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미술사학회 표절 방관 의혹

‘보안각서’ 쓰고 깜깜이 밀실 회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맞잡은 손은 접착제를 붙여놓은 듯 떨어질 줄 몰랐다. 뭔지 모를 것을 지키기 위해 둥글게 둘러선 채였다. 썩고 있는 고인 물에 누군가 돌을 던졌다. 물 튀는 소리를 감추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몸을 웅크렸다. 곧이어 수면이 잠잠해졌다. 물은 다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한국과 관계지역의 미술사 연구를 위해 1989년 9월18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1960년 8월15일 고미술품 애호가였던 전형필·최순우·진홍섭·황수영·김원룡 선생이 모여 만든 고고미술동인회가 전신이다. 2020년 60주년에 이어 올해 창립 63주년을 맞았다.

창립 63년
미술사 연구

최근 한국미술사학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회원 간 논문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는 최근 표절 제보 건에 최종 심의 결과와 제재 조치를 내놨다. 제보자가 문제를 제기한 지 9개월 만이다. 이 과정서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모 교수는 2012년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서 ‘Sabangbul during the Chos˘on  dynasty: regional development of Buddhist images and rituals 조선시대의 사방불: 불교 이미지와 의례의 지역적 발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박사학위 논문의 챕터 4~5장을 정리해 한국미술사학회에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발표 당시 상당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지난해 11월경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제작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검색하던 중 같은 주제의 논문을 보게 됐다. 김 교수의 20년 지기인 재미교포 박모 박사가 <미술사학연구>에 발표한 ‘Picturing the Divine Agents of Food Bestowal: The Seven Buddhas in the Sweet-Dew Painting of the Chos˘on Period, 1392-1910’ 학술논문이다. 

<미술사학연구>는 한국미술사학회서 발행하는 학술지다. 박 박사의 학술논문은 2020년 <미술사학연구> 307호에 실렸다. 박 박사는 학술논문에 관해 2018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한 ‘Shaping the Economy of Salvation: The Gamno Paintings of the Joseon Period(1392-1910)’의 챕터 4장을 일부 수정하고 확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박사가 한국미술사학회에 투고한 학술논문은 ‘올해의 논문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의 논문상은 <미술사학연구>에 게재된 신진 학자의 직전 해 논문 중 선정된다. 심사위원 3명의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쳐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하고 이사회 논의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구조다.

김 교수는 박 박사의 학술논문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중 4장(The Esoterization of Sabangbul: The Five Tathagatas and the Sisik Rite in Kamno-t’aeng, 사방불의 밀교화: 감로탱에서의 오여래와 시식의례)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주제와 핵심 내용이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학술논문뿐만 아니라 박사학위 논문에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창립 이후 첫 표절 시비 휘말려
9개월 만에 결론 ‘경미한 정도’

김 교수는 “제 논문과 같은 내용을 유사 단어로 대체하고 문장과 구조를 바꿔 문단 사이에 삽입하는 등 표절에 걸리지 않도록 정교하게 작업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와의 친분이 동료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만나고 같이 외국 여행을 가는 등 15년 이상 교류한 사이였다는 것이다. 


특히 박 박사가 소아스 런던대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인 2016~2018년에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교류했다고 덧붙였다. 대화 내용은 감로탱, 밀교, 의례집 등 두 사람의 논문 주제였다. 하지만 2018년 6월 박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심사를 통과한 이후 거짓말처럼 연락이 끊겼다. 

이후 박 박사는 김 교수의 전화에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당시에는 박 박사가 내 논문을 표절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년간 아낌없이 도움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이용한 뒤 모른 척 한다고 생각해 마음이 상한 정도였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김 교수가 박 박사의 논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12일 한국미술사학회에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박 박사가 자신의 논문과 동일한 주제, 소재, 방법론을 따르면서 주석이나 참고문헌 등에 인용 표기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어 ▲핵심 단어를 유사 단어로 대체 ▲같은 내용을 다른 문장으로 표현(패러프레이징) ▲단락의 순서를 바꾸거나 중간에 다른 내용 끼워넣기 등의 방식으로 표절 검사를 피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의 표절 행태는 대학과 학계를 상대로 한 고의적이면서 전면적인 사기 행위로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응이다. 한국미술사학회는 연구윤리위원회를 꾸려 김 교수의 박사논문과 박 박사의 학술논문을 두고 심의를 진행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표절 제보 건에 대한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르면 “(박 박사의 학술논문이)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규정에 의거 제5조(연구부정행위의 범위) ‘사’항에 해당할 수 있으나 ‘경미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 제기 전
알 수 있었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규정 제5조 사항은 ‘그밖에 각 학문분야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 등으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연구윤리위원회의 판단이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제5조 다항에 명시하고 있는 ‘표절’ 대신 이른바 ‘기타’에 해당하는 조항을 적용한 셈이다.

