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수학여행, 왜?

책임자만 있고 안전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곧 12년이 되어간다.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요원까지 투입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사고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건 늦다. 의미 있는 안전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는 데서 출발한다. 곧 수학여행 시즌이 시작된다. 올해는 과연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수학여행은 학생들의 체험과 교육을 위해 운영되는 대표적인 학교 활동이다. 하지만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학생이 동시에 이동하는 일정인 만큼, 안전관리 역시 중요하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체험학습 과정에서의 안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면서, 수학여행 현장에 별도의 안전관리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일도
저 일도

이에 따라 교육당국은 체험학습 안전관리 지침을 마련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수학여행에는 안전요원을 배치하도록 하는 기준을 도입했다. 학생들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대응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년간 현장에서 안전요원으로 활동해 온 A씨는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안전요원의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수학여행은 학교와 여행사, 안전요원이 함께 관리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학교는 학생 지도와 전반적인 관리 책임을 맡고, 여행사는 숙소와 교통, 관광지 일정 등을 포함한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운영한다. 여기에 안전요원이 투입돼 학생 이동과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방식이다.

안전요원의 기본 업무는 학생 인솔과 동선 관리, 관광지 내 안전 확보, 식사 및 숙소에서의 질서 유지 등이다. 예를 들어 대규모 인원이 이동할 때 일반 관광객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거나, 관광지에서 위험 구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단체 식사 시에는 자리 배치와 이동을 관리하고, 숙소에서는 타 학교와의 동선을 분리해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발생 12년
지금도 여전히 안전 구멍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안전요원이 이 같은 기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현재 일부 교육청 인력풀에 등록된 인력은 실제 현장에서 선생님 보조 수준의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일반적으로 학교가 여행사를 통해 수학여행을 진행하면, 여행사가 안전요원 업체나 인력을 섭외해 현장에 투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안전요원 업체는 사실상 여행사의 하청 형태 구조로 운영된다.

하지만 교육청이 ‘퇴직공무원 체험학습 안전요원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교육청은 교원과 경찰, 소방관 등 퇴직 공무원 가운데 안전 교육을 이수한 이들을 인력풀로 관리하고 있으며, 학교는 필요에 따라 해당 인력을 요청해 현장에 배치받을 수 있다.

퇴직공무원을 활용해 현장체험학습 안전요원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 시스템으로 인해 현재 안전요원 인력풀은 고령화된 상태다. 기존 안전요원 시스템은 인력을 채용한 뒤 사전 교육을 실시하고, 경험이 많은 팀장을 중심으로 팀원들을 배치해 현장을 배우는 구조였다.

반면 최근에는 퇴직공무원 중심으로 구성된 일부 업체와 교육청 인력풀에서 자격증 보유 여부와 일정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인력을 선착순 배치하면서, 사전 교육이나 현장 안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입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관광지별 위험 요소나 동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현장에 들어가는 상황도 생겼다.

있으나마나
허술한 감독

가장 큰 문제는 ‘사고 예방’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A씨는 “수학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고가 난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막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 구조에서는 예방 중심의 관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관광지별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고, 학생들이 몰릴 수 있는 구간이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동선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사고 예방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A씨는 이들 안전요원이 “관광지에 대한 사전 교육이나 정보 없이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어떤 부분이 위험한지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현장을 맡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동선이나 구조를 모르면 학생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결국 사고를 미리 막기 힘든 상황이 된다”고 토로했다.

학생들의 인솔 방식 역시 사고 예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A씨는 “현장에서는 담임교사가 앞에서 인솔하고 안전요원은 뒤에서 따라가는 형태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A씨는 “안전을 위해서는 앞에서 안전요원이 위험 요소를 먼저 확인하고 제거하는 방식이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며 “이 경우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기보다는 상황이 발생한 이후 대응하는 방식으로 흐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안전요원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대응 역시 제한적이다. A씨는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안전요원이 직접 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다”며 “기본적인 지혈이나 응급조치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우선이 된다”고 설명했다.

