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대란’ 현실과 해법

아픈 아이 안고 발만 동동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소아청소년과 개원 의사 단체가 폐과 선언을 하면서 더 이상 소청과에 희망이 없다는 데 입을 모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소청과의사회)는 고질적 문제인 낮은 진료비(수가)와 저출생 문제로 병·의원 운영비가 상승해 일반진료를 택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늘자, 일반진료 관련 교육을 제공할 계획을 내비쳤다. 이후 소청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탈출(No kids zone)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열고 성인 진료 중심의 강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왜 ‘노키즈존’을 선언했을까?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세미나실서 의료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한 의사들은 여느 학술대회 때처럼 진지한 분위기였다. 강의는 고지혈증의 핵심정리로 시작해 보톡스 관련 강의가 뒤를 이었는데, 주목할만한 점은 800여개의 객석을 가득 메운 것은 내과 의사가 아닌 소아청소년과 의사였다. 

수입 28%↓
662개 폐업

소청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탈출(No kids zone)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열고 저수가에 대응할 ‘돈 되는’ 일반진료 강의를 소청과 전문의에게 제공한 것이다.

소청과의사회는 지난 3월 폐과 선언 이후 회원들을 대상으로 트레이닝센터 운영을 통해 일반진료 전환을 돕겠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학술대회를 통해 계획을 현실화하면서 소청과 붕괴 우려가 더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이 28%가 감소했다. 저출생 장기화로 인한 소아 청소년 수 감소와 저수가로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없는 병원이 늘어 지난 5년간 소청과 662개가 폐업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첫 학술대회서부터 소청과 탈출에 방점을 둬 성인 대상 미용, 만성질환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날 전체 회원의 20%에 달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719명이 참석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이를 통해 1년 후면 회원들이 교육을 통해 일반진료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5000여명의 회원 중 절반 이상이 교육 참여 의사를 밝혔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소아진료를 하려는 회원들도 다른 회원들이 일반진료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상황을 보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이런 흐름으로 1년이면 소청과 개원의들의 일반진료 역량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말 2221개소였던 소청과 의원이 지난해 말 2135개소로 감소했다. 폐업한 소청과가 662개인데 반면, 개원한 소청과는 576개로 오히려 감소 추세다. 현재 소청과 의원서 소아 진료를 받으려면 1시간 넘게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그러면서 감기나 경미한 염증 등 경증소아환자가 2·3차 의료기관인 응급의료센터와 병원과 병원 사이를 ‘표류’하게 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할 가능성도 더욱 높아졌다.

최근 서울에 사는 5세 아동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입원 병실이 없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40도 고열을 앓던 A군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빈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진료를 거부당했다.

총 4곳의 병원에서 입원진료 거부를 받은 A군은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서도 입원 없이 진료만 받았다. A군은 ‘급성 폐쇄성 후두염’을 진단받아 다음날 새벽에 귀가했지만 상태가 악화됐고 응급실을 다시 찾으려 했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임 회장은 “급성 폐쇄성 후두염의 경우 비대면 진료는 매우 위험하다”며 “빠른 대면 진료와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고 아이 상태에 따라 입원 진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을 살리려면 지금이라도 빨리 당정과 현장 전문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야간 응급실 병상 없어 사망
‘뺑뺑이’ 전공의 없는 병원들

그러면서 “최근 나온 소아과 오픈런 등은 앞서 여러 차례 경고했던 인프라 붕괴 도미노의 시작일 뿐”이라며 “내년 4년 차 선생님들만 150명 정도가 대학병원서 빠져나가는데 과연 병원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식이면 ‘한국서 이런 병으로 아이가 잘못될 수 있나?’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응급환자가 구급차서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다 숨지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대구 소재의 한 건물서 추락한 10대가 입원 병실을 찾지 못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경기도 용인에선 교통사고를 당한 70대가 인근 대학병원 12곳서 이송을 거절당해 결국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이를 두고 정부는 응급실·권역외상센터 등 응급의료시설서 근무하는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의사가 없어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8일 전국 44개소 권역응급의료센터장 및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진과 만나 “최근 적시에 응급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국민께서 불안해한다”면서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라고 응급의료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박 차관은 “반복되는 주요 이유로 경증 환자의 응급실 과밀화, 전문의와 중환자 병상 부족, 소방과 의료기관 간 체계적인 정보 공유 부족 등이 지적된다. 장기적이고 구조적 문제가 누적됐다”고 설명했다.

지원 방식은 정부 예산을 통해 직접적인 재정 지원과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특별 수가를 설정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논의 중이며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하는 사건을 두고 의료진 처우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응급의료시설 인력뿐만 아니라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의료진도 혜택 대상이다. 필수 의료 진료과목인 흉부외과와 신경외과는 소아과·산부인과와 같이 기피과로 분류된다.

피부·성형
탈출 러시

이 같은 기피 현상에 의사들은 과도한 업무와 과로가 누적된 업무 환경의 개선이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시한 지난해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흉부외과 전공의 근무시간은 현행법상 정해놓은 전공의 근무시간인 4주 평균 주 80시간을 훌쩍 넘는다. 흉부외과 전공의 근무시간이 102시간으로 제일 길었고 뒤이어 외과 90.6시간, 신경외과 90시간 등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사례가 많았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지지부진했던 의대 정원 확충에 원칙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 8일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필수 의료 및 지역 의료 강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의사 인력 확충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데 합의했다.


17년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이 2025학년도 입시부터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얼마나 확충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다.

