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④박관용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박근혜-박정희' 닮은꼴 정치…시대 바뀐 만큼 변화 필요"

[일요시사=정치팀]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계원로의 충고 한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한줄기 빛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이정표를 잃어버린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에서 준비한 정계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요시사>가 이번 호에 만난 정계원로는 6선 국회의원, 국회의장 등을 지낸 박관용(75)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이다.




박관용 (사)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은 30년 이상 현실정치에 관여하며 김영삼정부 초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6선 국회의원,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성공한 정치인이다.

표면적 직함뿐 아니라 내실도 탄탄하다. 특히 1985년 시작된 남북국회회담 대표와 국제의회연맹(IPU) 평양총회 대표, 국회 통일정책위원장을 지내며 수많은 남북회담에 참가한 남북관계의 산증인이자 북한문제 전문가다.

지금은 현실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전직 장·차관들의 국정봉사단체인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에서 북한문제, 국제문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박 이사장을 지난 20일 만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꽉 막힌 정치권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이사장님 반갑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이사장을 맡고 있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북한문제, 국제문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는데 특히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7년째 고려대와 합동으로 매월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학 강의도 나가고 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합니다. 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마디로 성공적인 한해였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일부 개선점이 눈에 보이기는 합니다.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를 존경하고, 그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지시형 리더십으로 완벽한 정부 장악을 통한 국정운영이 필요했던 그 시대(박정희 시대)에서 이제는 타협·토론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로 변했습니다. 따라서 시대적 상황에 맞춰 통치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닮았다는 말씀이신가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흘렀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문화, 분업화, 다양화된 요즘은 어느 한 사람의 의지로 통치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국무위원들이나 기타 책임자들에게 과감한 권한과 책임의 이행이 필요한 시대라 생각합니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법원이 모두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한 말씀하신다면?

▲사법부의 판결에 이러쿵저러쿵 이견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법부의 권위를 인정해야 나라가 안정이 되는 것이지요. 재판 결과를 보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죄 등을 재판부가 모두 인정했습니다. 앞으로는 헌법을 준수하지 않는 국회의원, 정당은 단호하게 척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인정해야 합니다.


- 이석기 의원 사건과 맞물린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내릴 일입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헌법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헌법에는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진 집회, 의사표현 등 모든 자유를 이용해서 오히려 자유를 파괴할 가능성이 보이는 정당을 사전적 조치로 없앨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독일에선 사회주의제국당, 독일공산당이 이렇게 해산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북한의 위협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정당이 있다면 방어적 민주주의에 따라 단호히 정리해야 합니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과 관련해 주한 중국대사관이 "검찰이 제출한 유우성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이 조작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누가 잘못한 것인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 내부에서 조사팀을 꾸리고 조사 중인 상황인데, 결과가 나온 후에 여야가 논쟁을 하든지 해야 합니다. 혼선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정치권이 나서서 떠드는 것은 국민여론을 호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정치권이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혼란만 더욱 부추기는 것이어서 옳지 않습니다. 

-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최근 국정원 대선 댓글개입 사건 축소·은폐 의혹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두고도 여야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재판부의 재판 결과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헌법정신에 따라 권력은 분립됐고,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과거 독재정권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민주화가 된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사법부 판단에 정치권이 왈가왈부해선 안 돼"
"독일의 '방어적 민주주의' 우리도 적용해야"

 

- 여야가 지난 대선에서 공통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현재 여당이 "위헌 소지가 있어 못 지키겠다"고 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위헌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등을 국민들에게 명확히 설명 해야 합니다. 현재 여당이 내세우는 주장은 헌법을 명확하게 해석을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국민을 납득시킬 설명도 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야당도 최근 공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인데, 이러니 정치 불신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외에도 경제민주화, 기초노령 연금 지급 등 공약 후퇴 관련 논란이 더 있습니다만.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공약을 100% 이행하는 곳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경제사정 등에 따라 못 지킬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왜 못 지키게 됐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입니다.

