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24일 ‘널뛰기 장세’를 보인 끝에 사상 최고가를 또 경신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123.55포인트(2.11%) 오른 5,969.64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로써 코스피 6000까지는 불과 30.36포인트만 남겼다. 이날 키움증권도 올해 코스피 예상 상단을 기존 6000포인트에서 7300포인트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코스피 6000 돌파는 여부가 아닌 시간의 문제다. 코스피는 지난해 6월과 11월 3000, 4000선을 넘은 뒤에는 약 두 달간 숨을 고르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1월 말 5000 돌파 이후에는 불과 2주간의 조정만 거친 채 다시 급등하며 2월 후반 5900선을 넘어섰다.
한 달 만에 코스피 5000은 과거가 됐다 지금은 코스피 6000이다. 우리는 곧 코스피 7000도 얘기할 것이다.
올해는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내놓은 지 9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시장을 방치된 공간이 아니라 정책과 기대가 조직되는 구조로 봤다. 누가 규칙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자본의 흐름이 달라지고, 그 선택이 결국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문제 제기는 한 나라의 경제가 어디에서 경쟁력을 얻는지를 다시 묻게 만들었다. 시장은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이 설계한 무대라는 인식이었다. 누가 규칙을 만들고 어떤 방향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자본의 흐름도 달라진다. 결국 금융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뜻이었다.
코스피 6000이라는 숫자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결과가 아니다. 시장의 높이는 시간의 깊이와 함께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자본시장 체력이 어디서 시작됐는가’를 묻게 된다. 누가 금융을 변방에서 끌어올려 국가 전략의 중심에 올려놨는가. 오늘의 고지는 언제 출발한 길 위에 놓여 있는가.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제조업의 성공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금융은 생산을 돕는 지원 체계로 이해됐고, 주도 산업은 언제나 공장과 수출 현장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의 파도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자본이 모이고 흘러가는 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산업의 가치도 충분히 평가받기 어렵다는 현실이었다. 금융을 키워야 나라의 몸집이 커진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인식을 국가 의제로 가장 강하게 끌어올린 인물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금융을 단순한 관리 대상이 아니라 성장 동력으로 규정했다. 서울을 국제 금융의 무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자본시장 육성을 전면 전략으로 배치했다.
규제 체계를 손보고 투자 활동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 동시에 추진됐다. 한국 시장을 세계 자금의 지도 위에 올려놓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시기 추진된 굵직한 정책들은 지금 돌아보면 방향을 보여주는 이정표였다.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증권·선물·자산운용의 경계를 낮추며 금융투자 산업의 판을 키웠고, 한국거래소의 기능을 강화해 시장 인프라를 현대화했다.
해외 자본의 접근성을 높이고 국내 금융사의 대형화를 유도하는 실험도 이어졌다. 서울을 동북아 금융 허브로 만들기 위한 제도적 재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세계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위기의 시대에는 언제나 문을 닫으라는 압력이 커진다. 그럼에도 기본 방향은 접히지 않았다. 후퇴 대신 관리, 폐쇄 대신 개방이라는 선택이 유지됐다. 출발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훗날의 시간을 만들었다.
물론 오늘의 코스피를 한 시기의 공로로만 단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던 정부, 자본시장 개방의 속도를 조정했던 정부, 연기금 운용을 확대하고 혁신 산업을 키운 이후의 정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글로벌 유동성 확대와 반도체·배터리·AI로 이어진 산업 경쟁력도 동시에 작동했다.
시장은 한번의 결단이 아니라 여러 선택의 연속 위에서 자란다. 다만 그 연속이 가능하려면, 처음 좌표를 찍는 용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책의 성과는 대개 시간이 지난 뒤에 드러난다. 인프라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장 참여가 반복되면서 힘을 발휘한다. 투자자들은 경험을 쌓고, 제도는 국제 기준에 맞춰 조정된다. 신뢰가 형성되면 자본은 다시 돌아온다. 이런 순환이 누적되며 체력이 만들어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힘이 결국 시장의 깊이를 결정한다.
생각해 보면 금융을 성장 산업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선언은 케인즈가 말한 국가의 역할과도 닿아 있다. 시장이 스스로 크기를 기다리는 대신, 국가가 무대를 만들고 규칙을 준비하는 선택이다. 투자자가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먼저 정비하는 일이다.
기대를 관리하는 정치, 신뢰를 설계하는 정책의 영역이다. 보이지 않는 준비가 참여의 문턱을 낮춘다.
이후의 정부들도 각자의 철학을 내세웠지만, 이미 시작된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감독을 강화하든 분배를 말하든, 세계와 연결된 시장 구조 자체는 유지됐다. 금융을 산업으로 보는 관점이 상식이 됐기 때문이다. 출발점이 만든 관성이다.
한번 형성된 방향은 정책의 언어가 달라져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구조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코스피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기업의 실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가치를 담아낼 제도, 외국 자본이 이해할 수 있는 기준, 반복 가능한 거래의 역사까지 필요하다. 시장은 ‘믿을 수 있는’ 다리를 원한다. 출발의 선택은 그 다리를 놓는 일이었다.
보이지 않는 구조가 가격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평가는 언제나 토대 위에서만 자란다.
코스피 6000을 이야기하면서 출발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 세계화를 구조로 밀어붙였던 판단이 있었기에 이후의 보완도 가능했다. 길이 열려 있었기에 선택이 이어졌다. 토대가 있었기에 확장이 가능했다. 처음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하는 논쟁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발은 늘 가장 큰 자산으로 남는다.
시장은 한 사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산업의 혁신, 투자자의 참여, 정부의 관리가 함께 더해져야 가능하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처음 정하는 일은 언제나 가장 어렵다. 방향이 없으면 축적도 없다. 좌표가 없다면 속도 역시 의미를 갖지 못하며, 결국 길을 정하는 용기가 시간을 만든다.
지금 우리가 보는 숫자는 그 긴 연속의 결과다. 그리고 그 연속의 첫 장에는 금융을 성장 산업으로 올려놓겠다는 강한 결단이 있다. 국가 전략의 좌표를 바꾼 판단이 이후의 시간을 조직했다. 시장은 그 순간을 잊지 않는다. 역사는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그 선택을 오래 기록해 둔다. 기록은 늘 말보다 오래 남는다.
앞으로 해야 할 일 역시 분명하다. 이미 시작된 길을 더 넓히고, 신뢰의 밀도를 한층 더 높여야 한다. 세계 자본이 머무를 수 있는 규칙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출발이 남긴 유산을 발전시키는 것이 다음 단계다. 확장은 결국 용기 위에서만 가능하다. 멈춤이 아니라 진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코스피 6000은 그래서 현재이면서 동시에 역사다. 숫자 속에는 여러 세대의 선택이 압축돼있다. 그중에서도 문을 처음 크게 연 순간은 오래 기억된다. 길은 그때부터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고지는 바로 그 출발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시장은 길을 처음 연 선택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결국 기억해 낸다.
시간은 결국 방향을 정한 선택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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