“예방 아닌
사후 대응”

퇴직공무원 안전요원 교육 체계도 실제 현장과는 괴리가 크다. 현재 진행되는 체험학습 안전요원 교육은 주로 학생과의 관계 이해, CPR(심폐소생술), 응급처치 중심으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A씨는 “실제 현장에서는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라며 “골절 등 큰 사고가 발생하면 바로 119로 이송하는 것이 우선이고, 안전요원이 직접 조치할 수 있는 상황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혈 역시 대량 출혈이 아닌 이상 개입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고, CPR을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며 “수년간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CPR을 실제로 사용한 경우는 2번,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은 3번 정도였다”고 부연했다.

A씨는 “현재 교육은 사고 이후 대응 중심으로 설계돼있지만,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사고를 미리 막는 예방 중심 관리”라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위험 상황이 외부에서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A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아 큰 사고가 드물어 보일 수 있지만, 현장에서 보면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며 “최근 제주도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는 일반인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수 있으나 최소 한 시즌에 2~3번 이상 베란다를 넘어가는 학생이 발생하므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사고”라고 말했다.

퇴직 공무원이 안전요원을?
“현장에선 선생님 보조 수준”

실제로 지난해 11월 제주 서귀포시의 한 호텔에서는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이 숙소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학생은 객실 창문을 통해 아래층으로 이동하려다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으며, 학교 측은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학생 전원을 귀가 조치했다.

또 A씨는 “워터파크 일정이 포함된 경우에는 물 관련 사고로 인해 심정지 상황이 발생하는 사례도 실제로 존재한다”며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현장이 결코 안전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A씨는 “이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단순 단기 업무 형태의 고수익 알바로 둔갑시킨 업체들이 대거 유입되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또 문제가 생긴 안전요원 업체가 다른 여행사 업체를 통해 같은 학교 행사에 다시 들어오는 것도 가능하다. 학교 측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 학생들의 안전과 교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만든 퇴직공무원 체험학습 안전요원 시스템이지만 이들이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해도 명확하게 책임질 주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안전요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에게 많은 책임이 전가된다. 학교 측도 비용 부담과 책임 문제로 인해 수학여행 안전요원을 줄이거나 행사 자체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안전요원에 대한 불신도 커진 상황이다. A씨가 근무하는 업체는 학교 측의 안전요원 요청 과정에서 “어차피 책임 안 지는 것 아니냐” “아무것도 하지 않는 허수아비가 아니냐”며 조롱 섞인 말들을 듣기도 했다.

허수아비
안전요원

A씨는 “세월호 이전에는 이 직업 자체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름 없이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이 많았다”며 “지금 문제는 특정 인력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구조 자체가 현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 경험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구조가 오히려 위험 요소를 만들고 있다”며 “수학여행 안전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라지는 수학여행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 등 학교 밖 교육활동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학습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교사 개인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판결이 이어지면서, 특히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체험형 교육을 아예 실시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 지역 초등학교의 현장체험학습 운영 비율은 급격히 감소했다.

1일형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한 학교는 2023년 598곳(98.8%)에서 2024년 478곳(79.0%)으로 줄어든 데 이어, 2025년에는 309곳(51.1%)까지 떨어졌다. 불과 2년 사이 절반 가까운 학교가 해당 활동을 중단한 셈이다.

수학여행과 수련활동 역시 감소 흐름을 보였다.

수학여행을 실시하는 초등학교는 2023년 80곳(13.2%)에서 2024년 42곳(6.9%), 2025년 41곳(6.8%)으로 줄었으며, 수련 활동도 같은 기간 124곳(20.5%)에서 38곳(6.3%), 37곳(6.1%)으로 감소했다.

전반적으로 초등학교에서 체험 중심 교육활동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고등학교 역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초등학교에 비해 하락 폭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편이다.