의사 확충에 대한 논의만 주로 이뤄지자 의사단체에서는 의사 증원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사 증원이 되더라도 대표적인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선호과 경쟁만 치열해질뿐 기피과 개선 현상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은 필수의료 붕괴 문제를 두고 “의사 수를 늘려도 의사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우리 사회가 의사만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오늘날 소청과 기피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협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 중인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단체다.

앞서 정부는 ‘필수 의료 지원 대책’과 ‘소아의료체계 개선 대책’ 등을 내세워 필수 의료 및 지역 공공의료 기피 현상에 대한 해결 의지를 피력해왔다. 그러나 대전협은 구체적인 보건 재정 투입 계획 없이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건보료 낮아
유지 어려워”

대전협은 “기피영역 의료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건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현상”이라며 “정부기관과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연간 배출 의사 수 증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인구 1000명당 의료인 수·임금노동자 대비 의사 평균 임금의 국제 비교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의사 인력 추계 결과 등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통계를 살펴보면 임금 및 근로시간 산출에 있어 전체 의사 수의 10%에 해당하는 전공의를 제외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근무일수 226일, 근무시간 주 40시간으로 가정해 의사 수 부족을 추계하고 있으나, 현실의 전공의의 경우 주당 100시간, 320일 가까이 근무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전협은 필수 의료 및 지역 공공의료 기피 현상에 관해 국내 건강보험 국고보조금 비율과 급여 중 건강보험료 비율이 OECD 가입국 중 턱없이 낮은 수치가 주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건강보험 국고보조금 비율은 13.2%로, 대만 23.1%, 일본 27.4%, 프랑스 52.3%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또 급여 중 건강보험료 비율을 비교할 경우도 2020년 기준 일본 10%, 독일 14.6%, 프랑스 13% 등이지만 국내는 6.12%(현재 7.09%)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현행 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요율 8% 상한제 폐지와 점진적 보험재정의 최소 30% 수준을 국고지원금서 담당할 수 있도록 지출 구조 개편을 요구했다.

대전협은 “현실적으로 고령화에 대비해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접세 등을 활용해 보건 재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영구적인 건강보험 국가보조금이 필요하다. 특히 중증 진료에 대한 조세 기반 국고보조금의 확충이 없다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청과의사회도 건강보험 급여가 너무 낮아 병원 유지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외국의 경우 하루에 20명만 진료해도 병원 운영이 가능하지만 국내 소아과는 건강보험 급여가 낮아서 80명 미만으로 환자를 진료하면 병원 유지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의 잇단 ‘노키즈존’ 선언
의사 증원이 답? “문제는 돈”

올해 전국 국립대병원 10곳 중 6곳이 소청과 전공의를 한 명도 받지 못했다. 국립대병원을 찾은 소아청소년 환자 수는 3년간 약 70% 증가하는 추세인 가운데, 전국 국립대병원 소아과 전공의 정원 40명 중 지원자는 14명에 불과하다.

지난 13일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전국 국립대병원 10곳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소아응급진료 현황’에 따르면 119 구급대를 이용해 병원에 내원한 소아청소년환자 수는 2020년 1만4110명서 지난해 2만3956명으로 69.8% 증가했다.

국립대병원들은 주변 대학병원이나 기존 소청과 의원이 폐업하면서 국립대병원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소청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지원하는 전공의는 10%대에 머무르고 있다. 소청과 기피 현상에는 낮은 수가뿐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제도적인 문제를 떠나 소아를 진료하는 일과 아동 부모에 대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면서 법률적 배상이나 형사처벌로도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소아는 성인에 비해 진료가 쉽지 않은 데다 소송 리스크마저 크다.

앞서 소청과 전문의가 중이염이 의심되는 아이의 귀지를 제거해주다 피가 나자 부부가 담당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고소하고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도 제기한 사례가 있다.

임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피가 나도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지면 끝이고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니다”라며 “심지어 해당 사연은 의사가 피를 냈는지, 아이가 손을 넣어 냈는지, 부모가 피를 냈는지 증명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식이라면 소아과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피 현상에
수가 문제만?
 

지난해 의협이 1159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가가 필수 의료를 지원하기 위해 가장 우선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의료수가 정상화’를 41.2%로 가장 많이 꼽았다. 뒤이어 ‘필수 의료사고 민형사적 처벌 부담 완화’가 21.8%였는데, 의협은 이를 근거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의료계는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원인 중 의료 소송 부담이 커진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아병동 인력도 없는데…달빛어린이병원 확충, 왜?
“주 평균 78시간서 90시간 일하라고?”

국내 첫 어린이병원이자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달빛어린이병원인 소화병원이 지난 4일, 의료진 부족 사태로 휴일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대다수 아동병원은 야간·휴일에 진료하고 가산 수가를 받는 달빛어린이병원이 아니더라도 근무시간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서 열린 기자회견서 달빛어린이병원 제도 폐지·어린이 진료시스템 정상화를 촉구했다.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 협회장은 “제도 미비로 소아 의료 현장은 개선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부족한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악순환만 반복된다”며 “정부는 하드웨어 확대 정책에만 집중하고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홍준 정책이사는 “달빛어린이병원 제도에 10여년간 수요 및 공급에 대한 평가가 부족하고 배후진료시스템이 미비하다”며 “이는 거주 지역 내에서 야간·휴일 진료를 원하는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전시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 중 야간·휴일 시간 요건은 충족하더라고 실제 운영 일수는 주 2회에 그치는 사례도 있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아동병원협회는 달빛어린이병원 제도를 폐지하고 전면적인 수가 가산 및 재조정을 통해 전국 시군구의 소아 인구와 비례해서 1~3차 소아의료기관 역할 재정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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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