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임대’ 비주류서 주류로

최근 주택시장에서 민간임대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치솟는 분양가와 대출 규제, 전세 사기 등 시장 불안 속에서 실거주 중심의 대안 주거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아파트의 전세가 부담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가계부채 강화 관리방안’을 발표한 이후 수도권의 아파트 전세 매물이 줄어든 가운데 최근 발표한 정책에서도 전세대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전세가
부담 ↑

지난달 7일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은 ▲규제 지역 내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상한(기존 50%)을 40%로 강화 ▲주택 매매 임대사업자 대상 수도권 규제 지역 내에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제한 ▲1주택자의 수도권 규제 지역 내 전세대출 한도 일원화(2억원) 등의 내용을 담았다.

앞서 정부는 6·27 부동산 대책에서도 수도권 규제 지역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 가입하는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90%에서 80%로 강화하는 대출 규제 방안을 내놨는데, 이번 9·7 부동산 대책을 통해 더욱 고삐를 죈 것이다.

정부 규제에 수도권의 아파트 전세 물량은 감소세를 보였다. 부동산매물정보사이트 아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10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전세 매물은 총 4만9142세대로, 정부 정책 발표 이전인 6월26일 5만4843세대 대비 10.4%(5701세대)가량 줄었다.


수도권 입주 물량이 지난해 대비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신축 단지의 입주장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워 서민층의 실거주지 확보는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입주장 효과란 아파트 입주 시점에 전세 매물이 늘어나면서 주변 전세가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치솟는 분양가, 대출 규제, 전세 사기
아파트 실거주 대안으로 급부상

공급 부족 현상에 따른 전세가 상승세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자료 기준으로 수도권의 전세가격지수는 지난 6월2일 100.15에서 지속적으로 올라 9월8일 100.56을 기록했다(2025년 3월31일 기준 100). 전세가격지수는 주택시장의 전세 가격 변화를 측정하는 지표로, 수치가 오를수록 평균적인 가격대가 상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세가 상승 기류가 지속되면서 민간임대아파트가 실수요자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최근 발표된 정책들이 매매·전세 시장 뿐 아니라 민간임대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임대 주택에 살면서 청약 당첨을 노리고 있는데, 민간임대 아파트만의 장점이 확실한 만큼 인기가 많아진 것이 체감되고 있다.

민간임대아파트는 최대 10년 동안 임대로 거주한 뒤 분양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단지를 말한다. 직접 살아본 후 매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임대료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되는 구조를 갖춰 일반 전세나 매매 대비 초기 가격 부담이 적은 편이다. 최근에는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월세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 월세 가격도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게 업계 평가다.


특히 건설사들이 일반분양 아파트 못지않은 설계를 적용하면서 품질 경쟁력도 높아졌다. 최근 공급된 민간임대아파트는 과거와 달리 알파룸, 팬트리 등 최신 주거 트렌드를 반영한 평면은 물론, 고급 수입 마감재와 특화 조경, 커뮤니티 공간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다.

월세화
가속화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전국 주요 민간임대 단지들은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에서 공급된 ‘중앙공원 롯데캐슬 시그니처’ 10년 분양전환형 민간임대아파트는 단기간에 100% 계약을 완료했다. 지난 7월 충북 청주시에 공급된 ‘신분평 더웨이시티 제일풍경채’는 10년 민간임대 물량 793가구 모집에 총 1만351건의 청약이 접수되며, 평균 경쟁률 13.05대 1을 기록했다.

업계는 이런 민간임대아파트의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 시장의 불안정, 대출 규제로 인한 내 집 마련 비용 부담 상승 등 주거 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과거에는 전세를 거쳐 자가로 이동하는 공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그 흐름이 흔들리고 있다”며 “민간임대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실거주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임차 기간에는 취득세와 재산세 등의 세금 부담이 없는 것도 장점”이라며 “청약통장이나 거주지 제한 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청약이 가능해 진입 장벽도 낮아 실수요층의 관심이 크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수도권에서 공급(예정) 중인 민간임대 아파트.

▲힐스테이트 인덕원=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에 위치한 ‘힐스테이트 인덕원’이 일부 잔여 가구에 대한 선착순 동·호지정 계약을 진행 중이다. 지하 5층~지상 28층, 3개동, 전용면적 50~74㎡, 총 349가구 규모다. 장기 일반 민간임대주택으로 공급돼 최장 10년 동안 이사 걱정 없이 안정적인 거주가 가능하다.

임대료 상승률은 5% 이내로 제한돼 주거비 부담도 덜 수 있다. 임대 기간 종료 후에는 일정 조건 충족 시 분양 전환이 가능해 실수요자들에게 합리적인 내 집 마련 기회를 제공한다. 또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아 각종 부동산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취득세, 재산세 등 주택 소유에 따른 세금 부담도 없다.

