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철의 부동산테크 필승전략 <121>과천vs세종 상권 비교

하루 멀다 쪽박…냈다 하면 대박

[일요시사=장경철 르포라이터] 과천시와 세종시. 정부청사 이전으로 울고 웃은 지역이다. 청사 떠난 과천시는 먹구름이, 청사 만난 세종시는 햇살이 가득하다. 집값, 전셋값, 상권 모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청사 이전 과천시 ‘울고’세종시 ‘웃고’
수천명 공무원 이사에 지역경제 희비 엇갈려

정부청사의 세종특별자치시 이전으로 본격화한 ‘세종시 시대’가 두 달째 접어들면서 일대 상권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세종시로 공무원들이 빠져나간 과천 별양동, 원문동 일대 상가는 손님이 줄면서 많게는 억원대에 이르던 상가 권리금이 사라지고 공실 상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반면 공급이 부족한 세종시 정부청사 일대에선 상가가 높은 인기를 보이고 있다.

“기둥 뽑혔다”
아파트값 하락

경기도 과천은 중앙행정기관 이전을 계기로 조성된 계획도시다. 1982년 제2정부청사가 과천에 들어선 이후 30년 이상 국내 유일의 행정도시 기능을 해왔다. 하지만 요즘 과천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부 부처가 지난해 말부터 세종시로 옮기면서 지역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정부청사 이전은 과천의 기둥을 뽑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과천 시민들은 말한다. 인구 7만1000여 명의 과천 지역경제는 정부청사에 의존해 왔다. 시 전체 면적의 85.5%가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사업 추진도 어려운데다 과천의 예산규모(2013년 2200억원)는 경기도 내 31개 시·군 가운데 최하위다.


과천 정부청사에 있던 기관은 7개 정부 부처와 8개 산하 기관으로 직원수는 5484명. 이 가운데 기획재정부·국토해양부·농림수산식품부·환경부 등 4개 부처와 2개 산하 기관(4049명)이 지난해 말 세종시로 이전했다. 작년 11월에는 지식경제부·고용노동부와 6개 소속 기관(1435명)이 차례로 옮겨갔다.

부처 이전으로 고객을 잃은 상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과천 핵심 상권인 중앙·별양동 일대 상점 997곳 가운데 54개 점포가 최근 3개월 새 문을 닫았다. 이 중 음식점이 30여 곳에 달한다. 부동산 시장도 타격이 크다. 2010년 8월 세종시 이전 기관이 확정된 이후 2년간 과천시의 아파트값은 평균 15% 하락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수도권에서 하락률이 가장 컸다.

과천 상권의 붕괴는 임대료와 권리금의 하락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한 상가정보업체 자료에 따르면 과천청사 인근 상가의 권리금이 2년새 반토막이 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상가를 찾는 발길이 줄어듦에 따라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역세권 상가나 먹자골목 내 음식점, 주변 상업시설의 권리금이 모두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인근 대로변 상가(1층 전용면적 40㎡ 기준)의 권리금은 지난 2011년 1월 9000만∼1억5000만원에서 지난달 4500만∼1억1000만원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사실상 최저 권리금이 절반가량 줄어든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보증금(4000만∼1억원)과 월 임대료(175만∼320만원)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상황은 정부청사 공무원들이 자주 이용하던 청사역 이면의 먹자골목 음식점(1층 전용 85㎡ 기준) 권리금도 마찬가지다. 보증금(3000만∼1억원)과 월 임대료(140만∼270만원) 수준은 비슷하지만, 권리금만 2011년 5500만∼1억2000만원에서 지난달 3000만∼65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과천 정부청사 주변 상업시설이나 지하상가 등은 아예 권리금이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청사 주변 상업시설 내부상가(1층 전용면적 40㎡ 기준)의 권리금은 3500만∼6500만원선을 유지했으나 현재는 권리금이 없거나 비싸도 4000만원 이하에서 거래되고 있다.

보증금(3000만∼1억원)과 월 임대료(300만∼500만원)의 경우 비슷한 선에서 유지됐다. 권리금은 상가에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가 이전 세입자에게 관행적으로 내는 돈으로, 상권이 침체될 경우 해당 상권에 새로 진입할 상인이 줄어들게 돼 권리금도 하락하게 된다. 실제 과천시에 따르면 지난달 정부과천청사 반경 500m 내 전통시장·일반상가 22곳의 공실률이 9.1%를 기록했다. 폐업신고한 음식점도 6곳에 달했다.


