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역대 정권 '권력형 비리' 풀스토리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16 15: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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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또…권력의 덫에 걸려 자멸

[일요시사=사회팀] 권력은 10년을 넘길 수 없다는 옛말이 있다. 요즘 정치권에선 이를 '권불오년'으로 바꿔 부른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절대 권력이라도 정권이 바뀌는 주기인 5년은 넘기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권력에 붙어 호가호위하던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수사망에 오른다. 역대 정권마다 되풀이돼온 권력형 비리의 역사. 그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16년 만에 미납추징금 문제를 매듭짓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이날 오후 3시께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현관에서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저희 가족 모두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역대 정권실세들
모두 받아챙겼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군 형법상 반란·내란과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추징금 중 533억원만 납부했고 전체 76%인 1672억원을 올해 초까지 미납했다.

지난 5월24일 검찰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지시로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추징금 환수 전담팀'을 구성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석 달이 지난 시점에 시작된 권력형 비리 수사였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래 전·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권력형 비리 수사는 늘 정권 초나 말에 이뤄졌다. 권력교체기를 전후한 수사기관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5년을 주기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반복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VIP(대통령)가 살아있을 때는 모두가 해바라기처럼 VIP 주변을 바라보지만 권력 이동의 순간에는 줄을 댔던 사람들의 투서가 줄을 잇는다"며 "아무래도 권력형 비리는 뇌물을 건넨 당사자가 입을 열지 않으면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검찰 출입기자는 "첩보도 첩보지만 정권 말이나 권력교체기가 되면 고과에 따른 인사이동이 예고되는데 검찰 입장에서도 눈도장은 찍어야하지 않겠냐"며 "정권과 연계된 권력형 비리 수사는 그 근본부터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력형 비리의 꼭대기에는 늘 '떡값'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복이자 유신정권 실세로 불린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떡값의 대부'로 통한다.

5년간 날고 기다 정권 바뀌면 '서초동행'
권력에 붙어 호가호위…맘껏 누리다 '골인'

이 전 부장은 10·26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암살되고 80년 신군부가 들어서자 가장 먼저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됐다. 이때 당시 이 전 부장은 "떡(정치자금)을 만지다보면 떡고물(부스러기 돈)이 묻는 것 아니냐"고 말해 유신정권의 도덕성을 가늠케 했다.

또 다른 군부독재 세력인 전두환 정권은 권력형 비리의 스케일 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1983년 터진 이른바 '장영자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회자된다.

스캔들의 주인공 장영자씨는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와 사돈 관계였다. 일찍이 사채업으로 돈을 굴렸던 장씨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씨를 후견인으로 맞이했다.


이 같은 배경을 등에 업은 장씨는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모두 7111억원의 어음을 건설시장에 유통시켰다. 이중 확인된 사기 어음의 총액은 6404억원이었다.

이 천문학적인 사기사건과 관련해 모두 30여 명의 피고인이 법정에 섰다.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현직 은행장과 경제관료 등 100여 명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당시 이들이 얼마나 많은 비자금을 조성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지하 자금 중 일부가 청와대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친인척 비리
군사독재 뺨쳐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자 전 전 대통령과 관련한 권력형 비리는 고구마줄기 캐내듯 파헤쳐졌다.

먼저 전 전 대통령의 형 기환씨는 노량진 수산시장 운영권 교체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1988년 구속됐다. 동생 경환씨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에 재직하며 공금 76억여원을 횡령해 실형을 살았다. 사촌형 순환씨는 골프장 허가를 미끼로 3700만원의 금품을 수뢰한 혐의, 사촌동생 우환씨는 양곡가공협회장 취임 후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노태우 정권도 전임 정권의 전철을 밟았다. 노 전 대통령의 처조카이자 '6공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던 1993년 구속됐다.

박 전 장관은 슬롯머신 사업자에게서 6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수감됐으며 이후 "노 전 대통령이 YS에게 통치자금 명목으로 3000억원을 건넸다"고 폭로해 충격을 안겼다.

노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남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외화 밀반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이 빼돌린 것으로 의심받았던 돈은 미화 20만달러였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는데 그는 대선 직후 받은 당선 축하금 1100억원과 재임 시절 기업체로부터 거둬드린 돈 3500억원을 모두 비자금으로 은닉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받은 떡값의 대부분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장으로 군사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문민정부에도 권력형 비리는 여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친인척 정치 금지' 원칙을 강조했고 가족들에게 "돈 싸들고 접근하는 똥파리를 조심하라. 단돈 100만원만 받아도 구속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청와대 밤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했다. 청와대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현철씨를 거친다는 소문이 있었다. 현철씨에게는 '소통령'이란 별명이 붙었다.


IMF의 암운이 드리운 1997년 1월 재계 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맞았다. 이른바 '한보 사태'로 불린 이 대형 권력형 비리는 김영삼 정권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다.

한보 사태의 배후엔 '소통령'이 있었다. 한보그룹은 5조7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부실 대출을 감행하면서 정·관계 핵심 인사들과 유착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가 공개돼 여야 중진의원 등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줄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과 함께 수사망에 오른 현철씨도 혐의를 피해가지 못했다. 현철씨는 정 회장 등 기업인들로부터 모두 66억원을 받고 12억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같은 해 6월 구속됐다.

