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다 나타나는 ‘유령 코인’ 음모론

보이질 않으니 줄였다 늘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비트코인은 화폐일까? 비트코인의 화폐성 이슈는 영원한 난제일 듯하다. 국가와 은행의 개입 없이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화폐 기능을 갖췄다는 측과 급격한 변동성을 이유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측 의견이 팽팽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일부 젊은 세대가 비트코인을 보는 시각이다.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화폐로 볼 수 있는지, 이를 이용한 범죄를 막을 방법이 있는지 등은 10년 넘게 가상화폐 시장을 떠도는 질문이다. 시간이 가면서 의문점은 늘었지만 답변은 여전히 두루뭉술하다. 화폐로서 비트코인을 어떻게 활용할지보다는, 비트코인을 이용해 어떻게 수익을 낼지에 관심이 집중돼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첫 등장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암호화폐다.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가명으로, 현재까지도 그 정체는 베일에 싸여있다. 이미 사망했다는 말부터 한 명이 아닌 집단이라는 의혹까지 다양한 설이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비트코인은 통화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중앙장치가 존재하지 않아 ‘탈중앙화’가 큰 특징으로 꼽힌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거래할 수 있어 세계 통화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했다. 발행량이 2100만개로 고정돼있어 ‘디지털 금’이라는 수식어로 불리기도 한다.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희소성이 높고 인플레이션을 방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법정화폐가 아니라는 점에서 활용도가 떨어진다. 실제 대부분 국가에서는 비트코인을 화폐 대신 가상자산으로 본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은 높은 변동성이다. 디지털 금이라는 인식과 함께 투기적 자산이라는 인식이 공존한다. 실제 가격 변동 수준이 ‘롤러코스터’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클 때가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1비트코인은 99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1억원 선이 무너졌다는 점에서 시장은 공포에 휩싸였다. 투자심리도 얼어붙었다. 더 큰 문제는 어디까지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하한선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블룸버그>에 따르면 1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1일(현지시각) 한때 6만7000달러 선까지 미끄러졌다.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40%나 폭락한 수치다. 어느 자산이나 마찬가지지만 비트코인 역시 관심을 받기 시작한 이후 끊임없이 등락을 계속해 왔다.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은 글로벌 증시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곤 했다. 글로벌 증시가 상승하면 비트코인 가격도 오르고, 내리면 같이 떨어지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하락장에서는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났다. 글로벌 증시는 올랐는데 비트코인 시세는 되레 내려간 것이다.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코스피 지수를 보고 비트코인, 알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끝모르고 떨어지는 시세를 보면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젊은 세대 ‘한탕’ 노려

특히 ‘코인 열풍’에 탑승한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서 폭락에 따른 충격이 커지고 있다. 주가지수보다 변동성이 큰 점, 특정 시간에만 열리는 주식시장과 달리 종일 매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잘만 하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다는 생각이 젊은 세대 일부에 파고들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전형인 셈이다.

실제 비트코인 시세가 고점에서 반 토막이 될 정도로 떨어졌을 당시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큰돈을 잃었다는 내용의 글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왔다. 반등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제기됐다. 이미 비트코인을 많이 가지고 있던 이른바 ‘큰손’은 진작에 다 빠져나갔다는 말까지 돌았다.

한때 가상자산 선물투자로 3800억원 이상의 평가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국내 유명 가상자산 투자자인 ‘워뇨띠’는 비트코인 폭락장에서 200억원가량 손실 본 내용을 캡처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비트코인 시세 1억원 선이 깨진 날이었다.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투자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사야 한다고 매수를 부추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이라도 손절해야 한다며 매도를 권한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전문가 사이에서도 다른 예상을 내놓는 것을 두고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원래도 증시보다 ‘무빙’이 요란한 시장인데 전 세계 경제 상황과 맞물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에서 비트코인 관련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들어 일어난 사고로 비트코인의 불확실성이 두드러지고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동안에도 비트코인 관련 사건·사고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주체가 사정기관과 거래소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화폐냐
아니냐

지난달 23일 검찰이 관리·보관 중이던 비트코인 압수물이 상당량 사라진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자체 조사한 검찰은 “피싱 피해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비트코인은 전 세계에 분산된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이어서 전자지갑에는 비트코인 자체가 담겨있는 게 아니라 비트코인에 접근·처분할 수 있는 열쇠(보안키)가 존재한다.