안민석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현재 정부청사 이전으로 과천 상권이 극도로 위축돼 있다”며 “사실상 해당 상권에 들어오려는 상인이 없기 때문에 거래가 이뤄질 경우 지금 걸린 권리금보다도 더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반면 월 임대료는 한번 정착되면 내려가지 않는다”며 “건물주들은 차라리 상가를 비워두는 한이 있어도 임대료를 내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손님 줄면서 억대 권리금 증발…폐업 속출
[세]서울 A급 못지않은 호황…공급부족 현상도

과천 상권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방송통신위원회 등 13개 기관을 내년까지 과천 정부청사로 옮길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입주하기 위해서는 청사 내부를 리모델링해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기간이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이 때문에 당장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경기도와 과천시는 새 정부의 핵심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과천에 둥지를 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6000명 상대 밥집들
첫마을, 선점 특수

반면 세종시에선 상가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세종시정부청사 바로 앞에 들어선 ‘세종1번가’(1-5생활권)는 총 76개 점포 가운데 대부분이 주인을 찾았다.

세종1번가 상가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초 분양 당시 1층은 4시간 만에 분양이 완료되고 2층도 1개 점포 빼고 그날 모두 주인을 찾았다”며 “현재 3, 4층에 몇 개 점포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남은 물량은 이르면 3월내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늦어도 5월 전에는 물량이 소진 될 것으로 보여 세종시 상가에 관심 있다면 서두르는 게 좋다”고 말했다.

현재 공무원들이 6000명이나 되는데 식당이 없어서 근처 첫마을 단지까지 가서 먹는 실정으로 청사 안에 식당이 있으나 250석 밖에 되지 않아 1, 2부로 나눠 밥을 먹을 정도로 상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세종1번가와 승용차로 2∼3분 떨어진 곳에 있는 위치한 한솔빌딩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오는 3월에 완공될 예정인 이 상가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문의가 온다는 게 상가 관계자의 설명이다. 세종시에서 처음으로 2011년 12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첫마을 내 점포들은 이른바 상권 ‘선점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총 6500가구 규모인 첫마을(1∼7단지)의 최근 평균 입주율이 90%를 넘으며 각 점포들마다 넘쳐나는 손님들로 서울 A급 상권 못지않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세종시 상가들이 이처럼 대박을 누리는 배경은 무엇보다 상가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시 전체면적에서 상가가 들어갈 수 있는 상업용지 비중은 2.1%선으로 분당이나 일산 같은 신도시의 상업용지 비중은 6%대로 세종시 상가의 희소성을 보이고 있다.

세종시는 향후에도 상권의 전망이 좋은 편이다. 세종시의 명동으로 꼽히는 중심상업지구인 이른바 ‘2-4 생활권’에 속속 상가들이 개발되고 있어서다. 2-4 생활권은 오는 7월 입주하는 지상 8층 규모의 상가빌딩 세종메디피아를 시작으로 금강프라자, 세종퍼스트타워, 세진이너빌, 참미르메디칼 같은 대형 상가와 오피스텔들이 순차적으로 입주를 시작한다.

이 경우 첫마을 1∼7단지 기존 입주자들은 물론 내년 6월까지 추가로 입주하는 아파트 1만 가구 입주자들도 이 2-4 생활권 상가들을 지역 최대 상권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선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업종들이 이곳에 몰릴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2-4 생활권 상가들은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일부 상가 점포는 3.3㎡당 2200만원이 넘는 최초 분양가보다 300만∼400만원의 웃돈이 붙은 상황이다.

2-4생활권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2013년 말 이후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각각 2013년 말과 2014년 말에 2-4 생활권 내에서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세종시에서 처음 청약을 받은 아파트 단지가 첫날에 마감되면서 올해도 세종시 일대에 청약 경쟁이 뜨거울지 관심이 모아진다. 세종시는 지난해 가장 먼저 이전한 국무총리실에 이어 최근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부처가 잇따라 이전해 전셋값이 치솟은 상태다. 전세가 상승 여파는 세종시 인근인 조치원, 충북 오송·청주, 대전 노은·도안 등지의 주택거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세종시에 분양을 앞둔 단지들은 최근 들어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 주택이다. 건설·부동산 업계는 세종시 일대가 올해도 분양 시장의 ‘블루칩’이 될 것으로 보고 분양 성공을 위한 마케팅을 꼼꼼히 준비하는 모습이다.

