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수사’ 중앙·남부지검 줄다리기 내막

다 된 밥에 숟가락 얹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씨를 수사하는 검찰의 내부 분위기가 수상하다. 남부지검이 확보한 자료를 중앙지검이 수거해 가면서 검찰청 간 갈등이 분출하는 분위기다. 남부지검 내부에서는 윤석열정부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중앙지검이 정치적 판단을 시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상 성과 가로채기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건이 다르다고 해도 핵심 자료를 가져갔으니 수사에 속도가 붙겠냐.” 서울남부지검 관계자의 말이다. 남부지검은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수사하는 과정서 김건희씨에게 로비가 이뤄진 정황을 포착했다. 지난해 말부터 강도 높은 수사를 시작하면서 김씨를 직접 청사로 부를 가능성도 언급됐다. 상황은 바뀌었다. 김씨의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남부지검이 확보한 핵심 물증들을 가져갔다.

검찰청 간
속도 경쟁?

김씨를 수사 중인 검찰청은 남부지검과 중앙지검, 서울고검 등이다. 먼저 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수단(단장 박건욱 부장검사)은 지난달 30일, 전씨와 관련해 김씨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저인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한 이후 전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남부지검의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영호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김씨는 명태균씨를 통한 공천 개입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윤 전 대통령도 이 사건의 수사 대상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씨는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했단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구체적으로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여론조사 도움을 받고, 그 대가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실제 명씨는 대선을 앞두고 윤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81차례의 공표·비공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3억7520만원의 비용은 명씨가 운영하는 미래한국연구소가 부담했다.

남부, 아크로비스타 압수물 대대적 수거
‘김건희 폰’ 포함해 핵심 증거까지 요구

김씨는 지난해 열린 4·10 총선 공천 개입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씨 측은 김씨가 지난해 2월 김 전 의원에게 경남 창원 의창 선거구에 김상민 전 검사가 당선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선거 이후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 2022년 지방선거 포항시장 후보 등 선정 과정에 개입했단 의혹도 제기됐다. 중앙지검은 이와 관련해 포항시장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공재광 전 평택시장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잇달아 불러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고검도 김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25일 대검찰청이 서울고검 형사부에 직접 평검사 2명을 파견 보냈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사건이 배당된 최행관 고검 검사와 함께 3명이 재수사를 맡게 된 셈이다.


앞서 지난해 10월17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는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가담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 등을 불기소 처분한 바 있다. 김씨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지난 2010년 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증권계좌 6개를 동원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고발인인 최강욱 전 의원이 항고했고, 서울고검은 항고를 검토한 끝에 재수사를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중앙지검이 김씨를 무혐의 처분한 지 약 6개월 만의 결정이다.

대검은 대법원서 판결이 확정된 권 전 회장 등 주가조작 사건 관계인들의 추가 조사가 필요한 만큼 수사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수사팀은 초기 수사에 관여한 다른 검사들의 의견도 청취했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의 의견을 들은 것 외에도 관련자들의 판결문을 들여다보면서 김씨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1명의 피의자
세 갈래 수사

검찰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씨를 향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가 대선 직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김씨의 ‘영부인 방패’가 사라진 만큼 검찰도 부담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서울고검과 중앙지검, 남부지검 등 모든 검찰청서 소환을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은 김씨에게 지난 14일 중앙지검 청사로 와달라며 소환을 통보했다. 윤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지난해 7월 중앙지검 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서 김씨를 대면 조사해 특혜 논란을 자초했던 만큼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오명을 씻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씨는 불출석 사유서를 통해 ▲조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재판은 모두 연기된 점 ▲문재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는 대면조사 없이 기소된 점 등을 근거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가운데 조기 대선 영향과 관련해서는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 공천 개입 의혹 조사로 추측성 보도가 양산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지검 명씨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은 지난 2월 창원지검서 명씨 사건 중 일부를 넘겨받고 김씨 측에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구두로 수차례 전달했지만, 조율되지 않아 왔다.

