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김정은 친인척들 어디서 뭐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김정은이 권력을 잡으면서 고모 부부가 북한권력의 핵심에서 사라졌고, 한 때 후계자 물망 1순위였던 이복형 김정남도 행방이 묘연하다. 최근엔 미국으로 망명했던 이모 부부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첫사랑인 성혜림이 낳은 아들이다. 김정남은 중국식 사회주의 모델로 북한을 개혁하려는 비전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면서 서방언론이 ‘북한 권력의 준비된 후계자’라고 추켜세웠으나 장성택의 처형 이후 지난 2년간 잠행 중이다.

숨어 지내는 백두혈통

2012년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정남은 12∼14세 때인 1983∼85년 3년간 모스크바 남쪽 바빌로바 거리에 살며 프랑스어 특수학교를 다녔고 학급에서는 김주하라는 가명을 썼다. 아래는 탈북자들의 발언과 그들이 쓴 문건을 종합해 정리한 것이다.

김정남은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1년간 해외유학을 다녀왔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개혁개방을 주장하다가 김정일에게 버림받아 중국으로 나왔다. 일설엔 성혜림을 대신해 1978년부터 실질적 부인 역할을 했던 고영희의 은밀한 공작이 김정남을 중국으로 쫓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1년 김정남은 차명 여권으로 일본을 방문하려다 발각된 후 아버지의 신임을 잃고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났는데, 이 때 일본정부에 김정남의 입국을 사전에 은밀히 알린 것이 고영희라는 일각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김일성에게 인정받은 손자는 김정남이 유일하다. 김정일은 부인 역할을 한 여성들과의 사이에서 비밀리에 출산을 했기 때문에 자녀들이 출생했을 때 아버지 김일성에게 알리지 못했다. 있다면 김일성의 요구로 공식결혼한 김영숙의 딸 김설송이 유일하다.

김일성이 후에 김정남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손자를 극진하게 사랑했다고 한다. 얼마나 손자를 사랑했는지 1970년대 후반에 손자를 달래준다면서 외국 수반과의 회담을 미룬 적도 있었다. 반면 고영희의 자식들인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 삼남매는 북한 각지의 초대소를 옮겨다니며 숨어지내야 했다. 첩의 자식이었던 이들은 할아버지 김일성을 만나본 적조차 없다고 한다.

이런 김정은에 비하면 오히려 장성택이 백두산 혈통에 더 가깝다고 탈북자들은 주장한다. 장성택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조국광복회에 참여한 인텔리 출신이었다. 장성택의 삼촌들은 1940년대 백두산 인근 만주에서 항일투쟁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1960년대 인민무력성(우리의 국방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장성택 처형 직후인 2013년 말 이후 김정남은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주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월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식당에서 목격됐다. 9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목격됐다. 당시 국내외언론은 아들 김한솔(21)을 만나러 간 것으로 보도했다.

후계자 후보들 행방 묘연
장성택 처형 이후 잠행 중

2008년 김정일 와병설이 제기된 이후 북한의 실권을 장악한 장성택이 당초 후계자로 점찍었던 것도 김정은이 아닌 김정남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생모인 성혜림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장성택-김경희 부부가 김정남을 직접 키웠고 해외를 전전하는 김정남에게 생활자금을 지원하는 등 서로 긴밀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황장엽 전 당비서는 김정은 후계구도가 확정되기 전 “중국정부가 김정남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왔고, 장성택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이 김정남을 유사시 써 먹을 수 있는 카드라고 보고 꾸준히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엔 김정은의 이모 부부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모부인 리강(61)씨가 지난해 11월말 한국에 입국해 강용석 변호사에게 명예훼손 손배소송을 의뢰한 것. 부부는 자신들이 김정일의 비자금 30만 달러를 훔쳐 망명했으며 고영숙의 아버지 고경택이 친일파라는 탈북자들의 주장 등을 문제 삼으며 6000만원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리강씨 부부는 지난 1998년 스위스에서 김정은의 뒷바라지를 하던 중 미국대사관으로 탈출, 망명했다. 외삼촌 고동훈씨 역시 그해 말 외국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김일성 가문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 직후 고영희가 충격을 받아 쓰러져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 그 후 고영희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선암으로 200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과 딸 부부 역시 프랑스로, 아들 이한영은 1980년대 초반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피살 당했다)

리강씨는 지난해 12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배다른 형인 김정남과 그의 아들 김한솔이 장기간 해외에 머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장성택 부장이 이들을 책임져 자신들은 간섭하지 않았다”며 “김정남은 북한에선 없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또 미국으로 망명한 이유에 대해선 “김정일 옆에서 거의 20년을 보내며 권력의 무서움, 비정함을 느꼈다. 고영희 하고 가까이 있는 게 좋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북한에선 없는 존재

이 밖에 김일성의 자녀 2명도 권력자의 곁가지로서 수십 년째 외국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애 소생의 김평일은 1980년대 중반부터 외교관으로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 등 동유럽 각지를 떠돌고 있다. 김평일의 외모는 배다른 형인 김정일보다 김일성을 더 닮아있다. 현재 그는 체코대사로 재직 중이다. 김평일의 누나 김경진은 김광섭 오스트리아 주재 북한대사의 부인으로 10년 넘게 오스트리아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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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