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부인 낀 '김이사 사기단' 풀스토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2.31 12:03:26
  • 댓글 0개

전국 낚시터 돌며 '강태공' 낚았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2세, 국회의원 등 권력층을 사칭한 사기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이 같은 수법으로 수십억원을 챙긴 일명 '김이사 사기단'이 검찰에 붙잡혔다. 이중 실제 대기업 임원 부인도 포함돼 있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거짓말에 왜 사람들은 쉽게 속아 넘어갈까. 사건의 전말을 파헤쳤다.

외국계 펀드회사 이사와 주식투자 전문가, 대기업 총수 손녀 등 상류층을 사칭하며 비자금 세탁을 도와달라는 명목으로 거액을 받아 챙긴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이태형)는 지난 23일 신분을 위장해 비자금 세탁에 필요한 돈을 투자하면 수억원을 준다고 속여 총 32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이모(47)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나 이런사람이야"

또 대기업 총수 손녀, 청담동 명품보석가게 사장, 공기업 사장 딸 등으로 행세하며 사기거래의 중심 역할을 한 김모(39·여)씨와 사기 피해자임에도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들을 끌어들인 김모(54)씨 등 총 4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09년 11월부터 전남 신안군 등의 낚시터를 돌며 '강태공(낚시꾼)'을 대상으로 100억원대 비자금 세탁을 도와주면 수고비를 챙겨주겠다고 현혹해 올 초까지 피해자 8명에게서 32억 여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 일당은 각각 신분을 사칭해 속임수에 걸려든 피해자들에게 먼저 돈을 계좌로 수 천만원을 송금해주고 다시 수 천만원의 돈을 추가로 입금 받는 '계좌 돌리기'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자금을 세탁해주면 나중에 수 억원의 이익을 챙겨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애초 송금액보다 1억∼2억원 더 많은 돈을 받아 챙겨왔다.

이씨는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핑계로 5개의 가명을 돌려 사용했고, 피해자들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를 이용해 각각의 피해자들과 연락하는 등 신분을 철저히 속여 왔다.

또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부인 역을 맡은 김씨가 재벌의 손녀딸 행세를 했고, "부인이 소장하고 있는 70억대 보석"이라며 가짜 보석을 피해자들에게 담보로 맡겨놓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약속했던 수고비 지급이 늦어지는걸 의심하는 피해자에게 이씨는 "비자금의 주인이 주식투자의 대가인데 주식투자를 통해서 몇 배로 불려 줄테니 기다리라"며 충북 괴산군에 있는 토지문서를 보여주고 맡긴 돈은 언제든 돌려줄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김씨 등 3명은 자신이 투자했던 돈을 돌려받기 위해 이씨의 사기행각에 가담했다. 이들은 지인에게 가짜보석과 위조어음 등을 주면서 "김이사 덕에 수십억을 벌었으니 안심하고 투자해라"고 속였다. 이 같은 수법에 총 8명이 피해를 입었다.

"재벌 손녀인데" 비자금 세탁 미끼로 32억 꿀꺽
상류층 맹신 노리고 신분 위장…피해자도 가담


8명 가운데 3명이 이씨를 고소했지만 경찰 수사에서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가 검찰에서 지난 7월부터 집중수사를 진행해 전모를 밝혀냈다. 이씨 일당은 미리 각본을 짜서 수사관의 예상문답까지 준비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특별한 수입이 없던 이씨 등은 김씨 등에게서 가로챈 돈으로 외제 승용차를 여러 대 사용하면서 매달 신용카드를 1000만원 이상 사용하는 등 4년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왔다"며 "사기단이 낚시터를 범행 장소로 택한 건 평일 낮에 낚시를 하는 사람 가운데 거액의 자산가가 많고, 이들이 낯선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린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검찰 조사결과 부인역 김씨는 실제 대기업 임원의 부인으로 아침 저녁에는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고 낮에는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사기 행각에 가담하는 등 철저한 이중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사기단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씨와 내연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는 이번 사건 외에도 전남 순천 등 전국에서 총 4건의 범죄로 수배 중이었다. 유사 피해 사례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고 보강 수사를 하고 있다"면서 "사칭사기에 현혹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권력층에 대한 맹신'이 이번 사건과 같은 범죄를 양산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여기에 비정상적인 방법이라도 한 몫 챙겨보겠다는 일확천금의 욕망이 작용해 사기범행이 의외로 쉽게 성공한다는 것.

실제로 우리나라는 사기사건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사기·공갈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연평균 2만9913건으로 도로교통법 위반(2만3291건)보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범죄심리학 관계자는 "서구에서는 철저히 서류나 법 절차에 따르지만 한국사회에선 상대를 믿고 맡기는 식이다"라며 "결국 권력 사칭범죄에 속아 넘어가면 차후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등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사기를 당한 후에야 법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피해자들의 욕심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기대감 역시 한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잇따른 '사칭사기'

검찰 관계자 역시 "사칭 피해자들의 경우 그 정도 위치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거라 믿었던 경우가 많았다"며 "노력 없는 대가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매사에 좀 더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