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판박이’ 일본 자민당 본색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10.20 13:38:12
  • 호수 1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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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지진’ 흔들리는 열도 보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일본 자유민주당이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를 선출하자, 연정 상대 공명당은 연정 탈퇴를 선언했다. 자유민주당의 위기는 우익 포퓰리스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남긴 문제점으로부터 비롯됐다. 자유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같은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1999년 10월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한 이후 자민당의 오랜 파트너였던 공명당이 지난 10일, 연정에서 탈퇴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균열은 지난 4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선출된 이후 불거졌다. 불과 6일 후 공명당이 실제로 연정에서 이탈하면서, 지난 15일 예정됐던 일본 총리 선거는 오는 21일로 연기됐다.

이대로
정권교체?

자민당이 일본 정계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 이 선거는 자민당 신임 총재가 신임 총리로 인준되는 형식적인 선거였다. 하지만 자민당·공명당 연합은 지난해 10월 제50회 중의원 총선거와 지난 7월 제27회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연이어 참패해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만을 얻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지난해 11월 중의원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총리로 취임했다. 이는 야권의 묵인이 있어 가능했다. 공명당까지 이탈한 상황에서 자민당 총재가 곧바로 총리로 취임하긴 어려웠다.

중의원 27석을 보유한 원내 4당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지난 10일, 총리직 도전을 선언했다. 중의원 148석을 보유한 원내 2당 입헌민주당은 “다마키 대표를 새 총리로 지지할 수 있다”면서 호응했다.

국민민주당은 지난 2020년 구 입헌민주당·구 국민민주당 등이 합당해 현 입헌민주당을 구성하는 데 반대하면서 창당됐다. 따라서 입헌민주당의 다마키 대표 지지 의사는 정권교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야권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제기될 당시 돌았던 시나리오에 따라 일본 야권의 연합이 언급됐을 때의 구도에 따라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공명당의 중의원(전체 465석) 의석 보유 수를 합치면 235석이다. 만약 이들이 모두 뭉치면, 자민당은 2009년에 이어 또 정권을 잃을 수도 있었다.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가 지난 10일 연정 탈퇴 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공명당이 다카이치 총재에게 요구한 연정 유지 조건은 ▲자민당 내 비자금 및 연루 의사 정리 ▲정치자금 제도 개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과도한 외국인 배척 반대 등이었다.

이는 모두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 2022년 사망하기 전까지 당을 지배한 여파로 불거진 문제들이었다. 자민당 정치인들은 파티를 개최해 모금한 정치자금을 보고서에 정직하게 기재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 2022년 공산당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했고, 이 문제를 조사한 가마와키 히로시 고베가쿠엔대학 교수가 도쿄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후 <요미우리신문>이 2023년 11월 보도하면서 수면 위에 올랐다.

이후 자민당은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끄는 지공회를 제외한 모든 당내 파벌을 형식적으로 해체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후속 대책은 뜨뜻미지근했다. 자민당 내에서 탈당 권고가 내려진 의원은 불과 2명이었고, 그 외 연루 의원들은 ▲당원 자격정지 ▲당무 정지 ▲계고 등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다카이치 총재는 자민당 내 파벌 중 가장 많은 연루자가 나온 세이와정책연구회(이하 아베파)의 핵심이자 아베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됐다. 또 다카이치 총재는 정치자금 관련 논란의 핵심이었던 하기우다 고이치 의원을 당 간사장 대행으로 기용했다.

‘아베 후계자’ 등장 “연정 파기” 선언
공명당 조롱한 아소 다로 영향력도 여전

아베파는 오랫동안 극우 정치 논란을 일으켰던 당내 보수 방류 핵심 파벌이었다. 포퓰리즘에 치중해 극우 정치 논란까지 이어졌다. 아울러 다카이치 총재는 ▲이민 규제 강화 ▲영주권 규제 강화 ▲외국인 부동산 매입 규제 ▲경제 안보법 강화 ▲엄격한 난민 심사 등 외국인 관련 정책을 드러냈다.

공명당은 불교 계열 일본 신흥 종교 창가학회를 배경으로 창당됐고,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따라서 공명당은 연정 유지와 관련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와 과도한 외국인 배척 반대를 협상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갈등의 핵심은 역시 돈이었다.

