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 오는데…여전히 싸늘

설 이후 부동산 시장 전망

설 연휴가 지났다. 아직 계절적으로는 봄이 아니지만 부동산 시장에는 본격적인 봄이 올 전망이다. 저금리에 각종 활성화 정책 덕분이다. 그렇다면 설 이후 부동산 시장별 전망은 어떨까.

전세가 상승에 떠밀려 매매 크게 증가
희소성 커진 2기 신도시들 인기 지속

먼저 주택시장을 살펴보자. 최근 정부의 1%대 초저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나오면서 전세수요자들의 매매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전반적으로 상승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저평가된 지역과 개발호재가 풍부한 지역들 위주로 실수요자들이 전세에서 매매로 꾸준히 움직이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신규 주택시장의 호황 속에 기존주택시장의 약세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다주택자들이 섣불리 추가 주택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직 시장자체가 정책불신과 대내외적 변동성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분양가 상한제를 파급력이 큰 공공택지에서 탄력운용 내지 전면 폐지했어야 했는데, 영향력이 적고 실효성이 미미한 민간택지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후퇴한 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책으로 보인다.

정부 오판 부작용
언제쯤 나타날까

민간택지로 분류되는 재건축·재개발 같은 일부지역, 일부단지에만 찻잔 속의 태풍과도 같은 미미한 호재로 작용할 뿐 수도권 시장 전반적인 회복세에는 영향이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역시 시한부로 일시적 호흡만 연장했을 뿐 시간이 지날수록 재건축시장의 압박감과 실망감은 시장에 짙은 먹구름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정책실효성의 감소는 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주고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전세가격의 상승세도 그중 하나다. 설 이후 부동산 시장을 전망해 본다면, 일단 전세시장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당히 불안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세가격 상승세에 떠밀려 정부의 유인책이 아니라 전·월세시장에 머물고 있는 임차수요자들의 전세대란 알레르기로 인해 자발적으로 기존 재고주택 매매시장에 뛰어들거나 청약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내집마련을 하겠다는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일정비율 이상이 되면 매매가격이 상승하는 상식이 깨진지 오래지만, 하반기에는 깨진 룰이 다시 깨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올해부터는 전세가의 비율이 조금 더 상승하면 전세수요자들의 임차시장에 머물기가 소위 임계점에 도달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매매가격 상승이 정부의 정책효과가 아닌 정부의 정책오판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매매시장이 활성화되는 현상이 올해부터는 나타날 것이다.

신도시 상가 주목
나머지는 ‘글쎄∼’

지방 대도시권 부동산시장은 3∼4년간의 상승세를 멈추고 조정 장세를 맞을 전망이다. 그동안 지방권 주택시장은 정부의 간섭이나 정책규제들이 거의 없이 순수하게 수급이 시장을 좌지우지한 특징을 보였는데 공급이 적고 수요는 늘면서 집값이 폭등했다.

그러나 상승장속에서 건설사들의 대규모 공급으로 입주물량이 크게 늘어나고, 큰 폭으로 오른 피로감 때문에 상승세는 멈출 전망이다. 다만 세종시의 경우 입주물량자체가 올해까지는 대폭 늘어나 전국에서 유일하게 역전세대란이 발생하는 이상 현상이 작년에 이어 올해 말까지 더 유지될 전망이다.

수도권에서는 소외되고 저평가된 2기 신도시들의 집값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위례신도시, 판교신도시, 광교신도시, 동탄2신도시 같은 경부축 인기지역들은 물론 한강신도시나 운정신도시 등과 같은 지역들도 수도권 집값상승률 1∼2위를 다퉜다. 그동안의 부진을 씻고 분위기가 급반전되면서 서울권 전세난민들의 가장 좋은 이동처로 각광받으며 가격도 수천만원 이상 급등했다.

설 이후에도 이러한 추세는 유지 될 전망이다. 정부의 신도시 공급 중단 발표로 2기 신도시의 희소성이 커지면서 2기 신도시의 위상은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오명을 씻고 쾌적성과 개선되는 교통여건 등을 등에 업고 실수요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물량 60% 상반기 집중
요건 완화로 청약자 늘어날듯

올해 3월부터 청약제도가 확 달라지는 가운데 분양물량이 3월에만 전국적으로 5만 가구를 넘어서는 등 연중 최대 규모가 쏟아질 전망이다. 특히 상반기에 올 한 해 예정물량의 60%를 넘어서는 등 공급물량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돼 내집마련 수요자들은 청약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들이 3월 분양물량을 쏟아내는 것은 2월27일 이후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하는 단지부터 수도권 1순위 청약자격이 종전 2년에서 1년으로 대폭 단축되기 때문이다. 무주택 세대주가 아닌 세대원도 국민주택 등 공공아파트 청약이 가능해지고, 청약 가능 주택형 변경도 자유로워지는 등 청약요건이 완화돼 청약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건설사들 가운데 일부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분양시장의 열기가 꺼지기 전에 사업물량을 털어내려고 최대한 분양 일정을 서두르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건설사들은 3월에 이어 4월에도 3만3325가구, 5월에는 4만7781가구 등 대규모 분양물량을 연이어 쏟아낼 계획이다. 이에 따라 1∼6월 분양물량은 총 19만2640가구로, 올 한 해 총 계획물량의 64.3%가 상반기에 집중된다.