중학교의 경우 2023년 331개교에서 실시하던 1일형 체험학습이 지난해 291개교로 줄었고, 고등학교도 같은 기간 221개교에서 173개교로 감소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교사 책임 강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22년 강원 속초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체험학습 사고와 관련해 인솔 교사에게 금고형의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지면서, 현장체험학습 운영에 대한 교사들의 부담이 크게 커졌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전남 지역에서 발생한 유치원 체험학습 사망사고에서 인솔 교사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판결이 이어지며 현장 위축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기사 속 기사> 속초 체험학습 초등생 사망 사건

2022년 11월 강원 속초의 한 테마파크에서 진행된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도중 학생이 전세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학생들은 현장에 도착한 뒤 버스에서 하차해 단체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었으며, 담임교사는 학생들을 두 줄로 세운 뒤 대열의 앞쪽에서 인솔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동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대열에서 이탈했고, 교사는 이를 즉시 인지하지 못한 채 전방만 주시하며 이동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당시 대열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일정 거리 이상 뒤처진 상태였고, 해당 학생 역시 대열 후미에서 이탈한 상태에서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버스가 임시 정차 상태였던 만큼 추가 이동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대열 전체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거나 후미를 점검하는 조치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

사고 이후 검찰은 버스 운전자뿐 아니라 담임교사와 보조 인솔교사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재판의 핵심은 학생 인솔 과정에서 교사가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담임교사에게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보조 인솔교사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고, 버스 운전자에게는 금고형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일부 조정됐다.

재판부는 교사가 학생 인솔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보면서도, 사고가 운전자의 과실과 결합해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이에 따라 담임교사는 금고 6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고, 보조 인솔교사는 1·2심 모두 무죄가 유지됐다. 버스 운전자는 금고형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 사건은 이후 상고심으로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담임교사가 상고를 취하하면서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교사의 주의의무 위반이 일정 부분 인정된 판례로 남게 됐다. <안>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제2의 로켓랩?’ 비트팜스 사건 내막

