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수사’ 중앙·남부지검 줄다리기 내막

다 된 밥에 숟가락 얹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씨를 수사하는 검찰의 내부 분위기가 수상하다. 남부지검이 확보한 자료를 중앙지검이 수거해 가면서 검찰청 간 갈등이 분출하는 분위기다. 남부지검 내부에서는 윤석열정부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중앙지검이 정치적 판단을 시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상 성과 가로채기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건이 다르다고 해도 핵심 자료를 가져갔으니 수사에 속도가 붙겠냐.” 서울남부지검 관계자의 말이다. 남부지검은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수사하는 과정서 김건희씨에게 로비가 이뤄진 정황을 포착했다. 지난해 말부터 강도 높은 수사를 시작하면서 김씨를 직접 청사로 부를 가능성도 언급됐다. 상황은 바뀌었다. 김씨의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남부지검이 확보한 핵심 물증들을 가져갔다.

검찰청 간
속도 경쟁?

김씨를 수사 중인 검찰청은 남부지검과 중앙지검, 서울고검 등이다. 먼저 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수단(단장 박건욱 부장검사)은 지난달 30일, 전씨와 관련해 김씨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저인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한 이후 전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남부지검의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영호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김씨는 명태균씨를 통한 공천 개입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윤 전 대통령도 이 사건의 수사 대상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씨는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했단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구체적으로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여론조사 도움을 받고, 그 대가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실제 명씨는 대선을 앞두고 윤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81차례의 공표·비공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3억7520만원의 비용은 명씨가 운영하는 미래한국연구소가 부담했다.

남부, 아크로비스타 압수물 대대적 수거
‘김건희 폰’ 포함해 핵심 증거까지 요구

김씨는 지난해 열린 4·10 총선 공천 개입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씨 측은 김씨가 지난해 2월 김 전 의원에게 경남 창원 의창 선거구에 김상민 전 검사가 당선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선거 이후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 2022년 지방선거 포항시장 후보 등 선정 과정에 개입했단 의혹도 제기됐다. 중앙지검은 이와 관련해 포항시장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공재광 전 평택시장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잇달아 불러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고검도 김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25일 대검찰청이 서울고검 형사부에 직접 평검사 2명을 파견 보냈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사건이 배당된 최행관 고검 검사와 함께 3명이 재수사를 맡게 된 셈이다.


앞서 지난해 10월17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는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가담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 등을 불기소 처분한 바 있다. 김씨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지난 2010년 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증권계좌 6개를 동원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고발인인 최강욱 전 의원이 항고했고, 서울고검은 항고를 검토한 끝에 재수사를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중앙지검이 김씨를 무혐의 처분한 지 약 6개월 만의 결정이다.

대검은 대법원서 판결이 확정된 권 전 회장 등 주가조작 사건 관계인들의 추가 조사가 필요한 만큼 수사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수사팀은 초기 수사에 관여한 다른 검사들의 의견도 청취했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의 의견을 들은 것 외에도 관련자들의 판결문을 들여다보면서 김씨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1명의 피의자
세 갈래 수사

검찰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씨를 향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가 대선 직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김씨의 ‘영부인 방패’가 사라진 만큼 검찰도 부담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서울고검과 중앙지검, 남부지검 등 모든 검찰청서 소환을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은 김씨에게 지난 14일 중앙지검 청사로 와달라며 소환을 통보했다. 윤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지난해 7월 중앙지검 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서 김씨를 대면 조사해 특혜 논란을 자초했던 만큼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오명을 씻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씨는 불출석 사유서를 통해 ▲조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재판은 모두 연기된 점 ▲문재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는 대면조사 없이 기소된 점 등을 근거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가운데 조기 대선 영향과 관련해서는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 공천 개입 의혹 조사로 추측성 보도가 양산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지검 명씨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은 지난 2월 창원지검서 명씨 사건 중 일부를 넘겨받고 김씨 측에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구두로 수차례 전달했지만, 조율되지 않아 왔다.

