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인생캐 만난 ‘왕사남’ 박지훈

눈빛이 만든 ‘단종 오빠’ 신드롬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아역 배우로 출발해 ‘내 마음속에 저장’이라는 유행어로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소년은 이제 스크린을 책임지는 배우가 됐다. <약한영웅>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데 이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흥행 배우가 됐다.

박지훈은 1999년생으로, 2006년 MBC 드라마 <주몽>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8살이었다. 극 중 소금 장수의 아들 역으로 출연하며 처음 촬영 현장에 섰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박지훈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TV에서 어떤 배우가 화를 내는 장면을 보고 ‘나 저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단순한 동경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여의도에 있는 연기 학원에 등록했고, 아역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주몽 데뷔
당시 8살

<주몽> 출연 이후 박지훈은 방송 활동을 이어갔다. 어린 나이에 드라마 촬영장을 경험했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때 작품에 출연하면서 카메라와 많이 친해졌다”고 밝혔다.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박지훈은 중학생 시절 팝핀 댄스를 접하면서 또 다른 꿈을 품게 됐다. 그는 “팝핀 영상을 보고 ‘난 이거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춤 연습에 몰두했다. 박지훈은 “수업 시간에도 팝핀 동작을 연습했다”고 했으며, 본격적으로 아이돌을 목표로 삼은 뒤에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에 쏟았다.

그는 “오후 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연습했다”며 당시를 두고 “독기가 가득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물론 연습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그 나이에는 흔하지 않은데 무릎에 물이 찼다”며, 병원에서 물을 빼고도 다시 지하 연습실로 돌아가 연습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이후 2017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했으나, 101명의 연습생이 무대에 선 첫 방송에서 그는 “카메라가 저를 안 잡아주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그는 무대 엔딩에서 윙크를 했다. 박지훈은 “엔딩을 하는데 카메라 렌즈가 저한테 오는 게 느껴졌고, 빨간 불이 보였다. 그때 ‘됐다’ 싶었다”고 말했다. 해당 장면은 방송 직후 화제가 됐고, 그는 “내 마음속에 저장”이라는 멘트와 함께 주목을 받았다.

최종 순위 발표에서 박지훈은 2위를 기록했고, 프로젝트 그룹 Wanna One의 멤버로 선발됐다. 2017년 정식 데뷔 이후 그룹은 큰 인기를 얻었고, 그는 팀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박지훈은 당시를 돌아보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 지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Wanna One 활동이 2019년 1월 공식 종료된 이후, 박지훈은 개인 활동을 이어가면서 가수 활동과 함께 연기 활동을 병행했다. 박지훈이 배우 활동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언급하는 작품은 2022년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이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성적 상위 1% 모범생 연시은이 학교폭력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박지훈은 극 중 연시은 역을 맡았다. 공개 당시 <약한영웅 Class 1>은 OTT 화제성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2022년 12월12일 발표된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가장 높은 화제성을 보였다. 또 그해 웨이브 콘텐츠 가운데 높은 유료 가입자 수를 기록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아역으로 시작해 명불허전 주연 배우로 우뚝
<약한 영웅>이어 <왕사남> 압도적 연기력

이후 <약한영웅 Class 1>은 넷플릭스를 통해 재공개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투둠 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총 670만 시청 수를 기록하며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2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600만 시청 수를 기록한 <폭싹 속았수다>를 제쳤다.

박지훈은 이전 작품들에서 밝은 이미지의 역할을 맡아왔다. 드라마 <연애혁명>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등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연시은은 과묵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박지훈이 연기한 연시은은 극 중 말수가 적고, 눈빛과 표정의 변화로 감정을 표현한다.

체격 조건에서는 우위를 점하지 못하지만,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인물이다. 작품은 폭력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인물의 심리를 중심에 둔다. 극 중 연시은은 감정을 겉으로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눈빛과 호흡의 변화로 상황을 표현한다.

초반에는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친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이어간다.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연시은의 상황은 달라진다. 친구를 잃는 사건 이후 감정의 변화가 이어지고, 인물의 태도 역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약한영웅 Class 1>은 공개 당시 4주 연속 OTT 화제성 1위를 기록했고, 이후 플랫폼을 넷플릭스로 옮겨 다시 주목을 받았다. 넷플릭스 집계 기준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시리즈 2위에 오르며 해외에서도 긍정 반응이 이어졌다. 여기에 이어 시즌2까지 흥행에 성공하며 인기를 끌었다.

시청자들은 “이 역할은 박지훈이 아니면 할 수 없었을 것” “눈빛만으로도 인물을 표현했다”며 극찬했다.

박지훈은 유튜브 채널 ‘살롱드립2’에 출연해 <약한영웅> 촬영을 계기로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봤다고 밝혔다. 그는 “드라마 속 학창 시절 모습과 실제 나는 너무 달랐다”며 “사실 친구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마산 출신이라 사투리가 굉장히 심했고 말투도 억셌다. 체격도 통통한 편이었다”며 “TV에 나온다고 하면 ‘뚱뚱한데 쟤랑 친구하면 말투 저렇게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혹시 내 말투 때문에 친구들이 나를 피하나 싶었다”고 했다.

극 중 연시은이 또래 사이에서 고립된 인물로 설정된 만큼, 이 같은 경험은 인물을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지훈은 “중학교 이후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아이돌 찍고
배우로 활약

박지훈은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연기 활동을 이어오던 중 인생작을 만나게 됐다. 최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이홍위 역을 맡으면서다. 작품은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유배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이홍위의 시간을 따라간다.

