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이?’ 대형 산불 음모론

일부러 불 질렀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전국적인 산불이 발생한 가운데 온라인 커뮤티니티 등에서는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정부가 산불의 원인을 밝혀냈지만, 여전히 음모론은 식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 삶의 터전을 잃은 피해민들은 분노를 내비치고 있다.

전국의 대형 산불이 닷새 넘게 이어지면서 산림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화마의식’ ‘간첩설’ 등이 퍼지며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지르고 있다는 음모론이 나오고 있다.

무차별 유포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산불피해 현황에 따르면, 전국 5곳의 산불로 1만4694헥타르(ha)의 산림이 불에 타거나 피해를 입었다(지난 25일 오전 9시 기준). 이는 윤중로 제방 안쪽으로 290ha인 여의도의 50배 크기의 규모이자 0.7ha인 국제규격 축구장 2만여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경북 의성서 가장 넓은 1만2565ha의 피해가 발생했고, 경남 산청 하동 1557ha, 울산 울주 435ha, 경남 김해 97ha, 불이 진화된 충북 옥천서도 39ha의 산림 피해가 났다.

김해와 옥천 산불은 진화됐으나 의성 산불은 진화율이 55%에 그치고 있다. 산청 하동 산불은 88% 진화율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 및 경계 단계 발령, 국가소방동원령 발령 등으로 가용할 수 있는 진압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했다.


이런 상황에 각종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산불과 관련한 무차별적인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산불을 연관 짓는 글들은 수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미국정치갤러리’에는 지난 22일 “지금 전국 동시다발 산불 절대로 정상 아님”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은 300개가 넘는 추천을 받았다.

해당 게시글은 “갑자기 하루 만에 산불이 이렇게 증가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며 “이건 누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할 수밖에 없음. 며칠 전 청주공항으로 50명 정도 짱깨(중국인 비하 용어)가 들어와서 단체로 버스 대절해서 숙소 이동을 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XX들이 지령받고 불 지른 게 매우 높은 확률로 의심된다”면서 중국인들이 산불을 냈다고 주장했다.

또 “윤카(윤석열 각하 줄임말) 계엄 이후 무안공항 사고도 그렇고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 되고 이례적인 사고들이 갑자기 막 일어난다”며 “주작(조작)을 해도 적당히 해야 그런가 보다 하면서 속는 거지, 어떻게든 나라를 흔들어보겠다고 이것들이 선 넘네”라고 이번 산불과 윤석열의 계엄 선포, 제주항공 참사를 엮어 ‘외부 세력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는 음모론을 내세웠다.

북한 지령설에 화마 의식까지
하다 하다 참사도 정쟁에 사용?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인 디시인사이드의 ‘국민의힘갤러리’에도 이번 산불이 간첩 소행이라는 글이 실렸다. 지난 23일 해당 커뮤니티에는 “현재 전국 연쇄 산불은 간첩소행이다. 이거 화력 요청함”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글은 400개가 넘는 추천을 받았다.

해당 게시글은 “이런데도 간첩법 개정을 막는 민주당은 진짜 간첩 정당”이라며 “총력전으로 공격해서 이참에 반중 정서 심어주고 국내 거주 중국인 간첩, 북한 간첩, 민주당 간첩, 민노총 간첩들 싹 다 발본색원해 처단해야 한다. 윤카 복귀하려니까 진짜 별짓을 다 하네”라며 아무 근거 없이 산불을 중국과 북한의 간첩이 저지르고 있다는 망상에 가까운 주장을 했다.


이후 국민의힘 갤러리에 지난 26일 올라온 “산불 음모론이 아닌 이유”라는 제목의 게시글에서는 “오늘 레거시 미디어서 중국인이 산불 방화하는 건 극우세력의 음모론이라고 동시 발작”이라며 “근데 이미 한 달 전에 울산대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이 4차례나 방화하고 다니다 검거당함. 이래도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음모론 타령할래?”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이번 산불이 중국인이나 간첩에 의한 것이라는 근거는 내놓지 못했다.

이어 “부정선거 때도 언론서 극우 음모론 몰이하니깐 웰빙마냥 겁먹어서 부정선거 파헤치지도 못하고 투표권 주권 눈앞에서 화짱조(화교, 짱깨, 조선족 등 중국인 비하 용어) 빨갱이들한테 빼앗기다가 대통령이 계몽령으로 이런 일에는 반국가 세력이 있다는 거 겨우 일깨워준 거 벌써 잊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윤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번 산불이 일종의 ‘무속’ 의식을 하다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왔다.

구독자 2만3800여명을 보유한 한 진보 성향 유튜버는 지난 23일 ‘김건희, 산불로 호마의식’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고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과 자신의 나쁜 흐름을 바꾸려 무속적 의식을 실행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마의식은 불을 활용한 밀교 의식을 가리킨다. 해당 영상은 24일 오후 1시 45분 기준 8만8000회 조회된 상태다.

“모두 유언비어에 가까워”
10년간 한 해 평균 546건

SNS X(엑스, 구 트위터) 등에서도 근거 없는 음모론이 등장했다. 윤 대통령의 사주상 ‘불이 있으면 크게 된다’며 의도적으로 산불을 냈다는 등 주장이다. 한 누리꾼은 지난 2022년 경북 울진, 강원 삼척서 발생했던 산불을 언급하며 “무당이 산에서 몰래 굿하다가 불낸 게 아닌가 의심 중”이라고 썼다.

이 외에도 ‘산불 발화 당시 보라색 불꽃이 일었다. 보라색 불꽃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어 화학적 테러가 의심된다’ ‘외지인이 와서 불을 지르고 도망가는 것을 목격했다’ 등의 음모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유언비어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화재 원인은 소방 당국이 조사 중이지만 실화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야산서 발생한 불은 인근서 농장을 운영 중인 A씨가 사용하던 예초기서 튄 불꽃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서 발생한 산불은 성묘객이 묘지를 정리하던 중에 났고, 같은 달 24일 통영 야산 산불은 부모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던 60대가 초를 피우다가 넘어져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단기간에 많은 불이 난 것은 맞지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은 아니란 분석도 제기된다. 2002년 4월5일 식목일엔 하루 동안 63건의 산불이 발생한 바 있다. 통계적으로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부는 3·4월에 산불이 많이 나기도 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24년 사이 최근 10년간 한 해 평균 546건의 산불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46%(251건)가 3·4월에 집중됐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미 산불 원인이 대략 나오고 있지 않냐. 누군 성묘하다가 그랬다고 하고, 누군 예초기 사용하다 그랬다고 한다”며 “예년에도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난 적은 꽤 많았다. 연례행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조치”

대통령실은 지난 24일 “전국민적 재난인 산불을 ‘호마의식’ 등 음모론의 소재로 악용한 일부 유튜버의 행태에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명백한 허위 주장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고 법적 조치 검토 등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산불은 국가적 재난으로 온 국민이 합심해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서 음모론을 유포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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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