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동기’ 범죄의 현실

길 가다 죽는 세상 됐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과거 강력범죄가 일어나면 경찰은 주변을 살폈다. 치정, 금전 등 범죄의 주요 동기와 연관된 용의자를 찾았다. ‘왜 그랬어?’라는 질문에 대부분 범죄자는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기를 알 수 없는 범죄가 늘고 있다. 묻지마 범죄, 무동기 범죄, 이상동기 범죄.

어느 범죄든 피해자에게는 ‘날벼락’이다. 살의를 가진 공격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는 일도 일어난다. 피해자나 유가족은 이유를 묻는다. 왜 자신이 범행 대상이 돼야 했고 내 가족이 길에서 사망해야 했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아무나

하지만 때론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데 가해자는 멀뚱히 쳐다보거나 도망쳐 버린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용의자를 잡아 묻는다. ‘왜 그랬나?’ ‘아는 사람인가?’ 몇몇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최근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동기 없이 저지르는 범죄, 이른바 무동기 범죄, 이상동기 범죄가 늘고 있다.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으로 널리 쓰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저지르는 범죄인 셈이다. 몇 년 새 묻지마 범죄로 통칭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면서 시민이 공포에 떨고 있다.

2023년 7월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골목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은 당시 22세였던 A씨를 흉기로 여러 번 찔러 숨지게 하고 30대 남성 3명을 공격해 중상해를 입혔다. 그는 지난해 9월 대법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다수가 통행하는 신림역서 대낮에 발생한 이 사건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고 지적했다.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분당 등에서 모방범죄가 발생했다. 2023년 8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AK플라자 분당점 부근서 한 남성이 모친의 승용차를 몰고 돌진해 5명을 들이받고 이후 백화점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일어났다.

차에 치인 2명은 사망했다. 당시 사건으로 14명의 사상자를 낸 최원종도 지난해 11월 대법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조선과 최원종 모두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형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한 달 간격으로 신림역과 서현역서 일어난 사건은 시민에게 언제 어디서든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안겼다. 두 사람 다 뚜렷한 동기를 내놓지 못한 점도 충격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소재로 사용될 법한 무차별 범죄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찰도 경찰력을 최대로 동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관련 내용이 올라오면 즉시 검거에 나섰다. 글을 올린 누리꾼은 ‘장난’이라면서 실행할 생각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선처는 없었다.

문제는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의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만 행정력이 ‘반짝’ 집중된다는 점이다. 시민이 피부로 느끼기에 무동기 범죄, 이상동기 범죄가 분명하게 늘어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통계가 없다 보니 대책도 거의 없는 상태다.

지난 22일 미아역 인근 마트서 흉기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A씨는 60대, 4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60대 여성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40대 여성은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태다. A씨는 체포 당시 인근 정형외과 환자복을 입고 있었으며 피해자들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신림·서현역 칼부림
최근 미아역서도 묻지마 살인

범행 직전 마트서 포장된 칼을 뜯어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충남 서천서 34세 남성 이지현이 처음 보는 여성을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40대 여성 피해자는 이지현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이 남성은 돈을 잃고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운동하러 나온 여성을 찔러 죽였다.

지난 2월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 명재완이 7세 김하늘양을 살해한 사건도 큰 충격을 안겼다. 명재완은 돌봄교실을 마치고 귀가하는 하늘양을 시청각실로 데려가 직접 구매한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처음에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의심하는 보도가 나왔지만 경찰은 “전문가에 따르면 우울증은 이런 식의 살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명재완의 범행은 가정불화, 직장 생활과 자기에 대한 불만으로 쌓인 분노·스트레스가 외부로 표출돼 일어났다. 그럼에도 왜 하늘양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다. 다만 자백 과정서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겠다”는 생각으로 돌봄교실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아이를 유인해 살해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물리력 동원, 처벌 강화 등의 방법만으로는 무동기 범죄, 이상동기 범죄를 줄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일단 어떤 사건을 무동기 범죄, 이상동기 범죄로 구분해야 할지 명확한 기준조차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 범죄 건수 등 통계화된 자료가 부족한 부분도 지적됐다.

지난달 24일 조국혁신당 백선희 의원 주최로 ‘이상동기 범죄 근본 대책에 관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상동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재정립하고 유형을 구체화하는 등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찰청은 2023년 ▲피해자와의 무관련성 ▲범행동기 이상성 ▲행위 비전 형성 등의 판단 기준을 적용해 이상동기 범죄를 공식 개념화했다. 발제자로 나선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상동기 범죄는 용어적으로 가해자의 범행동기가 불명확하거나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동기 범죄의 가장 핵심적 특징은 범행 동기의 불명확성이 아니라 범행 대상의 불특정성에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상동기 범죄 대신 ‘무차별 범죄’라는 표현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 아래로 ▲무차별 살인 ▲무차별 상해 ▲무차별 폭행 등의 유형으로 구분하자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범죄의 정의와 위험성 평가 등을 구체화하는 내용의 ‘무차별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가칭)’을 제정할 것을 제언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묻지마 범죄 또는 이상동기 범죄 등의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적절한 대책 마련을 위해 개념, 유형, 죄종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범죄의 변화 양상 등을 판단하고 사회적 여건을 진단할 수 있는 근거로 통계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유 없이


백선희 의원은 “이상동기 범죄는 발생 건수 대비 피해 정도가 매우 심각하고 사회 전반에 끼치는 충격이 상당하지만 정부는 처벌 강화만 앞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상동기 범죄 전반에 대한 관련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과 연구 결과를 수렴해 입법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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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