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진숙이 찍은 신동호

EBS에 드리운 정치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낙하산이 내려앉자, 땅이 흔들렸다. EBS를 향해 내려온 인사 한 명이 교육방송 전체를 흔들고 있다. 신동호 사장 임명은 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냈다. 교육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두고, 전례 없는 진통이 시작됐다. 공영방송의 상징, EBS의 하늘에 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난달 26일,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신임 사장으로 신동호 이사를 임명한 이후 교육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MBC 출신 아나운서로 정치권과의 인연이 있는 인물이자 방통위원장과 과거 선후배 관계였던 인물을 ‘2인 체제’ 방통위가 임명했다는 점에서 위법성 논란과 내정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EBS 내부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계, 시민사회까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낙하산
사장님

방통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신동호 이사를 EBS 사장으로 임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사장 선임 과정은 지난 2월28일부터 진행된 공모를 거쳐 총 8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24일 면접을 실시한 후 최종 결정됐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인원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방통위 부위원장뿐이었다.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2인 체제로 운영되는 상황서 이뤄진 공영방송 사장 임명은 법적 정당성을 결여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통위의 2인 체제 의결 구조에 대한 위헌성 지적은 이번 사안의 법적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방통위는 헌법상 독립성이 보장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상임위원 5명 중 3명 이상이 참석해 의결해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정부 들어 야당 추천 몫의 상임위원 공석이 장기화되면서, 사실상 여당 추천 인사 2인만으로 주요 정책과 인사권이 집행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합의제 기관의 취지를 무력화한다는 비판과 함께, 정권이 방통위를 사실상 ‘단독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이번 EBS 사장 선임 과정처럼 논란이 큰 인사를 강행하는 사례서 2인 체제의 위법성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불과 2주 전, 같은 2인 체제서 2023년 말 임명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의 임명 효력을 정지하는 판결을 내리며, 2인 체제 방통위의 의결은 무효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은 “합의제 행정기관의 운영 취지를 무력화할 수 있다”며 방통위의 운영 방식을 문제 삼았다.

이는 이번 EBS 사장 임명 사례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동일한 구조 아래서 EBS 사장 임명을 강행했고, 이는 ‘알박기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판결 직후 방통위가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했다는 사실은, 사법부의 권위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동호의 과거 이력은 공영방송 수장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는 MBC 재직 시절부터 언론계 내부서 여러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신동호는 1992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해 아나운서1부장, 아나운서국장 등을 지냈다. 2013년부터 약 4년간 국장을 맡으며, 당시 노조 활동을 벌이던 아나운서들을 타 부서로 전보하거나 프로그램서 배제하는 조치로 논란이 됐다.


2017년에는 이와 관련해 노조로부터 부당노동행위로 고소당해 MBC로부터 정직 6개월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후 2020년 총선을 앞두고 MBC를 퇴사해 당시 국민의힘 위성정당이었던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등록했다. 이는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 언론인 출신으로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행보였다. 실제로 그는 당초 비례 순번 14번을 받았으나 조정 끝에 32번으로 밀려 당선에 실패했고, 이후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정계 활동을 이어갔다.

2인 체제로 강행된 급 임명
정치·방송 얽힌 삼각관계

2023년 10월 그는 이동관·이상인 2인 체제 방통위서 EBS 보궐이사로 임명됐다. 하지만 이사 선임 과정서도 정당 가입 여부 확인이 소홀하게 처리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은 정당 탈당 후 3년이 지나지 않으면 EBS 이사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전체회의 이후에야 각 정당에 공문을 보내 정당 가입 이력을 조회했고, 그것도 신동호 한 명에 대해서만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회신을 거부했고, 국민의힘은 ‘해당 없음’으로 회신했다.

공문 발송 시점은 회의가 끝난 직후였고, 회신 기한은 당일 오후 3시까지로 설정돼 사실상 요식행위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진숙 위원장과 신동호의 관계도 문제로 떠올랐다. 두 사람은 과거 MBC서 함께 근무한 선후배 간부 사이였고, 이 위원장은 과거 유튜브 채널서 ‘사랑하는 후배 신동호 국장’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릴 정도로 친밀한 관계임을 드러낸 바 있다. 해당 영상은 이 위원장이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후 비공개로 전환됐다.

영상의 존재 자체가 논란의 물증처럼 언급되고 있으며, 신동호가 단순 지원자가 아닌 사실상 ‘예정된 수장’이었다는 인식에 힘을 싣고 있다. 영상은 여전히 비공개 상태로 유지되고 있으며, 관련 질의에 대해 이 위원장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이 위원장과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 관계를 넘어, 임명권자로서의 중립성에 의심을 낳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방통위원장이 사적으로 친밀한 인물을 공영방송 사장에 임명한 전례는 드물지 않지만, 그 관계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관련 영상이 비공개 처리된 점은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법 제9조에 따르면, 위원은 사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안건에 대해 스스로 회피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있다. 이에 따라 전국언론노조는 이 위원장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전국언론노조 EBS지부는 이 위원장이 공정한 심의·의결을 수행할 수 없다며 기피 신청을 냈으나, 방통위는 이를 ‘기피신청권 남용’으로 각하했다.

