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K-뷰티 황태자 36세 김병훈

8개월 만에 2조5000억 ‘잭팟’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에이피알이 한국 뷰티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오랫 동안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지켜온 ‘투톱 체제’가 무너지고, 에이피알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다. 단숨에 국내 증시 뷰티 업종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서면서 뷰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에이피알은 주가 23만원에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8조7500억원으로, 국내 뷰티 기업 가운데 1위 자리를 굳혔다. 전날 종가 기준 시총 7조9322억원으로 아모레퍼시픽(7조5339억원)을 제친 데 이어, 이틀 만에 또다시 주가를 끌어올리며 업계 정상 자리를 확실히 한 것이다.

 

K뷰티 No. 1
폭발적 성장

불과 1년5개월 전 상장 당시 시총 1조원 규모였던 점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에이피알의 시총이 아모레퍼시픽을 넘어선 시점은 지난 6일이다. 이날 종가 20만8500원을 기록하며 시총 7조9322억원으로 올라섰다. 25년간 업계 1위를 지켜온 아모레퍼시픽을 제친 순간이었다. 에이피알은 이후 상승 곡선을 그리며 단숨에 8조원을 돌파했고, 그 기세는 업계 전반에 충격을 안겼다.

뷰티 시장에서는 “에이피알이 드디어 아모레의 턱밑까지 쫓아왔다”는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뷰티 업계의 거장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어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에이피알이 국내 뷰티 기업 시총 1위에 등극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송년회 때 우리는 ‘모두가 인정하는 K-뷰티 No. 1 회사가 된다’는 목표를 세우고 O.N.E 전략을 마련했다”며 “8개월 만인 어제 에이피알은 시총 1위가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김 대표는 성과에 도취되지 않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에이피알과 에이프로의 열정과 노력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면서도 “언제나처럼 성과에 취하지 않고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전했다.

에이피알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84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202%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매출은 3277억원으로 111% 증가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특히 화장품 및 뷰티 부문에서만 2270억원을 올리며 전년 대비 3배 성장했고, 뷰티 디바이스 부문 매출도 900억원을 넘기며 32% 성장했다.

매출을 보면 해외시장, 특히 미국에서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에이피알의 해외 매출 비중은 78%에 달한다. 이 중 29%가 미국 내 매출이다. 국내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에이피알 주가는 신고가를 연일 경신했다. 현재는 8조원을 넘어서며,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동시에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주식시장 안팎에서는 김 대표의 경영 감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만으로 승부하지 않고, 기획·마케팅·브랜드 전략을 종합적으로 설계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성장 속도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오랜 시간 오프라인 유통망을 중심으로 견고한 입지를 다져온 데 비해, 에이피알은 상장 1년5개월 만에 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준 폭발적 성장세는 ‘신흥 강자’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에이피알 성공 신화…업계 시총 1위
아모레·LG생건 누르고 신흥 강자로

증권가 역시 에이피알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다. K-뷰티 열풍을 기반으로 한 화장품 매출 급증, 뷰티 디바이스 부문의 안정적 성장, 그리고 해외시장에서의 두드러진 성과가 고르게 상승한 점 때문이다. 단순히 ‘반짝 효과’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의 도전정신은 뷰티 업계에도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기존 대기업 중심으로 흘러가던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데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김 대표의 도전정신과 전략적 판단이 에이피알을 단숨에 업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며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김 대표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깨달음이 동력이 됐다. 그는 중학교 시절, 사내 정치를 이유로 직장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의 충격은 훗날 “직접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안정된 직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이 창업 결심으로 이어진 셈이다.

대학 시절에도 그는 일찍이 창업가의 길을 모색했다. 김 대표는 연세대학교 재학 중 교환 학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려 했다. 당시 가상 착장 서비스 ‘이피다’, 데이트 중개 애플리케이션 ‘길하나사이’ 등을 차례로 론칭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알람 애플리케이션(앱), 커플 미션 앱, 소셜커머스 등도 시도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는 나중에 “블루오션이라고 불리는 시장은 사실상 소비자 니즈가 없어서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수차례 실패를 겪은 뒤에도 창업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실패 속에서 교훈을 찾아냈다. 당시를 돌아보며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 말 속에는 ‘금광처럼 보이는 아이템도 소비자들이 실제로 필요하지 않다면 시장성이 없다’는 통찰이 담겨있다. 이런 경험은 훗날 에이피알 사업 모델을 세우는 과정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젊은 세대
공략 효과
 

김 대표의 진짜 전환점은 광고 대행업에서 찾아왔다. 여러 번의 창업 실패 이후 그는 광고 대행을 맡으며 패션과 뷰티 분야에서 실적을 쌓았다. 광고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광고가 뛰어나도 제품의 품질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비자는 곧 등을 돌린다는 점이었다. 이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결심을 안겨줬다. “차라리 직접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광고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 소비자가 인정하는 제품 자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창업이 시작된다. 2014년 김병훈 대표는 공동창업자 이주광 전 대표와 함께 ‘에이프릴스킨’을 설립했다. 이것이 에이피알의 시작점이다. 초기에는 특정 품목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소비자의 반응이 좋은 제품에 집중해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판매했던 제품 중에는 지금은 사라진 고체 비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행착오 과정은 소비자와 시장을 빠르게 학습하는 기회가 됐다.