제5조 다항은 표절을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 내용·결과, 분석된 데이터 등을 정당한 승인 또는 정확한 출처 표시 없이 도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거나 이미 출판된 내용을 자신의 다른 논문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를 보면 ‘두 논문의 소재 및 주제 간의 유관성은 존재함이 인정되나’ ‘기존 논문(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각주 및 인용의 미비는 확인됨’ ‘인용이 충분치 못했음이 인정됨’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제5조 다항서 정의하는 표절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일반적’ ‘보편적’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학계의 일반적 허용 범위를 벗어나거나 도용을 의심케 할 수위의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음’이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박 박사가 학술논문에 활용한 문헌이나 분석 방법 등이 미술사학계 연구서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김 교수와 박 박사의 논문을 두고 비교한 외국의 한 교수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놨다. 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한 이정희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서면 인터뷰서 “2020년 출간된 관련자(박 박사)의 학술논문은 표절 의혹 제기자(김 교수)의 논문 챕터 4와 그 주제, 소재, 결론이 아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표절 아닌
기타 적용


이어 “문제는 이 논고와 연관성 있는 제기자의 논문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고 인용 표기도 없고 참고문헌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학술논문서 가장 중요한 ‘독자적 연구는 무엇인가’에 대해 박 박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학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이라며 “심의 결과만 놓고 보면 소재, 주제가 같고 전개 방식과 흐름이 같으며 결론도 같은데 어떠한 인용 표시도 없는 것이 한국학계에 통용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재심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연구윤리위원회는 김 교수의 요청을 기각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심의 결과가 나온 5월 이후 박 박사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1일에야 연구윤리규정 제12조(판정 및 제제조치) 나항 3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본회 홈페이지와 학술지에 해당 사실과 조치를 게시’한다는 내용이다. 올해의 논문상에 대한 조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박 박사의 지도교수를 비롯해 동료평가를 진행한 심사위원, 전·현직 이사회의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사학계 관계자는 “김 교수의 논문이 10년 전에 나왔고 지도교수나 심사위원, 이사회서 몰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학술논문이)표절 시비에 휘말린 이상 도의적인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일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연구윤리위원회 구성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중이다. 위원회 구성은 물론 위원장 호선에 이르기까지 ‘깜깜이’로 이뤄졌기 때문.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장모 교수는 물론 이사진은 연구윤리위원회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일반적으로 연구윤리규정에는 ‘기피·제척·회피’ 조항이 포함된다. 제보자나 피조사자가 연구윤리위원에게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기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보자 혹은 피조사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도 심의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는 이 같은 절차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윤리위원장
“규정에 없어 공개 안 했다”

김 교수는 연구윤리위원을 알려 달라고 한국미술사학회에 요청했지만 “알아서 잘 구성했다”는 장 회장의 말만 들어야 했다. 실제 장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도 “학연, 지연 등을 전부 배제하고 위원을 선별했다”면서 “연구윤리규정에 연구윤리위원을 공개한다는 내용이 없어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윤리위원들은)연구윤리위원을 맡았다는 것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위원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 일부는 이른바 ‘보안각서’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연구윤리위원장은 완전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복수의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가 언급한 인사는 극구 “아니다“라면서 “학회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장을 역임했고 문화재청 유관단체서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해당 인사는 “오랫동안 학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며 “박 박사를 알지 못하고 본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박 박사의 올해의 논문상 수상 경위 ▲연구윤리위원회 구성 및 심의 결과가 나온 과정 등을 담은 <일요시사>의 서면 질의에 “학회도 사안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규정에 명시된 바와 같이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심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위원회의 자율성과 권한을 최대한 보장했다”고 답변을 전해왔다. 

김 교수는 올해의 논문상 수상 취소,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에게 전달되는 소식지에 박 박사의 연구윤리 위반 내용 기재 등의 조치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솜방망이’ 조치를 취한 이상 서울대를 비롯해 외부 편집위원, 해외 미술학계 등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는 이번 사건에 굉장히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의 지도교수는 박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인 서울대 이모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 “침묵을 깨라”고 일갈했다. 또, 장 회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한국미술사학회 차원에서 공정한 결론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미술사학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미술사를 공부할 당시 해외 논문을 그대로 베낀 국내 논문을 본 적이 있다”며 “내용을 공유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외국은 난리
국내만 조용

실제 장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두 차례 통화서 “다른 데(학회)도 이런 문제가 많은데 왜 우리 학회만 취재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게 기사 쓸 거리가 되나요?”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학회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자신은 한국미술사학회와 어떤 고리도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뒤 학회장이 찾아왔을 때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다. “표절은 있지만 표절 시비는 없었던”(미술사학계 관계자) 한국미술사학회는 이제야 연구윤리규정을 뒤적이면서 해석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63년 만이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