검찰의 해명대로라면 누군가 전자지갑을 연결해 둔 채로 온라인 피싱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보안키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압수물 확인 과정에서 피싱 사이트에 잘못 접속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검찰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심어 보안키를 탈취하는 등의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검찰이 분실한 비트코인은 총 400억원대를 호가한다고 한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비트코인 시세를 맞추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30대 딸 A씨로부터 경찰이 압수한 320.88개다. 검찰은 2022년 경찰이 송치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진 A씨의 사건을 넘겨받으면서 범죄 수익으로 환수한 해당 비트코인도 함께 넘겨받았다.

경찰은 비트코인 인출 접근 권한을 네트워크망에 연결되지 않은 전자지갑 ‘콜드 월렛’에 보관해 통째로 검찰에 인계했다. 이후 검찰은 A씨를 도박공간개설 등 혐의로 기소했고 그는 2024년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압수한 비트코인 전량도 몰수 판결이 났다.

검찰은 지난달 8일,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이후 보관 중이던 비트코인을 국고로 환수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분실 사실을 확인했다. 분실한 시점과 확인한 시점이 다른 것이다. 검찰은 매달 진행하는 압수물 점검에서 휴대용 저장 매체 실물만 확인했고 잔고 등은 확인하지 않아 5개월 동안 분실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묘연한 행방
음모론까지

검찰의 압수물 부실 관리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자지갑은 지난해 8월 담당자 인계 과정에서 털린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관리 담당자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인수인계를 위해 전자지갑 내 비트코인 접속 권한 조회 등을 시연했다.

이때 전자지갑 접근 정보를 담아둔 휴대용 저장 매체가 피싱 범죄에 노출되며 탈취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현재 탈취 경위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고 동시에 분실한 비트코인을 환수하는 작업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지난 6일에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비트코인 오지급 사건, 이른바 ‘유령 코인 사태’가 일어났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단위를 잘못 쓰는 바람에 일어난 일인데, 가상자산 거래소의 부실 관리 문제부터 이용자 손실, 2차 피해 등의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빗썸은 이날 저녁 7시께 자체 ‘랜덤박스’ 이벤트로 1인당 2000원~5만원의 당첨금을 지급하려다 ‘원’ 단위를 ‘비트코인’으로 잘못 입력했다. 보유 포인트로 이벤트에 참여한 이용자는 695명이었으며 빗썸은 그중 랜덤박스를 오픈한 249명에게 총 62만원을 주려다 62만개의 비트코인을 지급했다.

1인당 평균 2490개로, 당시 시세가 비트코인 1개당 9800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무려 2440억원 상당이다.

빗썸이 당첨금을 비트코인으로 잘못 지급한 시간은 6일 오후 7시, 오지급을 인지한 시간은 7시20분, 거래와 출금을 차단하기 시작한 게 7시35분, 차단이 완료된 게 7시40분이었다. 오지급부터 차단까지 40분이 걸린 셈이다.

문제는 일부 이용자가 당첨금으로 받은 비트코인을 즉시 매도하는 과정에서 시세가 급락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시세가 폭락하자 공포를 느낀 이용자가 비트코인을 파는 일(패닉셀)이 일어났고 담보로 맡긴 비트코인 평가액이 급락하자 강제청산된 경우도 발생했다.

검찰, 거래소발 사태에
불확실성 커지고 불신↑

빗썸에 따르면 잘못 지급한 비트코인 중 99.7%에 해당하는 61만8212개는 즉시 회수됐다. 나머지 비트코인 1788개 상당은 일부 당첨자들이 이미 매도한 상태였고 이 중 93%는 추가로 회수했다. 결국 125개 상당의 원화와 가상자산은 아직 회수하지 못했는데 이 규모는 총 130억원대에 이른다.

동시에 빗썸이 실제 보유한 수량보다 많은 비트코인이 실수로 지급됐다는 점에서 ‘유령 코인’ 논란이 같이 불거졌다. 빗썸이 위탁받아 보관 중인 비트코인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4만2619개였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62만개의 비트코인이 지급됐기 때문이다.

빗썸 측은 “지갑에 보관된 코인 수량은 엄격한 회계 관리를 통해 고객 화면에 표시된 수량과 100%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이번 오지급 사고로 회수하지 못하고 이미 매도된 비트코인 수량은 회사 보유 자산을 활용해 정확히 맞출 예정”이라고 했다.