다카이치 총재와 사이토 대표는 당수 회담을 진행하면서 협상했다. 다카이치 총재가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요구 조건은 정치자금 문제였다.

자민당 일각에선 “공명당의 요구를 수용하면, 지방의원들이 대표로 있는 자민당 지부에서 기부금을 받지 못하고, 지역 내 자민당의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공명당은 “자민당의 정치자금 논란 때문에 득표가 줄어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실적 이해득실 문제가 첨예하게 달라 양당은 결국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또 공식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공명당에 제일 치명적이었을 문제는 자민당 및 아베 전 총리 일가와 통일교의 오랜 밀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명당이 창가학회 기반 정당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연정 상대의 핵심 구성원이 다른 종교와 밀착해 정치적 이익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됐고, 전직 총리 암살 사건으로까지 연결됐다.

공명당으로선 명분상으로라도 가만히 두고 보기 어려웠을 개연성이 있다.

공명당이 선호했던 자민당 총재 후보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하 농림상)이었다. 고이즈미 농림상은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기조를 이어받아 무파벌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자민당 내 파벌 정치에 약했던 이시바 총리가 당선되는 과정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 당시엔 선거대책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그는 패배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빠른 중의원 해산 결단 덕분에 더 큰 패배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었다. 이시바 총리에게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던 사람은 바로 고이즈미 농림상이었다.

사이토 대표는 연정을 파기한 후에도 고이즈미 농림상에 대해선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이토 대표는 지난 10일 연정 파기 후 NHK와의 인터뷰에서 “고이즈미 농림상과는 정치자금 관련 규제 강화와 관련해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베파’
핵심 파벌

고이즈미 농림상도 같은 날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공명당과 고이즈미 농림상의 반응은 다카이치 총재를 더욱 궁지로 몰려는 조치로 이해됐다.

반면 다카이치 총재는 당직 인선에서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끄는 지공회 인사들도 발탁했다. 아소 전 총리는 부총재를 맡았고, 스즈키 슌이치 전 재무상은 간사장으로 발탁했다. 평소 망언 제조기로 유명한 아소 전 총리는 공명당에도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23년 9월 후쿠오카 강연 도중 공명당 간부들을 일컬어 “가장 움직이지 않는 암적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가 공명당을 비난했던 이유는 “공명당이 일본 정부의 반격 능력 보유 방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었다. 공명당의 연정 파기엔 지공회 인사 발탁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공명당과의 결별은 자민당에 큰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였다. 공명당이 자민당에 소중한 파트너였던 핵심 이유는 종교 정당 특유의 조직력이었다. 공명당의 조직력은 선거에서 당 규모 이상의 영향력을 보여줬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서로의 후보가 출마한 지역구엔 공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자민당도 공명당 특유의 조직력에 많은 덕을 봤다.

공명당의 연정 탈퇴 선언 이후 일본 정계에선 다양한 이합집산 시나리오가 거론됐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시나리오는 야권이 모두 뭉쳐 정권을 차지하는 방안이었다. 지난 1993년 제40대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자, 7개의 야당이 뭉쳐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를 필두로 한 내각을 출범시켜 정권을 차지했던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각료 배분 문제부터 원활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결국 호소카와 내각과 후임 하타 쓰토무 내각은 합쳐서 불과 1년도 이어지지 못했다. 다마키 대표는 원내 4당 대표라서 설령 총리가 되더라도 스스로 탈당했던 입헌민주당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계엄 이후
난맥상 비슷

이합집산에 따른 조율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당시처럼 정권교체의 흐름이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다카이치 총리 취임을 방치한 후 여소야대 정국 속 자민당의 몰락을 유도해 완전히 정권을 접수하자”는 구상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다카이치 총재가 총재직만 유지하고, 이시바 총리가 유임하는 일명 ‘총총 분리’ 가능성도 거론됐다. 문제는 “이시바 총리가 이를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었다. 의원내각제 정치 체제에서 집권당 수장이 아닌 총리의 위상·영향력이 얼마나 낮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시바 총리로선 현재 자민당의 난맥상이 아베·아소 전 총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서 할 말이 많았다. 두 전직 총리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취임 이후부터 사실상 상왕으로 군림하면서 자민당의 현재 난맥상을 만들었다. 자민당에서 형식적으로라도 파벌을 해체할 당시, 이에 홀로 불만을 품고 협조하지 않아 여전히 지공회 수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아소 전 총리다.