-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증세를 위해선 국민적 동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딜레마인데,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선 싫은 소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서로 경쟁적으로 좋은 얘기만 꺼내다보니 결국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선거로 좌우되는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표를 얻기 위해 과장된 공약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대신 못 지키게 됐을 경우 이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새정치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어떻게 보십니까?

▲기본적으로 새정치연합이 건전한 정당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공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첫째, 새정치연합이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가 분명치 않습니다. 둘째, 사람을 모으는 것을 보니 정치권에 이미 얼굴이 팔린 이들을 모아서 새정치를 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명망가가 아니더라도 진정 새정치를 해야겠다는 비전과 의욕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야 새정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이 벌써부터 연합·연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가고 있는데, 이럴 경우 또 한 번의 철수가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 정치권이 6·4지방선거 준비 체제로 돌입했습니다. 이사장님은 이번 지방선거를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역대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은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패배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이석기 사건의 여파로 종북·친북세력과 이들의 원내 진출을 도운 민주당이 상당히 민감한 상황입니다. 또 안철수 의원 측도 후보를 낸다, 안 낸다 등 얘기가 많아 어느 때보다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 아직 4년의 임기가 남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자가 한 스타일만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와 같이 원칙론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 있고, 독일의 메르켈처럼 타협으로 이끄는 사람, 미국의 레이건처럼 소통을 잘하며 끌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통치스타일보다 개인의 지도력에 성패가 달린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여야 정당과의 대화를 활성화하고 정부조직이 다 같이 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듣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소통의 부재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5000만 국민 모두와 대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국민과 늘 대화하는 정당과 대화를 하면 됩니다. 또 책임 있는 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이양해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점만 보강하면 사심이 없는 사람이기에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 봅니다. 권력은 혼자 가질 경우 작아지지만, 위임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특히 지금 장관이 보이지 않는데 장관이 앞에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 여야 정치권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민주주의 기본은 정당정치입니다. 정당끼리의 대화·토론·타협이 민주정치의 꽃이요,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당이 무엇인지, 국회의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중앙당의 지시만 따라 다닐 것이 아니라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상대 당과는 정책으로 경쟁하고, 정당들은 흩어진 여러 가지 문제들을 흡수해 각기 다른 해결책이 있다면 만나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일반적의사화 시켜야 합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고 보완했으면 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공약 100%지킬 순 없어"
"정당 간 대화·토론·배려가 민주정치의 꽃이자 핵심"

 