중앙지검은 김씨가 추가 출석 통보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통상 검찰은 3차례 정도 출석을 요구하는 편이다. 만약 세 차례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출석을 거부하면 체포영장을 통한 강제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중앙지검이 김씨의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된 만큼, 공직자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묶어 기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10년이다. 김씨를 윤 전 대통령의 공범으로 보겠단 것이다.

대선까지
강제 수사

검찰이 소환 조사 없이 김씨를 재판에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주지검은 지난 2~3월 문 전 대통령에게 2차례 소환 통보를 했지만 불응하자 서면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서면조사 요청에도 회신이 없자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을 직접조사 없이 불구속 기소했다.

총 세 곳의 검찰청서 윤 전 대통령 부부를 겨누고 있으나 검찰청 간 유기적 논의는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부지검이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해 확보했던 김씨의 휴대전화와 메모장 등을 중앙지검이 가져가면서 검찰청 간 수사 경쟁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당시 남부지검이 확보한 김씨의 휴대폰은 한남동 관저 퇴거 이후 교체한 신형 아이폰과 공기계다.

김씨 명의로 개통된 기기는 지난달 4일 개통된 아이폰16 기종으로 사용 기간은 약 20일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2대는 코바나컨텐츠 전시 공간서 음악 재생 등에 사용하던 공기계였다. 앞서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지난해 11월 명씨 논란이 불거지자 기존에 사용하던 개인 휴대전화를 교체했고 해당 기기들은 파면 직후 관저를 나오면서 대통령실에 반납했다고 한다.


중앙지검은 남부지검으로부터 가져온 김씨의 휴대폰 등을 디지털 포렌식 중이다. 그러나 김씨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분석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남부지검은 김씨의 휴대폰 등을 포렌식 중이었다. 전씨와 윤씨의 대화 이후 김씨가 이들을 만났는지, 윤씨와 김씨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지 등을 입증할 자료가 김씨의 휴대폰 안에 있었던 셈이다. 중앙지검이 김씨의 휴대폰을 가져가면서 남부지검은 김씨에게 실제 로비 행위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포렌식도 안 끝났다” 언제 돌려받을지도 미지수
김, 중앙지검 불출석…‘체포영장 카드’ 만지작

남부지검 한 관계자는 “중앙지검이 차후 확인한 자료를 공유해 주겠지만 포렌식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황서 자료가 공유된 부분을 아쉬워하는 분위기”라며 “그만큼 수사에 속도가 느려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지검이 남부지검에 김씨의 휴대폰을 언제 넘길지는 알 수 없다. 포렌식으로 확인한 자료를 토대로 김씨를 소환 조사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지난 12일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고소영 판사 심리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의 2차 공판기일에 출석했다. 지난달 7일 첫 공판 이후 35일 만이다.

이날 공판서 전씨 측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재판서 사용하는 데 동의했지만 입증 취지는 부인했다. 재판부는 검찰에 공소장을 검토할 시간을 주기 위해 내달 23일 공판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다.

전씨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2018년 1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당내 경선에 출마한 경북 영천시장 후보자 정모씨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전씨가 정씨에게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을 통해 공천을 받도록 해보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7일 열린 1차 공판기일서 전씨 측은 ‘전씨가 정치활동을 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1억원을 정치자금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이날 법정으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에게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백과 목걸이를 전달했는지” “관봉권은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등 여러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후엔 함께 기소된 정씨와 악수하며 “건강 잘 챙기시라”고만 말했다.

겉으로만
하는 척?

남부지검은 윤씨와 그의 아내 이모씨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또 전씨 처남과 딸 등 전씨 일가에 대해서도 출국금지 조치를 하고 대통령실 인사 청탁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실 인사 청탁과 관련해서도 남부지검이 김씨에 대한 소환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직 소환 조사 일정이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김씨가 중앙지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기에 중앙지검의 소환 조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본 이후 남부지검도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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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