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한 뒤 조기 졸업했다. 이후 매킨지코리아와 다국적 부동산컨설팅 업체 CBRE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소속으로 국외부동산 투자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보유한 미래에셋컨설팅 지분은 8.19%다.
 

구소희씨는 LS그룹 구자균 부회장의 차녀다. 구 부회장은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동생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3남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구씨는 구자균 LS산전 부회장의 차녀로 LS그룹 오너 여성 중에선 처음으로 회사에 입사했다. 뉴욕 시러큐스대 마케팅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대학원 국제통상학과를 수료했던 그녀는 2011년 말 사직했다.

지분 쥐고
영향력 확대

이성훈 서울반도체 대표이사의 딸인 이민규씨는 서울반도체의 지분을 지분 8.71%을 보유한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가 폭락 시기에 서울반도체 지분을 저가로 대량 증여받은 뒤 주식가치가 크게 올라 편법 증여 논란이 일었다. 

2008년 12월 서울반도체 주식 448만주씩을 주당 9000원에 넘겨받았다. 증여 당일 종가 기준으로 주식가치는 406억원이었으나 서울반도체가 코스닥 시가총액 1위를 기록하는 등 주가가 크게 오르며 지분가치가 높아졌다. 2014년 이민규씨는 국내 주식부호 조사에서 28세의 최연소 주식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오뚜기 창업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함영준 회장의 장녀인 함연지씨는 오뚜기 주식 4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은 1.16%. 함씨는 ‘뮤지컬 천재소녀’라고 불려질 만큼 뮤지컬계에서도 유명하다. 함연지는 2008년 뮤지컬 <인어공주’의 ‘Part of the world>를 부른 동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사에 따르면 함씨는 지난해 9월 오디션에서 300 대 1 경쟁률을 뚫고 얼터너티브에 뽑히기도 했다.


지분 대량 보유…후계구도 초석
‘미검증 금수저’ 임원은 부글부글

잇단 여성 후계자들의 등장에 대해 재계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시대적 흐름에 맞고 여성의 ‘꼼꼼함’이 경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들의 경우 40∼50대 나이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회사의 전권을 넘겨받았다는 점에서 20대 여성 후계자들과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능력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20대 자녀를 향한 승계 구도는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뜻이다.
 

통상 재벌가 2·3세는 조기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20대 중반에 입사한 후 초고속으로 승진해 임원 배지를 달고 경영자의 지위에 오른다. 평사원을 거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설령 밑에서부터 차근히 단계를 밟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경영능력을 검증받고 통솔력을 갖추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험 부족은 위기관리능력의 부재로 연결된다. 재벌가 2·3세가 임원에 임명된다는 것은 핵심 의사결정권자로 발돋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들의 의사결정에 따라서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선대와 달리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전 세대가 개척자 정신으로 회사를 일궜다면 2·3세는 선대의 의지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빈번하다. 대다수 재벌 2·3세들을 잡초 근성이 부족한 온실 속의 꽃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주와 달리 2·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책임감이 희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평범한 직장인들이 꿈꾸기 힘든 자리에 어렵지 않게 도달하는 2·3세들은 애초부터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언급했다.

부정적 시선
그래도 금수저

예전부터 재벌그룹의 최대 난제는 대외적인 정세 변화가 아닌 ‘오너리스크’란 말이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창업주가 일신상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후임자의 능력 부족으로 위기에 봉착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이 회사 내부에서 사그라 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긴 힘들다.

재계 관계자는 “물론 20대 젊은 여성 후계자들이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며 “다만 실무 경험이 미천한 재벌가 2·3세에게 애초부터 큰 기대를 갖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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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