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갤러리현대가 새해 첫 전시로 ‘화이도’를 준비했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6명의 작가가 작품 75점을 소개한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의 ‘회화적 원형’ 탐구와 ‘원형’의 동시대적 시각 언어로의 변주, 확장을 살핀다.
회화의 원형은 특정한 시대나 양식을 지칭하기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시각적 감수성, 화면 구성 방식, 세계를 인식하는 태도 전반을 아우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6명의 작가는 이 같은 원형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계승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 시점의 일상적 감각과 기술, 새로운 매체와 현재의 미술 언어를 통해 다시 활성화한다.
그림으로
그들의 작업은 과거의 도상과 이미지를 호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미 우리 안에 내재하는 시각적 DNA를 현재의 언어로 확장한다. 나아가 우리의 DNA에 새겨진 한국 전통 회화의 고유한 형식과 정신,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다.
전통은 과거의 양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시선과 인식의 구조 속에서 새롭게 작동하는 현재형의 언어다. 따라서 전통은 오늘의 회화적 실천 속에서 다시 발현되며 지금 이곳의 감각으로 확장되고 도약하며 새롭게 탄생한다.
‘화이도’는 전통을 고정된 과거의 유산이 아닌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갱신돼 온 살아 있는 개념으로 재정의한다. 여기서 한국성 혹은 한국적이라는 것은 역사나 제도권 미술의 계보로 한정하지 않으며,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배제되거나 금기시됐던 무속적 세계관과 감각까지 포괄하는 확장된 개념이다.
미신과 과학, 기술과 인간,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동안 전통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체계화되거나 명명되지 못한 채 일상에 스며들어 존재해 온 한국적 DNA를 현재 시점에서 재조명한다.
전시 제목인 ‘화이도’는 ‘그림으로 길을 삼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6명의 작가는 특정한 양식이나 해답을 따르기보다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각자 완성한 ‘길’이 교차하며 드러나는, 전통부터 현재까지 지속돼 온 우리의 미감을 소개한다.
갤러리현대 신관 1층에는 김지평, 2층에는 박방영과 이두원, 지하 1층에는 김남경, 안성민의 작품이 걸린다. 정재은의 작품은 두가헌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김지평은 동아시아 회화의 전통적 형식과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을 현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전통과 현대,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책가도, 산수화, 장황 등 전통적 형식을 고정된 틀로 보지 않고 시대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열린 구조로 바라본다.
박방영은 한국의 전통 서예와 회화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재해석하며 동서양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1985년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실험적 설치미술 그룹인 ‘난지도’를 창립하며 평면 회화에서 대규모 설치미술로 전환했다.
6명의 작가, 75점의 작품
DNA에 자리한 전통·감각
그러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뉴욕에 체류하며 세계 미술을 접하는 과정에서 한국 서예의 획과 동양 미학의 본질인 획, 풍격, 정수, 여백에 대해 성찰했다.
이두원은 2023년 런던 사치갤러리, 2024년 뉴욕 ACA갤러리에서 각각 개인전을 연 이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25년 뉴욕 아모리쇼를 대표하는 13인의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다. 제도권의 미술교육 대신 인도, 파키스탄, 네팔, 조지아, 태국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수집한 천연 재료와 한국 전통 먹을 결합해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안성민은 민화적 소재를 현대적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을 넘어 구조적으로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방법으로 전통을 재해석한다. 한국 민화의 도상에서 출발하되 이를 서양 문화와 현대인의 일상에서 발견되는 오브제와 대체시키며 새로운 서사를 전개한다.
김남경은 조선시대 책가도의 구조를 출발점으로 자연 직물과 금속박을 결합한 화면을 통해 기억과 사유가 축적되는 내적 풍경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책가도는 단순히 책과 기물을 나열한 정물화가 아니라 지식과 학문, 삶의 태도와 이상이 한 공간에 겹친 사유의 장소다.
작가는 자로 잰 듯한 직선과 명확한 구조의 책가도에서 현대성을 발견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완결된 틀은 시선과 감정을 고정하는 구조라는 것을 느낀다.
두가헌갤러리에서는 정재은의 작품을 소개한다. 왕권의 상징으로 여겨져 어좌나 어진 뒤에 설치됐던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 물, 소나무로 구성돼 음양오행사상, 도교적 세계관, 전래의 산악 신상을 함께 담은 대표적인 궁중회화 도상이다.
정재은은 일월오봉도의 협폭 삽병(받침대에 끼워 넣을 수 있는) 형태를 차용해 동일한 화본을 기반으로 한 연작을 제작했다. 채색의 농담, 선의 밀도, 명암의 처리에 따라 화면의 분위기를 달리하며 반복 속에서 무수한 변주 가능성을 보여준다.
길을 삼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회화적 원형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보고, 느끼고, 구성하는 방식의 근저에 흐르는 감각이다. 이번 전시는 그 감각이 작가들 안에서 어떻게 다시 발화되고 있는지를 드러내며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가능성, 그 확장과 변주를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다층적이고 열려 있는 실천의 장으로서 현대 한국 회화의 또 다른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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