- 본인의 정치인생에 대해선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지나고 보니 아쉽고 회한이 많이 남습니다. 유일하게 야당 출신의 국회의장으로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2년의 기한이 짧아 개혁을 다 이루지 못했고, 대통령 비서실장(김영삼 전 대통령)을 할 때에는 대통령을 좀 더 설득해야 했는데 부족했습니다. 6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에는 민주화운동을 핑계로 국정에는 깊이 관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주시지요.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선 국민이 단합해야 합니다. 또 안보, 통일, 외교 등 국익 관련 사안에 대해선 여야 구분 없이 하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들이 이를 위해 대화를 많이 하고 타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바랍니다. 국회의원들은 권력을 가졌다고 어깨를 흔들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을 궁리했으면 좋겠습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박관용 이사장은 누구?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동아대 정치행정학부 석좌교수
▲16대 국회의장
▲한나라당 부총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6선 국회의원(11·12·13·14·15·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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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여러 비선 실세가 있었다. ‘V0’ 김건희씨의 최측근인 건진법사 전성배씨, 군 인사를 좌지우지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이들에게는 ‘무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씨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기일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이 서로 일면식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명씨와 전씨는 김건희씨 및 윤석열 전 대통령과 직접 만나거나 통화했다. 노 전 사령관만이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알았는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건희 일가를 잘 아는 이들은 위의 인물들이 각자의 존재를 인지해 왔다고 한다.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이른바 ‘비선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범하자 기웃기웃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예비후보 시절부터 논란을 달았다. 지난 2021년 TV 토론회 당시 그의 손바닥에서 ‘王’ 자가 세 차례 포착됐다. 이는 김씨의 무속 의혹과 겹치면서 지지율 폭락을 가져왔다. 전씨는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1월 윤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전씨가 윤 전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리고 사무실을 소개하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전씨가 ‘고문’으로 네트워크본부의 실질적인 지휘를 담당했다는 의혹과 함께 ‘무속인’이 캠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거대책본부는 “(전씨는) 고문으로 임명된 바 없다”고 해명한 뒤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전씨의 영향력은 위축되지 않았다. 최근 검찰 수사에선 전씨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최소 3명의 공천 청탁을 했고, 비슷한 시기 통일교 전 고위간부 윤영호씨가 전씨에게 김씨에게 줄 선물용 목걸이를 전달한 정황 등이 확인됐다. 전씨는 당시 ‘윤핵관’으로 꼽혔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 선거 운동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른바 ‘건진법사 게이트’를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확보한 문자 메시지를 보면 2021년 12월 윤 의원은 전씨에게 ‘권성동 의원과 제가 빠지는 게 (윤석열)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라고 묻는다. 전씨는 ‘후보는 끝까지 같이 하길 원하는데 빠진다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검찰 조사에서 전씨는 “사람들이 제가 힘 있는 줄 안다”며 이런 의혹들을 부인했다. ‘무속인 논란’ 이후 기자 등을 피해 숨어 지냈다고도 했다. 전·노 윤석열 캠프 외곽 그룹서 활동 “정권 초기부터 셌다” 일면식 있었나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과 달리 전씨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 당선 후 더 커졌다. 검찰은 2022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씨가 받은 경북 영주시장·경북도의원 등의 공천에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취지의 문자들을 확보했다. 또 전씨가 경북 봉화군수·경남 합천군수·경기 성남시장 후보 등과 관련해 윤 의원에게 청탁을 시도한 정황도 파악했다. 청탁을 한 사람 중 일부는 실제로 당선됐다. 전씨는 검찰에 “공천 부탁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답했다. 김건희 특검팀은 최근 전씨 휴대폰을 포렌식하며 ‘건희2’로 저장된 인물과의 대화 내역 일체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19일 ‘건희2’로 저장된 번호로 8명의 이름과 근무 희망 부서를 적은 명단을 보냈다. 8명은 대부분 윤 전 대통령 대선캠프 내 ‘네트워크 본부’에서 일했다. 전씨는 “사모님께 말씀드렸다. 꼭 해주시라고 당부했다”는 취지의 문자를 이어 보냈다. 그러자 ‘건희2’로 저장된 인물은 다음 날 전씨에게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답했다. 김씨 측은 전씨가 ‘건희2’로 저장한 번호의 실제 사용자는 김씨의 ‘문고리 3인방’으로 꼽히는 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다. 특검팀은 지난달 25일과 31일 두 차례 정 전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특검팀은 정 전 행정관을 상대로 전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씨가 보낸 메시지를 김씨에게 전달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검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 및 김씨와의 친분을 내세워 다수의 공직 희망자로부터 인사 청탁과 공천 청탁을 받고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그는 윤석열 캠프서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특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은 주로 출근하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제의로 캠프에 몸담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의 역할이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뛰어넘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 5월 단독으로 보도했던 노 전 사령관 기사를 보면 그는 2020년~2021년 사이 ‘식목일행사계획’ ‘YP(윤 전 대통령 추정)작전계획’ ‘YR(와이알)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압수한 노씨의 유에스비(USB)에 있던 문건으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가 주된 내용이다.