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새 대통령에 바란다 - 이보미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참되거라 바르거라? 교실은 공포의 공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치던 교실은 공포의 공간이 됐다. 서이초등학교 사건부터 시작해 연달아 터지는 교사들의 비보에도 끊이지 않는 교권 침해에 교사들은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한때 동경의 대상이었던 교사라는 직업이 지금은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우러러보던 스승의 은혜는 이젠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건들의 후 조치로 다양한 제도들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서 교사들이 느끼는 상황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사노동조합연맹과 함께 대한민국 교실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다음은 이보미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나?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전국 단위 교과별·급별 노동조합 9개와 지역 단위 16개 조합이 연합한 조직이다. 현재 총 조합원 수는 약 12만5000명 정도다. 지역 단위 노조는 지역 교육청을 상대로 단체교섭, 지역 교육 현안 대응, 정책 제안, 교사 민원 상담, 고충 해결, 교권 보호 활동 등의 일을 하고 있고, 전국 단위 노조는 연맹을 통해 교육부와 단체교섭을 진행하며, 교육제도와 교육환경 개선, 교사 정책 제안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고교학점제가 문제 되는 구체적인 이유는?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점 이수로 졸업하는 제도다. 과목별 출석률과 성적을 기준으로 이수 여부를 판별해 3년 동안 192학점을 취득해야 한다. 이를 도입하기 위해 담임제 폐지, 행정 지원 시스템 등 근본적인 학교 운영 방식이 대폭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현장에 무리하게 적용되면서 교사들의 업무 부담과 그로 인한 교육의 질 훼손이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교육부는 미이수 학생의 졸업 요건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성적을 기준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져 있는지 묻고 싶다.

또, 고교학점제에서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줄 세우기식 내신 상대평가와 입시제도는 그대로다. 이런 상황서 학생들은 진로와 적성이 아닌 여전히 내신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과목 편성으로 선택권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학생과 교사 모두의 부담만 가중됐을 뿐이다.

-교원·공무원의 정치 기본권 박탈로 생기는 문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정치 기본권이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교사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근무 시간 외에도 정치적 의사 표현이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다. SNS서 ‘좋아요’를 누른 것만으로도 징계나 감사를 받는 사례가 많아, 정치적 위축감이 크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도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교사들이 조심스럽게 대응할 수밖에 없고, 그런 현장의 어려움은 계속돼왔다.

또 교육 자치와 관련한 조례나 정책 결정 과정서도 교사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이권 단체들의 입장에 밀려 현장의 목소리는 무시되고 있다. 그 결과 교사들이 효능감을 잃고, “우리가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가 퍼지고 있다. 교육은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교육 현장은 매우 정치적인 공간이 됐고, 정치 기본권이 없는 교사만 소외된 상태서 교육정책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문제다.

“말해도 바뀌지 않아”
효능감 잃은 교사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이 확보됐다고 느끼나? 혹은 변화된 점이 있는지?

▲각종 제도는 많이 들어왔는데 실효성이 있느냐를 따지려면 결국은 현장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거의 다 시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제도적으로 의무 조항이나 처벌 조항이 있는 것들만 그나마 변화가 느껴지는 수준이다.

반면 예산이 없어서 안 되는 경우나, 강제성이 없어서 번거롭게만 느껴지는 부분들은 여전히 흐지부지되고 있다. 법 제도나 지원 제도 자체는 복합적으로 강화된 면이 있지만 본질적인 부분, 예를 들어 교사의 사기나 근본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부 처벌 조항이 생기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장서 체감하는 정도는 크지 않은 것 같다.

-교권 침해에 대한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교권은 교사의 권한이나 특권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권과 직결된 권리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가르칠 권리가 무너지면 수업이 무너진다. 교사 일이 다수를 지도해야 하기에 정서·학습 지원과 의료적·제도적 인력 지원이 더욱 세분화돼야 한다. 학교 현장은 지역·학생구성·교사 환경 모두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이고 경직된 예산과 제도로는 대응이 어렵다.

그럼에도 교육 현장은 여전히 복지와 지원서 소외돼있고, 자율성도 부족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성과 중심으로 교육 현장 정책을 수립할 것이 아니라, 학교 현장의 실제 어려움을 세세하게 경청하고, 자율성과 맞춤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교사들은 현 상황을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 만큼, 교육 예산과 인력 지원은 학생과 사회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현 시점서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교직 사회의 문제가 있다면?

▲교직이 더 이상 행복한 일이 아니라고 인식되는 것 자체가 큰 위기라고 생각한다. 교대·사범대 기피는 공교육 붕괴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결국 학생에게 돌아간다. 교육은 사회의 기본 안전망이자 핵심 인프라인데, 지금 교직은 기피·슬럼화되고 있고, 이는 교사 처우와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본다.

사교육 시장은 팽창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감 속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공교육은 학업뿐 아니라 공동체 가치와 인성 교육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시제도가 당장 바뀌기 어렵다면, 교육 노동 환경부터 바뀌어야 입시 경쟁이 완화될 수 있고, 나아가 노동에 대한 사회 인식과 조건이 변화해야, 아이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존중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신규 교사 이탈 심각하다”
“교육 환경부터 변화해야”

-과거와 비교해서 최근 교사들의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최근 몇 년 사이 교사 이직률이 급격히 증가했고, 특히 신규 교사들의 조기 이탈이 심각한 수준이다. 생활지도와 민원 대응 부담이 커졌고, 사소한 분쟁도 법적 문제로 이어지면서 교사들이 위축되고 있다. 녹음되는 교실, 감시받는 환경, 학생과 학부모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행복하게 가르친다’는 감각을 잃고 있다.

교사의 정신과 상담 비율이 늘고 있고, 방학에도 연수 등으로 실질적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교사는 인간이자 노동자인데, 지금은 정신적 산재 수준의 피로 속에서 일하고 있다. 교사의 휴식권과 심리적 안정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사회적 공감이 절실하다.

-앞서 말한 교직 사회의 문제들은 어떤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주요 위원회에 교사 위원이 전혀 없어, 교직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현장 목소리가 빠진 상태서 처우나 제도 개선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직업으로서 교사 기피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정책 결정 구조에 교사 등 당사자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학교는 교육보다 법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어, 교사의 생활지도 권한이 거의 사라졌다. 모든 사안이 행정 절차나 소송으로 흘러가고, 교사는 점점 무력해지고 우울해지고 있다. 교육 문제는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까지 법으로만 처리되면, 교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학생도 잘못된 메시지를 학습하게 된다. 교사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교육계의 판단권 역시 지켜야 한다.

-끝으로 차기 대통령 또는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교육계는 정치 기본권이 없기 때문에 공무원 처우 개선도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교육 환경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교사만을 위한 문제가 아닌, 국가의 행정과 교육의 미래를 위한 문제다.

교사가 주체성을 갖고 자부심과 사명감을 느끼며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진정성과 열정이 되살아나고, 교육도 진짜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사의 자발성과 에너지를 다시 일으켜줄 수 있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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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