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어두운 응급실의 현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듣다

“우리나라 응급의료는 타이타닉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크든 작든 위기는 조용히 오는 법이 없다. 사건이 일어난 후 복기를 해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조증상’이 있었다. 문제는 경고를 무시할 때 일어난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가 바로 이 상태다. 경고음은 줄기차게 울리고 있는데 변화는 요원하다.

기자 앞에 앉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탁자에 잔뜩 늘어놓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사실 몇 박 며칠을 얘기해도 다 못할 건데…”라며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부산대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서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소리 없이
다가온 위기

조 교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2000여명 등 총 3000~4000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른바 “떠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조 교수가 보낸 응급의료체계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받았다. 수십통에 이르는 이메일에는 조 교수가 오랜 시간 파악한 현실과 함께 경고가 담겨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응급의료체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섬뜩한 진단이었다. 

조 교수는 현재의 응급의료체계를 ‘타이타닉호’에 비유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이후 서서히 침몰했듯 응급의료체계도 붕괴 단계로 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타이타닉은 침몰하기 전 이미 빙산을 발견했다. 하지만 배가 너무 크다보니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 부딪혔다”며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가 지금 그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문제가 눈앞에 있지만 거대한 이해관계로 개선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가 타협할 수 없는 3자 간의 균형 관계 위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환자, 즉 국민과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 그리고 보험회사(국가)다. 세 주체가 원하는 바는 모두 다르고 그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맞닿아 있다. 

“환자는 가까운 거리에 대형병원이 있고 그곳에서 가장 실력 있는 의사가 ‘빠르고 편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값싼 비용’으로 진료를 봐주길 원한단 말이야. 의사는 어떻겠어요. 월급 많이 주고 일을 적게 하는 것을 원하겠죠? 국가는 돈을 쥐고 있으면서 국민과 의료진에게 ‘돈은 내되, 병원에 가지 마라’ ‘의료사고 치지 마라’ 이런단 말이죠.”

3자 간의 미묘한 균형 관계는 최근 들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70년대 만든 보험체계가 수명을 다하면서 연쇄적으로 응급의료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를 넘어 의료체계 자체가 앞으로 10~20년 안에 완전히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고려말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귀족은 산과 강을 경계로 제 땅을 삼고 빈자는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단 말이에요. 그러자 조선왕조가 나오고 토지계획이 이뤄졌죠. 영정조 시대 정약용 선생이 또 그런 이야기를 했고. 이런 식으로 어떤 제도가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 모순이 생기면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단 말입니다. 의료체계가 딱 그 꼴이에요.”

의료체계 전반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 상황인데 국민은 ‘국뽕’에 취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 관한 찬사가 모순점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망조의 시초’가 응급실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민낯 드러나
빅5 몰린 서울에서도 응급실 못 간다


조 교수에 따르면 응급실은 ‘모래시계’에 비유되곤 한다. 응급환자가 응급실로 모였다가 상황에 따라 각 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빗댄 것이다. 조 교수는 모래가 교차하는 가운데의 좁은 부분, 그곳이 응급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체계의 모순점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응급실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불과 수개월 사이 중증 응급환자 재이송 문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지난 3월 대구서 17세 응급환자가 2시간가량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했다. 지난 5월 경기도 용인서 차에 치인 70대 응급환자가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가 이송 도중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강남서 심정지 상태의 50대 남성이 응급실을 찾아 헤맨 끝에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강남서 응급실 뺑뺑이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응급의료체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서울에는 서울아산병원·신촌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 등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이 집중돼있다. 

조 교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원인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지목했다. 의료전달체계는 종합병원의 환자 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 1·2차병원을 거친 다음 3차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이미 유명무실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 교수는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모든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이나 병상 부족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경증환자조차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환자의 대형병원행 역시 공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형병원에 사람이 몰리면 1·2차병원이 망한단 말이에요. 그럼 병이 났을 때 환자가 갈 곳이 대형병원밖에 안 남아요. 또 몰리는 거죠. 환자가 외래(입원하지 않고 병원에 다니는 것)에서는 아직 문제점을 잘 못 느껴요. 그런데 응급 쪽은 문제라는 거죠. 급하지 않을 때야 괜찮은데 이제 급한 상황이 되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분명한 전조
외면하는 현실

결국 환자를 증상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조 교수는 영국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영국은 1차병원 의사가 환자를 보고 추가 진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전원시킬 때에도 해당 병원의 의사와 조율을 거친다. 환자가 병원을 정하는 게 아니라 의사가 환자가 갈 병원을 정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1차병원 의사는 환자가 상급병원으로 ‘멋대로’ 갈 수 없게 막는 역할을 한다. 같은 병을 진료하더라도 상급병원으로 가면 의료비가 높아진다. 1차병원 의사가 환자에 대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면서 의료비 상승을 막고 상급병원 과밀화 현상을 방지하도록 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도 주치의가 환자의 흐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의료체계가 구성돼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누구든 상급병원에 갈 수 있다. 환자가 원하는 대로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의사가 A 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해도 환자가 B 병원으로 가면 더 이상 말을 얹을 수 없다.