최근 청약제도 개편으로 택지지구 등 인기지역은 청약과열 현상이 빚어지겠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 또 다시 신규 공급물량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초과 공급이 우려되는 곳이나 지방 또는 비인기지역은 추후 미분양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무리한 청약보다는 분양가 경쟁력이 있는 유망 단지를 중심으로 선별 청약하는 것이 좋다.

수익형 부동산은 인기지역 위주로 상가·오피스텔 등이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아파트 인기지역인 위례신도시, 동탄2신도시, 평택, 세종시 등이 대표적인 지역이다. 2015년에는 KTX라인인 광명, 동탄2신도시, 평택 등의 수익형 부동산 시장이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은 공급 과잉 여파로 올해도 고전이 예상되지만, 신혼부부 등 2∼3인 가구를 겨냥한 투룸과 호텔식 서비스를 도입한 오피스텔이 유망하다. 지식산업센터는 한때 임대규제 철폐로 주목을 받았으나 제도 시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송파 문정지구를 제외한 지역은 투자 선호도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형 호텔은 공급과잉과 수익률 하락에 대한 우려로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에 국한된 공급이 서울, 송도, 평택, 영통, 속초, 정선, 청주, 목포 등 전국화 되고 운영업체의 운영능력·입지 등 상품 경쟁력에 따른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음은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전망이다.

공급 과잉 여파로
수익형 고전 예상

▲상가 = 위례신도시, 미사지구 등 아파트 인기지역 상가와 점포겸용 주택이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수익형 부동산의 대표격인 상가는 2014년 내내 투자 열기가 뜨거웠다. 신규 분양상가 뿐 아니라 경매 상가도 인기가 높았다. 주택의 임대수익률 하락으로 투자 매력을 잃게 되자 월세 수익형 상가를 찾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9·1 부동산 정책으로 희소성이 높아진 수도권 신도시나 택지지구 상권에 들어서는 입지 좋은 상가는 2015년 설 이후에도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하지만 변수도 있다. 정부의 ‘상가 임차권 및 권리금 보호방안’ 발표 이후 투자 관망세를 띌 전망이다. 향후 상가 투자 시에 입지와 가격뿐 아니라 권리금까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상임법 개정안이 결정될 때까지 시장 침체가 불가피해 보인다.

상가는 상권에 따른 수익률 편차가 크고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있어 신중한 투자를 권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2015년에는 9호선 2단계 개통, 강남역 롯데칠성부지 개발 등 호재 많은 강남권 역세권 위주 강세 예상된다. 입주가 시작되는 위례신도시, 동탄2신도시, 광명역세권, 평택, 천안·아산 등 KTX 라인이 주목된다.


▲오피스텔 = 오피스텔은 신규 공급이 늘고 공실 위험이 늘면서 하락세를 탈 가능성이 높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 자료에 따르면 전국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은 2007년 상반기 6.8%를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 2014년 5.7%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오피스텔 재고 및 신규공급이 많은 서울(5.34%)지역 오피스텔의 수익률은 전국 오피스텔의 평균 임대수익률보다 더 낮았다. 때문에 오피스텔의 수익성이 회복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오피스텔 최고 인기지역인 강서 마곡지구, 송파 문정지구, 상암 DMC, 평택시 등은 개발호재의 약발이 떨어지고 단기 과잉 공급 여파로 투자수요는 점차 감소할 전망이다. 2013∼2014년 분양된 3∼4만여실로 인해 향후 2∼3년까지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될 경우 단기간에 수익성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설 이후 오피스텔은 수도권에 입주물량이 쏟아지는 탓에 지방보다 수도권에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혼부부 등 2∼3인 가구를 겨냥한 투룸형과 광폭 주차장과 호텔식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차별화된 오피스텔은 인기가 예상된다.

▲지식산업센터 = 수익형 부동산의 새로운 틈새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식산업센터(옛 아파트형 공장)는 설 명절 이후 임대사업 규제가 풀릴 경우 사업전망이 점점 밝아질 전망이다. 지식산업센터는 상가·오피스텔과 같은 기존 수익형 부동산보다는 투자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상품은 아니지만 기존 오피스보다 관리비가 저렴하고 임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기업과 투자자의 지식산업센터로의 이전 현상이 꾸준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분양형 호텔 = 한때 수익형 부동산 시장을 견인했던 분양형 호텔과 과거 도시형 생활주택이 그랬듯이 ‘공급과잉·수익률 하락’우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제주도에 한정되었던 분양형 호텔이 현재는 전국화가 진행 중이다.

서울 명동·마곡지구·구로동, 인천 송도·논현동·영종도, 경기 평택, 지방 청주·속초·정선·광양·부산 등에 공급 중이거나 예정 중에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일원에서 분양됐거나 진행 중인 수익형 호텔은 20여개이고 준비 중인 사업장도 50여곳으로 알려진다. 이들 상품이 다 공급된다고 가정할 경우 객실수는 1만5000∼2만실로 추산된다.


최근 공급이 크게 늘면서 분양형 호텔의 가장 큰 특징은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 우려가 높은 지역은 극심한 분양률에 시달리고 있지만, 최근 공급이 없거나 뜸했던 지역은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설 이후에도 호텔식 서비스 제공 오피스텔 등 유사 상품 등장으로 관심도 하락과 상품 간 양극화 현상이 더욱 극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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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