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들이 상응한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거나 지은 죄에 대한 응보를 목적으로 한다고 형벌을 가장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처럼 범죄자에 대한 처벌로 어떤 결과나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형벌, 즉 비공리적이고 과거 지향적, 행위 지향적인 형벌이 있는 반면, 형벌을 통한 결과나 효과를 기재하는 미래 지향적인 공리적 형벌도 엄연히 존재한다.
형벌을 통해 미래에 어떤 결과나 효과를 기대하는 공리적 형벌도 다양하기는 마찬가지다.
간단하게는 구금을 통한 범행 능력의 원천적 차단, 즉 범죄자에 대한 재범 능력의 무력화라고 하는 무능력화, 수형자에 대한 처우, 교육, 훈련, 치료 등을 통한 수형자의 교화와 개선과 결과적인 사회복귀에서부터 형벌의 고통을 통한 재범의 억제를 기대하는 억제, 최근에는 사회 재통합과 회복적 사법에 이르기까지 형벌의 목적이 더욱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사회와 시민들이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그 어떤 형벌의 궁극적인 목적보다 형벌의 고통을 부과함으로써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그에 따른 응보와 고통의 위협에 의한 수형자의 재범과 잠재적 범법자들에 대한 범죄 동기의 억제와 그로 인한 범죄의 예방일 것이다.
특히, 범죄 문제의 악화와 그로 인한 보수적 형사정책의 선호 추세도 형벌을 통한 사법 정의의 구현과 범죄 억제를 강조하게 만든다. 이처럼 형벌의 목적이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교화와 개선 및 교정 처우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범죄 악화로 인한 형사정책의 보수화 회귀 분위기는 다시 한번 범죄자에 대한 형벌을 강요받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형벌을 강조하는 추세, 즉 처벌을 통한 범죄 억제는 당연히 이미 범죄를 저지르고 수형된 범법자에게는 형벌의 고통을 통해 재범하지 않도록 억제한다. 일반 시민, 특히 잠재적 범법자들에게는 형벌의 고통을 경고함으로써 범죄를 하지 않도록 억제하리라는 기대를 한다.
당연히 형벌의 범죄 억제 효과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도 여전히 그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범죄라도 저지른 사람은 모두가 확실하게, 그것도 가급적이면 신속하게, 그리고 더 중하게는 엄중하게 처벌하면 형벌을 통한 범죄 동기의 억제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계산할 줄 아는 사고하는 존재이기에 이렇게 확실하고 신속하고 충분히 엄중하게 처벌한다면 이토록 합리적인 인간이 더 이상 범행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나치리만큼 순진한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보통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형벌이 범죄를 억제하기도 하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오히려 범죄를 조장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바로 전과자라는 부정적 낙인, 즉 범법자에게 전과자라는 오명을 씌워서 그 오명으로 인해 오히려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소외되게 해 정당한 사회복귀를 더 어렵게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직업적 범죄자의 길로 내몰기도 한다는 것이다.
전과자라는 낙인으로 인해 사회관계와 합법적 기회와 수단이 차단되거나 제한되기 때문이다.
특히, 범죄자에게 전과자라는 오명의 낙인을 붙임으로써 범죄자는 전과자라는 사회적 오명의 낙인을 내재화해 스스로를 범죄자, 전과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고, 그런 자신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학 이론 중 하나로 형사사법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현재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낙인이론이다. 여기에 더해 심지어 교정 처우를 통해 충분히 교화·개선된 수형자로서 범죄자나 전과자라는 정체성을 내재화하지 않았음에도 전과자라는 낙인은 출소자의 취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주거 등 합법적인 활동이 거의 대부분 제약을 받거나 그런 기회조차 차단돼 또 다시 범죄의 유혹에 이끌리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물론 범죄자에게 죄에 상응한 처벌도 사법 정의의 실현이나 사회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 형벌이 범죄를 억제하지만, 오히려 낙인으로 범죄를 더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낙인은 최소화하면서도 억제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묘안이나 접점을 찾아야 한다.
형벌을 다양화해 낙인은 최소화하면서도 확실한 처벌을 기할 수 있는 형벌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전환 프로그램을 개발, 활성화하고, 시설 수용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마지막 수단이면 좋을 것이다.
<yhl@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