단종은 조선 6대 왕으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된 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영화는 권력투쟁의 중심이 아닌, 유배지에서의 시간을 조명한다. 극의 중심에는 쇠약해진 단종과 그를 보살피는 엄흥도의 관계가 놓인다. 박지훈은 식음을 전폐하고 무기력에 빠진 어린 왕을 연기했다.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단종이 겪었을 정서적 고립과 인간적 두려움, 그리고 유배지라는 공간이 주는 물리적 단절을 따라간다. 정치적 패배의 상징이 아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존재로서의 단종을 화면에 올리는 작업이었다.

박지훈은 이런 방향성에 대해 “비극을 강조하기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이 깊었다. 감히 단종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운의 왕 단종을 내가 표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이 많았다.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단종은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큰 인물인 만큼,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는 것이다.

단종은 기록 속에 남은 인물이나 기록은 감정까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박지훈은 “기록에 없는 부분을 상상해야 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고, 어린 나이에 폐위됐으며,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남아 있지만, 그 사이의 정서적 공백은 배우의 몫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왕이 아닌 상태에서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를 계속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고민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었다. 그는 “유해진 선배가 주는 에너지를 잘 받아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도 걱정됐다”고 말했다. 엄흥도 역을 맡은 유해진은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엄흥도는 단종에게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다.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이자, 인간적인 체온을 전달하는 존재다.

박지훈은 “단종이 엄흥도를 처음 만났을 때는 경계심이 더 컸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조금씩 경계가 풀리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시선을 잘 맞추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개를 드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회상했다.

연기 천재
약한 영웅

장항준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캐스팅 과정을 언급했다. 장 감독은 “시나리오를 보내고 네 번을 만날 때까지 확답을 주지 않아 애를 태웠다”고 했다. 박지훈 역시 감독의 한마디를 떠올렸다. “감독님이 ‘단종은 너여야만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을 갖고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그는 감독과의 대화에서 단종을 단순히 ‘비운의 왕’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감독님이 단종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 방향성에 동의했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할 수 있었다.

단종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구체적인 준비로 이어졌다. 박지훈은 “나약하지만은 않은 단종을 그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유배지에서 식음을 전폐한 모습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안에 남아 있는 왕으로서의 기개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목소리에 디테일을 잡았다. 단전에서 끌어 올리는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힘없이 축 처진 인물이 아니라, 약해졌지만 완전히 꺾이지는 않은 존재로 그리고자 했다.

또 울음으로 설명하지 않으려고 하는 등 감정 표현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신 호흡의 길이, 시선의 방향, 어깨의 기울기로 인물의 상태를 드러내려 했다고 전했다. 그는 “말보다 침묵이 많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이어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지훈은 “유배 과정에서 피폐해지는 단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체중 감량을 결심했다. 실제로 그는 “운동으로 건강하게 살을 빼는 느낌이 아니라, 식음을 전폐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두 달 반 동안 사과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며 약 15kg을 감량했다.

박지훈은 뼈밖에 없다는 느낌을 내고 싶었다. 급격한 감량은 화면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냈다.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목선이 얇아지면서 인물의 쇠약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단종이 점점 만들어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급격한 감량은 몸 상태에 변화를 가져왔다. “단기간에 체중을 줄이다 보니 음식을 먹으면 토할 정도로 몸이 예민해지기도 했다. 준비 기간에는 방 안에 틀어박혀 대본과 역사 자료를 계속 봤다. 잠도 거의 안 자고 지냈다. 그는 “준비하던 기간에도 너무 예민해져 있었다. 방에 틀어박혀 대본만 보고 역사 공부만 했다”고도 회상했다.

장항준 러브콜 3번 고사 끝 출연
완벽한 단종 역 위해 15㎏ 감량

극 중 단종의 상태를 생활 리듬으로 체화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촬영 기간 동안 일상에서도 말수를 줄였다. 감정을 끌어올리는 대신, 가라앉힌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도 체력적 부담은 이어졌다. 그는 “극 중 밥을 먹는 장면을 찍을 때 속이 울렁거렸다. 음식이 잘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한명회에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는 “먹은 게 없는 상태였다. 그날 촬영을 하다 핑 돌았다. 몸이 많이 힘들어 한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다슬기 국을 먹는 장면에서는 “염분이 확 들어오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꼈다”고 소회했다.

이 장면은 극 중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으로 언급된다. 단종이 처음으로 음식에 반응하는 순간이다. 박지훈은 “그 장면은 단순히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살아야겠다는 감각이 돌아오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유해진과의 작업 과정은 촬영이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평소 선배에게 계획적으로 다가가거나 억지로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예뻐해 주신 것 같다”는 박지훈은 “강가에서 자주 산책했다. 촬영장으로 함께 걸어 올라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간이 관계를 쌓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감정도 깊어져 연기에 도움이 됐다”고 감사 인사했다.

유해진의 연기에 대해서는 “감히 제가 연기가 어땠다고 말 못한다. 선배가 주는 에너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끌리는 이유가 없어서 끌리는 것 같다. 어떨 때는 형 같고, 어떨 때는 아버지 같고, 어떨 때는 선배 같다”고 전했다.

장 감독에 대해서도 “배우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많이 열려 있다. 납득할 수 있는 디렉션을 주신다”고 말했다.

영화는 개봉 이후 빠르게 관객을 모았다. 개봉 18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개봉 20일째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올해 개봉작 가운데 500만 관객을 넘긴 첫 작품으로도 언급됐다. 흥행 속도 역시 주목받았다. 일부 관객들은 “눈빛이 인상 깊다” “박지훈이 아닌 단종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흥행의 이면에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다. 그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시사회 다음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치매였다. 저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물어보고 싶다. 꿈에라도 나오신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두 번째
전성기

<왕과 사는 남자>는 박지훈에게 첫 상업영화이자 흥행작이 됐다. 그는 “유해진, 전미도, 유지태 등 선배들과 장항준 감독님을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배우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현재 박지훈은 차기작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 촬영에 돌입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