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통합진보당 계보 대해부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09 13: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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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 '이석기 사람' 숨어있다

[일요시사=사회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국회 체포 동의를 거쳐 '내란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이번 수사의 칼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의원을 위시한 지하혁명조직 'RO'로부터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으로 이어지는 소위 NL 정파의 숨겨진 '고리'가 밝혀질지 정국은 지금 폭풍전야다.



지난 4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89.3%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표결에 참석한 289명의 의원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258명이었다.

RO의 뿌리는
경기동부연합

현재 이 의원에게 씌워진 내란 예비음모 혐의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등 관계기관의 녹취록 공개 등으로 기정사실화된 모양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과 이 의원 측은 관련 강력히 혐의를 부인하며 지하 혁명조직으로 지칭된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번 '내란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국정원은 국회에 제출한 이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에서 RO를 지하혁명조직으로 규정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RO는 "조직 가입식에서 단체 강령을 구두로 하달 받고, 단체 가입 시부터 그 실현을 결의함으로써 폭력적 방법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의 목적을 공유하고 국회를 사회주의혁명투쟁의 교두보로 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의원 측은 "RO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국정원이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라며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회합의 성격도 '당 차원의 세미나'라고 못박았다.


그래서 다수 관계자는 RO의 실존 여부가 이번 수사를 판가름하는 열쇠라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RO에 정식 편제가 있는지 그들에게 무슨 직책이 부여됐는지 등이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정원은 "RO에서 파생된 RO산악회가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며 그 수장으로 이 의원을 지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정원 관계자는 "1997년 해체된 민족민주혁명단(민혁당) 잔존세력이 모여 재건한 조직이 RO산악회"라며 "RO산악회는 이 의원의 지시에 따라 회합 여부가 결정 나는 것은 물론 주요 지령에 따라 조직원들의 활동 범위가 정해진다"고 분석했다.

RO 실체 두고 진실게임 "경기동부연합 실세"
경기서 시작해 전국구 조직으로 수사 확대

국정원은 RO산악회의 뿌리를 지난 19대 총선 과정에서 이름이 알려진 '경기동부연합'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소위 NL(민족해방) 계열 전국조직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하부 조직 중 하나로 경기 성남·용인을 근거지로 한 운동권 세력이다. 이중 수사망에 오른 RO산악회는 경기동부연합의 비선라인으로 통칭된다.

그러나 믿을만한 전언에 의하면 공안당국이 체제전복세력으로 지목한 RO산악회가 지금은 해체된 조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RO산악회는 1991년 운동권 전국조직인 전국연합이 건재하던 때 활동하던 조직이지만, 전국연합의 해체 이후로는 산악회 형태가 아닌 폐쇄된 사조직 형태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그 실체가 불명확하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최근까지 RO산악회의 정확한 조직도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적어도 내란을 꾸미려면 체계적인 조직 편제와 그에 따른 업무 분장 등이 필수적인데 이를 입증할만한 조직도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구두를 통해 확인되는 '가느다란 실'을 잡을 수 있는지 여부가 '전체적인 밑그림'을 완성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종북몰이
계속된다


그런데 RO산악회의 해산은 이번 내란 예비음모 사건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먼저 통합진보당 측의 해명을 들어보면 RO란 이름은 국정원이 고의로 조직의 이름을 명명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RO는 'VO(Vangard Organization·전위조직)', 'MO(Mass Organization·대중조직)' 등과 함께 운동권 조직체계의 한 단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돼 왔다.

해당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으로 이름을 올린 김칠준 변호사는 "이름을 알 수 없을 땐 '성명불상 단체'라고 해야 한다"며 "이름을 붙이면 행위에 대한 입증이 없어도 단체라는 이름으로 일망타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즉 국정원이 개개인을 조직 단위로 묶어 '반칙'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사건의 공개수사 전환 후 검찰을 통해 나온 멘트가 눈길을 끈다. 검찰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의 첫 타깃이 RO산악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 '첫 타깃'이라는 표현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RO산악회는 '수사의 게이트'일 뿐이지 '마지막 종착지'는 아니다. 다시 말해 검찰의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정당국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RO 출신 인사들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현역 정치인, 특수 공무원 등의 범죄 혐의다. 이들은 대부분 조직 밖의 인물로 분류되지만 검찰의 내사 혐의가 일정 부분 사실로 증명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 놀라운 건 사정당국이 경기동부연합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조직을 주시하고 있다는 첩보다. 때문에 이번 수사가 이 의원을 구속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을 시작으로 NL계열 계파에 대한 전면적인 확대 수사가 예정된 것이다.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은 지난 몇 년간 국정원과 검찰의 끈질긴 내사를 받아왔다. 근 10년 사이 세가 비약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자산의 약속'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에 대거로 입당한 후 광주·전남 연합과 같이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당시 경기동부연합에 밀려 탈당한 정치인은 PD(민중민주) 계열의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전 의원 등이다.

경기동부연합은 학생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를 전후로 탄생한 운동권 조직이다. 그러나 이는 외부의 시각일 뿐 '경기동부연합'은 기성 정치권의 '친노'처럼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이 의원이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에 입학한 1982년께가 경기동부연합의 태동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기 성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재야 운동가들은 공업단지인 성남을 '혁명의 도시'로 부르며 군부와의 투쟁을 벌였다.

아울러 성남에는 도시빈민이 많은 탓에 경제적 차별 또한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무렵 성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의원은 이런 사회·정치적인 배경 속에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항쟁 이후 재야 운동권 세력이 사회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일부는 기성정치권에 편입됐다. 하지만 나머지는 자신이 활동하던 지역에 남아서 통일·노동 운동을 계속했다. 현재 경기동부연합으로 통칭되는 사람들은 이 시기 성남으로 모여든 운동가 집단의 후신이다. 이중 대표적인 인물은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으로 꼽힌다.

