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K팝 국가대표 박진영

한국 대중문화 전 세계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K팝의 개척자였던 박진영이 이제 나랏일까지 맡게 됐다. 세계 곳곳에서 높아지는 K팝의 인기에 정부가 직접 노를 젓기 시작했고, 노를 저을 뱃사공으로는 박진영을 지목했다. 수많은 명곡과 아이돌을 만들어낸 경험으로 이제는 K팝 국가대표로서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 무대에 나서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되는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를 임명했다. 함께 위원장을 맡게 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나란히, 한국을 대표하는 인사로서 대중문화 정책을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미국 진출
선두주자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국가적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논의하는 정책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대통령실은 이 조직이 국제 문화 교류 확대와 공동 프로젝트 발굴 등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한류 콘텐츠가 외교·경제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위원회를 신설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임명 배경을 직접 설명하며 “박진영은 가수이자 프로듀서로서 K팝 세계화를 이끌어온 주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K팝을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박진영의 경험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의미 있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전 세계인이 한국 대중문화를 더 많이 즐기고, 한국 역시 외국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선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대중문화의 국제적 위상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들어 음악과 드라마뿐만 아니라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한국산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을 거론하며, 세계 각국에서 제기되는 “한국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에 이번 기구 신설과 인선이 화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이에 발맞춰 지난 5일,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령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해당 제정령안은 음악·드라마·영화·게임을 대중문화 범주에 포함시키고, 위원회가 관련 정책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다루도록 규정했다. 즉, 이번 인선은 입법 준비와 동시에 이뤄진 결정으로 볼 수 있다. 문체부는 민관 협업 체계를 강조하며, 위원회가 대중문화 확산뿐 아니라 게임과 같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분야에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정책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원회 구성에도 변화가 예고됐다. 위원장은 대통령 지명 인사와 문체부 장관이 공동으로 맡고, 부위원장은 문체부 차관과 민간 위원 중 1명이 선임될 예정이다. 위원 수는 최대 45명 이내로 꾸려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실은 이런 구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정책 설계와 집행의 현실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진영은 과거 이재명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 후보군으로 거론된 바 있다.


장관 후보로는 최종 낙점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대통령 직속 기구의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정책 현장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대통령실은 박진영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실무 경험이 위원회 운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장 임명
현장 무대에서 국정으로…새로운 도전

박진영이 K팝을 널리 알릴 국가대표로 선정된 건 상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1971년 12월13일 서울 성동구 중곡동에서 태어난 박진영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2년여간 생활했다. 당시 그는 현지 흑인들과 어울리며 춤 실력을 키웠고, 마이클 잭슨과 스티비 원더 같은 흑인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매료됐다.

귀국 후에도 박진영은 음악에 몰두했으며, 부모와의 약속 끝에 학업과 춤을 병행했다. 학교 성적은 우수했고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에 입학했지만, 결국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수로 진로를 결정했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994년 솔로 데뷔였다. 정규 1집 <BLUE CITY>의 타이틀곡 ‘날 떠나지마’는 광고 삽입곡으로 먼저 알려지며 입소문을 탔다. 당시 무대에서 그는 비닐 바지를 입고 춤을 추는 파격적인 패션으로 시선을 끌었다.

남자 가수가 섹시 콘셉트를 내세운 것은 당시 가요계에서 신선한 시도였고, 화제성을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박진영의 무대 장악력은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어 발표한 곡 ‘너의 뒤에서’ ‘청혼가’ 등은 연이어 인기를 얻으며 박진영을 1990년대 대표 솔로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러다 1997년 발표한 ‘그녀는 예뻤다’가 히트를 치며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4집과 5집에서도 ‘허니’ ‘Kiss Me’ 같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97년, 박진영은 기획사 태영기획을 설립하며 프로듀서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01년 회사명을 바꿨는데 그게 바로 현재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JYP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이다. 박진영은 프로듀서로서 다수의 아티스트를 발굴 해 음악시장에 내놨다.

