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 세계 접수한 헌트릭스

‘케데헌’ K팝 역사 새로 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 세계에 또 다시 K팝 열풍이 불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하 케데헌)>의 OST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정상에 올랐다. 골든은 공개 후 불과 7주 만에 1위에 오르며 K팝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빌보드는 지난 11일(현지시각) 발표한 차트 예고 기사에서 “‘골든’이 전주 2위에서 한 단계 상승해 8월16일자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7주 동안 1위를 지켜온 알렉스 워런(Alex Warren)의 ‘오디너리(Ordinary)’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여성 보컬
최초 1위

‘핫100’은 스트리밍, 라디오 방송 횟수(에어플레이), 음원 판매량을 종합해 미국 내 한 주간 가장 인기 있는 곡을 집계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차트다. ‘골든’은 <케데헌> 속 가상 K팝 걸그룹 ‘헌트릭스’의 곡이다.

‘골든’은 지난달 초 81위로 차트에 첫 진입했다. 이후 2주 차에 23위, 3주 차에 6위, 4주 차에 4위, 5·6주 차에 2위를 기록하며 꾸준히 상승했다. 발매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상에 오른 셈이다. 빌보드 측은 “작품 흥행과 입소문이 맞물려 순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집계 기간 동안 ‘골든’은 전주 대비 9% 증가한 3170만회의 스트리밍을 기록했다. 라디오 방송 청취자 노출 횟수는 71% 늘어난 840만회로 집계됐다. 음원 판매량도 35% 증가해 7000건에 달했다. 세 부문 모두에서 고른 상승세를 보이며 경쟁 곡을 제쳤다.


특히 스트리밍과 라디오 지표가 동시에 급상승해 비영어권 곡으로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번 1위 달성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핫100’ 1위를 기록한 K팝 곡은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새비지 러브’ ‘라이프 고스 온’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마이 유니버스’와 멤버 지민의 ‘라이크 크레이지’, 정국의 ‘세븐’까지 8곡이었다. ‘골든’은 1위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 아홉 번째 K팝 곡이다.

여성 보컬이 부른 K팝 곡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빌보드는 “‘골든’이 데스티니 차일드 이후 24년 만에 세 명 이상이 부른 여성 보컬 곡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전했다. ‘골든’은 빌보드 1위에 앞서 지난 1일 발표된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북미와 유럽을 대표하는 두 메인 싱글 차트를 동시에 제패한 K팝 곡은 ‘골든’이 처음이다. 음악 시장 규모와 취향 차이로 양대 차트 동시 1위는 매우 드문 경우다.

오피셜 싱글 차트는 영국 내 스트리밍, 다운로드, 피지컬 판매량을 종합해 집계한다. 이곳에서 정상에 오른 K팝은 과거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기록한 1위, 블랙핑크가 앨범 차트에서 거둔 1위 등이 있었으나, 빌보드 ‘핫100’과 동시 1위에 오른 경우는 없었다.

댄스 팝 장르로 제작된 ‘골든’은 직선적인 멜로디 라인과 시원하게 뻗는 고음, 군무를 염두에 둔 리듬이 특징이다. 가사는 ‘내 안의 빛을 깨운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겼다. 후렴의 청량한 보컬과 경쾌한 비트가 어우러져 여름 시즌 특유의 시원함을 준다. 올여름 K팝 시장에서 에 띄는 서머송이 없었다는 점도 ‘골든’의 인기에 힘을 보탰다.

빌보드 핫100 1위···미·영 차트 접수
이재·오드리 누나·레이 아미가 불러


골든의 인기는 SNS를 통해 더욱 빠르게 퍼졌다. 곡의 고음 구간은 가수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기에 일종의 ‘챌린지’처럼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S.E.S. 출신 바다, 다비치 이해리, 마마무 솔라, 엔믹스 릴리, 아이브 안유진, 소향, 에일리, 권진아 등 K팝 가수들이 수많은 커버 영상을 올렸고, 팬들도 ‘골든 챌린지’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커버 영상을 올렸다.

실력 있는 가수들의 챌린지는 곡의 화제성을 배가시켰다. 커버 영상이 바이럴되면서 스트리밍 수치와 라디오 요청량이 동시에 늘었고, 미국 외 지역에서도 곡의 인지도가 급속히 확산됐다.

애니메이션 곡이 ‘핫100’ 정상에 오른 사례는 흔치 않다. 1958년 ‘더 칩멍크 송(The Chipmunk Song)’, 1993년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 2014년 ‘해피(Happy)’, 2016년 ‘캔트 스톱 더 필링!(Can’t Stop the Feeling!)’, 2022년 ‘위 돈트 토크 어바웃 브루노(We Don’t Talk About Bruno)’가 있었고, 이번에 ‘골든’이 여섯 번째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가상 걸그룹의 노래가 ‘핫100’ 정상에 오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음악 업계에서는 ‘골든’의 성공은 곡 자체의 완성도와 영화 속 캐릭터의 서사에서 나온 시너지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골든의 높은 완성도는 실제 노래를 부른 3인방의 영향이 컸다. 골든은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 작곡가 이재(EJAE), 가수 오드리 누나(Audrey Nuna), 레이 아미(Ray Ami)가 불렀다. 이 세 명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빌보드는 “헌트릭스의 실제 가수인 이재와 레이 아미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고, 오드리 누나는 뉴저지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골든’의 주역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건 루미 역을 맡은 이재다. 이재는 곡의 작사·작곡과 보컬을 모두 담당하며, 작품 속 음악적 정체성을 완성한 핵심 역할을 했다.