이 같은 상황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교육방송은 그 특성상 정치적 중립성과 도덕성이 강조되는 분야며, 구성원과 시청자 모두가 높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정당성
투명성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요 시청 대상으로 하는 EBS는 상업적 논리보다 공공성과 교육적 책임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장 선임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사장 선임 후, EBS 내부 구성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임명 당일 EBS 보직 간부 54명 중 52명이 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방통위의 이번 임명은 절차적 정당성과 법적 타당성이 결여돼있으며, 이는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더이상 위법과 부당함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공영방송 구성원으로서의 양심과 책임을 저버리는 일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EBS는 누구의 정치적 소유물도 아니며, 국민 모두의 방송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공적 자산”이라며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양심과 책임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결의문은 단순한 항의 성명이 아닌, 내부 조직문화와 윤리에 근거한 집단적 거부 선언이었다. 보직 간부들은 “방통위는 EBS 구성원의 분명한 입장과 국민적 우려를 끝내 외면했다. 절차적 정당성과 법적 타당성이 결여된 사장 선임을 강행했다”고 지적하며,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결정으로, 이는 교육 공영방송 EBS의 본질을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라 비판했다.

사퇴 대상은 보직 간부 54명 중 이사회 사무국과 감사실을 제외한 실무 책임자 대부분으로 구성됐다. 이는 사실상 사장 임명을 부정하는 조직 전체의 강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고, 그만큼 내부 구성원들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결의문은 “우리는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공영 방송인으로서의 양심과 책임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집단 의지를 드러냈다.

EBS 내부에서는 이번 사퇴가 단순한 집단행동이 아니라 “공영방송의 윤리를 지키기 위한 양심적 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내부 관계자는 “사장 인선의 부당함을 알고도 자리에 남는다면, 공영 방송인으로서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모두가 힘든 선택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보직 간부는 “이제까지 쌓아온 교육방송의 공공성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 결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알박기 인사
거세진 반발

이 같은 대규모 보직 사퇴는 EBS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로, 실무진의 신뢰 상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부 부서에선 업무 공백이 발생했고, 제작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졌다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내부 관계자들은 “공영방송의 기본 가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신동호는 첫 출근을 시도했지만, EBS 사옥 앞에서 이를 막아선 구성원 60여명과 2시간가량 대치한 끝에 출근을 포기하고 되돌아갔다. 현장에는 이준용 EBS 이사가 동행하며 신 사장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대해 구성원들은 “사장을 감시해야 할 이사가 대변인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유열 전 방통위 사장은 서울행정법원에 신동호 사장 임명 효력정지가처분 신청과 함께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김 전 사장은 입장문을 통해 “정당성을 상실한 절차로 임명된 사장은 EBS의 신뢰를 훼손하며, 이는 국민과 미래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조속한 법원의 판단을 촉구했다.

또, 법원에 유시춘 방통위 이사장과 일부 이사진 탄원서를 제출해 임명 절차의 위법성을 강조했다.

언론계도 반응했다. 방송기자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공정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정치적 관계를 가진 인물을 임명하는 것은 위법성과 이해충돌을 야기한다”면서 “신동호는 역대급 정치 이력을 가진 인물이며, 이번 임명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야권의 반발도 거세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은 지난 2월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서 “신동호 사장 임명은 공영방송 알박기 인사의 결정판”이라며 “이진숙 위원장은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권은 신 사장의 정치 이력, 방통위의 절차 위반, 이해충돌 문제를 동시에 지적하며 임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교육계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 관련 단체들은 EBS 콘텐츠의 독립성과 질적 수준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교육 콘텐츠가 정치적 의도에 종속되는 순간, 공교육 보완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보직 간부 52명 집단 사퇴
“절차도 정당성도 없었다”

과거 공영방송 낙하산 인사 사례와의 비교도 이번 논란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010년대 초반, 정권교체 이후 KBS와 MBC 등 주요 방송사에 정치적 배경을 지닌 인사가 사장에 임명되면서 구성원들의 집단 퇴사 및 파업으로 이어졌고, 이는 공영방송 신뢰도에 장기적인 타격을 입혔다.

당시 EBS는 상대적으로 독립적 지위를 유지해 왔던 만큼, 이번 사안은 EBS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인사 논란으로 기록되고 있다.

결국 이번 신동호 사장 임명 사태는 단순한 낙하산 논란을 넘어,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공적 기관을 사유화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통위의 역할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데 있으며, 그 중심에는 투명성과 중립성이라는 원칙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이 같은 원칙들이 무너지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향후 공영방송 전반에 걸쳐 구조적 불신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으로의 변수는 사법부의 판단이다. 현재 김유열 전 사장이 제기한 효력정지가처분과 본안 소송, 이사진의 탄원서 제출 등 법적 대응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며,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신동호 사장의 임명 효력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 이번 사안을 계기로 방통위의 구조 개편, 방통위원 임명 절차의 투명화, 공영방송 사장 선임 절차의 제도 개선 등 구조 개혁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언론학계에서는 정치권 인사가 아닌 시민 추천 중심의 사장 선임 제도 도입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으며, 따라서 해당 사안이 방송법 개정과 같은 입법 논의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온다.

EBS지부는 계속해서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관 전국언론노조 EBS 지부장은 기자회견서 “신동호는 즉각 사퇴해야 하며, 방통위는 위법한 임명 결정을 철회하고 EBS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지부장은 “EBS 구성원들은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호는 사장 임명 이후 공식 업무에 착수하지 못한 상태다. 구성원의 출근 저지와 법적 효력 정지 소송이 진행되는 한, 실질적 권한 행사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신동호가 자진사퇴 수순을 밟을지, 또는 정면돌파를 시도할지에 따라 향후 국면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역시 정치적 부담과 법적 책임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출근 불가
업무 불가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사 논란을 넘어,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공공성,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법원의 판단과 정치권의 대응이 향후 임명 효력과 방송계 전반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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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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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