경기동부연합
패권적·종북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운동권 출신 대학생 및 노동 운동가들은 1991년 전국연합의 깃발 아래 모였다. 전국연합은 해방 이후 최대의 '전국적 운동조직'으로 불리는 진보 세력의 총아이며, 불행히도 진보 계파정치의 뿌리이다. 


당시 전국연합의 주류는 '한총련' 등으로 대표되는 통일운동세력이었다. 그러나 이 통일운동세력 모두가 지금 말하는 '종북세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 당시 최대 화두는 '종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의회정치로 편입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였다. 



전국연합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분화됐다. 제도권 정치로의 편입 여부가 세력을 갈랐다. 당시 정치세력화에 반대한 지역연합은 광주·전남연합, 서울연합, 대구·경북연합, 인천연합이었다. 반대로 정당운동을 선택한 세력은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이었다.

특히 현대자동차 사업장 등을 기반으로 한 노동운동 세력이 탄탄했던 울산연합은 정당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후 울산연합과 경기동부연합은 통합진보당에서 만나 당권다툼을 벌였다.

이처럼 범운동권 세력이 정당운동을 저울질했던 시기에 민주당을 지지했던 시민운동 세력은 전국연합에서 급격히 힘을 잃었다. 경기동부연합의 민주당 지지파도 마찬가지. 당시 연합원들은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할 것이냐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냐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온건파'로 분류된 시민운동 세력은 경기동부연합 주류에서 밀려났다. 이후 경기동부연합은 범NL계열 중에서도 좀 더 급진적인 인물들이 면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주·민주·통일운동을 함께하는 실천가의 삶을 목표로 했고, 군대를 방불케 하는 집단 문화와 엄격한 규율로 조직을 유지했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NL 정파 중 경기동부연합은 자신의 사생활마저 포기하고 통일운동에 몰입하는 등 조직의 헌신도 측면에서 다른 조직보다 월등했다"며 "단 그들은 조직에서 벗어날 경우 다른 정파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NL 노선'을 갖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계파는 크게 3가지다. 울산연합과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이다. 이들은 흔히 '평등파'로 불리는 PD계열 운동가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너무 패권적이고, 너무 종북적이란 내용이었다. 이중 패권적인 측면에서 가장 정도가 심했던 건 앞서 언급한 경기동부연합이다.

성남 기반 재야운동세력 후신
라이벌은 울산연합·인천연합

경기동부연합은 당직을 가지지 않은 비선라인이 조직의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고, 명령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른바 대표자는 대중적인 인물을 세우고, 조직의 브레인인 '실세'는 막후에 숨어 영향력을 발휘하는 식이다.

이는 과거로부터 공안당국의 주 타깃이 조직의 대표자가 돼왔던 것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모든 정통 NL 조직은 중요한 정치적 판단을 비선에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문화는 아직 대학가 일부 총학생회에 남아있다.

현재까지 경기동부연합과 비슷한 노선을 걸어온 정치세력은 울산연합이다.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를 꾀했고 ▲다양한 지역 사업 등에 손을 뻗쳐 자금을 마련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조직의 존재를 감췄고 ▲대학생·노조원을 중심으로 '후계자'를 양성해 왔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는 부분은 조직의 확장성 여부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NL계열 정파가 조직원 규모를 늘리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상 NL 조직의 핵심 논리는 '불확실한 확장'이 아닌 '혁명이 가능한 수준의 조직원 유지'다.

이를 두고 한 관계자는 "우리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날(혁명의 날 혹은 전쟁)이 왔을 때 대중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활동가를 필요로 한다"고 언급했다. 즉 전쟁 이후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NL 정파 간에도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계파 사이의 견해는 엇갈린다. 이를 결정적으로 드러낸 계기가 바로 통합진보당 경선 파문이다. 당시 울산연합의 경우 정치적 판단을 중시해 이 의원과 김재연 의원을 제명할 것을 종용했지만 경기동부연합은 이를 거부했다. 이 경선 파문은 결국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이어져 통합진보당의 당원 명단을 사정당국에 넘겨주는 계기가 됐고, 공안당국의 수사가 본격화되는 도화선이 됐다.

울산·인천연합
모두 노린다

경선 파문 이후 경기동부연합의 정치적 파트너는 농민운동을 기반으로 한 광주·전남연합이 됐다. 지금은 이들을 합쳐 범경기동부연합으로 부른다. 정치권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난 총선 전후의 문건을 보면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물로는 이 의원과 김 의원을 비롯해 이정희 대표, 김선동 의원, 오병윤 의원, 윤원섭 전 민중의소리 대표, 안동섭 경기도당 위원장, 신창현 전 인천시당 위원장 등이 꼽힌다.

울산연합과 인천연합은 각각 노동자 세력이 더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인천연합에는 전국농민회가 포함돼 있고, 울산연합에는 경남·부산연합 등이 합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두 연합은 각각 경기동부연합보다 전통이 더 오래됐기 때문에 세력과 자금력 면에서 경기동부연합보다도 앞서 있는 것으로 한 관계자는 전했다. 

또 이 관계자는 "지금 공안당국이 원하는 건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NL세력' 전체라며, 지금은 여론을 관망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대학생 운동권에 손을 뻗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또 과거 NL계열 조직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 몇몇 대학에 북한의 지령 유통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나에게도 제의가 왔었는데 만약 그 유통책의 윗선이 확인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기사 내용 중 일부는 임미리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논문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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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