이재는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시절 아이돌 데뷔를 꿈꿨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이돌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인생의 전환점은 홀로 작업하던 그에게 작곡가 신사동호랭이가 손을 내밀어 EXID 정규 1집 수록곡 작업에 참여할 기회를 주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하니의 솔로곡 ‘Hello’가 탄생했다.

이후 그는 작곡가 앤드류 최를 만나 멘토로 삼아 지도받으며 SM 송캠프에 합류했다. 이 자리에서 탄생한 곡이 바로 레드벨벳의 ‘Psycho’였다. 해당 곡이 글로벌 히트를 기록하며 미국 레코드산업협회(RIAA) 골드 인증까지 받자, 이재는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는 작곡가로 떠올랐다.

줄줄이
챌린지

이후 대형 기획사와의 협업이 이어졌고, 다양한 K팝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KBS 드라마 <99억의 여자> OST 작업에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드라마 음악으로 확장했다. 이후 당시 제작 초기 단계였던 운명의 작품,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합류하게 된다.


이재는 주제곡 ‘골든’과 ‘Your Idol’의 작사·작곡뿐 아니라 극 중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의 파트를 직접 녹음했다. 루미는 낮에는 세계적인 K팝 스타, 밤에는 악마 사냥꾼으로 활약하는 캐릭터로, 이재는 자신의 과거 경험과 감정을 이 캐릭터에 이입하며 몰입했다고 전했다.

‘골든’의 가사는 내면의 빛을 깨워 자격지심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재는 이 곡에 대해 “어머니가 늘 ‘말이 씨가 된다’고 하셨다. ‘할 수 있다’는 노래를 계속 부르면 언젠가 현실이 될 것 같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골든’은 국내외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가수로서도 세계 무대에 올라서게 됐다.

이재의 과거 서사가 드러나면서 원로 배우 신영균의 외손녀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재는 할아버지의 예술적 DNA를 물려받아 대중문화를 접하면서 성장했다. 이재는 K팝 대표 걸그룹 트와이스, 레드벨벳과의 협업, 그리고 신인 그룹의 프로듀싱까지 맡으며 작곡·프로듀싱 영역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하지만 가수라는 꿈에 대한 열망은 놓지 못했다. <케데헌>은 이런 이재의 꿈을 이뤄준 작품이다.

이재와 함께 ‘골든’을 완성한 또 다른 목소리는 오드리 누나다.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R&B, 힙합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사운드로 미국 음악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아티스트다. 특유의 세련된 음색은 ‘골든’의 후렴 부분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며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마지막 한 명인 레이 아미는 서울 태생의 보컬리스트로, ‘골든’에서 랩과 일부 보컬을 맡았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성장한 한국계 아티스트로, 싱어송라이터와 래퍼로서 활동하며 독특한 보이스 톤과 강약을 오가는 랩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골든’에서는 후렴 전후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랩 파트를 소화하며, 곡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골든’의 세 목소리는 각기 다른 배경과 색깔을 지녔지만, 곡 안에서는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이재의 파워풀한 보컬 위에 오드리 누나의 감각적인 보컬이 색을 더하고, 레이 아미의 톡톡 튀는 강렬한 랩이 곡의 골격을 단단히 했다. 이런 삼중주가 영화 속 헌트릭스의 서사와 맞물리면서, 더 호소력 있는 곡을 완성해냈다.

<케데헌>은 화려한 무대 뒤, 또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케이팝 아이돌의 사투를 그린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K팝 걸그룹 ‘헌트릭스’다. 겉으로는 화려한 아이돌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인간의 혼을 노리는 악령과 맞서 싸우는 비밀 조직의 일원이다.

영화는 헌트릭스의 콘서트 장면에서 시작해, 이후에는 무대 위 퍼포먼스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여준다.

눈물 나는
루미 서사

헌트릭스는 세 명의 멤버로 구성돼있으며, 각자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무대에서의 노래와 춤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악령의 힘을 봉인하는 의식의 일부다. 헌트릭스의 노래가 듣는 이의 감정과 공명하면 ‘혼문(魂門)’이 생성되는데, 이 문이 완성되면 악령을 봉인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

이 설정은 음악과 판타지를 결합한 영화의 핵심 장치이자, 케이팝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요소다.

이들이 맞서는 주적은 ‘사자 보이즈’다. 헌트릭스와 마찬가지로 5인조 아이돌 그룹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정체는 저승에 속한 악령들이다. 원래는 다른 악귀들과 함께 헌터들에게 연전연패하던 세력 중 하나였으나, 전략을 바꿔 헌트릭스와 같은 형식의 ‘아이돌 그룹’으로 위장 활동을 시작했다.