현철씨는 비선 조직을 가동하면서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고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현철씨 구속 후 김영삼 정권은 사실상 '식물정권'이 됐다.

아울러 현철씨는 5년 뒤인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권력을 잃은 '소통령'은 두 번째로 영어의 몸이 됐다.

민주정부
너마저도…


대한민국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정부도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친인척 부당행위 금지법'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권력형 비리 근절에 의욕을 보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대통령 친인척 관리·감시 업무'가 강화된 시점도 국민의정부 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민의정부는 DJ 퇴임을 1년 앞둔 시점에 터진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 등으로 무너졌다.

진승현 게이트는 'DJ의 오른팔'인 권노갑 전 의원과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였다. 2300억원대의 불법 대출과 주가 조작의 배후는 바로 DJ의 핵심 측근들이었다.

다음 해에는 이용호 게이트와 최규선 게이트가 정국을 뒤흔들었다.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는 이권청탁 명목으로 25억원여원,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원 등 모두 47억원의 대가성 로비자금을 챙겨 구속됐다. 지난 2001년 구성된 '이용호 게이트 특별검사팀'은 이용호 G&G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파헤치던 중 이 같은 범죄 사실을 밝혀냈다.

삼남 홍걸씨도 '최규선 게이트'로 철창신세를 졌다. 홍걸씨는 2001년 3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로비를 대가로 타이거풀스 대표 송모씨로부터 10억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모두 36억여원을 챙겨 구속됐다. 홍걸씨는 2002년 11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참여정부 출범 후 마지막 남은 장남 홍일씨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홍일씨는 나라종금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이로써 'DJ 3형제'는 모두 사법 처리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도덕적인 정권으로 자부했던 참여정부도 끊이지 않는 친인척·측근 비리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다.

군사정권 때 주고받던 떡값 시초
자녀·측근 연루 '게이트' 비화
정권마다 되풀이…지금도 진행 중

참여정부 실세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받았던 권력형 비리는 '생수회사 장수천 사건' '나라종금사건' '썬앤문 불법 자금 의혹 사건' '오일게이트' 등으로 지난 정권과 비교해도 적은 수는 아니었다.

또 친인척 비리 수사과정에서 나온 '박연차 리스트' '정대근 리스트' 등은 참여정부가 강조해 온 덕목인 '청렴함'과 배치됐다. 이밖에도 '김상진 리스트' '제이유 리스트' 등은 모두가 측근 비리로 분류돼 참여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좁혔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비위 혐의가 뼈아팠다. 참여정부는 대통령의 친가 8촌, 외가 6촌까지 관리 리스트에 올리고 사돈과 종친회를 포함해 약 900명을 감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봉하대군'으로 불린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개입해 29억여원을 받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밖에 건평씨는 대우건설 사장 연임로비에도 개입된 것으로 의심받았다.

딸 정연씨도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정연씨는 지난 2007년 9월 미국 뉴저지 포트 임페리얼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미화 100만달러를 해외로 불법 송금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다.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8년 검찰발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MB 비리는
빙산의 일각

이명박정부의 경우는 집권 초기부터 꾸준히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도덕적으로 가장 부실한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영일대군' 이상득 전 의원은 미래·솔로몬저축은행 로비 자금 수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부인 김윤옥씨의 사촌오빠 김재홍씨는 제일저축은행에서 청탁 및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아울러 부인 김씨의 사촌언니 김옥희씨는 국회의원으로 공천받게 해주겠다고 속여 30억원을 받아 구속기소됐다.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 금품을 수수해 구속 수감 중이고, 최근에는 '원전 납품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받았다.

'MB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인허가 특혜와 관련 금품수수로 옥살이를 했으며 'MB의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수사 과정에서 세무조사 무마, 이권 개입 등을 명목으로 뒷돈을 챙겼다는 진술이 잇따랐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이명박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자원 외교'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의 목줄을 겨눈 권력형 비리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정부 첫 친인척 비리'

대통령 5촌 조카 사기 내막

"고모가 박근혜" 수억 가로채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가 거액의 사기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정권마다 반복돼 온 친인척 비리는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일 복수 언론에 따르면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이날 박 대통령의 5촌 김모(53)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2010년 초부터 최근까지 3년여 동안 피해자 5명으로부터 기업 인수 및 투자유치 등을 명목으로 4억6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투자유치"4억6000만원 뜯어내
기업 접근해 고급 외제차 빌려

김씨는 피해자들의 고소·고발이 잇따르자 도피생활을 벌이다 지난 7일 경기 하남경찰서에 체포됐다. 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상희씨의 손자로 박 대통령과는 5촌지간이다. 김씨는 과거에도 사기 혐의로 여러 차례 검찰과 경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에 드러난 김씨의 사기행각은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김씨는 기업 인수합병을 빙자해 기업체로부터 각종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고급 외제차를 업체 명의로 빌려 몰고 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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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