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대로’ 통일부 남북교류협력법 악용 논란

감시 기관 전락…통일 배제부 오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통일부의 역할이 180도 바뀌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보다는 외면으로 일관 중이다. 특히 남북교류협력법을 국가보안법처럼 악용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 통일부는 지난해부터 조선학교 학생들과 접촉한 시민단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 남북교류협력법이 만들어진 취지와는 다르게 ‘제재’에만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조선학교의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외교부와 통일부의 극단적 안보 스탠스가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지난달 17일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간부 출신 관계자의 말이다. 위의 주장은 재일동포 사회서도 종종 언급된다. 과거 조총련과 현재 조총련을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기의
조선학교

통일부는 지난해 말 남북교류 관련 제재 강화를 위한 법·제도를 개정했다.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으면 북한 주민 접촉 신고 수리를 제한한다는 게 골자다. ▲법 위반에 따른 형 집행 종료·면제 이후 1년 ▲과태료를 납부한 이후 6개월 동안 수리 제한 ▲방북, 물자 반출입, 협력 사업, 수송장비 운행 등에서 승인 조건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등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법 개정은 김영호 장관 체제서부터 시작됐다. 남북교류보다는 제재에 몰두한 것이다. 김 장관 체제의 통일부는 먼저 일본서 영화를 제작한 문화예술인의 수년 전 조총련 접촉 경위를 파악했다.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은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의 김지운 감독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조은성 PD에게 “영화 제작 과정서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했다면 접촉 경위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두 영화는 각각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문제와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다뤘다.


지난해 개봉한 <차별>은 2017~2019년 촬영됐고, 2021년 개봉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2016~2017년에 주로 촬영됐다. 한 시민단체의 2019년 교류 활동도 문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접촉 신고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시효는 5년이다.

이는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조총련 주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걸 문제 삼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제재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통일부가 수년 전 접촉 여부까지 광범위하게 들여다보겠다고 한 상황을 두고 문화예술계에서는 과도한 조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이명박·박근혜정부서도 이 정도의 조치는 없었다. ‘접촉하지 않았냐’고 떠보는 식의 조사도 진행됐다”며 “조선학교를 방문하지 않고 학생들을 만난 것까지 문제 삼으려 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에 따라 우리 국민이 북한 주민과 접촉 시 미리 통일부에 계획을 신고해야 한다. 미리 하지 못한 경우 사후에도 신고할 수 있다. 조총련이나 소속 기관, 개인의 경우는 북한 주민으로 간주해 사전 접촉 신고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제한적으로만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총련 접촉했나 안 했나…사정기관 뺨치는 조사
사전 신고해도 수리 안 하면 끝 ‘사실상 허가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자의적인 법 해석에 따라 민간인 간의 교류는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지난해 말부터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영호 장관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시 과태료 부과가 아닌 무조건적 수사 의뢰로 법 개정을 추진하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통일부는 같은 해 말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분야를 담당하는 조직을 ‘종이호랑이’로 만들기도 했다. 통일부서 남북교류협력을 담당하는 부서에는 교류협력국, 남북회담본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출입사무소 등이 있다.

전직 통일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직 개편안이라고 발표하고 인원은 100명 가까이 줄여버렸다. 통일부 공무원 수의 6분의 1 수준이다. 대통령실 주도로 이뤄졌는데 당시 감축되는 인력에는 통일부 본부 및 산하조직에 적을 두고 있는 공무원만 포함됐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강도 높은 규제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개인·단체의 북한 주민 사전 접촉 신고가 39건 제출됐으나 단 6건만 수리됐다. 상반기에 69건이 제출돼 57건이 수리된 것과 비교하면 통일부의 접촉계획 승인 비율이 급락한 것이다.

특히 조총련 대상 접촉 신고의 경우 하반기에 7건이 제출됐으나 전부 수리 거부돼 수리율은 0%로 나타났다. 상반기에는 14건이 제출되고 9건이 수리됐다.

통일부의 강경 태세는 재일동포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분위기다. 재일동포의 한국 입국이나 일본 내 사업 운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한 재일동포 사업가는 “코리아타운에서는 조총련이든 민단이든 가리지 않고 서로 교류한다. 한국 정부가 변화하면 재일동포를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시선도 달라진다”며 “일본 정부의 정책 변화로 피해를 입거나 혐오 문제가터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업가는 “재일동포의 국적은 2차 대전 패전 후 일본이 일본 국적을 빼앗고 부여한 조선적, 1965년 한일 수교 후 취득할 수 있게 된 한국 국적, 일본 귀화자 등 다양하다. 이들이 만날 때마다 서로 국적을 확인하고 신고해야 한다면 비즈니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과거까지
파헤치기

위기에 놓이게 된 건 조선학교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본 사회서 혐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간다. 대부분 민족 역사와 한국말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기에 조선학교를 다니는 것이지, 북한 정권에 충성하거나 주체사상을 피부로 느끼려는 학생은 거의 없다.

조선학교는 1945년 해방 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아이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벌인 민족교육 운동의 결과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조선학교에 장학금과 교과서 등을 보내며 지원한 반면 한국 정부는 외면했다. 이 과정서 조선학교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도 하게 됐다.