중앙지검은 김씨가 추가 출석 통보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통상 검찰은 3차례 정도 출석을 요구하는 편이다. 만약 세 차례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출석을 거부하면 체포영장을 통한 강제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중앙지검이 김씨의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된 만큼, 공직자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묶어 기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10년이다. 김씨를 윤 전 대통령의 공범으로 보겠단 것이다.

대선까지
강제 수사

검찰이 소환 조사 없이 김씨를 재판에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주지검은 지난 2~3월 문 전 대통령에게 2차례 소환 통보를 했지만 불응하자 서면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서면조사 요청에도 회신이 없자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을 직접조사 없이 불구속 기소했다.

총 세 곳의 검찰청서 윤 전 대통령 부부를 겨누고 있으나 검찰청 간 유기적 논의는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부지검이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해 확보했던 김씨의 휴대전화와 메모장 등을 중앙지검이 가져가면서 검찰청 간 수사 경쟁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당시 남부지검이 확보한 김씨의 휴대폰은 한남동 관저 퇴거 이후 교체한 신형 아이폰과 공기계다.

김씨 명의로 개통된 기기는 지난달 4일 개통된 아이폰16 기종으로 사용 기간은 약 20일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2대는 코바나컨텐츠 전시 공간서 음악 재생 등에 사용하던 공기계였다. 앞서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지난해 11월 명씨 논란이 불거지자 기존에 사용하던 개인 휴대전화를 교체했고 해당 기기들은 파면 직후 관저를 나오면서 대통령실에 반납했다고 한다.


중앙지검은 남부지검으로부터 가져온 김씨의 휴대폰 등을 디지털 포렌식 중이다. 그러나 김씨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분석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남부지검은 김씨의 휴대폰 등을 포렌식 중이었다. 전씨와 윤씨의 대화 이후 김씨가 이들을 만났는지, 윤씨와 김씨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지 등을 입증할 자료가 김씨의 휴대폰 안에 있었던 셈이다. 중앙지검이 김씨의 휴대폰을 가져가면서 남부지검은 김씨에게 실제 로비 행위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포렌식도 안 끝났다” 언제 돌려받을지도 미지수
김, 중앙지검 불출석…‘체포영장 카드’ 만지작

남부지검 한 관계자는 “중앙지검이 차후 확인한 자료를 공유해 주겠지만 포렌식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황서 자료가 공유된 부분을 아쉬워하는 분위기”라며 “그만큼 수사에 속도가 느려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지검이 남부지검에 김씨의 휴대폰을 언제 넘길지는 알 수 없다. 포렌식으로 확인한 자료를 토대로 김씨를 소환 조사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지난 12일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고소영 판사 심리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의 2차 공판기일에 출석했다. 지난달 7일 첫 공판 이후 35일 만이다.

이날 공판서 전씨 측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재판서 사용하는 데 동의했지만 입증 취지는 부인했다. 재판부는 검찰에 공소장을 검토할 시간을 주기 위해 내달 23일 공판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다.

전씨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2018년 1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당내 경선에 출마한 경북 영천시장 후보자 정모씨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전씨가 정씨에게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을 통해 공천을 받도록 해보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7일 열린 1차 공판기일서 전씨 측은 ‘전씨가 정치활동을 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1억원을 정치자금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이날 법정으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에게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백과 목걸이를 전달했는지” “관봉권은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등 여러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후엔 함께 기소된 정씨와 악수하며 “건강 잘 챙기시라”고만 말했다.

겉으로만
하는 척?

남부지검은 윤씨와 그의 아내 이모씨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또 전씨 처남과 딸 등 전씨 일가에 대해서도 출국금지 조치를 하고 대통령실 인사 청탁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실 인사 청탁과 관련해서도 남부지검이 김씨에 대한 소환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직 소환 조사 일정이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김씨가 중앙지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기에 중앙지검의 소환 조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본 이후 남부지검도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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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