빗썸 측은 오지급 과정에서 발생한 이용자 피해에 대해서도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상자산 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64개 계좌에서 강제청산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규모는 최소 수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부 이용자의 매도로 발생한 강제청산은 현황 파악 후 전액 보상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사상 초유의 사고에 정부도 나섰다. 문제는 조사 과정에서 빗썸이 과거에도 2차례나 오지급 실수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특히 경쟁사들이 실시간에 가까운 시차를 두고 자산을 대조하는 것과 달리 하루에 한번만 장부를 대조하는 등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에 심각한 허점이 확인됐다.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인데도 불구하고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던 것이다. 또 과거 비슷한 사고가 2건 발생했는데도 대책 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전형적인 ‘인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금융당국
정조준

금융당국은 빗썸의 오지급 사태를 계기로 업비트·코인원·코빗 등 4개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현장점검에 착수했다. 보유자산 검증 체계와 내부 통제 전반을 살피겠다는 취지다. 이번 사태가 가상자산 거래소의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모든 거래소로 점검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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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 기류 속에서 홀로 승리한 오 시장은 국민의힘에 불어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과연 오 시장은 성공적인 시정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4일 오전 개표 결과,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기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 수성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최소한의 수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최소 수성 이로써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상 첫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은 48.94%를 득표해 48.34%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시장을 약 5%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개표 후 13시간이 지난 시각부터 정 후보를 역전해 신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역동적으로 중앙정치에 개입했다.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윤 어게인’에 기반한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에 절윤(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등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오 시장은 당과 거리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 시장이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설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한동안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당 필승결의대회와 지난달 12일 진행된 서울시당 선대위 발대식 모두에 장 대표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한 취지는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모시고 싶다. 변신한 모습으로 지원 와 주시길 촉구한다”며 “국민의힘 자체가 중도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시당을 배경으로 서울 내 자치구를 둔 의원들과 함께 선대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의 승리는 정치학적으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의 개인화는 정당 등 집단적 배경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 등 이미지가 정치 과정의 핵심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 외엔 국민의힘이라는 브랜드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과 오 시장을 분리해서 평가한 후 오 시장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브랜드가 오 시장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 지지 기반이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막은 셈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경기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지지 선언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주목한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갈등·상호 폭로였다. 유 후보의 승리는 범여권의 내분 속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뒤베르제 법칙에 따르면,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유 후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참패 속 홀로 선 오…당과 거리 두고 5선 신승 유 어부지리·한 자력 생존…장동혁 책임론 불씨 하지만 두 후보가 화합하지 못하면서 평택을 선거구도는 다당제로 전개됐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각각 일정한 경쟁력을 가진 채 분열했기 때문에 범여권 지지자의 표심은 사실상 양분됐다. 반면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와 조 후보만 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유 후보의 표를 결정적으로 잠식하지는 못했다. 김 후보·조 후보·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진보 성향 범여권 후보들은 각각 28.77%·27.44%·2.95%를 득표했다. 반면 유 후보는 34.83%를, 황 후보는 6.19%를 득표했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다수 대결 구도 속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평택을 결과는 뒤베르제 법칙의 기계적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다. 유 후보는 34.83%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분열하면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범여권 후보의 분열은 뒤베르제 법칙이 기대하는 심리적 효과인 사표 방지를 위한 유력 후보 결집 효과 실현을 방해했다. 따라서 유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의 조직적 승리라기보다, 범여권 분열과 단순다수대표제의 기계적 효과가 맞물린 결과에 가까웠다.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를 물리치고 신승했다. 이로써 한 전 대표는 오 시장과 함께 자력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월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던 장 대표 등 당권파는 매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다. 통상적인 정치적 관례대로라면 선거에서 대패한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일괄 사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돼 당의 혼란을 수습한 후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선거 이전부터 “장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일 SBS 선거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나는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고하는 출구조사 발표를 듣는 즉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장 대표가 억울해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상당수 후보들이 장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장 대표로서는 할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장 대표를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청년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거나 궐위되면 지도부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치열한 혈투 치명적 내상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은 신동욱·김민수·양향자·김재원·우재준 최고위원이다. 