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헌법존중 TF, 명분 앞세운 권력 확장 논란

정부가 지난 21일 ‘헌법 수호’를 기치로 내걸고,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에 가담하거나 협조한 공직자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인사 조치를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49개 중앙행정기관에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국무총리실이 TF 출범을 발표한 지 불과 10일 만이다.

이는 12·3 비상계엄 이후 흐트러진 헌정 질서 회복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내세운 매우 중대한 시도지만, 실제 작동 방식 속에는 공직사회를 재편하고 권력구조를 재정렬하려는 정치적 기류도 함께 감지된다. 그 영향은 향후 공무원사회 조직문화 전반에까지 미칠 수밖에 없다.

헌법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대의는 숭고하지만, 그 대의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느냐에 따라 그것은 국가적 원칙이 될 수도 있고, 정권적 도구로 변질될 수도 있다.

헌법수호 취지는 정당하나 절차가 관건

정부가 TF를 추진한 직접적인 이유는 12·3 비상계엄 사태가 남긴 의혹 때문이다. 당시 일부 공직자들이 계엄 추진 과정에 사전 모의, 정보 제공, 실행 지원, 사후 정당화 등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는 단순한 의혹으로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공직자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그 질서를 해쳤거나 흔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특히 헌정 질서 위협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사안인 만큼 정부가 신속하게 진상규명에 나서는 것은 정책적 관점에서 볼 때 타당한 판단이다.

정부가 형사 처벌보다 행정 책임 규명을 강조한 이유도, 수사와 재판은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해 금방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을 빠르게 정비하려면 행정적 조치가 더 실용적이라는 판단이다. 따라서 TF의 대의적 목적은 분명 정당하며, 필요성도 충분하다는 점에서 출발 자체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49개 기관 TF, 행정권력 확장 시도?

그러나 문제는 TF의 목적이 아닌 작동 방식에 있다. 정부는 중앙행정기관 49곳 모두에 TF 설치를 지시했고, 각 기관은 최소 10명 이상의 인력을 TF에 투입해야 한다. 총리실은 외부 전문가까지 포함한 총괄 TF를 구성해 전 부처를 수직적으로 조정한다.

이는 단순한 조사 조직이 아니라 정부 전체에 행정적 중층 권력구조를 새롭게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사 방식 또한 인터뷰, 서면조사, 내부 제보, 언론 보도, 국정감사 기록, 디지털 포렌식까지 동원하는 매우 포괄적이며 사실상 수사처럼 깊고 넓게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공직사회는 이 같은 조사 TF를 ‘중립적 사후 점검’이 아니라, ‘권력의 전면 개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행정조사와 인사평가가 결합된 구조는 결국 TF 자체를 조직 재정렬의 중심기구로 만든다. 이로써 TF는 단순한 목적 수행을 넘어 공직 지형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작동 장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방부 TF 50명, 군 사기 저하와 정치화 우려

정부 부처 중 가장 관심 받는 곳이 국방부 TF다. 국방부가 50명 규모의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를 가동한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의혹을 정밀 조사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합참과 각 군 감찰 기능을 통합한 구성은 조사 체계를 일원화해 책임 규명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합참의장 교체와 주요 지휘부 전원 교체가 이어지며 군 내부에서는 사기 저하와 정치 개입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조사 범위가 방대하고, 판단 과정에서 정치적 해석이 덧씌워질 위험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8월부터 진행한 자체 조사 결과를 곧 공개하겠다고 밝히며 사안의 엄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TF가 군의 책임 구조를 바로잡고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려면, 조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투명성 확보와 군 조직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는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제보센터, 내부정의인가 새로운 감시체제인가

이번 TF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제보센터 운영은 TF가 가진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제보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며 무분별한 투서를 차단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공직사회 내부에서는 ‘상호 감시체계’가 도입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제보센터가 설치되면 구성원은 자신이 제보할 권리를 갖게 되는 동시에 제보당할 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한다. 특히 비상 상황 이후 정권교체기의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제보 구조는 조직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자기검열을 강화한다.

행정조직처럼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제보의 진위보다 제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침묵과 조심성이 조직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제보센터는 ‘헌법 수호’라는 이름 아래 운영되지만, 실제로는 구성원 간 긴장과 경쟁을 심화시키는 정치적 압박 장치가 될 수 있다.

공정성 논란이 만든 구조적 불신

총리실은 TF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했다고 설명하지만, 문제는 이 구성원의 면면이다. 임태훈 소장, 김정민 변호사, 윤태범 교수, 최종문 전 경찰청장 등은 각각 전문성은 인정받지만, 현 정부와 정책 방향 또는 이념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성향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다.

