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장르탈출Ⅱ’ 7인의 작가

색다른 시선의 현대미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종로구 소재 갤러리마리서 기획전시 ‘Beyond Genre 장르탈출Ⅱ’를 준비했다. 202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하는 ‘장르탈출’전은 새로운 시선으로 경계와 울타리를 허무는 작가와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다. 시대의 양상과 우리 삶의 모습을 자신의 직업과 연결하고 이를 반영하는 과정서 기존에 보여주지 못한 새로움으로 장르 간 경계를 무화시키는 작가들이 함께했다. 

2022년 11월 갤러리마리는 ‘장르탈출Ⅰ’을 통해 김원규·김펄·김현숙·만욱·모지선·베리캄·여동현·잠산·큐락 등 작가 9인의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2회째를 맞은 이번 ‘장르탈출Ⅱ’전에는 고은주·박종화·오윤석·임진성·정창기·최은정·추영애 등 7인의 작가가 참여했다. 

규범 탈피

종류 또는 유형을 뜻하는 프랑스어 ‘장르(genre)’는 문학과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서 작품을 구분하거나 분류할 때 폭넓게 이용되는 단어다. 하지만 관습적인 장르 구분은 현대미술에 있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히려 예술의 양식적 규범을 탈피하려는 시도와 실험이 작가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 되는 분위기다. 

장르를 넘어선다는 것은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익숙한 형식과 한정된 재료에 얽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용이나 소재, 나아가 자신이 거둔 성과나 외부의 평가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작가적 태도 또한 ‘장르탈출’ 전시가 지향하는 지점이다.

고은주는 현대인이 가진 ‘불안’이라는 정서에 주목해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전통적 기원 문화를 예술적 도구로 차용해 표현했다. 길상의 의미를 지닌 화려한 도상이 좌우대칭의 구도로 조화롭게 자리 잡은 그의 작업은 행운부, 애정부, 재물부 등의 제목을 붙여 현대적이면서 색다른 부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위안과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긴 작업은 자신을 비롯해 마음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공감의 선물이다. 

박종화가 만든 화면에는 여러 장면이 감각적으로 뒤섞여 있다. 스쳐 간 영화의 한 컷, 명화 속 인물이나 사물, 유명한 화가의 이미지 등을 모티브로 퍼즐을 맞추듯 즉흥적으로 조합해 나간다. 작가의 생각과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미해 색다르게 변주된 이미지를 전달한다. 

한 화면 속에 다중적 세계와 시간이 중첩된 듯한 박종화의 작업은 유머러스한 장면 연출에 대사나 독백 같은 한 줄의 제목이 더해지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혼재된 맥락을 하나의 서사로 담아낸다.

오윤석은 동양적 사유와 현대미술의 조우를 실험한다. 예술적 치유와 현대적 샤머니즘이 반영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칼로 종이를 도려내거나 도려낸 종이 끝을 뾰족하게 말아 올리는 등 예민한 신체적 몰입이 요구되는 이 작업은 고문서나 경전의 문자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다.

2022년 이어 두 번째
장르 간 경계 허물다

그가 구현하는 최종적인 이미지는 고요한 평면처럼 보이지만 실은 염원과 기원을 담은 반복적인 행위와 과정에 방점을 둔 작업이다.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춰진 무의식을 드러내는 일이다. 

임진성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쉼이 없다’는 뜻의 생생불식(生生不息)을 주제로 신비롭고 어스름한 푸른 빛을 화면 가득 펼쳐놨다. 가까이에서는 선명하고 또렷한 댓잎을 볼 수 있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면 어둠에 묻히듯 형체가 흐려진다. 


작가는 “화선지 위에 푸른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여러 번의 붓질로 만든 일종의 착시며 눈의 속임수”라고 말했다. 2m 높이의 각기 다른 대나무 일곱 폭 사이를 천천히 가로지르면 새벽녘 달빛을 반사한 것처럼 댓잎의 푸른 빛이 반짝이고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정창기는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촬영하는 대상에 내면을 투영하고 찬미하며 교감을 나누는 시인이다. 이번 전시서 돌과 숯, 과일과 채소, 꽃이 중력을 거스르고 수직으로 맞물린 채 연결돼있는 정물 사진 ‘Vertical’ 시리즈를 선보인다. 

‘Vertical Conversation’ ‘Vertical Meditation’ ‘Vertical Contemplation’ 등으로 표현된 사진 속 오브제는 세부 묘사가 생략된 인간의 형상을 드러낸다. 마음과 마음, 인간과 자연, 그 사이서 일어나는 리얼한 대화를 한 컷에 담고자 했다. 기하학적이고 절대적인 조화 속에 깃든 고요를 선사한다. 

최은정은 평면 위에 한지를 촘촘이 쌓아가며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색과 미감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색 한지를 물에 풀어 반죽하고 말린 후 작게 잘라낸 종잇조각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는 지난한 수공 작업 속에서도 미묘한 색의 조합을 감각적으로 선택했다.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최은정의 부조 작업은 오랜 시간 한지의 물성을 연구하고 종이가 조각의 재료가 될 수 있도록 반복해 실험하면서 만들어졌다.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결과로 존재한다는 평이다. 

섬유미술을 전공한 추영애는 천과 실, 기계 바느질을 이용한 직물 회화를 선보여왔다. 여러 종류의 조각 천을 오려 붙여서 실로 꿰매는 아플리케 기법에 반복적인 스티치 드로잉으로 마치 그림처럼 자연스러운 음영을 표현했다. 

소파와 쿠션, 화분과 탁자 등 실내 공간을 구성하는 익숙한 요소는 대부분 낡고 바랜 헌 옷을 오리고 조합해 완성한 것이다. 저마다 삶과 사연이 담긴 옷의 조각을 연결해 만들어내는 따뜻하고 심미적인 공간서 우리의 일상은 더 진지하고 특별해진다. 

실험 도전

갤러리마리 관계자는 “수많은 미술의 형태와 다양성 속에서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이들 7명의 작가가 큰 응원과 지지를 받길 바란다”며 “‘장르탈출’전이 좀 더 색다른 시선으로 현대미술을 경험하고 감상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다음 달 10일까지.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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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