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K팝 국가대표 박진영

한국 대중문화 전 세계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K팝의 개척자였던 박진영이 이제 나랏일까지 맡게 됐다. 세계 곳곳에서 높아지는 K팝의 인기에 정부가 직접 노를 젓기 시작했고, 노를 저을 뱃사공으로는 박진영을 지목했다. 수많은 명곡과 아이돌을 만들어낸 경험으로 이제는 K팝 국가대표로서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 무대에 나서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되는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를 임명했다. 함께 위원장을 맡게 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나란히, 한국을 대표하는 인사로서 대중문화 정책을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미국 진출
선두주자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국가적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논의하는 정책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대통령실은 이 조직이 국제 문화 교류 확대와 공동 프로젝트 발굴 등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한류 콘텐츠가 외교·경제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위원회를 신설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임명 배경을 직접 설명하며 “박진영은 가수이자 프로듀서로서 K팝 세계화를 이끌어온 주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K팝을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박진영의 경험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의미 있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전 세계인이 한국 대중문화를 더 많이 즐기고, 한국 역시 외국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선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대중문화의 국제적 위상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들어 음악과 드라마뿐만 아니라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한국산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을 거론하며, 세계 각국에서 제기되는 “한국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에 이번 기구 신설과 인선이 화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이에 발맞춰 지난 5일,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령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해당 제정령안은 음악·드라마·영화·게임을 대중문화 범주에 포함시키고, 위원회가 관련 정책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다루도록 규정했다. 즉, 이번 인선은 입법 준비와 동시에 이뤄진 결정으로 볼 수 있다. 문체부는 민관 협업 체계를 강조하며, 위원회가 대중문화 확산뿐 아니라 게임과 같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분야에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정책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원회 구성에도 변화가 예고됐다. 위원장은 대통령 지명 인사와 문체부 장관이 공동으로 맡고, 부위원장은 문체부 차관과 민간 위원 중 1명이 선임될 예정이다. 위원 수는 최대 45명 이내로 꾸려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실은 이런 구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정책 설계와 집행의 현실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진영은 과거 이재명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 후보군으로 거론된 바 있다.


장관 후보로는 최종 낙점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대통령 직속 기구의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정책 현장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대통령실은 박진영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실무 경험이 위원회 운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장 임명
현장 무대에서 국정으로…새로운 도전

박진영이 K팝을 널리 알릴 국가대표로 선정된 건 상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1971년 12월13일 서울 성동구 중곡동에서 태어난 박진영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2년여간 생활했다. 당시 그는 현지 흑인들과 어울리며 춤 실력을 키웠고, 마이클 잭슨과 스티비 원더 같은 흑인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매료됐다.

귀국 후에도 박진영은 음악에 몰두했으며, 부모와의 약속 끝에 학업과 춤을 병행했다. 학교 성적은 우수했고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에 입학했지만, 결국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수로 진로를 결정했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994년 솔로 데뷔였다. 정규 1집 <BLUE CITY>의 타이틀곡 ‘날 떠나지마’는 광고 삽입곡으로 먼저 알려지며 입소문을 탔다. 당시 무대에서 그는 비닐 바지를 입고 춤을 추는 파격적인 패션으로 시선을 끌었다.

남자 가수가 섹시 콘셉트를 내세운 것은 당시 가요계에서 신선한 시도였고, 화제성을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박진영의 무대 장악력은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어 발표한 곡 ‘너의 뒤에서’ ‘청혼가’ 등은 연이어 인기를 얻으며 박진영을 1990년대 대표 솔로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러다 1997년 발표한 ‘그녀는 예뻤다’가 히트를 치며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4집과 5집에서도 ‘허니’ ‘Kiss Me’ 같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97년, 박진영은 기획사 태영기획을 설립하며 프로듀서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01년 회사명을 바꿨는데 그게 바로 현재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JYP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이다. 박진영은 프로듀서로서 다수의 아티스트를 발굴 해 음악시장에 내놨다.