조 교수는 “환자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는 방향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환자를 한 번 걸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자가 가정서 먼저 자가진단을 합니다. 구급차를 불러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지 개인병원서 처치가 가능한지 스스로 판단해보는 거죠. 응급의료상황실(가칭)의 상담원은 환자의 설명에 따라 119로 연결할지, 의료기관으로 안내할지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되면 경증환자의 경우는 119가 아닌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과부화를 막는 겁니다.”

조 교수는 이런 방식의 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8년 일본 도쿄의 개인병원 산부인과서 임산부의 상태가 나빠지는 일이 일어났다. 개인병원 관계자는 도쿄 내 8개 대학병원에 전원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임산부는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 우리나라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과 유사하다. 

조 교수는 당시 일본 구급의학회의 대처를 예로 들었다. 임산부 사망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 뒤 일본 구급의학회는 성명서를 내고 전반적인 응급의료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조 교수는 “두 달 만에 성명서를 냈다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평소에도 응급의료체계에 상당히 고민해왔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전문가 집단서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 없다?
안 하는 것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일어난 뒤 보건복지부 등 정부와 정치권서 칼을 빼든 상태다.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4개 병원이 철퇴를 맞았고 나아가 현장에 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사법 처리될 상황에 놓여 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에 따른 연쇄반응이 의사 이탈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소아과 기피 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아응급체계는 빠른 속도로 망가지는 중이다. 응급의료체계 역시 이미 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암울한 진단이 나오고 있다.

조 교수는 “예전에는 학부를 졸업하고 전문의를 하다가 개업의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전문의도 따지 않고 개업의로 간다”고 한탄했다. 

조 교수는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서 일어난 간호사 뇌출혈 사망사건을 언급했다. 30대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을 찾았지만 당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어 결국 사망한 사건이다.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학회 참석, 휴가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간호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간호사의 사망 이후 서울아산병원 안팎에서는 ‘충격’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병원 안에서 의료진이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처치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골든타임을 넘긴 점에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조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에 뇌질환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3명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외과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이었다. 이 2명이 자리를 비우면서 간호사는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한 것이다. 

응급환자 분류하고 배분해야
“이대로면 10~20년 내 붕괴”

조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당 신경외과 의사 수를 보면 미국의 3배다. 그런데 그 많은 신경외과 의사가 다 어디에 갔느냐? 개업해서 물리치료를 하고 있다. 뇌수술을 해야 할 신경외과 의사가 다 개업의로 활동하고 있다고. 그러니 서울아산병원은 의사 2명이 전국서 몰려드는 뇌질환 환자의 수술을 담당해야 한다. 의사양성체계부터 엉망이라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조 교수는 “의료체계는 일종의 ‘고차방정식’이다. 크고 작은 병원 간의 관계가 있고 지역 간의 관계가 있다. 사안별로 개선점을 찾아 환자가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되는데 이게 풀리지 않고 있다. 국민은 당장 외래 쪽에서 문제를 못 느끼니 심각성을 모른다. 응급 쪽 문제가 터져도 그때뿐”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의료체계가 완전히 망가져서 온 국민이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해결될 것 같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숱한 경고음을 냈다. 하지만 국민은 그걸 이해할 생각도 없고 정치인은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쳐 침몰했듯 우리나라 의료체계도 그 단계까지 가야 변화가 시작되리라 본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평생 응급의료학계서 일한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의 현실을 보면서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인의 영달을 위해,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 도시마다 대형병원을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수록 지역의 작은 병원은 망하고 의료체계 붕괴가 가속화될 것을 예상하는 태도였다. 

조 교수는 그럼에도 거듭해서 강조했다. 환자를 배분하고 분산시키는 체계, 특히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를 뜻하는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KTAS는 응급환자를 평가할 때 증상을 중심으로 분류하기 위해 고안됐다. 분류 결과에 따라 진료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응급의료체계는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남다르다. 다시 말해 응급의료체계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돼있다. 소방, 의료 등 응급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역할을 부여하고 그 체계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제대로 굴러가면 더 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조 교수가 평생 바라온 바다.

이미 시작
가속화되나

조 교수는 현재 위암으로 투병 중이다. 5년 생존율이 70~80%에 이르는 2기 상태지만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말초신경염을 앓고 있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조차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에 관해 책을 쓰고 싶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무리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터뷰가 자신의 ‘유언’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인터뷰를 마친 뒤 쇼핑백 가득한 서류를 들고 움직였다. 기자를 배웅하면서도 여러 차례 의료계 상황을 언급하고 개탄했다. 조 교수는 이미 빙산을 봤다. 이대로 가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응급의료체계라는 커다란 배는 침몰을 앞두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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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