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 '사법개혁 아이콘' 정의당 서기호 의원

"황제노역, 국민뿐 아니라 판사 눈높이에도 맞지 않아"

[일요시사=정치팀] '법 앞에 만인 평등'은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원칙이다.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무너지고, 불신의 싹만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수준은 어떨까. 범죄 혐의자의 지위고하에 따라 천차만별의 수사와 판결이 여전하고, 언론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한마디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일당 5억원 황제노역 판결, 검찰·국정원의 간첩혐의 증거조작 수사 등을 보면 공정해야 할 법의 잣대가 기울어진 채 적용되고 있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현 사법부에 대한 조롱이자 슬픈 현실의 반영이다.

"60년간 안 바뀐 노역제도, 시대 변한만큼 개선해야"

이런 상황에서 판사 출신의 서기호 의원은 최근 법조계 현장을 분주하게 누비며 산적한 현안들과 조율이 필요한 법조계 갈등을 직접 듣고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일에는 또 다른 황제노역 방지를 위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19대 국회 '사법개혁의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의당 서기호 의원을 만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법부 행태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봤다.
다음은 서 의원과의 일문일답.

- 허재호 전 회장의 '황제노역 논란'에 대해 판사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 국민의 눈높이뿐만 아니라 판사의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 판결이다. 제가 사법연수원에서 배울 때(1998년) 벌금 2000만원 미만은 노역 1일에 2만원, 그 이상 벌금은 벌금액의 1000분의 1로 노역금액을 정해야 한다고 배웠다.


실제로 법에는 판사의 재량을 무한하게 허용하지만 이렇게 하면 허재호씨 사례처럼 사회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어 연수원에서 나름의 기준을 잡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상식을 가진 국민도, 판사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 또 다른 황제노역의 폐해를 막기 위해 지난 1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내용과 취지를 간략히 설명한다면.
▲ 허재호 황제노역 판결이 나오게 된 결정적 이유는 현행법상 노역 일당 환산액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역 일당의 상한선을 정하고, 최장 노역기간인 3년 초과부분에 대해선 벌금 납부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상한선으로 일단 100만원을 정했는데, 이 기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유연성을 가지고 조율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노역일수를 초과한 벌금에 대해선 반드시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

- 노역제도는 벌금 납부 능력이 없는 이들이 몸으로 때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법인데, 노역 3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벌금을 내게 한다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 노역제도는 지난 1953년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법이다. 당시에는 고액벌금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의 벌금 탕감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이제는 경제 사정이 많이 바뀌었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는 죄질이 중한 고액 벌금자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

-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향판문제'가 불거지자 대법원은 해법으로 '지역법관'을 점차 줄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법관 인사의 구조적 특성상 여전히 지방에서 오래 일하는 판사는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향판과 지역법관의 개념을 구별해야 한다. 지역법관은 2004년에 도입됐고, 그 이전에 일정한 지역에서만 근무했던 재판관을 향판이라고 한다. 즉 지역법관의 폐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향판의 폐지가 본질이다. 법원 행정처가 의도적으로 향판의 부작용을 희석시키고 있다.

또 이 사건은 학연, 지연으로 얽힌 지역 토호와의 유착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출신지역에서 법관으로 오래 근무할 수 없도록 하는 상피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특검 도입 필요"
"국정원 불법수사 눈감은 검찰, 역할 포기한 것"


- 국정원·검찰의 서울시 공무원(유우성씨) 간첩혐의 증거조작 사건이 사회·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 탈북자들에 대한 국정원 합동심문센터 수사과정의 문제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이미 있어왔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유우성씨가 서울시 공무원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유씨가 1심에서 간첩으로 판결이 났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책임론으로도 이어졌을 것이다.

최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간첩 조작사건이 아니라 간첩혐의 사건"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법무부 장관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깨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확인, 검찰 수사 등에서 드러난 바대로 이 사건은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다.

- 검찰 수사에서도 이미 확인된 만큼 누군가는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검찰은 단순한 문서위조로 몰아가고 있다.
▲ 간첩 증거조작이라는 본질을 숨기려는 의도다. 증거를 조작한 국정원·검찰에게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최소화하려는 것인데, 국가보안법상 무고 및 날조 혐의를 적용할 경우 이들에게는 똑같이 국가보안법 위반이 적용된다. 이것은 국정원·검찰뿐 아니라 청와대도 원치 않는 결과이기 때문에 모해증거위조와 인멸, 사문서위조 등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 사안의 중대함에 비해 기소된 인사는 국정원 직원 1명과 협력자 1명 등 2명뿐이다.
▲ 윗선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안됐다. 지금까지 나온 언론보도만 보더라도 국정원의 증거조작은 실무진 위로 보고서가 올라갔다. 또 협력자와 돈이 오간 것도 윗선의 결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사건이 박근혜정부의 첫 간첩 사건이라는 점에서 남재준 국정원장도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몰랐다'고만 하는데 공식 경로가 아니라 비공식 경로를 통해서 입수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법정에서는 외교라인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입수한 문건이라고 7차례 이상 주장을 했다. 검찰이 재판부를 속인 것이다. 검찰이 자기 식구인 검사를 제대로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검사의 도입이 필요하다.

- 유우성씨 사건에 대해 덧붙일 말이 있다면.
▲ 검찰과 국정원의 관계를 이번 기회에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검찰 공안부 검사들은 국정원의 불법적인 수사에 대해서 눈감아 왔다. 수사 협조자라는 이유로 국정원의 위법행위를 눈감아 왔는데, 이는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가 자기 역할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19대 국회가 어느덧 절반가량 지났다. 그간의 의정활동에 대한 소감과 향후 활동계획이 궁금하다.
▲ 국회의원이 된 이후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고 합리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판사 출신의 전문성을 살려 사법제도 개혁에 앞장서기 위해 노력했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전문성을 살려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인 사법제도 개선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개선방안을 만들어 갈 것이다.

지난 3월 법정녹음 의무화를 집중적으로 요구했는데, 법원 행정처도 받아들이는 등 가시적 성과도 있었다. 나아가 신청이 있을 경우 영상녹화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조만간 발의 할 예정이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서기호 의원 프로필>

▲ 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
▲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위원
▲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 제주지방법원 판사
▲ 전국 가톨릭 대학생 협의회 회장
▲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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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