이들 중 신동욱·김민수·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반적으로 장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장 대표의 거취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서 신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친윤계로서는 장 대표를 섣불리 사퇴시켰다가 오 시장이 당권 장악까지 시도하는 더 큰 강풍을 맞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사퇴시킨 후 신 최고위원을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설이 돌아다녔지만, 말 그대로 설로 끝났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가 충돌했던 지난 1~2월에도 충돌했던 핵심 요소는 절윤 등 노선 변경 여부였을 뿐, 장 대표의 거취는 아니었다. 인위적인 지도부 붕괴는 사실상 어렵다. 최고위 자체가 장 대표에겐 벙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티면 끌어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구 친윤계는 참패 속에서도 당내 발언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5.05%를 득표하는 등 핵심 지역 기반 대구에서도 예전과 다른 정치적 정서가 확인됐다. 따라서 구 친윤계로서는 “지역 기반 수성을 위해 당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과 “장 대표가 관례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이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신 최고위원 등 대안 인물을 찾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과 영남권에 기반을 둔 구 친윤계가 양대 축을 형성한 과두적 구조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과두제의 철칙은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헬스가 지적했던 근거는 ▲관료화와 분업 ▲대중의 무관심과 무능력 ▲지도부의 권력 독점 등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에 작용하는 것은 관료화와 권력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로 인해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부는 권위 유지를 위해 정보·자원을 통제한다. 구 친윤계 대안 옹립? 그간 구 친윤계는 “당의 이익보다 자신의 권력 자산을 보존하려고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왔다. 장 대표가 구 친윤계의 사퇴 공세에 맞설 수단은 당헌·당규가 벙커로 만든 지도부의 견고함밖에 없다. 영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역설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반이 영남에 과도하게 집중돼있기 때문에 연이은 선거 패배라는 외부적 충격이 발생할수록 당내 권력구조 강화로 회귀하려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 친윤계에 대해서는 “당을 파벌·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한 오 시장은 지금까지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모두를 상대해 왔던 한 전 대표와는 다르다. 한 전 대표는 구 친윤계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국민의힘 복당 이후 당권 장악을 거쳐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복당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복당하더라도 국민의힘 내 소수 계파인 친한(친 한동훈)계 수장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당권·대권 도전을 위해선 당내 구 친윤계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당선돼 자력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태풍 속의 찻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5선에 사실상 자력으로 성공한 오 시장이야말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는 당 대표직 유지와 생존이 급박하기 때문에 수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변혁하려는 모순을 저지를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차기 권력구도는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여러 쟁점을 놓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몇 달 안으로 결정해야 할 논점만 해도 ▲장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여부 및 위원장 임명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점 등이며,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최고위는 장 벙커…영남 기반 구 친윤도 셈법 복잡 복당 벽 마주할 한…‘오세훈계’ 편성 당 흔드나 국민의힘 내 수도권 거점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따라서 오 시장이 잔존한 수도권 내 비친한계 성향 중도보수계열 인사들을 규합해 오세훈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직접 정당 대표를 맡기는 어렵다. 오 시장으로서는 오세훈계를 구성해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할 수 있는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 대리인으로,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당권파와 겨뤄가면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춘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 서울 내 험지인 도봉갑에서 당선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민주당 정 후보 저격 활동에 집중했던 김재섭 의원 등을 거론한다. 이에 맞서 구 친윤계는 전통적인 논리를 동원해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이후 영남권 중심 구 친윤계의 논리는 “수도권이야말로 늘 국민의힘 선거 패배의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오세훈계가 새롭게 편성된다면, 사안에 따라 오세훈계와 친한계가 구 친윤계의 공세에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장 대표의 정치적 수명이 이 사태에 아예 참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변수는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관리 논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직면한 참패의 여파를 수습하고 당을 뭉치게 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통제 가능한 외부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해 내부적 결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보수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의힘에선 오히려 내부를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이 당 안에서 강해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도록 돕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대권에? 부정선거론과 장 대표의 영향력 유지가 겹쳐지면,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일시적으로 연합해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선 네 갈래 권력 투쟁인 ‘사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크게는 영남·강경 노선과 수도권·확장 노선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구·경북 중심 구 친윤계 ▲지도부란 벙커에 있는 친 장동혁계(당권파) ▲친 한동훈계 ▲무계파·수도권 중심 친 오세훈계 등으로 편성될 수도 있다. 계파의 세분화 가능성 중심에는 오 시장이 있다. 태풍의 눈이 된 오 시장은 과연 성공적인 서울시정 수행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대권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