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페지리갤러리가 작가 돈선필의 개인전 ‘음울한 귤’을 준비했다. 돈선필은 서브컬처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애정을 비평 도구로 삼아 언어와 사회의 모습을 ‘구현화’의 관점으로 해석했다. 이번 전시는 ‘특촬’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됐다.

돈선필의 개인전 제목인 ‘음울한 귤’은 일본 만화에 등장한 가상의 책 이름이다. 원서의 언어유희적 표현을 알아차리지 못한 번역가의 오역으로부터 비롯됐다. 이후 개정판서 각주로 수정됐지만 이 어색한 단어는 여전히 존재한다. 돈선필은 이 같은 번역 오류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취미를
돈선필이 관심을 가진 특촬은 아직 도래하지 않거나 이미 사라진 것 등 가상의 시공간을 현실로 재현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결합된 과정이다. 여기서 작가가 주목한 부분은 영상 촬영 이후 그것이 실체를 가진 존재로 계속 남아있다는 점이다.
가면, 슈트, 괴수의 몸체, 도심 공간을 표현한 디오라마 세트 등은 필요와 한계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조건을 해결해 가면서 만들어진다. 또 촬영이 끝난 뒤에도 현실에 남아 기묘한 형상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시장 입구에 ‘끽태점’이라 쓰인 포렴을 지나면 특촬 작업실, 수장고처럼 꾸며진 공간이 펼쳐진다. 끽태점은 사물의 모습과 형태를 즐길 수 있는 상점을 말한다. 이곳에는 돈선필이 수집하고 제작하며 써온 다양한 조각, 책, 영상, 글 등이 놓여 있다. 작가의 작업 여정서 축적된 총체적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돈선필의 작업은 그의 다양한 관심사인 망가, 아니메, 피규어, 특촬 등에 기반하고 있다. 단순 취미를 넘어 전문가 영역까지 확장된 그의 활동은 향유하는 문화의 고유한 언어를 해석해 들려주는 통역가 같은 면모로 발전했다. 이번 전시 도록에 실린 ‘특촬_재현을 위해 가공한 사물’이라는 글은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돈선필의 작업은 관람객이 각기 다른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차이를 의식하도록 만든다. 번역에 관한 그의 이야기처럼 각자의 상황이나 이해도에 따라 편견, 오해, 왜곡의 단계를 거쳐 원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앎이 생성된다.
번역 오류서 따온 제목
망가 아니메 피규어 관심
이번 전시는 개인의 삶, 취미, 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조각서 글과 영상으로, 다시 사물로 펴져 나가고 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촘촘하게 펼쳐 보인다. 돈선필은 텍스트와 조형 형태 사이의 간극, 물성이 가진 외적 변화와 표면이 균열하는 순간, 그리고 새로운 것이 솟아오르는 과정을 억지로 봉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는 과정서 새롭게 나타나는 것으로부터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피규어에 대한 연구는 특촬의 구조와 성격을 함축하는 좋은 예시다. 돈선필은 피규어가 가진 정확한 모습을 재현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 비율과 균형서 벗어난 요소가 혼재된 모습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이 같은 접근은 어떤 이에게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괴상하고 기묘한 혼합물로 읽힌다. 돈선필은 특촬이라는 호기심의 대상을 따라가며 과장이나 누락 없이 자신이 인식하는 것을 그대로 펼쳐 보인다.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것을 보도록, 느낄 수 있는 것을 느끼도록 하며, 이는 아직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페리지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 ‘음울한 귤’은 하나의 원형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길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작가의 완결된 판단이나 확정된 작업으로 나타나진 않는다”며 “특정 분위기를 통해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 그리고 무언가를 가로지른 후에야 도달할 수 있는 가상과 실재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길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작업으로
이어 “관람객은 저마다 다른 요소에 이끌릴 것이다. 우리는 여러 지점 중 무언가를 선택하게 되고 그 뒤에 찾아오는 오차, 오류, 그리고 불가피한 오해를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새롭게 마련된 토대서 다층적으로 쌓여가는 시공간을 재설정하며 새로운 창조의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돈선필은?]
▲개인전
‘Electronic Tomb Raider’ 국제전자센터(2024)
‘인더스트리얼 미소녀’ 아라리오갤러리(2023)
‘괴·수·인’ YPC스페이스(2022)
‘Cats on Mars’ 쿤스트할 오르후스(2021)
‘Portrait Fist’ 아트선재센터(2020) 외 다수
▲수상
제1회 서울예술상 시각부문 우수상(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