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대로’ 통일부 남북교류협력법 악용 논란

감시 기관 전락…통일 배제부 오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통일부의 역할이 180도 바뀌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보다는 외면으로 일관 중이다. 특히 남북교류협력법을 국가보안법처럼 악용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 통일부는 지난해부터 조선학교 학생들과 접촉한 시민단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 남북교류협력법이 만들어진 취지와는 다르게 ‘제재’에만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조선학교의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외교부와 통일부의 극단적 안보 스탠스가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지난달 17일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간부 출신 관계자의 말이다. 위의 주장은 재일동포 사회서도 종종 언급된다. 과거 조총련과 현재 조총련을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기의
조선학교

통일부는 지난해 말 남북교류 관련 제재 강화를 위한 법·제도를 개정했다.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으면 북한 주민 접촉 신고 수리를 제한한다는 게 골자다. ▲법 위반에 따른 형 집행 종료·면제 이후 1년 ▲과태료를 납부한 이후 6개월 동안 수리 제한 ▲방북, 물자 반출입, 협력 사업, 수송장비 운행 등에서 승인 조건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등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법 개정은 김영호 장관 체제서부터 시작됐다. 남북교류보다는 제재에 몰두한 것이다. 김 장관 체제의 통일부는 먼저 일본서 영화를 제작한 문화예술인의 수년 전 조총련 접촉 경위를 파악했다.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은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의 김지운 감독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조은성 PD에게 “영화 제작 과정서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했다면 접촉 경위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두 영화는 각각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문제와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다뤘다.


지난해 개봉한 <차별>은 2017~2019년 촬영됐고, 2021년 개봉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2016~2017년에 주로 촬영됐다. 한 시민단체의 2019년 교류 활동도 문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접촉 신고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시효는 5년이다.

이는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조총련 주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걸 문제 삼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제재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통일부가 수년 전 접촉 여부까지 광범위하게 들여다보겠다고 한 상황을 두고 문화예술계에서는 과도한 조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이명박·박근혜정부서도 이 정도의 조치는 없었다. ‘접촉하지 않았냐’고 떠보는 식의 조사도 진행됐다”며 “조선학교를 방문하지 않고 학생들을 만난 것까지 문제 삼으려 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에 따라 우리 국민이 북한 주민과 접촉 시 미리 통일부에 계획을 신고해야 한다. 미리 하지 못한 경우 사후에도 신고할 수 있다. 조총련이나 소속 기관, 개인의 경우는 북한 주민으로 간주해 사전 접촉 신고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제한적으로만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총련 접촉했나 안 했나…사정기관 뺨치는 조사
사전 신고해도 수리 안 하면 끝 ‘사실상 허가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자의적인 법 해석에 따라 민간인 간의 교류는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지난해 말부터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영호 장관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시 과태료 부과가 아닌 무조건적 수사 의뢰로 법 개정을 추진하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통일부는 같은 해 말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분야를 담당하는 조직을 ‘종이호랑이’로 만들기도 했다. 통일부서 남북교류협력을 담당하는 부서에는 교류협력국, 남북회담본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출입사무소 등이 있다.

전직 통일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직 개편안이라고 발표하고 인원은 100명 가까이 줄여버렸다. 통일부 공무원 수의 6분의 1 수준이다. 대통령실 주도로 이뤄졌는데 당시 감축되는 인력에는 통일부 본부 및 산하조직에 적을 두고 있는 공무원만 포함됐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강도 높은 규제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개인·단체의 북한 주민 사전 접촉 신고가 39건 제출됐으나 단 6건만 수리됐다. 상반기에 69건이 제출돼 57건이 수리된 것과 비교하면 통일부의 접촉계획 승인 비율이 급락한 것이다.

특히 조총련 대상 접촉 신고의 경우 하반기에 7건이 제출됐으나 전부 수리 거부돼 수리율은 0%로 나타났다. 상반기에는 14건이 제출되고 9건이 수리됐다.

통일부의 강경 태세는 재일동포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분위기다. 재일동포의 한국 입국이나 일본 내 사업 운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한 재일동포 사업가는 “코리아타운에서는 조총련이든 민단이든 가리지 않고 서로 교류한다. 한국 정부가 변화하면 재일동포를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시선도 달라진다”며 “일본 정부의 정책 변화로 피해를 입거나 혐오 문제가터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업가는 “재일동포의 국적은 2차 대전 패전 후 일본이 일본 국적을 빼앗고 부여한 조선적, 1965년 한일 수교 후 취득할 수 있게 된 한국 국적, 일본 귀화자 등 다양하다. 이들이 만날 때마다 서로 국적을 확인하고 신고해야 한다면 비즈니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과거까지
파헤치기

위기에 놓이게 된 건 조선학교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본 사회서 혐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간다. 대부분 민족 역사와 한국말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기에 조선학교를 다니는 것이지, 북한 정권에 충성하거나 주체사상을 피부로 느끼려는 학생은 거의 없다.

조선학교는 1945년 해방 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아이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벌인 민족교육 운동의 결과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조선학교에 장학금과 교과서 등을 보내며 지원한 반면 한국 정부는 외면했다. 이 과정서 조선학교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도 하게 됐다.