2000년대 초반, god는 국민 그룹으로 불릴 만큼 큰 성공을 거뒀고, 박지윤은 ‘성인식’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또 다른 대표적인 성과는 가수 ‘비(정지훈)’이다. 박진영이 직접 트레이닝한 비는 2000년대 초반 국내외에서 아시아 스타로 성장했다.

2007년 데뷔한 걸그룹 원더걸스는 박진영 프로듀싱의 성공작으로 꼽힌다. ‘Tell Me’는 후크송과 UCC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전국적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어 한국 최초로 ‘So Hot’이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하면서 ‘Nobody’까지 연속 히트를 기록했다.

식지 않은
음악 열정


원더걸스는 K팝 걸그룹 붐의 시작점이 됐으며, 박진영은 아이돌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기 2PM과 2AM이 차례로 데뷔했다. 특히 2PM은 남성적인 ‘짐승돌’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주목받으며 정상급 보이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 그룹의 연이은 성공은 JYP를 SM, YG와 함께 ‘3대 기획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다만 미국 시장 진출 시도 과정에서 원더걸스가 국내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박진영은 프로듀서로서 활약하면서도 가수 활동을 놓지 않았다.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무대 활동을 멈추지 않는 점은 박진영의 독특한 특징이다. 가수가 세월이 흐른 뒤 프로듀서로 전환하는 경우는 많지만, 많은 나이에도 가수 활동을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박진영은 춤추고 노래하는 기획사 수장으로, 가수와 프로듀서, 기업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2010년대에도 박진영은 ‘어머님이 누구니’ 같은 히트 싱글을 발표하며 아티스트로서 여전한 능력치를 보여줬다.

동시에 제작자로서는 걸그룹 TWICE와 ITZY를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 TWICE는 2015년 오디션 프로그램 <SIXTEEN>을 통해 결성됐고, 데뷔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박진영은 ‘SIGNAL’ ‘What is Love?’ 등 주요 곡에 직접 참여했으며, 일본 앨범까지 프로듀싱하며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후 TWICE는 JYP의 간판 걸그룹으로 성장했다. 다음으로 데뷔한 ITZY 역시 ‘달라달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르고 ‘ICY’ ‘마.피.아 In the morning’ 등 히트곡을 내며 4세대 걸그룹으로 주목받았다.


2020년대 들어서도 박진영은 꾸준히 본인 싱글을 발표했다. 선미와 협업한 ‘When We Disco’, 비와 함께한 ‘나로 바꾸자’, 개코가 피처링한 ‘Groove Back’, 2023년의 ‘Changed Man’ 등 지속적으로 앨범을 냈다. 지난해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콘서트와 방송 대기획에 참여했고, 2025년에는 ITZY 예지의 솔로 앨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JYP엔터테인먼트를 국내 3대 기획사 중 하나로 만들어놓은 만큼 박진영은 회사 지분 15.67%를 보유한 대주주다. 현재는 사내 등기이사로서 제작과 운영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공식 직함은 CCO(최고창의책임자)이자 대표 프로듀서로, 아티스트 론칭과 주요 프로젝트의 최종 판단을 맡는다. 또 JYP퍼블리싱 공동대표이사로서 퍼블리싱 사업에도 관여하며, 회사의 글로벌 음악 비즈니스 확장에 직접 참여한다.

박진영은 가수 활동과 프로듀싱 능력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항상 좋은 평가만 받아왔던 것은 아니다. 박진영은 성공만큼이나 무수한 비판도 받아왔다. 프로듀서로서 거론됐던 비판은 자신이 키운 모든 아이돌 그룹을 ‘박진영화’시킨다는 점이다. 소속 가수들에게 본인의 창법과 음악적 색을 강하게 입힌다는 것이다.

2AM 조권은 “원하는 창법이 나올 때까지 10시간 넘게 녹음을 반복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보컬 훈련 과정에서 본인의 방식을 강요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박진영이 항상 강조하는 유명한 창법은 바로 ‘공기 반, 소리 반’이다.

인성은
‘JYP’

성악적 기준에서 보면 성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고수하는 발성법이다.

