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3 지방선거를 향한 정치의 시간이 12월 들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1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3명이 잇따라 서울·경기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서 당내 경선은 사실상 전면전에 돌입했다.
최고위원회의 축이 흔들릴 정도의 조기 경선 기류는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핵심 전략 축으로 올라섰다는 의미이자,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선거판이 동시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신호다.
광역단체장 선거는 대체로 여야가 대등하게 맞붙지만, 경상도와 전라도만큼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 두 지역에서는 본선보다 경선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방선거 때마다 같은 당 후보끼리 치열한 내부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내년 경상도 광역단체장 선거의 흐름은 조금 다르다. 민주당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출마를 예고하면서 아직 국민의힘 후보 간 경쟁구도는 뚜렷하게 잡히지 않고 있다. 반면 전라도는 국민의힘이 후보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여서, 민주당 내에서 벌써 접전이 시작된 분위기다.
특히 J특별자치도가 그렇다. 2022년과 동일하게 내년에도 K 지사와 A 의원의 재대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고, 여기에 L 의원이 가세하면서 전국 어느 지역보다 민주당 경선 조기 과열 양상이 짙어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경쟁 방식이 지역을 공격하는 정치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후보를 겨냥한 공세가 결국 J도 전체를 ‘실패 지역’으로 낙인찍는 방향으로 번지면 안 된다.
최근 A 의원은 “AI·재생에너지 국가사업에서 J도가 줄줄이 제외됐고, 인공태양까지 실패했다”며 공세를 폈다. 그러나 국가 대형 프로젝트의 당락은 단순히 단일 단체장의 성과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중앙부처의 전략 축, 인근 지역과의 정치적 협력·경쟁, 지역 국회의원의 설득력, 산업계와 연구기관의 준비 등 복합적 구조가 결합해야 성과가 나는 사안이다. J도뿐 아니라, 전국 모든 광역단체가 동일한 구조 속에서 경쟁한다.
이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돼왔다. 경기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재명 당시 도지사가 추진한 일부 도시개발 정책들이 경선 과정에서 같은 당 후보들에 의해 ‘대장동 프레임’으로 정치화되면서, 실제 사업의 구조적 문제와 정책적 성과까지 한꺼번에 부정당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경선용 공격은 결국 대선 국면 전체로 이어져 ‘정책 능력’과 ‘도시개발 역량’ 자체에 대한 불신을 낳았고, 경기도 주요 도시개발 프로젝트는 중앙에서 ‘정치 리스크가 큰 지역’으로 인식되는 부작용까지 초래했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1~2022년 부산시 경선 국면에서는 현직 시장의 핵심 사업인 북항 재개발과 가덕신공항이 “총체적 실패” “추진 동력 상실” 같은 표현으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두 사업 모두 국토부·해수부·기재부가 얽힌 초대형 국책사업으로, 단일 광역단체장이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격이 반복되자, 중앙부처 내부에서도 ‘부산은 내부 합의가 부족한 지역’ ‘추진 방향성이 불안정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협의 속도가 실제로 늦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광주의 경우는 더 구조적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정부·현대차·광주시의 삼자 합의가 핵심인데, 경선 국면에서 후보들 간의 공방이 격화되며 중앙부처가 광주 프로젝트 전체를 ‘정치적 지속 가능성이 불안한 지역’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반도체 특화단지 도전에서도 같은 프레임이 반복되며 광주는 실제 경쟁력 대비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지역 내부의 경선 공격이 곧 ‘지역 자체의 리스크’로 번지는 구조는 지방선거에서 특히 치명적이다. J도는 지금 AI 컨소시엄, 재생에너지 메가그리드, 상용차 자율주행 산업벨트, 새만금 글로벌 기업 유치 등 전략적 프로젝트가 중첩돼있다.
이런 시기에 ‘지역이 줄줄이 실패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중앙부처는 물론, 민간 투자자들까지 불확실성을 느끼게 된다.
인공태양 유치 실패도 같은 맥락이다. 기재부·산업부·과기정통부가 얽히는 초대형 국가사업에서 지역의 준비는 물론 정치권의 전국 단위 조정능력까지 필요하다. 특정 단체장에만 실패의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이유다. 부산의 메가시티 구상, 광주의 반도체 도전, 강원의 우주산업 클러스터 역시 같은 구조다.
문제는 이런 복합성을 무시한 공격이 경선 국면이 시작되면 지역 전체의 신뢰도 하락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우리 지역은 계속 실패했다” “현직이 무능하다”는 프레임은 단기적으로 상대 후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지역발전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는 J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공통의 구조적 문제다.
지방선거는 단순히 “누가 단체장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경선은 “누가 더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겨루는 장이 돼야 한다.
산업정책, 교육·교통·문화전략, 도시 구상, 지역대학 플랫폼 등 각 후보가 설계할 미래가 핵심이다.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확인하는 대결은 지역을 약화시키고 “누가 더 잘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결만이 지역을 강화한다.
정치인의 한 문장은 지역경제, 국책사업 유치 경쟁력, 행정조직의 사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선이 과열될수록 그 무게는 더 커진다. 지역을 공격하는 정치는 결국 상대 후보가 아니라, 지역 자체의 패배로 귀결된다.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는 전국 모든 지역의 후보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역을 깎아내리며 승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을 키우며 시민의 신뢰를 얻는 방식으로 경쟁해야 한다. 경선이 ‘내부 파괴’가 아닌 ‘미래 경쟁’이 될 때, 본선에서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유권자도 “누가 대통령과 가깝냐” “누가 당 대표의 지지를 받느냐”를 보지 말고, 지역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후보가 누구인지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지방권력은 중앙권력의 그림자가 아니라, 주민 삶의 최전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