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용산구 소재 갤러리 라흰서 에릭 켈러와 김선근의 2인전 ‘Unsaid’를 준비했다. 두 작가의 작업이 한국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열린다.

라흰은 어떤 존재를 인식할 때 그 존재가 들어오는 상호적 현상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파장과 침묵이 일순간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말을 하지 않는 침묵 속에 있을 때, 의미와 깊은 감정의 가능성이 유발되고 대상과 관찰자 사이에 다층적인 해석이 일어난다.
그림 밖
2인전 ‘Unsaid’에 참여한 에릭 켈러와 김선근은 시각을 통한 신체의 지각을 매개로 세상과 상호관계를 맺고, 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짐짓 말하지 않음으로써 비현상적 차원의 감정과 의미의 창구를 열었다.
김선근은 화면에서 형상을 명시하기보다 이를 초월해 캔버스 밖의 존재에 이르렀다. 에릭 켈러는 시각적 기억을 환기하면서도 그것을 잔향처럼 남겼다. 궁극적으로 두 작가는 경험과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기를 지향하고 있다.
전시는 보는 이의 시야를 나와 대상이 상호적 시선을 주고받는 관계로 옮기도록 한다. 양자의 시선이 마주할 때 일어나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파장으로부터 잠재적인 의미가 순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김선근은 캔버스 안의 형상을 비워 그림 밖을 보고자 했다. 형상의 외형이 아닌 비가시적인 존재 자체를 고민하고 화면 안의 형상과 화면 밖의 공간이 맺는 관계를 궁리하면서 정적인 빈 화면을 드러냈다.
또 형상을 통해 형상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는 자유와 해방, 완성의 감각을 생명으로 하는 ’초형상성‘의 개념으로 번역된다. 특히 김선근은 단순 제소 칠 외의 다른 표현을 작업서 배제하고 무(無)를 통해 현상적 유(有)를 인식하는 동양의 여백과 유(有), 무(無)의 개념을 접합해 숙고한 공백감서 비롯되는 화면의 침묵을 만들어냈다.
존재와 비존재 사색
다의적인 의미 생성
라흰 관계자는 “김선근의 작업은 완성된 형태를 발화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무한을 내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지하게 하면서 관람객에게 화면 밖에서 존재와 비존재를 사색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에릭 켈러는 시각적 기억을 회화적 허구로 전환하면서 특정 장소와 대상을 초월한 분위기로 화면을 채웠다. 독일 작센주 출신인 그는 공산주의 동독의 잔재로 남은 장소와 세월의 얼룩이 묻은 폐허를 자주 다뤘다.

이 외에도 벤치와 공원, 정류장, 산책로 등 무의식에 저장된 일상의 장면을 통해 시간과 기억에 관한 모종의 인상을 담아냈다. 이 과정서 그는 자신을 스친 상황과 감정을 명료하게 발화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서사와 정보가 모호한 화면으로 재구성해 실제와의 접속력을 약화했다.
켈러의 작업이 비언어적인 아우라를 발하는 것은 사진이나 기록에 의존하지 않는 작업 방식과 몽환적인 색채, 형체가 모호한 암시적인 표현법에 크게 빚지고 있다. 관람객은 설명과 감정을 침묵하는 켈러의 그림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의 덩어리를 천천히 호흡하고 체험하게 된다.
생각의 덩어리
라흰 관계자는 “에릭 켈러는 기억과 감정의 세계에 접근하면서도 그것을 웅변하기보다는 잔향만을 남기면서 고유의 회화적 시도를 통해 재현적 한계를 벗어나 다의적인 의미를 생성하고 보이지 않는 내밀한 세계에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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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켈러는?]
▲학력
독일 뉘른베르크 조형예술 아카데미(AdBK Nurnberg) 시각예술 전공(2006~2008)
독일 드레스덴 미술대학(HfBK Dresden) 회화 및 그래픽 아트 전공(2008~2014)
독일 라이프치히 시각예술 아카데미(HGB Leipzig) 회화 마이스터슐러 과정(2016~2018)
▲개인전
‘Ginstergrund’ Gallery Poll(2023)
‘Places I’ll remember’ City of Gold(2023)
‘Bleiben wo ich nie gewesen bin’ Gallery Wellemeyer(2023)
‘spellbound’ Gallery Leuenroth(2022) 외 다수
[김선근은?]
▲학력
뉴욕 스튜디오 스쿨, 미술학 석사(2010)
호주 국립미술학교, 미술학 학사(2008)
▲개인전
‘Something Beside of the Figure’ Marathon Gallery(2023)
‘Figuration’ Yi Gallery(2022)
‘Show Them Life, and They’ll Find Within Themselves‘ Lowell Ryan Projects(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