‘사자 보이즈’라는 이름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사자(死者)’는 죽은 자, ‘저승사자’는 혼을 인도하는 존재를 뜻한다. 사자 보이즈의 로고는 작중 무대에서 갈기가 벗겨지고, 뾰족한 뿔이 드러나는 사자의 그림이 들어가 있으며, 가까이서 보면 날개 달린 악마의 형상이 숨겨져 있다.

영화 속에서 사자 보이즈는 헌트릭스의 팬덤 일부를 빼앗으며 세력을 빠르게 확장한다. 겉으로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연기하며 팬들을 사로잡지만, 무대 뒤에서는 받은 꽃다발을 바로 버리는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헌트릭스의 노래가 혼문을 생성하는 데 반해, 사자 보이즈의 노래는 이미 열린 혼문에 균열을 내어 봉인을 무력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두 그룹의 음악이 서로 정반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이 대립 구도는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헌트릭스는 월드투어라는 명목 아래 세계 각지를 돌며 악령들을 사냥하고, 사자 보이즈는 그 뒤를 쫓아다니며 혼문을 파괴한다. 중반부 목욕탕 장면에서는 물귀신 형태의 악귀들이 출몰하자 헌트릭스가 전투에 나서고, 사자 보이즈는 헌트릭스와 결투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리더 루미와 사자 보이즈의 진우가 짧지만 격렬한 격투를 벌이며 서로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후반부, ‘황금혼문’의 완성을 둘러싸고 긴박감이 고조된다. 황금혼문은 모든 악령의 힘을 봉인하거나, 반대로 개방해 세상을 혼돈에 빠뜨릴 수 있는 결정적 관문이다. 헌트릭스는 이를 완성해 봉인하려 하고, 사자 보이즈와 그 배후 세력은 이를 파괴하려 한다.

남산타워 아래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결전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이 장면에서 두 그룹은 각자 공연을 하듯 노래와 춤을 펼치지만, 그 안에 치열한 전투가 숨겨져 있다. 루미와 진우가 다시 맞붙고, 다른 멤버들 역시 짝을 이뤄 싸우지만, 사자 보이즈는 헌트릭스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밀려났다.

영화 실제 장소들 새 관광 명소로
‘성지순례 코스’ 해외 팬들 북적

이처럼 <케데헌>은 K-POP 특유의 감성과 영화적 판타지를 결합해,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 세계 각지를 돌며 펼치는 퍼포먼스와 액션, 그 안에 숨은 전투 장면들이 리듬감 있게 이어지고, 두 그룹의 라이벌 구도가 긴장감을 유지한다.

<케데헌>의 제작진은 작품의 콘셉트와 제목에 걸맞은 음악을 구현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사운드트랙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K-POP을 기반으로 구성됐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실제 업계에서 활동 중인 정상급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여했다.

작곡, 프로듀싱에는 테디를 비롯한 더블랙레이블(The Black Label) 소속 제작진이 이름을 올렸고, 린드그렌(Lindgren), 스티븐 커크(Stephen Kirk), 제나 앤드루스(Jenna Andrews) 등 해외 작곡가들도 힘을 보탰다.

오리지널 보컬곡은 총 8곡으로, 골든은 공개 직후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음악적 완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안 에이센드래스(Ian Eisendrath)가 전반적인 편곡과 사운드 조율을 담당했고, 트와이스의 ‘Strategy’, 멜로망스의 ‘사랑인가 봐’, 조커스의 ‘오솔길’ 등 기존 인기곡도 장면에 맞춰 삽입됐다.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브라질 출신 영화음악가 마르셀루 자르부스(Marcelo Zarvos)가 맡았다. 자르부스는 서사 전개에 맞춰 전투 장면에는 박진감 있는 리듬을, 무대 장면에는 화려한 편곡을 더해 K-POP 공연의 에너지를 극대화했다.

제작진은 음악이 서사와 세계관을 연결하는 핵심 장치가 되도록 설계했다. 헌트릭스의 무대는 악령 봉인 의식이자 팬들과의 소통 공간으로, 사운드트랙의 모든 곡은 해당 장면의 분위기와 스토리 전개를 반영해 제작됐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들은 개봉 직후부터 국내외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작중 헌트릭스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강남 K-POP 스퀘어 전광판, 사자 보이즈의 퍼포먼스 무대로 사용된 명동길, 루미와 진우의 데이트 장면이 연출된 북촌한옥마을과 낙산공원 등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또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와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 남산서울타워는 해외 팬들에게 ‘성지순례 코스’로 불리며 여행사 패키지 상품에 포함되기까지 했다.

한국 공간과
콘텐츠 결합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케데헌>이 “K팝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한국의 실제 공간을 결합한 콘텐츠”라는 점을 흥행 요인으로 꼽는다. 스토리와 음악이 함께 얽힌 장소가 관객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줬고,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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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