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 롯데 '카피캣' 실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1.29 15: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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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짝퉁보다 심하다…유통 황제의 베끼기

[일요시사=경제1팀] 모방은 제2의 창조인가, 비도덕적 양심인가. 업계의 소문난 ‘카피캣(흉내쟁이)’ 롯데의 베끼기 행위가 여전하다. 한 회사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들여 인기 제품을 만들어 내면 얼마 안 돼 유사한 상품을 냉큼 내놓는다. 최근엔 제품 뿐 아니라 업태까지 모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무리 ‘아이디어 헌팅’시대라지만 롯데는 ‘카피의 황제’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롯데의 만연한 베끼기 병폐를 살펴봤다.

이번 논란의 주인공은 ‘드럭스토어’다. 이르면 올해 말 1호점을 오픈하는 롯데 드럭스토어를 두고 “또 카피캣이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드럭스토어’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화장품,·건강보조식품, 음료 등을 함께 판매하는 매장을 가리킨다.

드럭스토어도
“분스처럼”

최근 이 ‘드럭스토어’가 눈부신 성장을 이루며 유망사업으로 떠오르자 롯데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지난 7월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드럭스토어 오픈을 준비했다.

최근엔 사업구상을 완료하고 시장진출 시기만 조율하고 있는데 이르면 올해 말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롯데마트 사이 지하 쇼핑몰에 시범점포를 열 계획이다. 최대 700개까지 매장을 확대할 계획도 함께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롯데가 선보일 드럭스토어가 “신세계 드럭스토어 ‘분스’의 카피캣”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롯데 드럭스토어 입점 회의에서 “콘셉트도, 규모도, 취급 물품도 모두 분스처럼”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분스는 신세계그룹 계열사 이마트에서 운영하고 드럭스토어로 지난 6월 서울 강남역에 1호점을 오픈했다. 분스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숍의 제품들은 물론 온라인 쇼핑몰에서만 판매되거나 다른 드럭스토어에선 볼 수 없던 생소한 화장품 브랜드로 다양성을 추구한 게 특징이다.

안 되면 업태도 베껴라?…흉내내기 ‘점입가경’
인기 신제품 나오면 얼마 뒤 바로 유사품 출시

여기에 약국, 컵라면, 냉동식품, 와인, 음료, 샐러드, 과일 등 다채로운 식품구성과 문구류까지 더해져 원스톱 쇼핑 형태를 만들어 냈다. 현재 입점된 브랜드만 100여 가지에 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서는 롯데가 유통 라이벌인 이마트 분스를 재현한 드럭스토어를 구성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카피캣’이라기보다는 시장 트렌드에 맞춰가는 통상적인 관례”라는 입장이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사업에 대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롯데의 뿌리 깊은 카피캣 병폐에 대한 거부감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롯데에서 ‘남의 것'을 베껴 제 것처럼 내놓는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6월 서울 금천구에 1호점을 낸 롯데마트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빅마켓’도 오픈 전부터 ‘코스트코 판박이’라는 구설수에 올랐다. 코스트코는 미국계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이다.

빅마켓은 여러가지 점에서 코스트코와 흡사하다. Vic마켓이라고 적힌 외부 간판의 디자인 뿐 아니라 매장 진입로와 내부 인테리어, 화장실의 위치, 매장입구에서의 회원권 검사, 매장동선과 디스플레이, 회원가입비와 탈퇴규정, 제품 환불, 쇼핑백 등 어느 것 하나 다른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코스트코를 벤치마킹했다.


빅마켓을 이용해본 한 고객은 “빅마켓은 모든 요소와 시스템이 코스트코와 흡사했다”며 “만약 코스트코가 비즈니스 모델 특허가 있다면, 침해로 소송을 백만번 걸어도 좋을 만큼 완벽하게 동일하다. 롯데가 작정하고 코스트코를 베낀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남이 잘되면?
냉큼 베끼기!

특히 롯데음료의 베끼기 전통은 뿌리가 깊다. 코카콜라 ‘암바사’가 인기를 끌자 이를 모방한 ‘밀키스’를 선보여 역전해 성공했고, 90년대 말 시장을 강타한 ‘2% 부족할 때’도 3개월 먼저 나온 남양유업 ‘니어워터’의 카피캣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이후 광동제약의 ‘비타500’과 유사한 ‘비타파워’를 출시했고 코카콜라의 ‘환타 쉐이커’와 흡사한 ‘쉐이킷 붐붐’, CJ제일제당의 ‘컨디션 헛개수’와 비슷한 ‘아침헛개’, 웅진식품의 ‘하늘보리’를 연상케하는 ‘황금보리’, 그리고 ‘비락 식혜’를 모방한 ‘잔칫집’ 출시 등 수많은 ‘미투’ 제품 논란을 일으켜 왔다. 올해 출시한 에너지 음료 ‘핫식스’도 동서식품이 수입판매하는 ‘레드불’과 제품 성분이 똑같아 도마에 올랐다.