선착순 계약은 만 19세 이상이면 거주 지역, 주택 소유 여부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계약 가능하다. 청약통장이 필요하지 않고, 유주택자도 계약 가능하다. 원하는 동·호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내 대표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담당해 상품성도 우수하단 평이다. 단지 외관에는 주변 경관과 입지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이 적용됐으며, 내부에는 피트니스 센터, 작은도서관, 어린이집 등 각종 커뮤니티시설이 마련돼 입주민들의 수준 높은 주거생활을 지원한다.

세금 부담
없는 장점

신혼부부와 2~3인가구의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 평형으로 전 가구가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가구 내에는 김치냉장고, 에어컨, 인덕션 등 각종 옵션 품목이 기본으로 제공돼 호응을 얻고 있다. 지하층에는 넉넉한 수납 공간이 있는 공용 창고가 마련돼 부피가 큰 물건들을 별도로 보관할 수 있다.


64㎡B 타입은 3룸의 타워형으로 조성된다. 드레스룸과 복도 팬트리, 침실 붙박이장을 제공해 수납 공간을 극대화했다. 74㎡ 타입은 채광과 조망에 뛰어난 4베이, 3룸의 판상형 구조로, 드레스룸과 팬트리가 마련됐다.

4호선 인덕원역이 약 1㎞ 거리에 위치해 서울 강남지역과 강북 지역으로의 신속한 접근이 가능하다. 인덕원역에는 GTX-C 노선과 월곶~판교선, 인덕원~동탄 복선전철이 들어설 계획으로 향후 쿼드러플 역세권을 형성하게 되면 직간접적인 수혜가 기대된다.

인근에 위치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를 통해 판교, 수원 등 수도권 지역으로의 이동도 편리하다. IT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기업체가 입주해 있는 안양벤처밸리는 불과 1㎞가량 떨어진 거리로 직주근접성도 뛰어나다.

교육시설로는 포일초, 백운중 등이 있다. 학의천, 백운호수, 모락산, 포일공원 등 쾌적한 자연환경과도 가깝다. 하나로마트, LF아울렛 등 다수의 쇼핑시설과 롯데시네마, 은행, 병원 등이 형성된 인덕원역 상권도 손쉽게 이용 가능하다.

분양 관계자는 “장기적인 주거 안정성과 미래가치를 겸비한 민간임대주택”이라며 “입주를 앞두고 계약이 순항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서둘러 문의를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힐스테이트 용인포레=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1군 브랜드 대단지 ‘힐스테이트 용인포레’를 공급한다. 지하 5층~지상 38층, 13개동, 총 1950가구(전용 59㎡, 84㎡) 규모다. 특히 이 단지는 용인시청권역 내 희소성이 높은 1군 브랜드 단지이자, 일대 최대 규모를 자랑해 절대적 우위를 갖춘 상품으로 평가되면서 수요자들의 관심이 상당히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8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업형 민간임대주택으로 조성돼 주목도가 더욱 높게 이어지고 있다. 임대료 상승률도 해당 법령에 따라 5% 이내로 제한돼있어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장기적인 주거 계획이 가능하다.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아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이 없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임대보증 가입으로 보증금 반환 리스크가 사실상 차단돼 가격 안정성과 함께 전세 사기 우려도 적다.

일반분양 못지않은 설계 적용
과거와 달리 전국서 완판 행진

청약통장 가입 여부, 재당첨 제한 등 제약도 없어 진입 장벽이 낮은 점 역시 장점이다. 우선공급 청약은 용인시 거주 만 19세 이상 무주택자 본인(50%)과 주택 소유 여부와 무관(30%)하게 가능하다. 일반공급(20%)은 거주지 제한이나 주택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에버라인(용인경전철) 시청·용인대역이 인접해 수인분당선 및 GTX-A 노선과 환승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판교·강남 등 수도권 주요 업무지구로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경부고속도로, 세종포천고속도로 등 광역도로망도 잘 갖춰져 있어 자가용 이용 시 서울 출·퇴근도 편리하다.

당분간
인기세

단지 바로 옆에는 삼가초등학교가 위치하는 ‘초품아’ 입지를 갖췄다. 인근에 조성 예정인 역북2근린공원은 쾌적한 주거 환경을 더한다. 용인시청, 용인세무서, 보건소, 이마트, 롯데시네마 등 각종 행정·편의시설도 가까워 생활 만족도가 높다.

분양 관계자는 “단지는 상품성 측면에서도 1군 브랜드의 차별화된 설계를 적용해 가치를 높일 예정”이라며 “4베이 판상형(일부 제외) 위주 평면 설계, 드레스룸·알파룸 등 공간 활용도가 높은 구조를 갖췄다. 또 단지 내 통학버스 승하차 공간, 테마놀이터, 순환산책로, 중앙잔디마당 등 다양한 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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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