현재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일본 내 한국 학교의 수는 도쿄 1곳 등 겨우 4곳으로, 조선학교(60여곳)와 격차가 크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조선학교 출신 인사는 “일본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배울 수도 없고 역사가 왜곡된 일본 교과서로 공부해야 한다. 가난한 가정이 많아서 지방 곳곳에 사는데 도쿄나 오사카까지 가지 못하는 청년도 많다”고 말했다.

조선학교와 조총련은 재정난에 시달릴 만큼 과거와는 다르게 위상이 하락했다. 영향력도 줄어들어 조선학교는 물론 조총련 구성원조차도 70% 정도는 한국 국적자다.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교포들의 생활환경은 분열됐다.

먼저, 일본 당국은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이들을 1947년 미군정 당시 편의상 만든 임시 국적인 조선적으로 분류했다. 현재 재일교포 중 대한민국 국적자는 41만여명이다. 조선적은 국제법상 무국적자로, 본인 의지만 있다면 한국이나 일본 등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우리 외교당국도 이들에게 한국 국적 취득을 권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기준 조선적은 2만9559명이었으나 현재는 약 2만2000명 정도다.

이념 따라
갈팡질팡

조총련의 위기는 조선학교 교육 수준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 조선학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가난을 극복하려 시도했다. 올해 초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교류 자체가 씨가 말라 조선학교 학생의 수도 줄게 됐다. 재일동포 청년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우리말을 배울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선학교 교원 출신 재일동포는 “14년 전 고교무상화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조선학교는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정부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데 이어 통일부의 제재가 지속되면서 민간 교류가 끊겨 희망의 끈을 놔버린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고교무상화법은 지난 2010년 4월1일 ‘공립고등학교에 관한 수업료 불징수 및 고등학교 등 취학 지원금 지급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다. 이 제도는 외국인학교를 포함한 모든 고교의 수업료를 무상화한 조치였으나 유일하게 조선고급학교만 무상화 적용 보류 대상이 된 후 심사에 회부됐다.

2년 동안 중단됐던 심사는, 2012년 12월26일 재집권한 자민당 아베 신조 정권에 의해 아예 배제로 바뀌었다.

고교무상화 문제가 떠오르자 학생들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달라며 일본 여론에 호소했고,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뒤에는 부모, 학교와 함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오사카·아이치·히로시마·규슈·도쿄 등 5곳에서 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재판이 시작됐다.

모든 재판이 원고 패소로 끝났지만, 지난 2017년 7월28일 오사카 지법만은 ‘상식적’ 판단을 했다.

그러나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독자적으로 조선학원(초중고)에 대한 보조금 교부를 중단했다. 이런 지자체의 ‘차별’을 문부과학성이 나서서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2016년 3월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28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지사에게 사실상 지급 중단을 요청하는 통지를 보냈다.

대한민국 국적 70% 불구 ‘북한 주민’ 취급
사상 따라 법리해석 조선학교 학생이 간첩?

2019년 10월 시행된 유아교육·보육 무상화에서는 모든 외국인학교의 유치원이 제외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게 크도록 지원한다’는 이념이 시설에 따라 달라졌고, 조선학교 차별은 외국인학교로 확대됐다.

남북교류협력법 제30조(국외단체 중 북한 주민 간주 조항)에 따르면 조총련 간부와 관계자는 북한 주민으로 취급된다. 조선학교 교장을 포함해 조총련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대한민국 국적자다. 현행법상 북한 주민으로 취급되는데 대한민국 국적자라는 모순적인 상황이 생긴다.

통일부 신고 절차를 밟지 않고 북한 주민으로 취급되는 대한민국 국적자를 만나면 남북교류협력법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혐의까지 받을 수 있다. 특히 조선학교가 모두 조총련의 지령을 받는 것도 아니다. 설사 몇몇 시민단체 지원이 있다고 해도 재정난을 겪는 상황서 이행 가능성은 매우 적다.

한편 총련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통일 관련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한국 인사와의 관계도 완전히 차단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받았다. 총련은 북한 당국의 지시를 13개 활동 방침으로 정리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동포 교육기관인 조선학교 등 하부 조직에 이른바 ‘13항목 지시서’로 전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의 교전국으로 규정한 이후 북한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남 적개심이 극에 달한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련계 동포 일부는 갑작스러운 통일 관련 활동 금지 등에 대해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조총련은 북한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외단체로 구성원과 접촉하려면 사전에 접촉 및 신고 수리가 필요하다”며 “현행법에 따라 이들은 북한 주민으로 규정하고 있고, 국적 여부에 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모순적
상황들

조총련 집행부는 북한 당국의 지시를 그대로 하부 조직에 전달했지만, 총련계 동포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큰 상황이다.

조총련 출신 한 관계자는 “조총련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 같다”며 “수십년간 통일에 대한 믿음과 의지와 관련된 교육과 지시가 이뤄졌었는데 한순간에 뒤바뀌면서 조총련 간부 및 재일동포 사회에도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며 “표면적으로 김정은을 비판하는 사람은 없으나 불만을 가진 사람이 10명 중 7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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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