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미술사학회 표절 방관 의혹

‘보안각서’ 쓰고 깜깜이 밀실 회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맞잡은 손은 접착제를 붙여놓은 듯 떨어질 줄 몰랐다. 뭔지 모를 것을 지키기 위해 둥글게 둘러선 채였다. 썩고 있는 고인 물에 누군가 돌을 던졌다. 물 튀는 소리를 감추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몸을 웅크렸다. 곧이어 수면이 잠잠해졌다. 물은 다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한국과 관계지역의 미술사 연구를 위해 1989년 9월18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1960년 8월15일 고미술품 애호가였던 전형필·최순우·진홍섭·황수영·김원룡 선생이 모여 만든 고고미술동인회가 전신이다. 2020년 60주년에 이어 올해 창립 63주년을 맞았다.

창립 63년
미술사 연구

최근 한국미술사학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회원 간 논문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는 최근 표절 제보 건에 최종 심의 결과와 제재 조치를 내놨다. 제보자가 문제를 제기한 지 9개월 만이다. 이 과정서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모 교수는 2012년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서 ‘Sabangbul during the Chos˘on  dynasty: regional development of Buddhist images and rituals 조선시대의 사방불: 불교 이미지와 의례의 지역적 발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박사학위 논문의 챕터 4~5장을 정리해 한국미술사학회에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발표 당시 상당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지난해 11월경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제작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검색하던 중 같은 주제의 논문을 보게 됐다. 김 교수의 20년 지기인 재미교포 박모 박사가 <미술사학연구>에 발표한 ‘Picturing the Divine Agents of Food Bestowal: The Seven Buddhas in the Sweet-Dew Painting of the Chos˘on Period, 1392-1910’ 학술논문이다. 

<미술사학연구>는 한국미술사학회서 발행하는 학술지다. 박 박사의 학술논문은 2020년 <미술사학연구> 307호에 실렸다. 박 박사는 학술논문에 관해 2018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한 ‘Shaping the Economy of Salvation: The Gamno Paintings of the Joseon Period(1392-1910)’의 챕터 4장을 일부 수정하고 확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박사가 한국미술사학회에 투고한 학술논문은 ‘올해의 논문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의 논문상은 <미술사학연구>에 게재된 신진 학자의 직전 해 논문 중 선정된다. 심사위원 3명의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쳐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하고 이사회 논의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구조다.

김 교수는 박 박사의 학술논문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중 4장(The Esoterization of Sabangbul: The Five Tathagatas and the Sisik Rite in Kamno-t’aeng, 사방불의 밀교화: 감로탱에서의 오여래와 시식의례)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주제와 핵심 내용이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학술논문뿐만 아니라 박사학위 논문에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창립 이후 첫 표절 시비 휘말려
9개월 만에 결론 ‘경미한 정도’

김 교수는 “제 논문과 같은 내용을 유사 단어로 대체하고 문장과 구조를 바꿔 문단 사이에 삽입하는 등 표절에 걸리지 않도록 정교하게 작업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와의 친분이 동료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만나고 같이 외국 여행을 가는 등 15년 이상 교류한 사이였다는 것이다. 


특히 박 박사가 소아스 런던대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인 2016~2018년에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교류했다고 덧붙였다. 대화 내용은 감로탱, 밀교, 의례집 등 두 사람의 논문 주제였다. 하지만 2018년 6월 박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심사를 통과한 이후 거짓말처럼 연락이 끊겼다. 

이후 박 박사는 김 교수의 전화에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당시에는 박 박사가 내 논문을 표절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년간 아낌없이 도움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이용한 뒤 모른 척 한다고 생각해 마음이 상한 정도였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김 교수가 박 박사의 논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12일 한국미술사학회에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박 박사가 자신의 논문과 동일한 주제, 소재, 방법론을 따르면서 주석이나 참고문헌 등에 인용 표기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어 ▲핵심 단어를 유사 단어로 대체 ▲같은 내용을 다른 문장으로 표현(패러프레이징) ▲단락의 순서를 바꾸거나 중간에 다른 내용 끼워넣기 등의 방식으로 표절 검사를 피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의 표절 행태는 대학과 학계를 상대로 한 고의적이면서 전면적인 사기 행위로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응이다. 한국미술사학회는 연구윤리위원회를 꾸려 김 교수의 박사논문과 박 박사의 학술논문을 두고 심의를 진행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표절 제보 건에 대한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르면 “(박 박사의 학술논문이)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규정에 의거 제5조(연구부정행위의 범위) ‘사’항에 해당할 수 있으나 ‘경미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 제기 전
알 수 있었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규정 제5조 사항은 ‘그밖에 각 학문분야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 등으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연구윤리위원회의 판단이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제5조 다항에 명시하고 있는 ‘표절’ 대신 이른바 ‘기타’에 해당하는 조항을 적용한 셈이다.