[단독] ‘제2의 로켓랩?’ 비트팜스 사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주식시장이 활활 타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에 휘청이던, 전쟁 여파에 고꾸라지던 모습이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다. 특정 악재가 발생해도 하루 이틀이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을 넘어 지수를 말아 올리고 있다. 대통령이 공언했던 코스피 지수 5000보다 이제는 1만이 더 가까워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겠다며 ‘코스피 5000시대’를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 대부분 ‘빈 약속’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12‧3 비상계엄의 여파를 제외하고라도 코스피 지수는 3000 언저리 박스권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바닥이 얇고 지붕이 단단하다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대한 인식은 깨지기 어려워 보였다. 역대급 불장 돈이 모인다 이재명정부 1년째를 앞둔 현재, 주식시장의 지붕은 완벽하게 뚫렸다. 국내외 증권사들은 코스피 상방을 올려 잡고 있다. 동시에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개미(개인 투자자)’의 비율이 높아졌다.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포모(FOMO) 증후군이 퍼졌고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들이 너도나도 주식시장으로 움직였다. 부동산에 몰린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겠다는 정부 차원의 ‘머니 무브’ 정책으로 역대급 불장이 계속되면서 덩달아 증권업계도 신났다.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는 거래대금 폭증으로 역대급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주요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대형 증권사의 분기 순이익이 1조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60여개에 이르는 국내 증권사들은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개미들을 잡으려 각종 유인책을 내놓았다. 증권사는 주식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로 이익을 내는 구조인 만큼 투자자가 많을수록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또 증시가 폭발하면서 빚을 내서까지 시장으로 진입하는 비율이 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증권사는 손해 볼 게 없다. 문제는 주식 거래가 증가하면서 일어나는 증권사발 사건‧사고다. 최근 증권사의 갈지(之)자 행보로 투자자가 의도치 않은 세금 폭탄을 맞은 사건도 한 예다. 증권사마다 명확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굴면서 일부 투자자는 수백만원, 많게는 억대의 손해를 봤지만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은 상태다. 정부도 손을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미국 본사 이전 주식 구분 변경 일어나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암호화폐를 채굴하던 ‘비트팜스(Bitfarms)’라는 기업이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법인을 뒀던 비트팜스는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고 인공지능 및 고성능 인프라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명을 ‘킬 인프라스트럭처(Keel Infrastructure)’로 변경했다. 본사 이전이 완료된 시기는 지난달 1일. 비트팜스는 킬 인프라스트럭처의 자회사가 됐고 미국 현지시각으로 같은 달 6일 주식 구분이 변경됐다. 다시 말해 주식 종목에서 비트팜스가 없어지고 킬 인프라스트럭처로 거래가 개시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과정이 ‘주식 교환’으로 처리돼 세금이 붙지 않았다. 문제가 된 건 비트팜스 주식을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서학 개미’들이다. 이들의 주식은 매도 후 재매수 처리됐다. 다시 말해 비트팜스 주식이 처분되고 킬 인프라스트럭처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양도’가 일어난 것이다. 비트팜스 1주는 킬 인프라스트럭처 1주로 바뀌었다. 이 과정은 투자자가 아닌 증권사의 의지로 이뤄졌다. 비트팜스 주주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현행법상 해외주식으로 소득이 발생하면 ‘양도소득세’라는 세금이 붙는다. 250만원 이상의 주식 소득에 22%의 세금이 매겨진다. 예를 들어 해외 주식으로 1000만원을 벌었다면 250만원을 제외한 750만원에 대해 22%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증권사 수수료까지 떼고 나서야 투자자가 실제 번 돈이 된다. 양도소득세는 1년치 해외주식 소득을 따져 부과된다. 그래서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시점이 되면 투자자들은 주식을 정리한다. 이익과 손해가 250만원 이내로 합산되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에 이 시기에 투자자들은 계산에 골몰한다. 물론 주식을 사고팔지 않으면 양도소득세 자체는 ‘0’이다. 예상치 못한 세금 날벼락 하지만 비트팜스가 킬 인프라스트럭처로 주식 구분이 변경될 당시 ‘매도 후 재매수’라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지면서 투자자들은 ‘강제로’ 이익 혹은 손해가 발생했다. 기대 수익, 예상 손해로 존재하던 게 실제 이익과 손해로 전환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에게는 예상하지 못했던 세금 부과 이슈가 발생한다. 비트팜스 사건을 두고 지난해 5월 일어난 ‘로켓랩’ 주식 전환 사태를 떠올리는 이유다. 미국 민간 우주기업 로켓랩 USA는 지난해 5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재편을 단행했다. 같은 해 5월23일 신설된 로켓랩 코퍼레이션이 기존 로켓랩 USA 법인을 자회사로 흡수합병했다. 이때 로켓랩 USA 주식은 동일한 가치의 로켓랩 코퍼레이션 1주로 자동 전환됐다. 미국은 세법상 주식 교환 과정에서 이익과 손해를 실현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매도 후 재매수 방식으로 처리됐고 무엇보다 당시 이 과정이 야밤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로켓랩 USA 주주들은 크게 반발했고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 폭탄’이 쏟아졌다. 