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식목일행사계획 파일에는 ‘분노와 정의’라는 제목 아래 ▲(검찰총장) 퇴임 시 행동 ▲퇴임 후 동력 유지 방안(예) ▲퇴임 이후 정치 참여 방안(2~3개월 야인 생활 후) ▲대선 카드 준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퇴임 시기에 대해 “자의로 퇴임 시 지금의 몸값을 최대한 유지하여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 직전이 유리, 기자회견은 ‘더 이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여 퇴임합니다’라고 간명하게 함”이라고 적었다. 2021년 4월 치러졌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에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뜻인데, 윤 전 대통령은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 한 달여 전인 3월4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이후 행보와 관련해서 노 전 사령관은 문건에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우려와 인식을 공유하여 지도자급으로서의 이미지를 노출”시키고 “재래시장, 청계천, 남대문, 지하철 등에서 몰래카메라의 형식으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냄새를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깜짝 행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또 “현 정치체제와 일정 기간 거리 두기를 하다가 내년 9월을 목표로 국민의힘에서 모셔가는 형식으로 영입” “AN(안철수 추정) 등 여타의 후보군을 모두 참여시켜서 경선을 하고 여타의 후보군이 꼼짝없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사전에 정리 작업”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사퇴 4개월 뒤인 2021년 7월 영입 제안을 받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YP작전계획’ 문건에는 ‘정의로운 법조인’이라는 ‘Y의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연예인, 중도좌파도 끌어들이는 과감한 인물 영입”을 통해 “후원 지지 그룹 구성”을 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어 “친박, 비박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사용하고 “좌파 중량급을 영입”해서 “당권 장악”을 한 뒤 “대선 성공”을 하는 단계를 순서도 형식으로 그렸다. 막강한 영향력 아울러 “좌파 정권이 추진한 경제정책을 좌파 적폐 척결 차원에서 폐지”하고 “한미일 안보 축을 기본으로 하고 한일관계를 적폐 청산과 국민적 인기 영합 차원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정책적 내용이 적시됐다. ‘YR계획’에는 “국립묘지 참배,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 두루 참배” 등 내용이 적혔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2021년 10월26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정희·김대중·이승만·김영삼 전 대통령 순서로 묘소에 참배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11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전 대통령이 대선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 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 역공 대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 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책·현안 모두 비선 실세 말대로 실현 김·노 라인 물적 증거 없어 수사 필요 전씨와 노 전 사령관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의외로 ‘일본’과 무속이다. 김건희 특검팀 관계자 4~5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진법사 전씨의 법당으로 들이닥쳤을 당시 ‘일본 신상’의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전씨의 법당은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 면적만 279㎡(약 84.4평)에 이르는 단독 주택 2층에 있다. 2층(90.18㎡)엔 거실과 큰방, 작은방, 화장실이 있고, 1층(134.02㎡)은 일반 가정집 형태 생활공간으로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2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설치돼 있다. 2층 거실과 큰방에 각각 부처상과 일본 신화에 나오는 아마테라스상을 모신 불당과 신당이 한 개씩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씨가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자 신도(神道)의 주신으로 일컫는 아마테라스를 모신 건 한국 전통 무속이 일제 시대 신사 참배 등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은방은 테이블과 방석이 깔려 있는 응접실 형태의 손님 대기실인데, 전씨는 이 방에서 공천 헌금 의혹이 제기된 2018년 자유한국당 영천시장 예비후보와 사업가 이모씨, 축구선수 이천수 등을 만났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일본어를 매우 잘한다. 육사 졸업 후 일본에서 수년간 거주한 까닭이다. 노 전 사령관이 일본 동북대 석사 위탁교육을 받는 동안 그의 딸들은 현지 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사령관과 같이 근무했던 한 군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일본에 오래 거주하지는 않았다. 일본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신사에도 자주 갔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2019년부터 경기도 안산 본오동 ‘아기보살’ 점집에 얹혀살았다. 등기부 등본에는 이 점집의 소유주가 아기보살 윤모씨로 돼 있다. 왜 하필 일본? 윤씨와 노 전 사령관을 잘 안다는 한 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기보살 점집에 가보면 노씨가 트레이닝복이나 잠옷 차림으로 있기도 했다. 점 보러 오는 손님이 많은 집이라 노씨가 손님들 줄도 세우고 그랬다. 1년쯤 지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노씨가 실은 자기가 장성 출신이라고 그러기에 ‘웃기지 마라, 나도 군대 ‘장’ 출신’이라고 대꾸해 줬다, 병장. 그런데 몸집도 탄탄하고 해서 장군 출신이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런 데 사는구나 짐작했다. 노씨는 후배 군인들을 데려와 점을 보게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