홍보 부분에 있어서도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JYP는 2010년대 초반까지 과도한 홍보로 비판받았다. 이후에는 오히려 소극적인 홍보로 선회했는데, 트와이스나 스트레이 키즈의 해외 성과조차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회사가 스스로 성과를 깎아내린다”는 불만이 팬덤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진영은 이 같은 논란과 비판에도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박진영은 평소 바른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데,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기 관리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성으로, 특히 본인뿐만 아니라 연습생들에게 인성교육까지 시킬 정도로 진심이다.

연습생들에게 성실함과 긍정적 태도를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입이 닳도록 말했고, 기본 예절까지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여러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실력보다 인성이 우선’이라는 기준을 내세웠던 일화도 있다.

물론 이후 일부 멤버들의 과거 논란이 불거지며 ‘위선적’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타 소속사의 연예인들에 비하면 인성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는 멤버가 현저히 적다.

박진영은 자신의 소속사 멤버들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점도 특별하다. 계약 종료 이후에도 멤버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실제로 원더걸스 멤버들의 결혼과 이적을 축하했고, 비와는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할 만큼 오랜 우정을 이어왔다.

god 멤버들과의 교류도 지속하고 있다. 다른 기획사들이 계약 해지 이후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심지어는 연습생들에게 JYP 구내식당의 모든 음식을 유기농으로 바꾸고 건강식으로 제공하기도 했으며, 퇴사한 연습생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타사 이적을 도울 정도였다. 대규모 연습생을 보유한 기획사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대형 소속사들은 돈에 관련한 논란에 있어서 자유롭지 않은 편인데, 박진영은 투명한 세금 납부로 유명하다. 타 소속사가 탈세 문제로 수십억원대 추징금 처분을 받은 것과 달리, JYP는 선납을 통해 오히려 환급을 받으면서 좋은 기업 이미지를 굳혔다.

“좋은 기회 얻도록 노력”
실효적 제도 지원 약속

국세청이 오히려 절세 방법을 알려줬다는 일화는 “세무 처리만큼은 깔끔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박진영이 좋은 이미지를 갖추는 데는 꾸준한 기부 활동을 이어왔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2022년 삼성서울병원과 월드비전에 각각 5억원씩, 2023년에는 국내 주요 병원 다섯 곳에 각 2억원씩을 기부했다.

지난해에도 지역 거점 병원 다섯 곳에 총 10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누적 기부액은 수십억원에 이르며, 대부분 난치병 아동 치료비와 저소득층 지원에 사용됐다. 이렇게 사회를 위한 기여를 많이한 점도 대중문화교류위원장에 선정된 이유에 포함된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 역시 박진영의 합류에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가진 여러 장점 중 하나가 문화 역량”이라며 “이를 산업으로 발전시켜 국민들이 먹고 살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진영은 그 측면에서 아주 뛰어난 기획가”라며,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문화의 산업화와 글로벌 진출에 주력할 것이고 박 위원장은 꽤 많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진영이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리자마자 JYP엔터테인먼트의 주가도 상승했다.

지난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JYP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3% 이상 상승하며 7만7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전 장외시장에서는 주가가 7% 넘게 치솟아 8만900원에 오르기도 했다. 장중 한때 8만1400원까지 거래되기도 했다.

박진영은 이번 임명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 일을 맡는다는 게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로서는 여러 면에서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 K팝이 너무나도 특별한 기회를 맞이했고 이 기회를 꼭 살려야만 한다는 생각에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도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잘 정리해 실효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K팝이 한 단계 더 도약해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을 넘어 세계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3년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음반사에 홍보자료를 돌릴 때, 2009년 원더걸스가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했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내 꿈은 같다.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글의 말미에는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많은 고민 끝에 시작하는 일이니 조언과 응원을 부탁드린다”며 “이 일을 함께 맡아주신 최휘영 장관님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막중한 임무
세계화 다짐

이제 남은 과제는 위원회가 실제로 어떤 제도적 지원을 마련하고, K팝과 한국 대중문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박진영의 임명 소식에 네티즌들은 “K팝 국가대표로서 이만한 사람이 없다”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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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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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