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일 야구전쟁 승전의 또다른 미학

지구촌이 야구 열기로 뜨겁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곳은 역시 대한민국과 일본이 아닐까 싶다. 올해로 2회 째를 맞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맞붙은 최고의 숙적 대한민국과 일본 전은 양국 국민 모두의 자존심이 걸린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였다.

한마디로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에 걸맞게 양국은 예상대로 지역예선 1회전에서 1승1패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각각 2회전에 진출한 상태다.

미국이 명실공히 세계야구의 종주국이라면 일본은 동양야구의 종주국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에만 약 3000여개의 야구팀이 있고, 일본 역시 고교야구팀만 해도 4163개로 고작 58개교인 우리나라의 70배가 넘는다.

이는 퍼시픽리그와 센트럴리그로 나뉘는 일본 프로야구의 단단한 밑바탕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순수 아마추어인 동호인 야구팀만도 무려 200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한 팀에 10명씩의 선수만 있다고 쳐도 2000만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억이 넘는 일본 인구의 5분의 1 이상이 동호인 야구를 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위상을 입증하듯 일본은 지난 2006년 제1회 WBC에서 야구 종주국 미국과 아마추어 야구 최강국 쿠바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나름의 기염을 토했다.

대한민국이 그런 야구 강국을 상대로 경기를 한다는 자체가 흡사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꼭 골리앗이 이기란 법이 있을까.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덩치 크고 힘 센 골리앗이 유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덩치와 힘만 믿고 다윗을 얕잡아본 골리앗은 정신력의 다윗에게 보기 좋게 나가떨어져 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3년 전 WBC에서도 그랬고,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그랬듯 이번 지역예선에서도 일본의 ‘골리앗 야구’는 대한민국의 ‘다윗 야구’에 쓴맛을 보고 열도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번 WBC에서 2연속 우승을 노리는 일본은 1명을 제외한 선수 전원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명실상부한 ‘드림팀’이고 우리는 추신수 단 한 명 만이 메이저리거니 객관적 전력 또한 현격하게 뒤진다.

더욱이 일본은 이런 두터운 선수층과 자국에 유리한 경기일정에도 불구하고 이틀 전 14대2 콜드게임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순위결정전에서 1대0 완봉패라는 수모를 톡톡히 맛봤다.

한 번은 때리고 한 번은 맞았으니 표면적 결과는 무승부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대한민국’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본래 야구는 일본대표팀 하라 감독의 말처럼 전날 14대2로 이기고도 오늘 1대0으로 질 수도 있으며, 또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그때 그때의 변수가 가장 많이 작용하는 경기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일본은 우리를 이기는 데 14점이 필요했고, 우린 일본을 누르는 데 단 1점이면 충분했다.

그것이 바로 단순한 ‘수치의 미학’으로 따져 본 대한민국과 일본의 차이였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번 한일전은 단순히 야구의 승패논리를 떠나 ‘일본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극일(克日)의 역사 속 또 하나의 명승부였다. 36년 일제치하에서 수많은 순국선열들이 자주독립을 부르짖다 일본 헌병의 총칼에 피 흘리며 쓰러졌고, 더욱이 유관순 열사의 만세함성이 지축을 뒤흔들었던 3월이었기에 우린 더더욱 일본에 질 수 없었다.


지금도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다케시마’로 바꿔 부르며 뻔뻔하게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파렴치한 사무라이 후예들에게 피 흘리며 싸우지 않고 동해를 개척했던 신라장군 이사부의 기개를 후손들이 야구로 대신 보여준 셈이었기에 통쾌함에 밤새 잠 못 이뤘다.

오죽하면 지금도 인터넷상에 그날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던 선발투수 봉중근을 안중근 의사로, 일본이 자랑하는 불멸의 톱타자 이치로를 이토 히로부미로 각색한 패러디물이 인기를 끌고 있을까.

무엇보다 이번 한일간의 야구전쟁은 매번 그랬듯 우리에게 크나큰 재미와 감동을 주었고 그 속에서 민족자존과 애국심을 심어준 한 편의 대하드라마였다. 가뜩이나 나라경제가 어려운 이때에 적지인 일본열도를 초토화시키며 대한국인의 자긍심을 일깨워준 태극전사들의 선전은 맥없는 국민들에게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특히 그간의 반일(反日)이나 항일(抗日)이 아닌 압일(壓日) 차원에서 일본을 누르고 당당하게 본선에 진출했다. 앞으로 ‘기회의 땅’ 미국에서 펼쳐질 본선에서도 “엔화가 강세인 이때 제주도를 통째로 사버리자”는 망발을 뱉은 일본 민주당 대표 오자와 이치로의 입에 통렬한 홈런볼을 날려, 누구라도 두 번 다시 대한민국을 향해 헛된 망언과 망상을 하지 못하게끔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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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