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회 최장수 보좌관 김현목

"별정직 파리목숨? 전문성 있다면 걱정 없어"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실 김현목 보좌관은 현직 국회 보좌관 중 최장수 보좌관이다. 되기도 어렵고 버티기는 더 어렵다는 국회 보좌관으로 무려 26년간이나 재직했다.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 김 보좌관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김 보좌관은 어떻게 최장수 보좌관이 될 수 있었을까? <일요시사>가 김 보좌관을 만나 그 비결을 들어봤다.

국회 보좌관은 채용도 해임도 국회의원 마음이다. 언제 면직될지 몰라 흔히 ‘별정직 파리목숨’이라고 한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실 김현목 보좌관은 국회 보좌관으로 무려 26년간이나 재직 중이다.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비결은 전문성. 김 보좌관은 지난 15대 국회시절 IMF 외환위기를 촉발한 한보그룹 비리를 파헤친 주인공이다.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모시던 의원이 낙선해도 곧바로 다른 의원실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다음은 김 보좌관과의 일문일답.

- 최장수 국회 보좌관이다. 보좌관은 되는 것도 어렵지만 버티기가 더 어렵다고 하던데 최장수 보좌관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좌진은 의정활동을 뒷받침하는 실무자다. 보좌하는 의원이 원활한 의정활동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근무한 점을 의원님들이 인정해 준 것 같다.

- 국회 보좌관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 1986년 대학 재학 시절에 민주화시위로 구속된 경험이 있다. 감방에서 만났던 정치권 인사가 출소 후 혹시 국회 보좌진이 되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연락이 왔다. 저는 제안을 받고 한참을 고심하다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보좌진이 되었다. 당시에는 저뿐만 아니라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보좌관으로 진출했다. 13대 국회 시절이던 지난 1989년,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평화민주당 소속 재선 의원님을 보좌한 것이 보좌관 생활의 시작이었다. 89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 9월에 정식 4급 보좌관이 되어 만 24세로 최연소 보좌관 기록도 세웠다.

- 국회에 입성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 지난 15대 국회시절 IMF 외환위기를 촉발한 한보그룹의 금융특혜를 당시 금융권 인사로부터 제보를 받고 파헤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보그룹의 여신 및 담보현황을 자료로 요청하자 금융기관, 감독당국, 정부의 권력형 비리가 줄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지난해 한국도로공사 국정감사를 통해 퇴직자 단체의 제도개선을 이끌어 냈던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일명 도피아(도로공사 마피아)로 불리우는 도로공사 퇴직자들이 사단법인 도성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데, 도성회의 출자회사가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 사업 등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파악해 시정을 촉구했다.

- 의원실 인턴 채용만 해도 경쟁률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국회 보좌관을 꿈꾸고 있는데 보좌관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요즘 국회의원들은 보통 공개채용 방식으로 보좌진을 선발하고 있는 추세다. 4급 보좌관, 5급 비서관을 공개모집하면 경쟁률이 100:1에 달한다. 소위 스펙이 좋은 응시자들도 상당히 많다. 회계사,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응시자들도 있다. 하지만 스펙만 좋다고 보좌진에 선발되는 것이 아니다. 경력직의 경우 평판도 중요하다.

새내기 보좌진들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깔끔하게 작성해야 한다. 문장력도 본다. 보좌진을 하고 싶은 동기, 포부와 계획, 일에 대한 열정, 성실함이 있는지 고루 본다. 단지 이 분야를 몇 년 경험해 보겠다는 자세로는 지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지나가는 직업 정도로 생각하고 지원한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 국회 보좌관으로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 보좌관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 보좌관도 이제는 전문직업군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변호사, 회계사, 기자, 금융인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오히려 거꾸로 보좌진이 되려는 시대가 됐다. 다만 힘든 점이 있다면 일반 직장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26년간 버티기는 했지만 그동안 나도 속앓이를 많이 했다. 선거 때마다, 국회 임기가 바뀔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그동안 보좌진이 된 것을 크게 후회해 본 적은 없으나 다소 회의감이 든 적은 있다. 솔직히 국정조사나 국정감사 때는 실무자라는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의원정수 확대, 국민 시선 곱지 않을 것"
"낡은 정치문화와 업무스타일부터 바꿔야"

