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59명, 그들은 누구인가?

‘나 떨고 있니?’ 올가미 내리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죄를 지은 사람을 죽음으로 처단할 수 있을까? 사형제도는 어느 국가에서나 ‘뜨거운 감자’다. 우리나라는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집행하지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최근 법무부가 몇몇 연쇄살인범을 서울구치소로 이감했다. 사형 집행의 전조일까?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20개 국가서 883건의 사형이 집행됐다. 2021년(579건)에 비해 53% 늘어난 수치다. 사형을 가장 많이 집행한 나라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의 사형 집행 건수는 국가 기밀로 분류돼 확인할 수 없다. 수천 건으로 추산된다. 북한과 베트남도 집계서 제외돼 실제 사형 집행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1997년 12월30일 사형수 23명을 한꺼번에 집행한 뒤 중단했다. 사형제도에 관한 존폐 논쟁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다. 사형제도 존치론자와 폐지론자가 줄다리기의 양 끝에 서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모양새다. 그 균형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인 범죄가 일어날 때 미묘하게 무너지곤 한다.

최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흉기 난동 사건, 묻지마 범죄 등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넘어서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법무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려고 추진 중이다.

어떤 식으로든 흉악범을 사회서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지난달 25일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유영철은 노인과 부녀자 등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이 탄 차를 추월한다는 이유로 차에 타고 있던 신혼부부를 엽총으로 살해한 정형구도 서울구치소로 옮겨졌다.


유영철과 정형구 등의 이감을 두고 사형 집행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8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서울구치소·부산구치소·대구교도소·대전교도소 등 사형 집행시설을 보유한 4개 교정기관에 시설 점검을 지시했다. 이 중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시설을 갖춘 곳은 서울구치소가 유일했다고 한다.

형법 제66조(사형)에 따르면 사형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해 집행한다. 법무부는 “교정 행정상 필요한 조치”라고만 밝힌 상태다. 

법무부의 갑작스러운 조치로 사형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사형수는 모두 59명이다. 이 가운데 4명은 군형법으로 사형이 선고돼 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또 199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사형 집행이 아닌 병사나 자살 등 기타 사유로 사망한 사형수는 12명이다. 같은 기간 감형된 사형수는 19명이다.

이들은 형법 제55조(법률상 감경)에 따라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거나 2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감경됐다. 

최장기

국내 최장기 사형수는 원언식이다. 1992년 10월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왕국회관(여호와의증인 예배당)에 불을 질렀다. 이 화재로 15명이 죽고 25명이 다쳤다. 대법원은 1993년 11월 원언식의 사형을 확정했다. 다음 달이면 30년째 복역하는 셈이다. 


원언식의 복역 기간을 두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형법 제77조(형의 시효의 효과)와 제78조(형의 시효의 기간)에 따르면 형이 확정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을 면제해준다. 형법에 따르면 원언식의 경우 다음 달 23일이면 형 집행시효가 만료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법무부가 사형의 집행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으로 형법을 개정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4명의 군인

군형법 제3조(사형 집행)에 따르면 사형은 소속 군 참모총장이 지정한 장소서 총살로써 집행한다. 현재 군형법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는 4명이다. 김모 상병은 1996년 동료 사병에게 총을 난사, 3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군법원은 김 상병에 초병살해와 상관살해 미수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2005년 경기도 연천 비무장지대 초소(GP)서 수류탄 1발을 던지고 기관총 44발을 난사해 장교와 동료 사병 등 8명을 숨지게 한 이른바 ‘김 일병 사건’의 당사자도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군 당국은 “김 일병이 선임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렸다.

1997년 후 중단 상태
실질적 폐지국 유지

일부 유족과 시민단체는 김 일병이 범인이 아니라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1년 해병대에 근무하던 김모 상병은 왕따 등 괴롭힘을 당하자 앙심을 품고 동료 사병에게 조준사격을 가해 4명을 죽였다. 김 상병은 2013년 대법원의 판결로 사형이 확정됐다. 그러면서 최연소(19세) 사형수가 됐다. 

2014년 강원도 고성군 제22보병사단 GOP의 한 소초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임 병장 사건’이다. 임모 병장은 수류탄 1발을 던지고 총격을 가했고 그 결과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임 병장은 K2 소총과 실탄 60여발 등으로 무장한 채 탈영했다.

임 병장 이후 사형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서 마지막 사형수가 됐다. 