다카이치 총재가 사퇴하고, 이시바 총리가 두 직책 모두 유임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당시 이시바 총리는 이미 사임 의사를 밝혔다. 게다가 당내 영향력이 미약해 아베파·아소파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당내 혼란의 여파를 내각 지지율 하락으로써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도 여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 외에도 다카이치 총재 사퇴 후 고이즈미 농림상이 새 총재가 돼 총리 선거에 출마하는 구상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다카이치 총재의 사퇴를 전제로 하는 구상은 다카이치 총재의 정치적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자민당이 처한 현 상황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 드러난 난맥상과 비슷하다. 다카이치 총재가 선출된 것 자체가 국민의힘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쌍권 체제’ 출범 ▲강경 보수 성향 김문수 전 대선후보 선출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으로 장동혁 대표 선출 등 흐름으로 이어진 것과 비슷하다.

특히 다카이치 총재는 아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이었다. 마치 권 전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나 당 대표로 선출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국민의힘 모두 통일교 밀착 의혹
과도한 우익 포퓰리즘도 선거 연패 이유

양당의 문제점을 드러낸 핵심 요소가 통일교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3대째 통일교와 밀착했단 사실이 밝혀진 아베 전 총리는 통일교에 과도하게 몰두한 어머니로 인해 피해를 본 야마가미 데쓰야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권 전 원내대표는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한학자 통일교 총재도 지난달 구속됐다. 국민의힘과 통일교의 밀착 의혹은 여전히 김건희 특검의 핵심 수사 내역으로 통하고 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 등 장외에서 강경 보수 집회를 주도하는 세력과도 명백하게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양당이 당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아베 전 총리와 윤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자민당은 연이어 선거에서 패배했고, 공명당이 연정에서 탈퇴해 정권을 빼앗길 위험에 처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구속된 여파는 국민의힘도 함께 치르고 있다. 대선 패배에 이어 수시로 정당해산심판 회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당내 의원 상당수는 3대 특검(김건희·내란·채 상병)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도 자민당과 국민의힘은 과거와 제대로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자금 문제를 직접 이유로 공명당으로부터 탈퇴 선언을 들은 것처럼, 김건희 특검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명태균 게이트 연루 관련 수사도 이어나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 이시바 총리가 아베파·지공회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그들의 압박·뒷감당에 시달리다가 사퇴를 선언했다는 것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이들과 고이즈미 농림상은 중도층을 설득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공명당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이들은 당내 강경파의 영향력을 이기지 못해 사퇴·총재 선거 낙선이란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국민의힘에서도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은 대선후보·당 대표 경선서 연이어 낙선하는 등 구상했던 당내 혁신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진보 대결이 명확한 정치 구도에선 중도층 설득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강경파는 선명 노선을 주장하면서 정치적 순혈성을 강조한다. 이는 당내 외연 확장을 차단하면서 강경파만 득세하는 정당으로 축소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잡아 당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다. 현 상황은 정당의 존재 목적 자체가 흔들리는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다.

중도층 설득
대단히 중요

아베 전 총리는 우익 포퓰리스트였다. 국민의힘 주변을 휘감는 강경 보수 유튜버도 포퓰리스트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 대표는 그들의 도움으로 대표가 된 후 그들과 명확하게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강성 포퓰리즘은 중도층의 비호감으로도 연결된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잃었듯이 자민당도 정권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당을 뿌리까지 장악한 강경 보수와 토착 세력은 혁신을 방해한다. 국민의힘에선 더는 당 혁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다카이치 총재는 공명당의 연정 탈퇴를 눈앞에 두고도 정치자금 문제 정리를 분명하게 선언하지 못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강경 보수 성향 일본유신회와 연정 합의를 통해서 오는 21일 총리 취임이 확실시된다. 다만 부패와의 절연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부패와의 절연은 보수 세력의 시대적 과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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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