2000년대 초반, god는 국민 그룹으로 불릴 만큼 큰 성공을 거뒀고, 박지윤은 ‘성인식’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또 다른 대표적인 성과는 가수 ‘비(정지훈)’이다. 박진영이 직접 트레이닝한 비는 2000년대 초반 국내외에서 아시아 스타로 성장했다.

2007년 데뷔한 걸그룹 원더걸스는 박진영 프로듀싱의 성공작으로 꼽힌다. ‘Tell Me’는 후크송과 UCC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전국적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어 한국 최초로 ‘So Hot’이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하면서 ‘Nobody’까지 연속 히트를 기록했다.

식지 않은
음악 열정


원더걸스는 K팝 걸그룹 붐의 시작점이 됐으며, 박진영은 아이돌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기 2PM과 2AM이 차례로 데뷔했다. 특히 2PM은 남성적인 ‘짐승돌’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주목받으며 정상급 보이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 그룹의 연이은 성공은 JYP를 SM, YG와 함께 ‘3대 기획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다만 미국 시장 진출 시도 과정에서 원더걸스가 국내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박진영은 프로듀서로서 활약하면서도 가수 활동을 놓지 않았다.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무대 활동을 멈추지 않는 점은 박진영의 독특한 특징이다. 가수가 세월이 흐른 뒤 프로듀서로 전환하는 경우는 많지만, 많은 나이에도 가수 활동을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박진영은 춤추고 노래하는 기획사 수장으로, 가수와 프로듀서, 기업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2010년대에도 박진영은 ‘어머님이 누구니’ 같은 히트 싱글을 발표하며 아티스트로서 여전한 능력치를 보여줬다.

동시에 제작자로서는 걸그룹 TWICE와 ITZY를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 TWICE는 2015년 오디션 프로그램 <SIXTEEN>을 통해 결성됐고, 데뷔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박진영은 ‘SIGNAL’ ‘What is Love?’ 등 주요 곡에 직접 참여했으며, 일본 앨범까지 프로듀싱하며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후 TWICE는 JYP의 간판 걸그룹으로 성장했다. 다음으로 데뷔한 ITZY 역시 ‘달라달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르고 ‘ICY’ ‘마.피.아 In the morning’ 등 히트곡을 내며 4세대 걸그룹으로 주목받았다.


2020년대 들어서도 박진영은 꾸준히 본인 싱글을 발표했다. 선미와 협업한 ‘When We Disco’, 비와 함께한 ‘나로 바꾸자’, 개코가 피처링한 ‘Groove Back’, 2023년의 ‘Changed Man’ 등 지속적으로 앨범을 냈다. 지난해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콘서트와 방송 대기획에 참여했고, 2025년에는 ITZY 예지의 솔로 앨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JYP엔터테인먼트를 국내 3대 기획사 중 하나로 만들어놓은 만큼 박진영은 회사 지분 15.67%를 보유한 대주주다. 현재는 사내 등기이사로서 제작과 운영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공식 직함은 CCO(최고창의책임자)이자 대표 프로듀서로, 아티스트 론칭과 주요 프로젝트의 최종 판단을 맡는다. 또 JYP퍼블리싱 공동대표이사로서 퍼블리싱 사업에도 관여하며, 회사의 글로벌 음악 비즈니스 확장에 직접 참여한다.

박진영은 가수 활동과 프로듀싱 능력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항상 좋은 평가만 받아왔던 것은 아니다. 박진영은 성공만큼이나 무수한 비판도 받아왔다. 프로듀서로서 거론됐던 비판은 자신이 키운 모든 아이돌 그룹을 ‘박진영화’시킨다는 점이다. 소속 가수들에게 본인의 창법과 음악적 색을 강하게 입힌다는 것이다.

2AM 조권은 “원하는 창법이 나올 때까지 10시간 넘게 녹음을 반복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보컬 훈련 과정에서 본인의 방식을 강요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박진영이 항상 강조하는 유명한 창법은 바로 ‘공기 반, 소리 반’이다.

인성은
‘JYP’

성악적 기준에서 보면 성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고수하는 발성법이다.