제5조 다항은 표절을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 내용·결과, 분석된 데이터 등을 정당한 승인 또는 정확한 출처 표시 없이 도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거나 이미 출판된 내용을 자신의 다른 논문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를 보면 ‘두 논문의 소재 및 주제 간의 유관성은 존재함이 인정되나’ ‘기존 논문(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각주 및 인용의 미비는 확인됨’ ‘인용이 충분치 못했음이 인정됨’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제5조 다항서 정의하는 표절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일반적’ ‘보편적’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학계의 일반적 허용 범위를 벗어나거나 도용을 의심케 할 수위의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음’이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박 박사가 학술논문에 활용한 문헌이나 분석 방법 등이 미술사학계 연구서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김 교수와 박 박사의 논문을 두고 비교한 외국의 한 교수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놨다. 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한 이정희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서면 인터뷰서 “2020년 출간된 관련자(박 박사)의 학술논문은 표절 의혹 제기자(김 교수)의 논문 챕터 4와 그 주제, 소재, 결론이 아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표절 아닌
기타 적용


이어 “문제는 이 논고와 연관성 있는 제기자의 논문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고 인용 표기도 없고 참고문헌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학술논문서 가장 중요한 ‘독자적 연구는 무엇인가’에 대해 박 박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학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이라며 “심의 결과만 놓고 보면 소재, 주제가 같고 전개 방식과 흐름이 같으며 결론도 같은데 어떠한 인용 표시도 없는 것이 한국학계에 통용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재심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연구윤리위원회는 김 교수의 요청을 기각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심의 결과가 나온 5월 이후 박 박사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1일에야 연구윤리규정 제12조(판정 및 제제조치) 나항 3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본회 홈페이지와 학술지에 해당 사실과 조치를 게시’한다는 내용이다. 올해의 논문상에 대한 조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박 박사의 지도교수를 비롯해 동료평가를 진행한 심사위원, 전·현직 이사회의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사학계 관계자는 “김 교수의 논문이 10년 전에 나왔고 지도교수나 심사위원, 이사회서 몰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학술논문이)표절 시비에 휘말린 이상 도의적인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일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연구윤리위원회 구성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중이다. 위원회 구성은 물론 위원장 호선에 이르기까지 ‘깜깜이’로 이뤄졌기 때문.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장모 교수는 물론 이사진은 연구윤리위원회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일반적으로 연구윤리규정에는 ‘기피·제척·회피’ 조항이 포함된다. 제보자나 피조사자가 연구윤리위원에게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기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보자 혹은 피조사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도 심의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는 이 같은 절차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윤리위원장
“규정에 없어 공개 안 했다”

김 교수는 연구윤리위원을 알려 달라고 한국미술사학회에 요청했지만 “알아서 잘 구성했다”는 장 회장의 말만 들어야 했다. 실제 장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도 “학연, 지연 등을 전부 배제하고 위원을 선별했다”면서 “연구윤리규정에 연구윤리위원을 공개한다는 내용이 없어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윤리위원들은)연구윤리위원을 맡았다는 것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위원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 일부는 이른바 ‘보안각서’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연구윤리위원장은 완전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복수의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가 언급한 인사는 극구 “아니다“라면서 “학회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장을 역임했고 문화재청 유관단체서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해당 인사는 “오랫동안 학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며 “박 박사를 알지 못하고 본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박 박사의 올해의 논문상 수상 경위 ▲연구윤리위원회 구성 및 심의 결과가 나온 과정 등을 담은 <일요시사>의 서면 질의에 “학회도 사안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규정에 명시된 바와 같이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심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위원회의 자율성과 권한을 최대한 보장했다”고 답변을 전해왔다. 

김 교수는 올해의 논문상 수상 취소,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에게 전달되는 소식지에 박 박사의 연구윤리 위반 내용 기재 등의 조치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솜방망이’ 조치를 취한 이상 서울대를 비롯해 외부 편집위원, 해외 미술학계 등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는 이번 사건에 굉장히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의 지도교수는 박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인 서울대 이모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 “침묵을 깨라”고 일갈했다. 또, 장 회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한국미술사학회 차원에서 공정한 결론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미술사학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미술사를 공부할 당시 해외 논문을 그대로 베낀 국내 논문을 본 적이 있다”며 “내용을 공유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외국은 난리
국내만 조용

실제 장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두 차례 통화서 “다른 데(학회)도 이런 문제가 많은데 왜 우리 학회만 취재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게 기사 쓸 거리가 되나요?”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학회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자신은 한국미술사학회와 어떤 고리도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뒤 학회장이 찾아왔을 때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다. “표절은 있지만 표절 시비는 없었던”(미술사학계 관계자) 한국미술사학회는 이제야 연구윤리규정을 뒤적이면서 해석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63년 만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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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