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도착할 시간’ 이은미

경계에 닿는 미묘한 빛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성북구 소재 갤러리 아트노이드178에서 이은미 작가의 개인전 ’도착할 시간‘을 준비했다. 이은미는 구석진 공간이나 모서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처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공간의 미묘한 빛이나 공기의 흐름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사물과의 관계 문제를 탐구해왔다. 

이은미는 이번 전시 ’도착할 시간‘을 통해 한 단계 도약했다. 대상과 그것의 현상학적 순간을 향한 이분법적 구조를 탈피하고자 했다. 이 같은 새로운 시도는 바람이 외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시작됐다. 

찬란한 순간

어느 여름날 햇살 내린 들판을 지난 바람, 녹음이 우거진 나무 사이를 스치고 간 신선한 바람, 빛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빽빽한 숲속 나무둥치에 머물렀던 축축한 바람, 담 아래 피었던 연분홍 꽃을 살랑이던 늦여름의 서늘한 바람 등 이은미는 모든 바람의 감촉에 주목했다.

결코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처럼 바람은 그렇게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바람은 떠나갔다가도 어느새 다시 다가온다. 이은미는 피부에 와닿는 바람을 인지하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일련의 과정에 집중했다. 바람이 어떻게 감각을 통해 드러나는지 그것이 화폭에 어떻게 펼쳐지는지 계속해서 추적했다.


이분법적 구조 탈피
한 단계 도약한 전시

이은미는 자신이 들이마시고 내뱉는 호흡, 그 숨이 닿았던 곳에서 바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바람이 일으킨 미세한 진동은 피부에만 닿는 게 아니다. 작고 깊게 들이마신 바람은 몸속, 더 깊은 곳의 폐포 점막에까지 이른다. 그 내밀하고도 깊은 곳에 닿는 감촉, 그 접촉의 순간을 형상화하는 것이 바로 이번 전시서 구현하려는 세계 그 자체다. 

박겸숙 아트노이드178 대표는 “그것은 빛으로 드러나는 순간처럼 매 순간 생성되는 더없이 새로운 세계 그 자체다. 이은미 작가가 기다리고 있는 세계, 그리고 마주할 수 있었던 세계는 ‘그렇게 있음(自然)’ 그 자체로 작품 속에 그리고 지금 여기 동시에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바람의 흔적
깊은 곳에 닿는 감촉

이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의 흐름, 바람의 움직임 그대로 존재하는 그것의 세계, 그것은 그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세계다. 그리고 그 모든 호흡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덧붙였다.

아트노이드178 관계자는 “메리 올리버의 시 <블랙워터 숲에서>가 떠오른다. 시 마지막 구절처럼 이은미 작가 역시 자신에게 닿았던 바람을 담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작품 앞에 선 이들이 각자의 삶에서 마주한 바람을 기억한다면 그 모든 순간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중한 기억


그러면서 “찬란한 삶의 생생한 순간을 사랑했고 매 순간 소중한 기억을 품어왔다면 언젠가 모든 순간을 놓아줘야 할 때가 되면 놓아주자고 권한다. 그렇게 놓으면 또 새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며 “2023년 4월, 화창한 봄으로 기억될 어느 날, 또 다른 바람이 불어와 다시 우리의 삶 속에 찬란한 순간으로 ‘도착할 시간’을 만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이은미 개인전

▲‘푸른 날’ 면천읍성안그미술관(2022)
▲‘무심한 날이었고’ 화이트반스페이스(2022)
▲‘L에게 밀려오다’ 갤러리담(2022)
▲‘Corners’ Narrative 코너 속 코너의 시선’ 코너갤러리(2021)
▲‘어디도 아닌’ 갤러리담(2020)
▲‘어떤 곳’ 면천읍성안그미술관(2019)
▲‘건너편 The Other Side’ 대전근현대사전시관(2018)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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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