홍보 부분에 있어서도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JYP는 2010년대 초반까지 과도한 홍보로 비판받았다. 이후에는 오히려 소극적인 홍보로 선회했는데, 트와이스나 스트레이 키즈의 해외 성과조차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회사가 스스로 성과를 깎아내린다”는 불만이 팬덤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진영은 이 같은 논란과 비판에도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박진영은 평소 바른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데,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기 관리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성으로, 특히 본인뿐만 아니라 연습생들에게 인성교육까지 시킬 정도로 진심이다.

연습생들에게 성실함과 긍정적 태도를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입이 닳도록 말했고, 기본 예절까지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여러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실력보다 인성이 우선’이라는 기준을 내세웠던 일화도 있다.

물론 이후 일부 멤버들의 과거 논란이 불거지며 ‘위선적’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타 소속사의 연예인들에 비하면 인성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는 멤버가 현저히 적다.

박진영은 자신의 소속사 멤버들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점도 특별하다. 계약 종료 이후에도 멤버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실제로 원더걸스 멤버들의 결혼과 이적을 축하했고, 비와는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할 만큼 오랜 우정을 이어왔다.

god 멤버들과의 교류도 지속하고 있다. 다른 기획사들이 계약 해지 이후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심지어는 연습생들에게 JYP 구내식당의 모든 음식을 유기농으로 바꾸고 건강식으로 제공하기도 했으며, 퇴사한 연습생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타사 이적을 도울 정도였다. 대규모 연습생을 보유한 기획사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대형 소속사들은 돈에 관련한 논란에 있어서 자유롭지 않은 편인데, 박진영은 투명한 세금 납부로 유명하다. 타 소속사가 탈세 문제로 수십억원대 추징금 처분을 받은 것과 달리, JYP는 선납을 통해 오히려 환급을 받으면서 좋은 기업 이미지를 굳혔다.

“좋은 기회 얻도록 노력”
실효적 제도 지원 약속

국세청이 오히려 절세 방법을 알려줬다는 일화는 “세무 처리만큼은 깔끔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박진영이 좋은 이미지를 갖추는 데는 꾸준한 기부 활동을 이어왔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2022년 삼성서울병원과 월드비전에 각각 5억원씩, 2023년에는 국내 주요 병원 다섯 곳에 각 2억원씩을 기부했다.

지난해에도 지역 거점 병원 다섯 곳에 총 10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누적 기부액은 수십억원에 이르며, 대부분 난치병 아동 치료비와 저소득층 지원에 사용됐다. 이렇게 사회를 위한 기여를 많이한 점도 대중문화교류위원장에 선정된 이유에 포함된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 역시 박진영의 합류에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가진 여러 장점 중 하나가 문화 역량”이라며 “이를 산업으로 발전시켜 국민들이 먹고 살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진영은 그 측면에서 아주 뛰어난 기획가”라며,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문화의 산업화와 글로벌 진출에 주력할 것이고 박 위원장은 꽤 많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진영이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리자마자 JYP엔터테인먼트의 주가도 상승했다.

지난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JYP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3% 이상 상승하며 7만7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전 장외시장에서는 주가가 7% 넘게 치솟아 8만900원에 오르기도 했다. 장중 한때 8만1400원까지 거래되기도 했다.

박진영은 이번 임명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 일을 맡는다는 게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로서는 여러 면에서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 K팝이 너무나도 특별한 기회를 맞이했고 이 기회를 꼭 살려야만 한다는 생각에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도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잘 정리해 실효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K팝이 한 단계 더 도약해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을 넘어 세계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3년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음반사에 홍보자료를 돌릴 때, 2009년 원더걸스가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했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내 꿈은 같다.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글의 말미에는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많은 고민 끝에 시작하는 일이니 조언과 응원을 부탁드린다”며 “이 일을 함께 맡아주신 최휘영 장관님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막중한 임무
세계화 다짐

이제 남은 과제는 위원회가 실제로 어떤 제도적 지원을 마련하고, K팝과 한국 대중문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박진영의 임명 소식에 네티즌들은 “K팝 국가대표로서 이만한 사람이 없다”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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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