2017년, 회사 이름은 ‘에이피알(APR)’로 바뀌었다. ‘에이프릴스킨’을 포함해 ‘메디큐브’ ‘널디(NERDY)’ ‘글램디바이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김 대표의 경영 전략은 ‘미디어 커머스’였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같은 대기업이 백화점·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에서 성장한 것과 달리, 김 대표는 SNS를 적극 활용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소비자 반응을 즉각 확인하고, 피드백에 따라 제품 기획과 광고 전략을 신속히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읽고 가격·제품·기술 중 하나라도 확실히 차별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전략은 젊은 세대 공략에 특히 효과적이었다. 김 대표는 제품을 사용할 특정 타깃층을 미리 정해두고 그들의 취향과 소비 패턴에 맞춰 마케팅을 설계했다. 주 타깃은 SNS 사용이 활발한 10~30대였다. 소비자 맞춤형 기획과 빠른 피드백 반영 대기업이 갖추기 어려운 신속함을 보여줬다.


실적 역시 곧바로 반응했다. SNS 광고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에이프릴스킨은 국내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다만 김 대표는 이 시점에서 또 한 번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미디어 커머스에 머무르지 않고, 오프라인 채널 진출과 글로벌 시장 확대가 뒤따라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8조 돌파
목표 달성
 

이후 그는 메디큐브·에이지알·널디 등 실적이 좋은 브랜드를 앞세워 백화점·올리브영 등에 입점시켰다.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창업 초기의 실패 경험, 광고 대행업을 통해 얻은 통찰, 그리고 미디어 커머스에서 오프라인·해외시장으로의 확장은 김 대표의 경영철학을 잘 보여준다. 그는 “경험하는 모든 순간을 배움으로 바꾸자”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지난 2020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정말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한순간도 헛되지 않았다. 조직 운영과 마케팅 방법을 모두 현장에서 배우며 성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이피알의 성공은 김 대표의 집요한 도전과 반복된 실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표가 에이피알을 미디어 커머스 기업에 머물게 하지 않고 성장하게 만든 결정적인 선택은 ‘뷰티 기기’로의 확장이었다. 이듬해 그는 화장품 브랜드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제품력과 기술력이 결합해야 소비자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무렵 선보인 메디큐브의 뷰티 기기 라인은 시장에서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제품이 ‘에이지알(AGE-R)’ 시리즈다. 고주파, 초음파, LED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기기는 화장품 소비에 익숙했던 고객층을 새로운 시장으로 끌어왔다. 김 대표는 “화장품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기술과 기기를 결합해야 한다”는 판단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특히, 뷰티 기기로의 확장은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해외 소비자들은 ‘한국의 뷰티 기술’을 경험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특히 집에서도 전문적인 스킨 케어를 할 수 있다는 콘셉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오프라인 클리닉 방문이 어려운 상황에서 ‘홈케어’ 수요가 커진 것이다.

김 대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국내에서 성공한 모델을 해외에 그대로 적용했다. SNS 기반 마케팅, 인플루언서 협업, 빠른 피드백 반영이라는 기존 전략을 미국·유럽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는 현지 MZ세대가 이용하는 플랫폼과 문화를 철저히 분석해 현지화 전략을 세웠다.

특히 카일리 제너, 헤일리 비버 등 미국 젊은 층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한 마케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SNS에서 확산된 이들 협업 콘텐츠는 곧바로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매년 매출의 20% 안팎, 약 1000억원 이상을 광고선전비에 투자했다. 단기간에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 것이다.

뷰티 기기로 해외시장 공략
특히 미국 내 성장세 압도적

실적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에이피알은 2024년 기준으로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시장에서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시장을 노린 결과였다.

올해 연매출은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전년 대비 세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어 업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성장세와 함께 주주 환원 정책도 등장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1343억원 규모의 배당을 실시하고, 300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주주 친화적인 행보를 내놓자 내부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 스타트업이었던 에이피알이 이제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업계를 흔들고 있다. 국내 화장품 산업이 두 대기업 중심의 양강 구도로 굳어져 있던 상황에서, 신생 기업이 새로운 성장 모델을 제시하며 판을 바꿔버린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이피알은 SNS 마케팅으로 반짝 성장한 기업이 아니다. 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 기획과 마케팅을 동시에 돌리는 구조를 정착시켰고, 뷰티 기기와 화장품을 결합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며 “이 점이 해외에서도 통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경제 전문 뉴스 <블룸버그>는 ‘36세 뷰티 재벌, 한국의 새로운 억만장자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김 대표를 소개했다.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 인사이더> 역시 ‘카일리 제너도 반한 스킨케어 기기를 만든 한국의 새로운 밀레니얼 뷰티 억만장자’라며 김 대표를 조명했다.

단기간에 이뤄낸 빠른 성장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해외 언론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김 대표는 최근 제6회 포니정 영리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포니정재단은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의 새로운 길을 연 차세대 경영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앞서 <블룸버그>가 그를 ‘밀레니얼 억만장자’로 주목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그는 혁신성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국내 투자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장 직후 1조원 규모에 불과했던 에이피알의 기업가치는 불과 1년 반 만에 8조원대에 올라섰다. 증권가에서는 “에이피알이 단순한 화장품 제조사를 넘어 글로벌 마케팅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오랫 동안 시장을 점유해 왔지만, 신흥 기업이 단기간에 업계를 뒤흔들어 버렸다. 특히 SNS 바이럴 마케팅, 해외 MZ세대 타깃 전략은 전통 대기업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밀레니얼
억만장자

뷰티 업계에서는 에이피알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직접 제품을 만들고, 뷰티 제품에 기술력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에 김 대표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소비 시장에서 통하는 브랜드 파워를 보여줬다. 미국에서의 매출이 국내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에이피알이 독자적 성장 동력을 갖췄다는 신호다. 이는 K-뷰티 산업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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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