연쇄살인범

9명, 20명, 10명. 3명의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숫자다.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10개월 동안 9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금품을 노리고 낮 시간대 여자와 노약자만 있는 집에 침입해 살인을 저질렀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무려 20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의 범죄 행각이 드러난 이후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라는 개념이 국내를 강타했다. 당초 유영철은 21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판부가 1건(이문동 살인사건)을 무죄로 선고하면서 20명에 대한 죗값을 받았다. 

유영철의 범행은 정두영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그는 과거 검찰 조사 과정서 “2000년 강간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돼있을 당시 정두영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한 월간지를 보고 범행에 착안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9월 경기도 군포, 수원, 화성, 안양 등지서 성인 여성이 잇따라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가운데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도 있었지만 수사는 더뎠다. 그러다 2008년 12월 경기도 군포서 21세 여대생이 행방불명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 추적 끝에 검거된 인물이 바로 강호순이다.

경찰 조사 과정서 강호순의 여죄가 드러났는데 부녀자 8명을 포함해 자신의 아내와 장모 등 총 10명을 죽였다. 

외국인

2000년 6월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서 40대 주부가 얼굴과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퍽치기를 당한 해당 여성의 옷은 벗겨져 있었고 신체 주요 부위가 훼손된 상태였다. 경찰 수사 과정서 비슷한 수법의 강도․살인미수 사건이 7건이나 드러났다.


범인은 중국계 외국인인 왕리웨이. 검거 당시 우리나라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다가 도주해 불법체류자 신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 흉악범 서울구치소로 모아
헌재는 세 번째 헌법소원 심리 중

1999년 대구 서구 평리동서 모녀를 살해하고 딸의 친구를 강간한 박경수는 중국 조선족 출신으로 알려졌다. 박경수는 차비와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모녀의 집에 침입해 반항하던 모녀를 흉기로 찔러 죽였다. 딸의 친구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했다. 

당시 대구지법 재판부는 “사형폐지론이 대두하고 있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범행의 동기·수법 및 범행 후 정황이 전율을 느끼게 하고 잔인무도 했으며 유족의 극심한 피해감정 등을 고려, 인명경시·황금만능 범행을 예방하는 차원서 극형이 사형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최고령

59명의 사형수 가운데 최고령은 ‘보성 어부 살인사건’의 어부 오종근이다. 오종근은 2007년 8월 배에 태워 달라는 남녀 대학생 2명을 바다로 데려가 살해하고 20여일 후 바다를 보고 싶다는 20대 여성 2명을 자신의 배에 태워 나간 뒤 살해했다. 오종근은 시종일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 오종근은 항소심 진행 도중 사형제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정 신청을 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사형제도 존폐 논란이 다시금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에 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판단 이후 오종근의 사형이 확정됐다. 오종근은 현재 83세로 알려져 있다.

패륜아

1994년 4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주택에 불이 났다. 신고자는 집주인 박모씨의 아들 박한상.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처참하게 살해된 박씨 부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박한상은 부모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지만 이후 살인범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국내서 일어난 존속살해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박한상은 속옷까지 다 벗고 양손에 칼을 하나씩 쥔 채 부모를 40군데나 찔러 살해했다. 그는 증거인멸을 위해 집에 불을 질렀다. 이 과정서 다른 방에 자고 있던 박한상의 사촌동생도 사망했다. 박한상은 부모를 살해해 유산을 상속받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박한상의 범행은 영화 <공공의 적>, 정유정 작가가 쓴 <종의 기원>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카드빚을 갚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하고 형과 아버지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의 당사자인 김근우도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김근우는 말다툼 끝에 어머니 목을 졸랐고 쓰러진 어머니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켰다. 또 87세 할머니도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 

현재 사형제도는 3번째로 헌재 심판대에 올라 있다. 1996년 살인과 강간미수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가 낸 헌법소원서 7대2로 합헌 결정이 나왔다. 당시 헌재는 다수 의견서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고 밝혔다. 

2010년 사형제도 헌법소원에서는 위헌 의견이 4명으로 늘었다. 위헌 결정은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의 찬성을 필요로 하기에 합헌 결정이 났지만 사형제도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일었다.

사형제도에 관한 세 번째 헌법소원은 존속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윤모씨가 제기했다. 10여년 사이 위헌 의견이 2→4로 늘어나면서 이번에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형제도 존치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과 맞부딪칠 전망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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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