현재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일본 내 한국 학교의 수는 도쿄 1곳 등 겨우 4곳으로, 조선학교(60여곳)와 격차가 크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조선학교 출신 인사는 “일본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배울 수도 없고 역사가 왜곡된 일본 교과서로 공부해야 한다. 가난한 가정이 많아서 지방 곳곳에 사는데 도쿄나 오사카까지 가지 못하는 청년도 많다”고 말했다.

조선학교와 조총련은 재정난에 시달릴 만큼 과거와는 다르게 위상이 하락했다. 영향력도 줄어들어 조선학교는 물론 조총련 구성원조차도 70% 정도는 한국 국적자다.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교포들의 생활환경은 분열됐다.

먼저, 일본 당국은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이들을 1947년 미군정 당시 편의상 만든 임시 국적인 조선적으로 분류했다. 현재 재일교포 중 대한민국 국적자는 41만여명이다. 조선적은 국제법상 무국적자로, 본인 의지만 있다면 한국이나 일본 등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우리 외교당국도 이들에게 한국 국적 취득을 권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기준 조선적은 2만9559명이었으나 현재는 약 2만2000명 정도다.

이념 따라
갈팡질팡

조총련의 위기는 조선학교 교육 수준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 조선학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가난을 극복하려 시도했다. 올해 초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교류 자체가 씨가 말라 조선학교 학생의 수도 줄게 됐다. 재일동포 청년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우리말을 배울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선학교 교원 출신 재일동포는 “14년 전 고교무상화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조선학교는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정부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데 이어 통일부의 제재가 지속되면서 민간 교류가 끊겨 희망의 끈을 놔버린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고교무상화법은 지난 2010년 4월1일 ‘공립고등학교에 관한 수업료 불징수 및 고등학교 등 취학 지원금 지급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다. 이 제도는 외국인학교를 포함한 모든 고교의 수업료를 무상화한 조치였으나 유일하게 조선고급학교만 무상화 적용 보류 대상이 된 후 심사에 회부됐다.

2년 동안 중단됐던 심사는, 2012년 12월26일 재집권한 자민당 아베 신조 정권에 의해 아예 배제로 바뀌었다.

고교무상화 문제가 떠오르자 학생들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달라며 일본 여론에 호소했고,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뒤에는 부모, 학교와 함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오사카·아이치·히로시마·규슈·도쿄 등 5곳에서 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재판이 시작됐다.

모든 재판이 원고 패소로 끝났지만, 지난 2017년 7월28일 오사카 지법만은 ‘상식적’ 판단을 했다.

그러나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독자적으로 조선학원(초중고)에 대한 보조금 교부를 중단했다. 이런 지자체의 ‘차별’을 문부과학성이 나서서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2016년 3월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28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지사에게 사실상 지급 중단을 요청하는 통지를 보냈다.

대한민국 국적 70% 불구 ‘북한 주민’ 취급
사상 따라 법리해석 조선학교 학생이 간첩?

2019년 10월 시행된 유아교육·보육 무상화에서는 모든 외국인학교의 유치원이 제외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게 크도록 지원한다’는 이념이 시설에 따라 달라졌고, 조선학교 차별은 외국인학교로 확대됐다.

남북교류협력법 제30조(국외단체 중 북한 주민 간주 조항)에 따르면 조총련 간부와 관계자는 북한 주민으로 취급된다. 조선학교 교장을 포함해 조총련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대한민국 국적자다. 현행법상 북한 주민으로 취급되는데 대한민국 국적자라는 모순적인 상황이 생긴다.

통일부 신고 절차를 밟지 않고 북한 주민으로 취급되는 대한민국 국적자를 만나면 남북교류협력법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혐의까지 받을 수 있다. 특히 조선학교가 모두 조총련의 지령을 받는 것도 아니다. 설사 몇몇 시민단체 지원이 있다고 해도 재정난을 겪는 상황서 이행 가능성은 매우 적다.

한편 총련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통일 관련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한국 인사와의 관계도 완전히 차단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받았다. 총련은 북한 당국의 지시를 13개 활동 방침으로 정리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동포 교육기관인 조선학교 등 하부 조직에 이른바 ‘13항목 지시서’로 전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의 교전국으로 규정한 이후 북한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남 적개심이 극에 달한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련계 동포 일부는 갑작스러운 통일 관련 활동 금지 등에 대해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조총련은 북한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외단체로 구성원과 접촉하려면 사전에 접촉 및 신고 수리가 필요하다”며 “현행법에 따라 이들은 북한 주민으로 규정하고 있고, 국적 여부에 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모순적
상황들

조총련 집행부는 북한 당국의 지시를 그대로 하부 조직에 전달했지만, 총련계 동포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큰 상황이다.

조총련 출신 한 관계자는 “조총련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 같다”며 “수십년간 통일에 대한 믿음과 의지와 관련된 교육과 지시가 이뤄졌었는데 한순간에 뒤바뀌면서 조총련 간부 및 재일동포 사회에도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며 “표면적으로 김정은을 비판하는 사람은 없으나 불만을 가진 사람이 10명 중 7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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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