이 때문에 롯데칠성은 지난 8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장을 받기도 했다. 롯데칠성의 ‘데일리C 비타민워터’가 먼저 출시된 코카콜라의 ‘글라소 비타민워터’와 병 모양, 색깔, 성분 등이 매우 흡사해 이를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롯데칠성은 제품 출시와 함께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유통매장에서 기존 코카콜라 제품과 나란히 배치하도록 하는가 하면 “우리 제품에 사용된 비타민은 생산 공정 등 위생을 꼼꼼하게 검증한 퀄리C(Quali-C) 인증을 받은 100% 영국산 비타민”이라며 원조인 코카콜라 제품과 비교 광고까지 진행해 빈축을 샀다.

지난 1월에는 국순당이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롯데칠성을 상대로 부정경쟁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롯데칠성의 청주 브랜드인 ‘백화수복’에서 지난해 12월 출시된 ‘백화차례주’는 국순당이 지난 2005년 출시한 ‘예담’과 병의 모양과 색깔 뿐 아니라 상표의 디자인과 부착위치 등이 흡사해 소비자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상표 논란’
법정소송까지

롯데 제과에서도 카피캣 논란은 이어진다. 1974년 오리온이 쵸코파이를 내놓고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자 5년 후 롯데제과가 ‘롯데 쵸코파이’ 상표를 등록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양사는 상표 등록을 놓고 법정 공방까지 벌였다.

지난 2008년엔 크라운제과가 롯데제과를 상대로 상표권을 무단 도용했다며 상표 사용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크라운제과는 일본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주인공 짱구를 ‘신짱’으로 변형해 스낵제품 ‘못말리는 신짱’을 2001년부터 판매해 왔는데, 롯제제과가 7년 뒤 신제품에 ‘신짱’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글씨체도 흡사하게 베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롯데제과는 크라운제과의 ‘버터와플’과 유사한 ‘롯데와플’, 해태제과의 ‘홈런볼’과 비슷한 ‘마이볼’ 등을 잇따라 출시하며 ‘카피의 황제’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장수제품인 ‘오징어땅콩’을 흡사하게 베낀 ‘오징어땅콩’을 또다시 출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뿌리 깊은 병폐…신제품만 내놨다하면 베끼기 구설수
사업 초기비용 생략·안정적 수익보장에 쉽게 못 끊어


이렇듯 롯데는 같은 계열 기업들은 브랜드 네임, 관련 스토리텔링, 마케팅 방식까지 복사기처럼 찍어 베끼고 있는 것을 관행처럼 일삼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롯데가 잦은 ‘카피캣 전략’을 쓰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사업 초기 시장분석, 연구 개발비, 조사비용 등 투자해야 하는 자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그 첫 번째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인기상품을 모방해 적은 노력을 가지고 이익을 얻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잘 나가는 제품을 모방한다면 어느 정도 보장된 수익과 편하게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원인이다. 식음료의 특성상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은 쉽게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프로모션 이벤트를 벌이거나 가격을 인하해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면 원 브랜드 상품을 추월할 수도 있다는 점이 모방의 중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흉내내기 전략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으니 쉽게 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모방이 성공하면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으니 버릇이 된 것 같다. 굴지의 유통기업답게 유통망도 잘 갖춰져 있으니 유사품을 출시해도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롯데의 카피캣’을 두고 가끔씩 벌이는 네티즌들의 갑론을박 중에도 두 가지 반응이 있다. ‘맛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것과 ‘카피로 떼돈 버는 비양심적 기업’이라는 것이다.

카피로 흥한기업
카피로 망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맛만 제대로 낸다면 장땡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민한 소비자들이 롯데가 출시하는 제품이 무엇을 따라 만든 것인지 모를 리 없다. 베끼기의 카피 캣 제품은 짝퉁의 또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에 한 전문가는 “카피 캣 전략을 통해 이익을 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롯데’하면 ‘카피왕’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제”라며 “양질의 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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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