공정성이란 실제 공정한지보다 ‘공정해 보이느냐’가 더 중요한 정치적 개념임을 고려하면, 현재 자문단은 균형감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TF는 헌법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는 만큼 자문단 구성은 정치적 스펙트럼 전체에서 폭넓은 신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TF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불신을 해소하기 어렵다. 자문단의 판단과 조언이 아무리 전문적 근거에 기초하더라도, 그 결론이 특정 진영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순간 그 권위는 급격히 흔들린다.

특검보다 앞선 TF결정, 사법질서와 충돌

정부는 TF가 행정조사이고 특검은 형사조사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실제 조사 범위를 보면 TF가 담당하는 영역과 특검이 다루는 범위는 상당히 중첩된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 구조다. TF는 내년 1월31일 조사 완료 후 2월13일까지 인사 조치를 마무리하도록 설계돼있는 반면, 특검은 여러 절차를 감안하면 훨씬 더 시간이 걸린다. 이는 사실상 TF가 특검보다 먼저 공직자의 정치적·행정적 운명을 결정하는 구조라는 의미다.

TF의 판단이 먼저 내려진 후 특검의 결론이 뒤늦게 나오는 구조에서는 특검의 판단은 행정적 판단을 바꾸지 못한다. 즉, 정부는 ‘행정조사’를 명분으로 특검보다 앞서 공직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런 구조는 TF가 헌법을 위한 조직인지, 정권을 위한 조직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TF가 만드는 공직사회 재편과 줄 세우기 구조

TF는 그 목적이 무엇이든 그 결과 공직사회에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공직자들은 자신도 TF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끼며, 이는 자연스럽게 조직 내부의 줄 세우기와 충성도 경쟁을 강화한다. 이런 분위기는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 방향까지 미묘하게 바꿔 놓는다.

특정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인사들은 스스로 위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한다. 이 과정에서 TF는 공직사회 내부의 새로운 권력 지형을 형성하는 ‘정치적 필터링 장치’가 된다. 이는 단순한 분위기 변화가 아니라, 공직사회의 구조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TF는 공직사회를 재구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이는 행정적 개혁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재편 프로젝트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TF 자체가 공직사회의 행동을 ‘좌우하는 장치처럼’ 작동되고, 그 결과 정부 취지와 무관하게 정치적 효과를 내는 경로로 흘러갈 수 있다.

헌법존중 명분과 절차의 괴리 심화

헌법은 단지 문서의 규범이 아니라 절차적 정의와 공정성, 중립성의 원칙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번 TF는 빠른 속도, 과도한 범위, 상호 감시 구조, 편향 논란의 자문단 구성, 특검보다 앞선 인사 조치 등 헌법적 가치와 충돌하는 요소들이 다수 존재한다.

헌법을 지키는 조직이라면 무엇보다 절차적 정당성을 최우선해야 하는데, 지금 TF는 그 절차보다 효과와 속도가 앞서 있는 구조다. 명분은 분명 ‘헌법 수호’일지라도 그 방식이 헌법의 절차를 훼손할 수 있다면, TF는 오히려 헌정 질서의 안정보다 불안과 갈등을 키울 위험이 있다.

헌법이 단순 텍스트가 아니라, 절차 속에서 살아 있는 가치라는 원칙을 고려하면 TF의 구조적 설계는 신중함이 부족했던 측면이 크다. 그만큼 초기 설계 단계에서 더 폭넓은 논의와 견제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헌법은 절차로 지켜지고 권력보다 앞서야

이번 TF가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은 정당해도 그 명분을 실현하는 방식이 헌법과 충돌할 때, 권력의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헌법은 국가의 규범이 아니라,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을 제한하는 ‘절차의 철학’이다. 절차는 느리고 불편하며 때로는 비효율적이지만, 그 비효율성이 권력의 폭주를 막아주는 안전장치다.

그러나 이번 TF의 구조는 속도와 범위 면에서 지나치게 크고 빠르며, 공정성보다 선제적 통제를 우선시하는 방식으로 설계돼있다. 제보센터는 상호 감시의 문화를 만들고, 외부 자문단은 중립성 논란을 스스로 키우며, 특검보다 먼저 인사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일정은 사법적 판단 위에 행정적 해석을 덧씌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헌법을 지키고자 한다면, 헌법적 가치인 절차·중립·절제를 먼저 지켜야 한다. 그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TF는 헌법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구조로 변질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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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