- 국회의원 보좌진들의 처우와 관련해 임명이나 해임이 너무 주먹구구식이라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종종 국회의원들이 보좌진들에게 너무 비인간적인 대우를 해 논란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해결할 대책은 없나? 
▲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이라 다소 고용이 불안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15년 이상 근속하는 보좌진들도 늘고 있어 무조건 고용이 불안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일반직 공무원이 아니고서야 완벽하게 신분이 보장되는 직업은 어차피 별로 없다. 주변에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고 들었지만 제가 모신 의원님들은 보좌진들에게 무척 잘 대해줬다.
 


- 국회가 매년 국민 신뢰도 조사를 할 때마다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장수 국회 보좌관으로서 내부에서 지켜봤을 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국민의 신뢰도가 낮은 것은 낡은 정치문화와 업무스타일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회는 법보다 관행이 우선하고, 관행보다 여야 협상이 우선한다. 그러다보니 언제 회의가 열리는지, 언제 안건이 상정되는지 보좌진은 물론 의원들조차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과도하게 당론이 강요되는 정치풍토도 문제다. 자칫 소신 투표라도 하면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여야 간 대결구도가 이어지면서 시급한 법안은 물론 민생현안조차 처리하기 쉽지 않다. 정당정치에서 당론은 불가피하지만 현안과 사안에 따라 다르게 처리했으면 좋겠다. 의원이 소속 정당안에 반대하거나 반대당에 찬성하는 투표를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인정하는 제도인 크로스 보팅(cross voting)을 확대하는 것도 선진의회발전에 기여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 최근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는 정서가 팽배하다. 그동안 수많은 국회의원들을 지켜본 보좌관으로서 국회의원 정수 논란에 대한 생각은?
▲ 실무자인 보좌관의 입장에서 국회의원 정수 조정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다. 하지만 솔직히 현재의 정치수준을 감안하면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에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 같다. 자칫 기득권 유지로 비쳐질 수도 있다.

-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의 여파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 과거보다는 돈이 안 드는 정치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나라의 정치 관행은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한 풍토다. 과거와 같이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행태는 거의 사라졌지만 일부 잘못된 의식과 사고를 갖고 있는 악덕기업인들은 이런 점을 악용하고 있다.

특히 지나칠 정도로 정치자금을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자금을 음성화시킬 수 있다. 합법적인 후원회는 지금보다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지역사무실을 운영해 지역주민들로부터 고충과 애로, 지역현안 민원도 받아야 한다.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가 막대하다. 이런 경비는 국가에서 지원도 안 한다. 오직 후원금으로만 충당해야 하는데 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 끝으로 현재 보좌관 출신 정치인이 꽤 많다. 향후 선거에 직접 도전할 의향은 없나?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 솔직히 국회에서 오랫동안 의정활동을 보좌하다보니 직접 선출직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간 국회에서 체득한 지식 등을 바탕으로 고향 포천에서 지역일꾼이 돼 봉사의 기회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현직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은퇴 후에는 의정활동 실무보좌를 하는 교육을 하거나 그간의 경험을 살려 예산낭비 감시활동 등 시민사회운동을 해 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 


<mi737@ilyosisa.co.kr>


[김현목 보좌관 프로필]

▲ 13∼19대 국회 보좌관 (1989∼2015, 현재 26년 재직 )
▲ 국회 정책연구위원, 원내대표실 부실장 (2005, 별정직 2급)
▲ 산업자원부장관 정책보좌관 (2006∼2008, 별정직 2급)
▲ 서초여성인력개발센터 국회보좌진 양성과정 강사 (2006)
▲ 사)한국비서협회 보좌진 교육과정 강사 (2012∼2015)
▲ 국회 의정연수원 보좌진 직무교육 강사 (201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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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