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지난 2일, 공식 출범했다. 이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대통령령 제정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AI 국가 비전 및 중장기 전략 수립, AI 정책 및 부처 간 정책을 조율하는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되는 위원회는 5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부위원장은 3명을 둔다. 특히 민간 부위원장 1명을 상근직으로 둬 위원회 운영의 내실을 다진다. 정부 위원으로는 AI 3대 강국 도약 과제와 직결된 기획재정부, 과기정통부 등 13개 핵심 부처 수장이 합류한다.
이날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우리는 AI 정책 전담 부처로서 모든 역량을 결집해 우리나라가 AI 3대 강국으로 우뚝 서도록 최선봉에서 전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AI는 21세기 가장 중요한 기술 혁신 중 하나로, 산업과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AI의 성장은 데이터와 알고리즘만으로 불가능하다. AI의 모든 연산과 서비스는 전기에너지에 의해 구동되는 만큼,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이 AI 시대의 핵심이다.
AI가 대규모 언어 모델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수천, 때로는 수만 개의 GPU가 동시에 가동된다. 그래서 한번의 학습 과정에 쓰이는 전력량은 소규모 도시의 수개월치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GPU : 컴퓨터의 그래픽과 이미지 처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하드웨어)
AI 시대에 전기의 중요성은 산업을 넘어 국가의 운명까지도 좌우한다. 전력망이 흔들리는 순간 금융은 멈추고, 병원은 정지하며, 국방 체계마저 마비된다. 전기는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안보의 초석이며,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전력 인프라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전기가 곧 국가의 생명선인 셈이다.
일상의 차원에서도 전기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자율 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고, 스마트홈이 가정을 관리하며, 의료기기가 생명을 지탱하는 시대에, 전기는 더 이상 선택적 편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권이며, 물과 공기처럼 반드시 보장돼야 할 사회적 기반이 된다.
결국 AI의 두뇌가 데이터를 갈망한다면, 그 심장은 전기를 갈망한다고 볼 수 있다. AI 시대의 미래는 전기를 얼마나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기를 단순한 기술적 자원으로만 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전기를 통해 문명의 지속 가능성과, 더 나아가 인류의 운명을 사유해야 한다.
그런데 AI 3대 강국을 목표하고 있는 이재명정부가 지난달 13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전력망 조기 건설을 위한 전력망 운영 및 관리 체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만 했지, 구체적 전력 거버넌스 혁신안은 담지 않았다.
재생 에너지 목표를 상향하는 로드맵을 수립·이행한다는 것도 강조만 했을 뿐, 국정 과제에 구체적 재생 에너지 목표나 추가 자원 편입 비율은 명시하지 않았다.
지난 2일, 위원회는 공식 출범을 알리면서도 전력 인프라 구축 계획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가 AI 정책과 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인공지능책임관협의회’는 신설해 놓고, 정작 AI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 관련 협의회 신설은 계획도 없는 것 같다.
이정부가 AI 시대의 핵심인 전기의 중요성을 간과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기가 부족하다면 AI 산업은 단순히 “느려지는” 수준을 넘어 성장 자체가 멈추거나 구조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전기 부족은 서버 가동 중단, 연산 속도 저하, 서비스 중단으로 이어지고, 클라우드 기반 AI 서비스(챗봇, 번역, 자율 주행 지원 등)의 24시간 가동이 어려워져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고, 대중 신뢰도가 흔들린다.
또 금융, 의료, 제조, 물류 등 AI가 뿌리내린 산업 전반에서 효율성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 속도의 제약을 받아 산업 전반에 리스크가 생긴다. AI 산업은 결국 전기를 먹는 산업이므로, 에너지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AI 강국이 될 수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전 세계 73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AI 성숙도 매트릭스’ 보고서에 따르면, AI 선진국은 미국, 중국, 싱가포르, 캐나다, 영국 등 5개국이고, 한국은 호주,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등 23개국과 함께 안정적 경쟁국으로 평가된다.
우리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안정적 전력 인프라 구축이 절대적으로 시급하다.
AI 산업 부문에서 선두 주자인 미국은 가장 저렴한 에너지 제공을 통해 패권을 잡고 있으며, 2위인 중국은 저렴하고 무제한 전력 공급을 통해 AI와 제조업 부문의 패권을 확보하고 있다.
주요국의 지난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을 보면, 미국이 180TWh로 전체 전력의 약 4% 수준이며 2030년에는 420TWh를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100TWh로 전체 전력의 약 1%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전국 데이터센터는 150개소로 1.99GW 수준이다.
현재 국내 AI 데이터센터는 수도권 송전망 부족으로 수용에 한계가 있어 산업 육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부가 위원회 출범과 함께 전력 인프라 구축 정책을 조기에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이정부가 주장하는 AI 3대 강국 목표는 달성될 수 없는 허황된 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