단일 민원으로는 최다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문제로 떠오른 점은 국내 증권사들의 대응이었다. 당시 국내 증권사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각자 다른 답을 내놨다. 세법에 대한 해석이 갈리면서 적용을 달리한 것이다. 일부 증권사는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양도 거래’로 판단해 매도 후 재매수 방식으로 처리했다. 또 다른 증권사들은 단순 주식 교환으로 간주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투자자로서는 어느 증권사를 이용하고 있었느냐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고, 부과되지 않는 이른바 ‘복불복’ 상태에 놓인 것이다. 당시 로켓랩 주식 전환 처리 방식에 따라 증권사를 옮기는 이동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논란이 계속되자 공은 결국 정부로 넘어갔다. 세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이다. 민원 폭탄에 기재부 해석 당시 기획재정부는 로켓랩 사태 이후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게 맞다는 해석을 내놨다. 국세기본법 제14조 실질과세의 원칙과 소득세법 제88조의 ‘양도’의 의미를 근거로 내세웠다. 주식 티커명이 같더라도 법률상 기존 로켓랩 USA 주식이 소멸하고 주주가 새로운 로켓랩 코퍼레이션을 취득한 만큼 동일한 자산을 연속적으로 보유한 것이 아니라 자산을 교환한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주식 티커는 증권거래소에서 특정 상장회사의 주식을 고유하게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짧은 약어를 뜻한다. 비트팜스 주주들은 기재부의 유권해석에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트팜스가 KEEL로 티커명이 바뀌어도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같은 사람이고 거래 상태는 ‘보유 계속’이다. 사업, 경영진, 지분율 어느 하나 바뀌지 않았는데 (기재부는) 이걸 자산의 이동으로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백번 양보해서 로켓랩 사태 당시 기재부가 유권해석을 내렸기에 비트팜스 사건에 동일하게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례가 있음에도 국내 증권사들은 저마다의 방식을 적용했다. 이번에도 증권사에 따라 손해와 이익이 갈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따지고 보면 비트팜스 사건과 로켓랩 사태에서 투자자들이 분노한 지점은 같다. ‘실제 팔지도 않은 주식’에 세금을 매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더 화나게 하는 부분은 증권사들이 적용 기준을 제멋대로 했다는 점이다. 재판으로 비유하면 판례가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증권사의 행보는 ‘갑질’로 느껴질 정도라고 지적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비트팜스가 킬 인프라스트럭처로 주식 구분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별로 적용 시점이 달랐다. 메리츠 증권은 지난달 3일, 토스 증권은 같은 달 6일에 투자자들에게 주식 구분 변경 사실을 알렸다. 미국은 비과세로 처리하는데… 우리나라는 ‘매도 후 재매수’ 투자자들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는 주식 구분 변경 사실을 아예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보니 내가 하지 않은 주식 거래가 이뤄져 있던 셈이다. 로켓랩 사태와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토스 증권을 사용 중인 한 투자자는 “6일에 비트팜스에서 킬 인프라스트럭처로 바뀌어서 거래가 개시됐는데 그 당일에 공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토스 증권은 해당 투자자의 문제 제기에 “(4월)3일에 (주식 구분 변경) 정보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4월)6일에 공지했다. 최초로 정보를 알게 된 (4월)3일은 현지 휴장일로 투자자가 실제 매매 등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이후 7일에 외부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권리 처리를 이행했다고 덧붙였다. 즉 매도 후 재매수 방식으로 적용했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은 처음에는 교환으로 적용했다가 뒤늦게 양도로 처리한 증권사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 투자자는 “신한 증권을 사용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주식명만 바뀌더니 2~3일 뒤에 재처리됐다. 증권사에 문의했더니 다른 증권사의 처리 방식대로 했다고 하더라. 그사이에 주가와 환율이 바뀌었는데 일괄 적용한 것이다. 주먹구구식도 이런 주먹구구식이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도 비트팜스 투자자들의 민원을 증권사에 돌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은 투자자들이 받은 답변은 이 사안이 ‘자율 조정 대상’이라는 내용이었다. 자율 조정 대상은 정식 조사 전 금융사와 소비자가 자율적으로 합의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일단 증권사랑 얘기하라는 뜻이다. 투자자로선 금감원에서 증권사로 넘어간 공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손 놓은 정부 투자자 운다 70명가량 모여 있는 비트팜스 투자자 단체 채팅방에서는 무력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정부와 증권사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로켓랩 사태의 선례로 이번 사건 또한 흐지부지될 것이라 자포자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 몇몇 투자자는 ‘손절(손해 보고 매도)’하고 채팅방을 떠났다. 한 투자자는 “로켓랩 사건 때 정말 다 들고 일어났다고 느낄 정도로 문제 제기가 많았는데도 결론적으로 양도소득세가 부과됐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민원도 많이 안 들어간 걸로 안다”며 “이 사건이 스페이스X와 합병설이 도는 테슬라 같은 대형 주식에 일어났어도 정부나 증권사가 이렇게 반응했을까”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