세종시 분양 성공은 연초부터 이어졌다. 1월30일 청약 1·2순위 접수를 받은 세종시 호반베르디움 5차가 608가구 모집에 844명이 몰리며 평균 1.4대 1의 경쟁률로 모든 주택형이 마감된 것이다. 전용면적 59㎡A형의 경쟁률은 4.3대 1이다. 전용면적 59∼84㎡ 총 688가구로 구성된 이 단지는 인근에 32만㎡ 규모의 공원이 있고 복합커뮤니티센터 또한 가깝다.

하지만 행정타운과 거리가 멀어 외면을 받던 곳이다. 이에 호반건설은 3.3㎡당 분양가를 평균 758만원(최저 691만원)으로 책정해 청약자를 모았다. 결국 이 단지 모델하우스는 개관 이틀 만에 1만명 넘게 찾아 청약 성공을 예고했다. 결국 주택시장이 극심한 불황이라는 요즘 끝내 ‘대박’을 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세종시에 아파트 1만300여 가구가 공급된다. 지난해 전체 분양 물량의 절반을 웃도는 적지 않은 물량이다. 이 같은 분양 러쉬는 주택 수요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호상황에 기인한다. 지난해 6월 입주를 시작한 ‘첫마을 힐스테이트’전용 84㎡의 경우 분양가보다 6000만∼7000만원가량 웃돈이 붙었다. ‘첫마을 푸르지오’전용 84B㎡도 분양 당시에 비해 5000만∼7000만원의 프리미엄이 생겼다.

세종시는 물론 오송 등 인근 지역 부동산도 들썩이는 모습이다. 비록 호반건설이 포문을 열긴 했지만 상반기 분양 물량은 중흥건설이 가장 많다. 중흥건설은 상반기 6개 단지의 3731가구를 분양한다. 중흥건설은 곧 ‘중흥S-클래스 4차’ 총 1292가구를 내놓는다. 다음달에는 임대물량인 ‘중흥 S클래스 프라디움’ 총 1460가구를 선보인다. 5∼6월에는 ‘중흥S-클래스 5차’ 총 979가구 분양도 예정돼 있다.


모아종합건설·EG건설·신동아건설 등 중견건설사도 물량을 내놓을 채비를 마쳤다. 모아종합건설은 곧 전용면적 84∼99㎡로 구성된 ‘세종 모아미래도 2차’ 405가구를 내놓는다. EG건설은 다음달 각 316·159가구 규모인 ‘이지더원’두 단지를 공급한다.

4월에는 신동아건설(542가구), 대광건설(487가구), 한양(829가구)이 분양을 준비 중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상반기 1-1생활권 M10블록과 1-3생활권 M1블록에서 각각 982가구와 1623가구 규모의 단지를 선보인다.

전문가들은 올해 세종시 일대 부동산시장 또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주택 수요는 넘치나 공급은 아직도 부족해 계속 주택난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세종시 임대료 변동률은 20%로 집계됐다. 주택만 보면 매매가는 평균 5% 가량 올랐는데 전세가는 28%나 상승했다. 거래 시장은 물론 분양 시장에 좋은 신호임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주택 시장도 활기
줄줄이 분양 예정

이어 “세종시는 올해 하반기에 분양 공급량이 많고 내년에 1만4000가구 정도가 입주한다. 하지만 세종시는 대형이 아니라면 지난해 열기는 이어질 것이다. 호재가 많고 도시계획도 좋기 때문에 도시가 정착되면 거주자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한 부동산 정보업체 팀장은 “세종시가 지난해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다만 사람들의 기대감과 함께 선호가 많은 곳이다. 장기적으로는 경기도 과천의 전성기처럼 부상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장경철은?

- 스피드뱅크, 조인스랜드, 닥터아파트 부동산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부동산 기사 제공
- 프라임경제 객원기자
-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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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